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47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47화 –
킁킁.
“윽, 냄새.”
코를 콱 움켜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혼미한 냄새가 나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잘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네.”
슬쩍 구덩이 안쪽을 살피고 난 후, 후다닥 뒤로 멀어졌다.
이곳은 지난날 흑매와 세드릭이 열심히 공수해 온 비료를 넣어 둔 곳이었다.
앞으로 논갈이를 할 논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의 겨울은 한국보다 훨씬 짧으니까 슬슬 땅을 고르고 볍씨도 선별해야 해.’
이 몸의 지식에 따르면, 이 대륙의 계절은 조금 독특했다.
겨울이 아주 짧고, 나머지 계절이 좀 더 길었다.
‘대륙을 둘러싼 결계 때문인 것 같던데.’
대륙 전체를 지키고 있는 결계가 무슨 작용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겨울이 짧은 대신 그 추위가 아주 혹독했다.
밖을 오가기도 어려울 정도의 혹한기가 곧 찾아올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미리 일을 끝내 둬야지.’
대륙에서는 그 시기를 ‘안식의 기간’이라고 불렀다.
동물이 미리 음식을 충분히 쟁여 놓고 겨울에 겨울잠을 자듯이, 제국민들도 그 기간에 미리 음식을 구비해 둔 채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식량난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다자르가 나를 통해 새로운 식량을 개발하고는 있지만,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했고. 미아르가 동이 나게 되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식량 개발 전까지 제국에 미아르는 충분히 있는 건가?
“실리아 님. 에반로아르 자작가에 황실 인장이 찍힌 서신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응?”
비료가 잘 숙성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돌아온 나는 칼의 말에 눈을 끔벅였다.
장화를 하나씩 툭툭 벗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황실의 서신? 그럼 렛시가 보냈다는 뜻인데.
손을 씻고 소파 위에서 놀고 있는 악시온을 안아 들었다.
“그래? 그럼 실베스타인도 없으니 내가 가야겠네.”
“예. 아무래도 잠시 자작가에 들르셔야겠군요.”
황실 인장이 찍힌 서신은 오직 그 가문의 주인만 직접 취급할 수 있었다. 가지고 영토를 벗어나는 것도 위급 상황이 아니고서야 용인되지 않았다. 황제의 명이 그만큼 비밀스럽고 중한 것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오늘 가서, 확인하고 내일 와야겠는걸?”
“으음. 그럼 제가 그동안 악시온 님을 돌보고 있겠습니다.”
칼이 내게 안겨 있는 악시온을 바라보며 듬직한 집사의 미소를 지었다.
참 신뢰 가는 미소였지만, 눈 밑의 퀭한 다크서클과 주머니에서 살짝 삐져나온 붕어즙 봉투가 그 미소를 모두 상쇄했다.
……애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칼에 대한 미안함이 샘솟았지만, 이번 건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없는 동안 악시온을 잘 부탁해.”
칼의 어깨를 톡톡 도닥여 준 후, 곧바로 에반로아르 자작가로 떠났다. 다자르가 혹시 날 찾을 것을 대비해서 칼을 통해 쪽지를 전해 둔 채로.
[제국의 모든 귀족에게 명한다.]오랜만에 들른 에반로아르 자작가에서 곧바로 마주한 황실 서신의 첫 문장이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황실 서신을 찾아 든 나는 이어진 문장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금년 ‘안식의 기간’ 전에, 각 가문에서 저장하고 있는 미아르를 영지민들에게 배급하도록 한다. 황실에 보고한 금년 미아르를 수확량에서 30% 이상을 배급하지 않을 시, 엄중한 문책이 있을 것이다.]워우. 30% 이상이나?
퍽 파격적인 명령이었다.
[제국의 식량난이 긴급한 상황이다. 이에 각 귀족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해 주길 바란다.]……생각한 것보다 훨씬 식량난이 심각한 모양이네. 안 그래도 제국에 미아르가 충분한지 궁금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는 귀족들이 얼마나 있으려나. 나는 턱을 괴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아무래도 귀족들 반응이 살벌하겠는걸.’
이 몸의 기억에 따르면 제 영지민들이 죽건 말건 별 관심이 없는 귀족들이 꽤 많았다.
‘우선 에반로아르 자작령부터 정리하자.’
예정대로였다면 내일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실베스타인도 없는 와중에 내가 가주 역할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모두 처리하고 가야 했다.
“어쨌든, 일단 미아르를 배급할 계획을 짜야겠다.”
그에 수반되는 운영 비용은 황실에서 모두 지급해 준다고 되어 있었기에, 안 그래도 텅 빈 자작가의 금고를 털지는 않아도 되었다.
* * *
생각보다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자작가의 미아르 배급 계획까지 모두 정리하고 나니, 제법 시간이 지나 있었다.
‘먹고 자는 것 빼고 여기에만 몰두했는데도.’
자작가에 도착하고 3일이나 지나 버렸다.
“우선 이대로 진행하는 걸로 하고, 배급 날에 다시 돌아올 테니 모두 준비해 줘.”
부집사 하일이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칼과 내게 없는 사이 저택을 책임지고 있던 그는 능력은 매우 출중했다.
영지 일에는 문외한인 나를 옆에서 보좌해 준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다.
“고마워. 하일 아니었으면 일주일은 더 여기 있었겠는걸.”
“아닙니다. 아가씨의 업무 처리 능력이 뛰어나신 덕분이지요.”
하일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 표정 변화 없는 얼굴 탓에 칭찬이 칭찬처럼 들리지는 않았지만.
‘칭찬 맞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하일이 덧붙였다.
“아가씨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실베스타인 님보다 더 영지 관리에 두각을 드러내셨지요. 전대 가주님께서는 내심 아가씨를 후계자로 점찍고 계셨습니다.”
그의 진지한 목소리에 나는 검지로 슬쩍 뺨을 긁었다.
실리아의 기억에 따르면, 놀랍게도 그 말은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또래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똑똑했다. 한마디로 천재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럼 뭘 해.’
천재는 다들 미치광이라는 옛말이 사실인지, 실리아는 자랄수록 점점 이상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할 정도로, 농덕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일도 줄어들고 좋지, 뭐.’
가주직에 앉은 이 몸에 빙의했다면 일이 너무 많았을 것이므로,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좀 씁쓸함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럼, 다음에 올게. 하일.”
“예. 그때까지 실수 없이 준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하일이 꾸벅 고개를 숙여 왔다.
나는 그를 뒤로하고 마차에 올랐다.
이윽고 향한 곳은 시아스터 공작가가 아닌, 수도였다. 수도를 거쳐 공작가로 향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계속 가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공작가를 나오면서 들고나온…….
모로카닐의 돌.
코트 안쪽에 넣어 둔 돌을 살짝 매만지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쉬지 않고 달린 마차는 막 수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처럼 이상한 표식을 묻히거나 그러진 않겠지.’
나는 재빠른 걸음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는 ‘3초만 주면 독살시켜 드림’ 가게가 있는 골목길의 바로 앞에 정차했고, 주변은 밝았다. 이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딸랑, 빠른 걸음으로 걸어 도착한 가게는 언제나와 같이 휑했다. 주인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저 문 너머에 있다는 것을 저번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문을 향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술을 뗐다.
“저, 죄송하지만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여기 자주 오는 손님에게 전할 물건이 있어서요.”
“…….”
문 앞에서 얼쩡얼쩡 기다려 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으음.
“그분이 사는 곳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데. 아, 그분께서 제가 이곳에서 농약을 만드는 걸 도와주셨거든요. 그래서 더욱 이걸 전해 드리고 싶은데…….”
그때 부스럭, 거리며 문 밑으로 종이가 툭 나왔다.
-농약?
“네. 그…… 해충은 없애고 식물은 잘 자라도록 하는 그런 약인데…….”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였다.
다시 종이가 툭 떨어져 나왔다.
-네가 진짜 주문자였군.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놓고 가. 어차피 올 놈은 그놈뿐이니 알아서 가져갈 것이다.
제법 길게 쓰인 문장은 글자를 인쇄한 것처럼 아주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나는 그가 볼 수 없다는 것도 잊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모로카닐에게 전하는 쪽지를 함께 적어 카운터에 올려놓던 바로 그때.
천장에서 무언가가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카운터 바로 옆 벽이 마치 문처럼 툭 열렸다.
그러고는 데구루루 뭔가가 카운터 위에 안착했다.
문 너머의 주인이 카운터로 물건을 내놓은 듯했다.
뒤이어 그가 쓴 종이가 툭 떨궈졌다.
-마침 완성됐으니 가져가.
카운터에 올라온 것은 초록색의 액체가 가득 든 작은 유리병이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맨날 똑같은 것만 만들다가 새로운 걸 만든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말이야. 조금 재료를 과하게 써 버렸어. 꽤 응축되어 있으니 최대한 희석해서 사용하도록.
새로운 걸 만든다고 신이 나다니.
주인장이 생각보다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냉큼 유리병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섰다.
‘마음이 좀 가뿐하네.’
모로카닐의 돌을 처리해서일까. 마음이 제법 가벼웠다.
“우리 악시온이랑 바닐라는 집에 잘 있으려나?”
저절로 지어지는 엄마 미소를 숨기지 않은 채 마차에 올랐다.
우리 귀염둥이들이 날 기다리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