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83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83화 –
그러니까, 누군가 억지로 다음 생을 살게 만든다면……. 그 사람을 증오하겠냐는 말인가.
모로카닐의 묵직한 질문을 듣고,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글쎄. 나라면 어떨까?
내 경우로 대입해 보면, 누군가 날 일부러 이 책에 빙의시킨 거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그래. 만약 그렇다면…….
“으음. 글쎄요. 우선은…… 그 이유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예?”
모로카닐이 내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눈이 마치 파충류의 것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분명 내게 한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여 준 그이건만.
괜히 더 싸늘해지는 느낌에, 어깨를 살짝 양팔로 쓱쓱 쓸면서 말을 이었다.
“왜 굳이 제게 그 ‘형벌’을 주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유…… 말입니까?”
모로카닐의 느릿한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유가 우선일 것 같다.
“정말 절 괴롭게 하려고 한 건지,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건지. 그걸 우선 파악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이었어요.”
내 말에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모로카닐의 눈이 한층 더 서늘해졌다. 나는 그의 눈빛을 모른 척하고 입술을 뗐다.
“아마 제가 다음 생을 사는 걸 ‘형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유가 중요하다느니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말이에요.”
실제로 나는 실리아로서 살아가면서, 이 삶이 괴롭지만은 않았다. 덕분에 사랑스러운 악시온과 든든한 칼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묵묵히 듣고 있던 모로카닐이 다소 날이 선 목소리를 낸 것은 바로 직후였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닥을 향했던 눈이 날 향했다. 그 눈은 무저갱처럼 깊고 어두웠으며, 집요했다. 평소 천사 같던 그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잠깐 숨을 멈췄다.
“그저 이기심일 뿐입니다. 당신을 다시 되살릴 생각을 하다니요. 그러니 그에게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어, 모로카닐?”
갑자기 낯설어진 모로카닐은 마치 내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떨떠름해졌다.
왜 갑자기 급발진인 건데……!
내가 물론 전생을 실제로 기억하고 있긴 하지만, 누가 날 이 책에 정말 밀어 넣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한때 부모님 속을 썩이긴 했어도 적을 두진 않았고, 하물며 있더라도 날 빙의시킬 능력은 없을 테니까.
“진정해요. 진정해.”
평소와 달리 모로카닐이 저렇게 흥분하는 걸 보면, 딱 하나 가늠이 되는 이유가 있었다.
모로카닐이 원치 않게 ‘형벌’을 받은 본인 아닐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모로카닐이 그…… 피해자인 건가요? 원치 않아서 이번 생을 살게 되었다거나…….”
“……아닙니다.”
하지만 모로카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다음 생을 스스로 택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니, 택했습니다. 제가 따라올 줄은 다자르도 예상치 못한 듯하지만요.”
다음 생을 택했고…… 다자르를 따라왔다, 라.
난데없이 다자르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는 조금 머리가 아파졌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대체 왜 저러는데?
불쑥 짜증이 치솟은 나는 모로카닐에 대한 평가를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급발진하는 에인젤’ 정도로.
“알았어요. 이 이야기는 그만해요. 전생이나 이런 이야기는 모로카닐이나 다자르에나 해당하는 거지, 전 아니잖아요.”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모로카닐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후 우리 둘 사이에는 조금 긴 침묵이 흘렀다. 정원에서 나와 내 방으로 향할 때까지.
날 데려다주겠다며 방까지 에스코트한 모로카닐은 긴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했다.
“아시겠지만, 저는 다자르의 감시역으로 왔습니다. 그는 위험한 사람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루벤의 추종자여서요? 하지만 다자르는 모로카닐도 자신이 루벤의 추종자가 아닌 걸 알고 있을 거라던데요.”
“……그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모로카닐이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한쪽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오늘 그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는군.
“당신에게 꽤 많은 이야기를 하나 보군요. 맞습니다. 그는 루벤의 추종자가 아니지요.”
아. 루벤의 추종자가…… 아니구나.
감시역으로 온 사람에게 확인을 받고 나니, 조금 찜찜하게 남아 있던 의심마저 사라졌다. 하지만 불쑥 또 다른 의심이 샘솟았다.
그럼 모로카닐은 대체 왜 그를 감시하러 온 거지?
모로카닐이 내 의문을 읽은 것처럼 입을 열었다.
“다자르 시아스터는 그보다 더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녀’에게 억지로 ‘형벌’을 강요한 죄인이기도 하죠.”
“……어, 네?”
“그가 루벤의 추종자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감시역으로 온 건, 당신 때문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눈을 두어 번 끔벅였다.
잠깐, 잠깐. 오늘따라 모로카닐의 말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운걸. ‘그녀’는 아까 전에 언급한 그 사람인 것 같고, ‘형벌’이라면…….
아니, 그 전에.
나 때문에 감시역으로 왔다고?
“저 때문이요?”
“네. 그처럼 위험한 사람 곁에 당신을 두기가 불안했거든요. 혹시 괜찮다면 시아스터가를 떠나 제 영지로 가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그 제안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다자르를 제가 굳이 감시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만.”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게다가 오늘의 모로카닐은 너무 평소와 괴리감이 컸다. 내게 갑자기 직진하는 것도 그렇고, 이상한 주제로 흥분을 하는 것도 그렇고.
나는 그에게서 한 걸음 멀어져 방문을 살짝 열면서 고개를 저었다.
“으음. 죄송하지만…… 지금 당장은 제게 주어진 일도 있고. 이곳을 떠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일을 마치면 에반로아르 자작가로 돌아갈 거니까, 모로카닐의 영지로 가긴 힘들겠네요.”
“…….”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너무 칼처럼 잘라 냈나, 싶을 정도로 깔끔히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고 생각했는데.
탁! 모로카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닫으려던 문을 콱 잡았다. 덕분에 그가 나를 압박하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무쇠 팔을 휘두를 뻔했다.
“그럼 저는 계속해서 이곳에 있겠습니다. 명심하세요. 다자르 시아스터는 루벤의 추종자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입니다.”
다행히 모로카닐이 재빨리 물러나 뒤돌아 사라진 덕분에, 무쇠 팔을 휘두를 일은 없었다. 그의 뺨에 푸른 멍을 안겨 주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곤 탁, 문을 닫으며 생각했다.
‘루벤의 추종자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라는 게 대체 뭔데?’
다자르가 루벤일 리는 없지 않은가.
그가 루벤의 추종자라는 의심을 내려놓은 직후, 모로카닐이 던지고 간 단서에 왠지 가슴 한구석이 더 찜찜했다.
* * *
“완성입니다.”
“와아. 진짜요?”
엘스턴이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퍽 능력 있는 마탑주처럼 잘나 보였…… 다면 좋았을 텐데.
딸랑!
기계적이지만 쾌활한 몸짓으로 금색 딸랑이를 흔들고 있는 엘스턴은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딸랑, 딸랑!
“우아!”
내 품에 안겨 있던 악시온이 신난 얼굴로 짝짝 박수를 쳤다.
역시. 악시온은 내가 흔드는 딸랑이보다 엘스턴이 흔드는 걸 더 좋아하는군. 그의 딸랑이 흔드는 솜씨에 졌다는 생각에 조금 서운함이 느껴졌지만, 마음 넓은 엄마로서 감내할 수 있었다.
조금 전 엘스턴은 마법진 설치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정말 마법진이 모두 설치된 건가요?”
“네, 그럼요. 흑매…… 들이 대단하긴 하더군요.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끝났습니다.”
흑매의 체력이 대단하긴 하지. 가래떡에 대한 집념 또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엘스턴의 얼굴은 조금 미묘했다. 뭐랄까. 흑매를 칭찬해 주고는 싶은데 썩 마뜩잖은 느낌이랄까.
내가 없는 동안 그들에 대해 알아 가는 시간을 가진 게 틀림없었다.
그의 기분에 절실히 공감하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수고했을 그에게 이 정도의 상을 줘도 괜찮겠지.
“잠시 악시온이랑 놀고 있을래요? 가서 마법진을 직접 보고 오려고요.”
“그, 그런 영광을…… 켁! 아, 아니, 흠흠. 제가 공사가 다망해 조금 바쁘지만! 잠시 다녀오시는 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나는 다 봤다. 엘스턴의 입꼬리가 휙 올라가는 것을. 대충 맞장구를 쳐 주며 고개를 끄덕여 주고 마법진을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향하던 때였다.
손님을 의식한 모양인지, 평소 쓰지도 않는 은쟁반 위에 서신을 올려 가져온 칼이 부드럽게 날 불렀다.
“실리아 님.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어?”
그 말에 나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마법진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군.
은쟁반에는 두 개의 서신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의외의 인물이 보낸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이제껏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홀먼 백작가의 미야 백작 영애와는 어떻게 아시게 된 사이십니까?”
칼이 봉투에 찍힌 인장과 보낸 이의 이름을 보고 속닥였다. 감추지 못한 기쁨이 묻어 나왔다.
“아아, 있어. 신호등 중 파란불.”
“……예?”
미야는 지난날 ‘안식의 장’에서 마주한 그 백작 영애였다.
‘언제 한번 같이 시간을 보내자더니, 정말 서신을 보냈네.’
나는 미야가 보낸 건 우선 품 안에 넣고, 이제껏 기다리고 있던 쪽을 먼저 북북 뜯었다.
“앗. 아직 손님이 계시온데…….”
칼이 무어라 만류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손님? 손님이 어디 있지? 엘스턴은 이미 손님이 아니게 된 게 오래이므로, 개의치 않고 뜯었다. 그는 지금 악시온과 노느라 정신이 없을 터였다.
그러자 칼이 허허 웃으며 작게 말했다.
“실베스타인 님의 서신을 그렇게 기다리셨습니까? 떨어져 계시니 참 우애가 깊어지셨군요.”
그랬다. 목이 빠져라 기다린 실베스타인의 답신이었다.
그리고 여기엔 루벤에 대한 단서가 적혀 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악시온이 루벤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말이다.
나는 서신을 쫙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