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88)
“아하하, 농담이에요.”
이보배는 존경하는 한 선생님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작은오빠를 노려보았다.
“보배 씨라면 좋아하실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석류 좋아하게 생긴 관상도 있나?
이보배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현우는 평소의 냉철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하니까요.”
“푸하핫!”
이보배가 반응하기 앞서 더 빠르게 빵 터진 이가 있었다.
이보배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2층으로 간 줄 알았던 이한생이 계단 중간에서 어깨를 들썩였다. 이한생은 벽과 배를 동시에 잡고 급성 호흡 곤란을 호소했다.
“돼지가…… 미녀래!”
한현우는 별생각 없이 한 농담일 텐데 저리 비웃으니 이보배가 다 민망했다.
망나니가 숨넘어갈 기세로 웃다가 결국 계단에서 굴렀다. 큰 소리가 났지만 웃는 소리는 여전했기에 이보배는 돌아보지 않고 무시했다.
“죄송합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막내 오빠 상태가 조금 안 좋아요.”
“괜찮습니다.”
“그래, 한생이랑 형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해. 우리 보배는 예쁘니까 좋아하는 석류 많이 먹고.”
“작은오빠 농담도 무시해 주세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 미인이십니다.”
“넵, 한현우 씨도 미인이니까 많이 드세요.”
이보배는 석류 알을 수저로 퍼서 씨까지 꽉꽉 씹어 먹었다. 새콤달콤한 과즙에 씁쓸하고 텁텁한 씨 맛이 뒤섞였다.
철없던 시절의 이보배는 이 씨앗이 싫어서 왜 씨앗 없는 석류는 없냐며 엄마에게 달라붙어 어리광 부리곤 했다.
“그래서 갑자기 어쩐 일이야?”
이해기가 한현우에게 방문한 용건을 물었다.
“ 공략을 해기 형이 도와주셨잖아요. 얼마 전 공략이 무사히 끝나 직접 만나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은 사계절이 공략에 성공한 A급 균열이다. 연이은 A급 균열 공략 성공에 사계절이 진짜 A급 길드가 되었다고 한창 시끄러웠다.
‘나 몰래 언제 도와줬대.’
이보배는 가장 몰래 하는 일 많은 작은오빠를 흘겨보았다. 그러다 한현우가 있음을 깨닫고 석류 먹는 척했다.
“내가 뭘 했다고.”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사계절에선 이해기 씨를 꼭 영입하고자.”
한현우가 각종 서류를 꺼내 펼쳤다.
이보배는 슬쩍 조건을 훔쳐보고 기함했다. 부길드 마스터가 친히 영입하러 온 것부터 비범했는데 조건이 장난이 아니었다.
“최근 이한생 씨도 이보배 씨의 일을 도와줄 만큼 안정되었으니 다시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흠.”
“현 균열 업계는, 애석하게도 신입이 자력 생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해기 씨라면 충분히 잘 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각성 초기는 헌터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이미 가족을 위해 1년을 쓰셨으니 이후의 시간은 형 자신을 위해 쓰는 건 어떻겠습니까. 사계절에서 적극 돕겠습니다.”
‘내가 듣고 있어도 되나?’
이해기는 묵묵히 한현우의 말을 듣고 이보배는 입에 남은 석류 씨앗만 잘근잘근 씹었다.
“균열의 날 이전이었다면 이해기 씨의 행보를 응원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계가 뒤집혔습니다. 이해기 씨의 성장은 형 본인뿐만이 아니라 가족, 그리고 인류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한 몬스터가 등장할지, 어떤 균열이 생성될지 모르지. 거기에 대비하기 위해 헌터는 계속 성장해야 하고.”
“네, 바로 그겁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헌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성장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말은.”
이해기가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네 얘기가 맞아. 네가 하는 말이 맞아. 우리 집이 조금 특수한 상황이어서 그렇지 어지간해선 네 얘기가 맞아. 맞으니까 하는 말인데.”
이보배의 작은오빠가 활짝 웃었다.
“그래도 난 지금이 좋다.”
‘아이고.’
이보배는 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한현우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으니 스카우트를 거절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렇다고 한현우가 반발할 만한 식으로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이보배는 동갑 꼰대의 안색을 살폈다. 놀랍게도 한현우는 담담하게 이해기의 거절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세상에!’
“대신 균열 공략 대비는 이제까지처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지.”
“혹 마음이 바뀌신다면.”
한현우가 인벤토리를 열어 녹슨 검과 감정 스크롤을 꺼냈다.
이보배 옆에 앉은 이해기의 몸이 살짝 떨렸다.
“성장형 아티팩트 [미완성 용살검]입니다. 사계절에 입단해 주신다면 평생 무료로 대여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시험 삼아 사용할 수 있도록 석 달 동안 빌려 드리겠습니다.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한현우의 용건이 끝났다. 딱 일어날 타이밍인 것 같아 이보배는 테이블을 짚었다.
한현우도 같이 일어나나 싶었는데 그는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이보배를 응시했다.
이보배는 떼었던 엉덩이를 도로 바닥에 붙였다.
“그럼 이보배 씨.”
‘용건 끝난 것 아니었어?’
방심하고 있던 이보배는 깜짝 놀라 바르게 앉았다.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해 한현우의 입술에 집중했다.
“저와 함께 균열에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권유에 이보배의 눈이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 * *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두운 동굴 안에 균열 속 균열, 즉 던전인 이 있다.
이보배의 머릿속에 수련회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틀어주는 배경 음악이 자동 재생되었다.
한현우는 그곳에서 히든 피스를 발견했다.
“연금술 관련 스킬을 수련할 경우 경험치와 숙련도가 소폭 오릅니다.”
“그건 진짜 좋은 히든 피스네요.”
“안타깝게도 던전 입장 인원수 제한이 다섯 명입니다. 공략 완료한 던전이라도 생산계만 있으면 위험하니 호위 세 명, 연금술사 두 명으로 파티를 짜 진입할 예정입니다. 거기에 이보배 씨를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좋은 기회에 외부인인 제가 참가해도 될까요?”
“길드 규칙상 히든 피스는 발견한 사람이 소유권을 갖습니다. 개인적으로 길드의 포션팀보단 이보배 씨에게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규칙이 있었어요?”
“생산계라 모르셨군요. 저희 사계절이 타 길드보다 균열을 세심히 탐색하는 편이라 히든 피스 발견율이 높습니다. 어차피 균열이 소멸하면 사라질 히든 피스니 대충 뒤져 놓치는 것보단 발견자가 가지는 게 낫죠. 그래서 생긴 규칙입니다.”
‘오죽하겠어.’
게임에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길드다.
멀쩡한 벽에 몸통 박치기는 기본이요, 수상한 물건이 있다 싶으면 무조건 건드려 보는 게 사계절 원년 멤버의 상식이었다.
그들은 게임 속 상식을 현실에도 적용했다. 놀랍게도 성과가 괜찮았다.
‘어떻게 하지? 진짜 좋은 기횐데. 이걸 내가 받아도 되나?’
한현우의 제안은 지나치게 좋아서 거절할 수 없었다.
이보배는 전전긍긍하며 피 토할 것 같았던(실제로 토한) 스파르타 교실의 추억을 되새겼다.
‘이번엔 그때보다 심하게 구를지도 몰라. 그렇지만 좋은 기횐데.’
이보배는 의지를 다졌다.
‘그래,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따질 때가 아니야.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해. 갓보배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잖아.’
이보배는 눈을 또렷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하겠습니다. 시켜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정을.”
“호위는?”
내내 소파에 누워 핸드폰 게임만 하던 이귀한이 불쑥 물었다.
“세?”
“확실히 정해지진 않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으로 구성했습니다. 변수가 발생할 경우 균열 핵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어 바로 소멸시킬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흐음.”
이귀한이 못마땅한 듯 입술을 삐죽였다. 무례한 태도였으나 한현우는 성실히 대답했다.
“이귀한 씨가 실종되신 경위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보배 씨의 안전을 우선하겠습니다.”
“형, 현우는 믿을 수 있어.”
이해기가 이귀한의 입을 막고 타일렀다.
“보배야, 가고 싶니?”
“응!”
“그럼 가야지. 그래도 걱정되어서 그러는데 우리도 균열에 들어갈 수 있을까? 던전 밖에서 기다릴게.”
“괜찮습니다. 내부에 길드 베이스를 설치해 두었으니 거기서 기다리면 됩니다. 다만 유사시 길드 지시에 따라준다는 계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균열 진입 허가 내주는 게 어딘데. 괜찮다.”
이해기는 멋대로 한현우와 이야기를 끝내고 이귀한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뗐다.
이귀한이 건방진 둘째 동생을 노려보았다.
“둘째가 괘씸해.”
“나 원래 시건방진 동생이잖아. 현우는 믿을 만해.”
이해기가 이귀한에게만 보이게끔 입술을 달싹였다.
‘얘가 보배 관도 들어준 애야.’
본인이 점찍은 매제 후보를 옹호하는 태도가 가상했다.
결국 이귀한은 한발 물러섰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살펴 가세요.”
이보배는 용무를 마친 한현우를 대문 밖까지 배웅했다.
거실로 돌아온 이보배는 애수 띤 눈빛으로 녹슨 검을 바라보는 작은오빠를 목격했다.
백 일 된 아기 안듯 조심스럽게 드는 것을 보고 이보배가 물었다.
“뭐 해?”
이보배의 질문에 화르세인지가 대답했다.
“사기꾼이 썼던 무기라고 한다.”
“아, 회귀 전에 쓰던 무기구나.”
성장형 무기 [미완성 용살검]를 발견한 곳은 이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얻은 무기가 성장형 무기였기 때문에 이해기는 오랫동안 [미완성 용살검]을 주 무기로 사용했다. 기간이 기니 추억도 많았다.
“감회가 새롭겠다.”
“ 진입을 포기해서 다신 볼 수 없게 될 줄 알았다. 다시 보게 되더라도 내 손에 들릴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다니. 결국 내 손으로 돌아올 운명이었나.”
회귀자는 느끼한 대사를 남발하며 녹슨 검날을 어루만졌다.
이보배는 이해기가 외면한 현실을 일깨웠다.
“근데 오빠 그거 석 달 대여야. 영구 대여하려면 사계절 들어가야 돼.”
한 번 포기하기는 쉬우나 포기했던 것이 손에 쥐어지면 다시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이해기가 유기되어 누군가 주워 가주길 바라는 강아지처럼 이보배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보배가 현우랑 결혼하면 공짜로 주지 싶구나.”
이보배는 작은오빠의 촉촉한 눈동자를 보고 짧고 굵게 말했다.
“지랄한다.”
* * *
한현우는 호위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구성했다고 했다.
이보배는 그 말을 믿었다.
‘배신당했어.’
하늘색 로브를 걸친 온화한 인상의 남자, 녹색 경갑을 장비한 체형이 날렵한 스포츠머리의 남자, 붉은색 경갑옷을 걸친 날카로운 분위기의 미녀.
믿을 만한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한 이보배의 눈이 왕밤만 하게 커졌다. 놀란 심장이 거칠게 뛰고 호흡이 가빠졌다.
이보배는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지만 콧구멍은 마음을 반영해 벌렁거렸다.
“저번에 뵈었었죠? 오늘은 명함 가져왔어요. 여기 명함.”
로브를 걸친 온화한 인상의 남자, 빙제 류시우가 명함을 내밀었다.
“추효풍입니다. 부길마든 태풍이든 질풍이든 바람이든 편할 대로 불러요. 아, 나도 명함 있는데.”
키 크고 체형이 날렵한 스포츠머리의 남자, 질풍 방패 추효풍이 인사했다.
“나여름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제 명함도 가져가세요.”
경갑옷을 걸친 날카로운 분위기의 미녀, 광전사 나여름이 살짝 웃었다.
이보배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사계절의 마스터들이 내민 명함을 받아 들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성자 길드, 사계절의 길드 마스터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보배를 호위하기 위해서.
‘믿을 만한 사람 데려온다더니 나라를 구하겠어.’
이보배가 항의하는 눈빛을 보내자 한현우가 변명했다.
“원래는 다른 분들이 오기로 했는데 형이랑 누나가 갑자기 끼어들었습니다.”
“낄 수밖에 없었어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랬더니 레벨 업 계획 짜 온 놈이 있었거든요.”
“여름이 말은 농담이에요.”
나여름이 딱딱하게 말하자 류시우가 웃으면서 농담임을 밝혔다.
“실은 대규모 공략이 끝나면 잠시 휴식하거든요. 밖에서 놀면 시끄럽거나 귀찮은 데 불려 나가는 수가 있으니 이렇게 공략 끝난 균열에서 시간 때울 때가 있어요.”
“게임은 못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사계절 길드의 길드 마스터쯤 되면 균열이나 몬스터 때문이 아니더라도 부르는 곳이 많았다.
전부 거절할 수 없으니 아예 균열에서 쉴 때도 있다며 류시우와 추효풍이 하하 웃었다.
이보배와 인사를 마친 길드 마스터는 이씨 삼형제에게도 인사했다. 안면이 있는 이해기와는 더욱 반갑게 인사했다.
“여러분의 호위는 균열에 이미 진입해 있는 길드원들이 맡게 될 겁니다. 물자도 담당하고 있으니 혹 지내시는 동안 필요한 게 있으면 그쪽에 말해주십시오.”
추효풍이 균열을 건드리자 세계의 상처가 벌어졌다. 탱커인 추효풍을 필두로 차례차례 균열로 진입했다.
[마법의 성]-난이도: A
-마감: 카운트 다운 중단 상태
-보스 몬스터 처치 완료(사계절 길드)
-균열핵 확보(사계절 길드)
-내부에 던전 있음
은 필드형 균열이었다. 독 늪지대와 성, 숲으로 이뤄졌는데 균열 이름대로 실질적인 활동 영역은 성 내부였다.
진입하자마자 성이 눈에 들어왔다. TV나 영화에서 보던 아름답고 웅장한 성이 아니라 평범하고 작은 성이었다.
이보배는 내심 실망했다.
“이름은 거창한데 규모가 작은 성이로구나.”
판타지 세계 대귀족답게 성에 익숙한 화르세인지가 성에 대한 감상을 밝혔다.
이보배는 속으로 동의했다.
성 주위는 독 안개가 자욱하고 성벽 밖은 아예 늪지대였다. 다행히 균열 입구에서 성문까지는 돌로 된 도로가 깔려 있고 독 안개도 없었다.
“길과 성을 벗어나면 중독됩니다. 자유 행동은 삼가주시고 바로 성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성문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있었다. 사계절 길드원이 길드 마스터를 보고 인사했다.
류시우는 반갑게 인사한 뒤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계속 올라가실게요. 쭉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