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68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68화 –
자기 것을 넘봤다고……?
나는 힐끗 다자르를 보았다. 얼굴에 딱히 떠오른 표정은 없었지만, 눈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이랑 너무 가까워지지 마.”
“……왜요?”
평소라면 그의 참견에 발끈했겠지만 워낙 그의 목소리가 진지해서 멈칫했다.
“좋은 녀석이 아니니까.”
“음…….”
그 넘봤다는 ‘내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생에 둘이 정말 사이가 안 좋긴 했나 보다.
무도회장에 흐르던 음악이 점차 느리게 변했다.
곡이 끝나 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내 것’은 결국 뺏겼어요?”
허리를 감싸고 있던 다자르의 팔에서 점차 힘이 풀렸다.
나를 당기고 있던 힘이 사라지자, 나는 점차 그에게서 멀어졌다.
속삭이듯 건넨 질문에 다자르가 즉답했다.
“당연히 안 뺏겼지. 난 내 건 절대 뺏기지 않아.”
“그럼 당신이 이긴 거네요. 그 ‘내 것’을 지켰으니까.”
“……지켰다, 라.”
다자르가 잠시 침묵하더니,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댔다.
“아니. 지키지는 못했지.”
“……?”
뺏기지는 않았지만, 지키지는 못했다라.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퀴즈도 아니고 알쏭달쏭하네.’
왠지 이 이상 질문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그의 속내에 너무 깊이 관여하는 것이라고.
내 목적은 길고 얇게 명줄을 이어 가는 것이었다. 악시온의 행복을 지키면서.
그런 내게 다른 이들의 삶에 끼어들 여유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곡이 끝났다. 그가 천천히 내게서 떨어졌다.
그에게 춤이 끝난 걸 알리는 인사를 하기 위해 드레스 자락을 살짝 쥐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고개를 숙이면, 상대도 비슷한 타이밍에 내게 끝인사를 건네야 하는데.
다자르는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묵묵부답이었다.
예의 바르고 기품 있는 척 내숭 부리던 사람이 멍하니 있자, 다른 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다자르?”
“아.”
내가 그를 부르자 그제야 그가 급히 끝인사를 건네 왔다.
“즐거웠습니다, 영애.”
그는 곧 빠른 걸음으로 날 원래 자리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모로카닐을 보고 눈썹을 까딱였다.
“너랑 춤췄으니 난 이제 다른 사람이랑 춤 못 추겠다. 왜인지는 내 퉁퉁 부은 발을 보면 알지?”
“모르겠는데요?”
다자르가 팔짱을 끼고 흥, 코웃음을 쳤다.
“너도 희생양은 나까지로 만족해. 다른 놈 다리 아작 내지 말고.”
내가 굳이 춤을 춘 건 당신의 발을 아작 내기 위해서였다고, 말해 주려다 말았다.
“안 그럼 여럿 실려 나간다.”
얄미운 문장을 툭 던진 다자르는 급한 볼일이 있는 사람처럼, 빠르게 걸어 사라졌다.
흥. 역시 언제나 재수 없는 자식이군.
아까 전 그가 씁쓸하게 뱉은 ‘지키지 못했다.’라는 말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입술을 비죽이던 차였다.
잠자코 서 있던 모로카닐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쉽군요.”
“네? 왜요?”
“다자르의 말대로, 당신이 더 이상 춤을 추지 않을 것 같아서요.”
“어…….”
나는 무도회장에서 슬그머니 멀어지던 발을 주춤했다.
맞는 말이긴 했다. 다자르 말고 벌을 주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저 말고, 다른 영애와 추시는 게 어때요? 전 너무 폐를 끼칠 것 같은데.”
“실리아가 아니라면 싫습니다. 언제나.”
“……?”
내가 아니라면 싫다니.
그것도 언제나?
‘이 사람…….’
알고 보니,
‘낯가림이 심하구나?’
……라고 생각하기에는 내 눈치가 비상했기 때문에, 나는 하하 웃고만 말았다.
뭐야, 뭐야. 이 분위기 뭐야.
나한테 왜 이런 열렬한 눈빛이람.
이 몸의 마성에 또 누구 하나 빠지고 만 것인가, 라고 생각하다가 민망함에 볼을 긁적였다.
‘너무 간 것 같네.’
모로카닐이 연회장에서 그 어떤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는 걸 보면, 실제로 낯가림이 심할지도 몰랐다.
아니면 사교와는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지.
하지만 마냥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마음 한편이 찝찝했기에 나는 툭 물었다.
“저하고 왜 춤을 추고 싶으신 건데요?”
그런 질문을 받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건지, 모로카닐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가 이내 푸스스 웃으며 답했다.
“당신이니까요.”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모로카닐은 더 내 질문에 답해 주지 않았다.
여기 초월자들은 모두 이렇게 알쏭달쏭한 말만 늘어놓는 건가.
뭐, 나와는 상관없지.
나는 묵묵부답인 모로카닐을 두고, 어깨를 으쓱했다.
‘에이, 몰라.’
이들에게 더 관여하면 귀찮아질 뿐이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파진 내가 모로카닐을 꼬리로 매단 채 테이블 여기저기를 터는 동안, 무도회는 끝이 났다.
이어 나머지 일정이 이어졌고, ‘안식의 장’의 첫날이 그렇게 끝이 났다.
본격적인 볼거리는 내일부터였기에, 나는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일찍 연회장에서 물러났다.
“내일 또 봐요. 실리아.”
모로카닐은 담백하게 인사하고 물러났다.
* * *
“오셨습니까? 실리아 님.”
칼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나를 반겼다.
“왜 그렇게 힘이 들어갔어?”
“그야…….”
칼이 급히 목소리를 죽이며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덩달아 나도 시선을 옮겼다.
우리가 있는 곳은 황실에서 내어준 손님방이었다.
‘손님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크지만.’
칼이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속닥였다.
“저희가 지금 황궁에 있지 않습니까. 왠지 더 격식 있는 집사가 되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압박이 있단 말이죠.”
“음.”
거참 쓸데없는 압박이군.
나는 대충 장단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끄덕여 주고 노곤한 몸을 소파 위에 늘어뜨렸다.
어휴, 좀 살겠다.
덩달아 발을 괴롭히고 있던 구두를 내던지듯 벗고 소파에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켰다.
“아아. 죽는 줄 알았네. 여기 괜히 왔나 봐.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아앗. 실리아 님! 악시온 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흠흠. 어서 체통을 지키시지요.”
칼이 후다닥 달려와서 내 앞을 가로막으며 속사포처럼 말했다.
“체통은 무슨 체통이야. 맨날 시아스터 저택에서 보는 게 이런 모습인데.”
나는 슬라임처럼 몸에서 힘을 빼고, 소파에 쭉 늘어졌다.
칼이 조금 전 가리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악시온은 나처럼 맞은편 소파에 늘어진 채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후후. 저 포즈 좀 봐. 역시 내 아들이야. 날 닮았어.
“크흠. 그렇지만…….”
“칼도 오늘 힘들었잖아? 그 시종 녀석들 처리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앉아서 좀 쉬자.”
“…….”
내 말대로, 칼도 아까 귀족 모욕죄를 저지른 두 시종을 처리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어깨에 바싹 힘을 주고 있던 칼이 내 말에 표정을 점차 누그러뜨렸다.
그러더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가 풀썩 간이의자에 앉았다.
“맞아요. 힘들었습니다.”
그가 목을 감싸고 있던 타이를 조금 풀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황실도 예전이랑은 좀 다르더라고요. 흠흠. 그땐 제가 나름 유명했는데 말이죠.”
그러며 과거 이야기를 조잘조잘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나는, 그를 위해 손뼉까지 쳐 주면서 그의 말에 공감해 주었다.
“와아. 대단하다. 대단해.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뭘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됩니까. 아직 제 얘기 시작도 안 했는데. 그렇게 영혼 없는 추임새는 처음 봅니다. 실리아 님.”
칼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보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칼과 더 티격태격하다가, 조금 차분해진 나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분명 노을에 붉게 물들기 시작한 창밖의 풍경은 아름다울 테지만, 나는 심히 귀찮았으므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내일은 두 번째 날이네.”
“네. 내일은 볼거리가 많겠군요.”
칼의 말대로, 둘째 날인 내일은 볼거리가 많았다.
“살롱도 여럿 개최되고, 강의도 있을 테고요. 듣기로는 음유 시인이나 무희 같은 예술인들도 모인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그렇다고 하더라.”
세드릭이 전해 준 일정표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내일은 악시온을 데리고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같이 다녀야겠어.”
“그렇게 하시죠.”
칼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주무십시오.”
날 배려해서인지, 칼은 귀족들의 반응 같은 건 묻지 않았다.
악시온이 내 아들인 걸 밝힌 후 어떤 분위기였을지, 내가 혹시 안 좋은 소리를 듣진 않았을지 걱정됐을 텐데.
“……고마워.”
내 감사 인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칼은 찰칵 문을 닫고 자리를 떴다.
여러모로, 칼에게는 꽤 의지하고 있다.
사실 실리아의 몸에 빙의한 후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하던 나를 이 세계에 적응하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칼이었다.
그의 다정한 애정을 받으면서 나도 그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는 악시온을 잘 키워서 이 세계가 멸망하지 않도록 할 거야.”
원작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말이다.
원래라면 단순히 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함이었지만. 최근에는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칼은 말할 것도 없고, 바닐라, 그리고…… 재수 없는 다자르도.
‘우, 우린 가족이자나. 같이 가야대. 실리아랑 시온이랑 다자르랑 나랑, 다 우리 가족이야! 그러치?’
문득 바닐라의 그 말이 스쳐 지나간 건 왜일까.
피곤했는지 눈이 점점 감겼고, 나는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바닐라와 다자르, 악시온과 나, 그리고 칼까지 모두 모여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꿈이었다.
태양은 따사로웠고 바다는 푸르렀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밝게 웃었다.
짹짹. 꿈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