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움직이는 자들 (2)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동북부 지역은 판데모니움 극동 제1지역 사령관 아스모데우스가 총책임자를 맡고 있다.
현재 아스모데우스는 병력을 소집하면서 재침공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하민아도 수면 밑에서 움직이고 있고,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면 이번에는 정말로 중국 전체가 판데모니움에게 점령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협력을 얻어서 그걸 방지하고 싶다…… 라는 것이 그레모리의 말이었다.
“그레모리.”
눈앞에 앉아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을 보면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판데모니움의 72악마입니다. 아무리 인간에게 우호적이라고 해도…… 지금 행동은 동료들에 대한 배신 아닙니까?”
벨리알도 인간에게 우호적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페넥스 등 다른 악마들을 배신한 건 아니다.
벨리알이 나와 협력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루시퍼 부활을 막기 위해서다. 벨리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루시퍼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레모리는 순수하게 인간이 좋아서 판데모니움을 배신하려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동료 의식은 별로 없습니다.”
그레모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시퍼의 사망 이후, 72악마의 결속은 많이 약해졌습니다. 내부 다툼도 많이 벌어지고 있죠.”
“그렇습니까?”
“네, 가혹한 지옥 한구석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던 시절하고는 많이 달라졌지요.”
그렇게 말한 뒤 그레모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무명, 물론 저도 판데모니움 전체를 배신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적대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판데모니움의 주전파들입니다.”
주전파.
총재(總裁) 몰렉을 중심으로 하는 과격파들.
페넥스도 이 주전파 소속이었다.
“그들은 비전 없이 전쟁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인류를 몰살시키고 지상 전체를 지배해 봤자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글쎄요.”
“적어도 찬란한 시대가 시작되지는 않을 겁니다. 현재 판데모니움은 이 넓은 지상 전체를 안정적으로 통치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레모리는 판데모니움이 지배하는 세상에 부정적이었다.
“주전파 악마들의 호전적인 성향을 생각하면, 인간들을 몰살시킨 뒤에는 자기들끼리 내전을 시작할 겁니다. 오랜 전쟁으로 대지는 황폐해질 테고, 결국 지옥과 별다를 게 없는 세상이 되겠죠.”
“…….”
“다시 전쟁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인간들과 교류하면서 문화와 산업을 발달시키는 것이 판데모니움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은 일입니다.”
그레모리의 말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일리가 있었다.
벨리알이 지배하던 한반도 서해안은 인간들과의 교역을 통해 매우 번영하고 있었다.
한편 페넥스가 지배하던 한반도 북부는 거기에 못 미치는 인상이었다.
“제가 생각하는 미래는, 판데모니움의 주전파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인간들과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인간들과의 진정한 화평.
그것이 그레모리의 바람이었다.
“김무명, 저는 인간들과 악마들이 서로 공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판데모니움의 주전파 악마들을 제거하고, 이제 판데모니움에서는 더 이상 인간들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고 대대적으로 선포하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들과 공식적인 조약을 맺어 더 이상 적대 행위를 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이죠.”
그레모리의 목소리에는 열기가 담겨 있었다.
“이걸 통해 인간들과 악마들은 서로 손을 잡고 진정한 번영을 이룩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레모리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물론…… 인간들이 저희 악마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침략자였으니 당연하겠죠. 하지만 저는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네, 저도 지금 당장 인간들이 저희 악마들을 신뢰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걸 기다려야겠죠.”
그레모리는 정말로 인간들과 화합하는 걸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악마들 중에 이렇게 천진난만한 존재가 있었을 줄이야.’
물론 그레모리는 악마다. 그냥 착하고 순진한 존재는 아니다.
문제는 인간이란 존재를 너무 안이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레모리,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이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네?”
“그런 건 가해자의 생각입니다. 피해자의 생각이 아니죠.”
“……!”
내 말을 듣고 그레모리가 흠칫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언제까지고 잊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건 국가 규모, 세계 규모의 피해입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잊힐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만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철저한 사과가 이루어져야 하고,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겠죠.”
그레모리 등 주화파가 판데모니움의 주도권을 잡는다면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그레모리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하면, 인간들이 과거를 잊고 저희를 용서해 줄까요?”
“그건 아닙니다.”
“……네?”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한다고 해서, 그 과거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계속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침략당한 과거를 말입니다.”
“자, 잠깐만요.”
그레모리가 다급히 말했다.
“방금 전에는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피해자가 과거를 잊고 자기들을 용서해 줄 거라고 바라는 건 안이한 생각이라는 얘기죠.”
“……!”
“과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레모리.”
물론…… 충분한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관계는 개선될 것이다.
제대로 된 성의를 보이고 그 태도가 계속 유지된다면 관계는 개선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이걸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관계 개선에 실패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을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굳이 해 줄 얘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레모리는 인간들이 과거의 불행했던 기억을 잊고 진정으로 악마들과 화합하는 걸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사과와 보상을 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거라고 말하는 건 기만적인 행위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방법이 없는 건가요?”
그레모리는 절박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희 악마들은 영원히 인간들과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없다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레모리.”
나는 고개를 저었다.
“평화로운 시대라면 조금 어렵겠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네?”
“지금은 명확한 적이 존재하니까요.”
“명확한 적……?”
“판데모니움의 주전파 말입니다.”
“그게 무슨…….”
그레모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정한 동반자가 되려면, 공통의 적과 함께 싸우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과거의 감정을 넘어서는 연대 의식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삼국 시대 때 고구려, 백제, 신라는 서로 피 튀기게 싸웠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도 그 감정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훗날 삼국의 감정은 희석되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정체성이 확립되게 되었다.
여기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중국 및 만주 세력의 침략이다. 거대한 외세의 침략에 함께 대항하면서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
“자, 잠깐만요. 저희 주화파에게도 주전파는 적입니다. 이미 저희와 인간들은 공통의 적을 갖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왜 저한테 부탁하는 겁니까?”
“네?”
“그레모리.”
나는 그레모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저희 인간들이 알아서 아스모데우스 등 주전파를 쓰러뜨려 주기를 원하고 있겠죠. 아닙니까?”
“……!”
“당신들 주화파는 뒤에서 살짝 정보나 넘겨주면서 그냥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레모리가 나한테 접근한 건, 강유진이 페넥스를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인간들도 마신급 악마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다른 주전파 악마들도 그렇게 제거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아스모데우스도 페넥스처럼 강유진이 쓰러뜨려 주기를 바라는 거겠죠. 아닙니까?”
“저, 저는…….”
속셈이 드러나 버린 그레모리가 말을 더듬었다.
그러면서 벨리알의 눈치를 살폈지만, 벨리알은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레모리, 정말로 인간들과 화합하고 싶다면 당신들 주화파가 직접 나서서 주전파와 싸워야 합니다. 인간들을 돕겠다고 먼저 나서서,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
“스스로 희생하는 당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들은 당신들을 신뢰하게 될 겁니다. 동료 의식을 갖게 되는 거죠. 진정한 동반자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직접 주전파를 이 땅에서 모조리 숙청해 버리고, 불행한 과거사의 책임을 전부 떠넘기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거죠.”
물론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고…… 그레모리의 구미에 맞을 방법이기도 하다.
“그, 그렇군요.”
그레모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진정한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겠죠?”
“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가장 확실한 길이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모리가 완전히 넘어온 걸 보면서,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지금 당장 반기를 들어 주전파와 전쟁을 시작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 그렇습니까? 그러면 다행입니다만…….”
“아스모데우스와의 싸움은 인간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될 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판데모니움의 주화파도 나서야겠죠.”
주화파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할 테고, 지금 당장 봉기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모든 건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서 진행되어야 하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레모리가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대로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네, 저도 이렇게 되면 좋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무명…… 당신과 만나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로소 눈이 뜨인 기분입니다.”
그레모리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완전히 나를 신뢰한 눈빛이었다.
‘이걸로 된 건가.’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이걸로…… 판데모니움 내부에 씨앗을 뿌렸어.’
판데모니움 주화파라고 해서, 다른 악마들을 배신하고 인간들 편에 서려고 생각하는 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방식을 조금씩 변화시켜야 한다. 그들이 언젠가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울 수 있도록 말이다.
판데모니움은 여전히 강대하며, 그들이 똘똘 뭉쳐서 인간들에게 덤벼들 경우 승산은 없다. 그러므로 내부에서 분쟁이 발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판데모니움이 분열되면 분열될수록 인간들한테는 유리해.’
그래서 그레모리를 통해 주화파 내부에 씨앗을 심어 두는 것이다.
그 씨앗에서 줄기가 뻗어 나와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할 때…… 인간들은 판데모니움의 전쟁에서 승리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 * *
“잘 구워삶았군요.”
나에게 많은 정보를 건네주고 그레모리가 자리를 뜨자, 벨리알이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레모리는 당신을 완전히 신뢰한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이지.”
“당신을 그레모리에게 소개하길 잘했군요. 역시 당신은 훌륭합니다.”
벨리알은 이번 결과에 상당히 만족한 듯했다.
“김무명, 저는 확실히 주화파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옛날만큼 힘이 없습니다.”
“…….”
“어차피 제가 직접 움직이면 다른 악마들이 경계하고…… 이렇게 그레모리를 움직이는 게 낫죠.”
루시퍼가 사망한 이후, 벨리알은 여러 권한을 내려놓고 변방에 은둔했다.
그 덕택에 권력이나 군사력이 예전보다 못한 상태로, 현재는 그레모리 쪽이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벨리알.”
“뭐지요?”
“정말로 괜찮은 건가? 이대로 일이 진행되면 판데모니움은 큰 타격을 입게 될 텐데.”
“잊어버렸습니까, 김무명.”
벨리알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목적은 그분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들을 이 세상에서 모조리 척살하는 겁니다.”
“…….”
“인간들과 주화파가 손을 잡아 주전파 악마들을 척살하면, 저한테는 기쁜 일이죠. 뭐, 그 과정에서 괜히 휘말리는 악마들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란 것입니다.”
벨리알의 발언에서는 악마다운 잔혹함이 엿보였다.
“판데모니움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서 작은 약소국 수준으로 위축된다고 해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그냥 소소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죠.”
“아예 판데모니움이 멸망해 버리면 어떻게 하지? 지옥으로 돌아갈 건가?”
“그럴 리가요.”
벨리알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가혹한 곳에 왜 돌아갑니까. 인간 사회에 섞여서 인간인 척 행세하며 살아가야죠.”
“뻔뻔하기는.”
“그때는 제가 인간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협조 바라겠습니다, 김무명.”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벨리알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