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2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92화 –
맙소사.
세계를 멸망시킨 게 바로 자신이라고?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동안, 다자르는 계속해서 말했다.
“신을 배반했다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이상함을 눈치챈 신전에서 나를 계속 주시하고 있는 거고. 루벤의 추종자라고 의심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야.”
“그럼 당신, 루벤의 추종자보다 더 악질이었네요?”
미친 사돈 녀석이라는 평가에서 ‘진짜’ 미친 사돈 녀석으로 그에 대한 평가가 상향됐다.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람이었잖아.
놀라서 벌리고 있던 입을 꾹 다물고 슬쩍 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엉덩이를 옆쪽으로 옮겼다. 미친놈은 피하는 게 상책인데.
그런 내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다자르가 픽 웃었다. 아무리 나쁜 놈이지만 얼굴은 잘생겨서, 웃으니 외모가 더 돋보인다. 재수 없군.
“그 말은 정정할 수가 없네. 맞아. 더 악질이지. 왜? 무서워?”
무섭냐고?
그리 묻는 다자르의 눈은 조금 깊어져 있었다. 나는 눈을 두어 번 끔뻑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요. 놀랍게도 별로 무섭진 않네요. 제 앞에 있는 사람이 신을 배반한 초월자라는 사실이 퍽 놀랍기는 하지만요. 그래서 오히려 궁금하네요. 당신이 신을 배반한 게,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으음. 역시 이상한 여자라니까.”
“아무리 따져 봐도 그쪽이 더 이상한 남자인데요?”
흥 코웃음을 친 다자르가 턱을 느슨히 쓸면서 말했다.
“상관이라. 아주 큰 상관이 있지.”
“뭔데요?”
“내가 신을 배반한 초월자인 걸 알고, 너 솔직히 안심했잖아? 내가 루벤을 제거할 리 없으니까.”
“음. 뭐, 그렇긴 하죠.”
순순히 인정했다.
나도 아까보다는 조금 마음이 느슨해진 채로 맞받아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럼 루벤의 추종자도 아니고. 신실한 초월자도 아니란 소리지?
그럼 다자르가 악시온을 당장 해칠 이유는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되면 그와 나는 적이 아니게 되는 것이고. 지금처럼 바닐라와 악시온, 그리고 그와 나, 넷이서 지내는 이 시간이 깨지는 것도 아니란 소리였다.
‘물론 좀 더 이야기는 들어 봐야 하겠지만.’
사실 다자르가 지금 나를 꽤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 느끼고 있었다.
신을 배반한 초월자라니.
게다가 세계를 파괴?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알게 된 지 1년도 안 된 일개 자작가의 영애에게 털어놓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그 영애가 루벤의 어머니라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자신의 패를 내보이는 것은 아마 나를 안심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털어놓을 줄은 몰랐다.
“그래요. 그럼 일단 알겠어요. 당신이 평범한 초월자가 아니라는 거. 그래서 꼭 악시온을 제거하진 않아도 된다는 거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악시온을 곁에 두려고 하는 건데요? 그건 설명 안 했잖아요.”
“…….”
그러자 다자르가 눈을 깊게 감았다 떴다. 그의 눈에 설핏 망설임이 담겼다가 사라졌다. 그가 결심했다는 듯 입술을 뗐다.
“‘그녀’를 찾기 위해서야.”
“……‘그녀’?”
그녀라니. 그게 누군데?
“내가 신을 배반한 이유이자, 내 약혼자.”
“……약혼…… 자?”
“그래. 내 약혼자이지만, 우습게도 그녀에 대한 이름은 잊었어. 그래서 이름을 알려 주지는 못해.”
다소 시니컬하게 말했지만, 나는 봤다.
다자르의 눈빛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그는 분명 슬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발견한 순간,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까는 분명 화가 엄청 났었는데.
바람 빠진 풍선처럼 분노가 쪼그라들 듯 사라지고, 그 공간을 당황이 가득 채웠다.
이제껏 슬픔 같은 여린 감정은 느끼지 못할…… 그런 철벽같은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의도치 않게 여린 속살을 보고 만 기분이랄까.
갈 곳을 잃은 눈동자를 테이블에 가까스로 고정시킨 채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당신, 약혼자가 있었어요?”
“왜. 난 뭐 약혼자 있으면 안 되냐? 귀족 가문 어딜 봐도 누구나 다……. 아, 정정. 넌 없지.”
그 또한 제 감정을 다 숨기지 못했다고 느껴 어색했는지, 괜스레 시비를 걸어왔다.
하지만 이미 어색해진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뭐어…….”
“……뭐야? 왜 그래? 어쨌든 내가 세계를 루벤에게 바친 건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야. 그 대가로 그녀를 이번 생에 환생시켜 주기로 했거든. 이젠 환생한 ‘그녀’를 찾을 생각이고.”
그도 어색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물어보지 않은 설명까지 덧붙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 루벤이 세계를 멸망시키면 그녀를 찾을 수 없으니, 루벤의 멸망을 막아야 하고. 그렇다고 루벤이 죽어서도 안 돼. 루벤의 죽음을 막는 건 이전 세계의 루벤과 계약한 조건이니까.”
“……아.”
“그래서 내가 그 꼬맹이를 굳이 내 옆에 둔 거야.”
그랬구나.
이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다자르가 악시온을 제 곁에 둔 이유가 이해가 간다.
새로운 식량을 찾은 것도, 세계가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구나. 우선 ‘그녀’를 찾아야 하니까.
‘그녀’가 대체…… 그에게 어떤 의미이기에.
“이제 좀 믿겠어? 그러니까, 그 꼬맹이를 지키는 입장인 건 똑같다는 소리야. 우린 한배를 탄 사이라는 거지.”
“그럼 좀 미리 얘기해 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제가 이렇게 머리 싸매고 불안에 떨 일도 없었을 것 같은데. 이곳을 굳이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고.”
“루벤이라는 게 어떤 건지도 몰랐던 귀족 영애에게, 참 잘도 설명하겠다.”
다자르가 씩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넘쳐 흐르는 슬픔을 미처 다 주워 담지 못해 제 속을 내비치고 말았던 남자는 잠깐 사이 사라져 있었다.
평소의 여유로운 그로 돌아온 채, 그가 덧붙였다.
“네가 이렇게까지 파헤치게 될 줄 알았으면 말했겠지만 그땐 숨기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어.”
다자르의 말이 맞았다. 아마 내가 빙의자가 아니라 그냥 귀족 영애…… 아니, 원작의 실리아였다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터였다.
“우선은…… 알았어요, 그럼.”
감정에 흔들리던 이는 이미 제 속을 갈무리해 저렇게 여유로워졌는데.
내 속은 왜 이런 걸까?
지금 이 순간, 다자르라는 사람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가 세계를 파괴시킨 아주 몹쓸 초월자라는 사실을 알아서가 아니었다.
‘정말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구나.’
저 단단하고 재수 없는 다자르가 슬픔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아니, 초월자가 감히 신을 배반할 생각을 할 정도로. 그리고 실제로 모든 것을 맞바꿀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짐작도 못 할 정도로 커다랗고 무거운 감정을 품에 안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껏 봐 온 다자르는 왠지 가짜였다는 생각이 든다.
거짓되었다기보다, 이제야 조금 다자르를 알게 된 기분. 누군가 홀로 끌어안고 있던 세계에 조심스레 발을 내디딘 듯한, 미묘한 설렘과 떨림 또한 느껴졌다.
아주 생소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쥐고 있던 주먹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왠지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뭐지?’
그 이유를 바로 찾지 못해 눈을 끔벅이고 있는데, 이제 완전히 여유로운 목소리로 다자르가 툭 말했다.
“다른 초월자들은 조심해. 특히 모로카닐. 그 녀석은 꼬맹이가 루벤인 걸 알면 바로 제거하려 들 테니까.”
그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여전히 탑에서 바라본 바깥은 따사롭고 화창했다. 그 여유가 느껴지는 얼굴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안 좋아진다.
남은 지금 이상한 감각에 물음표가 뜨고 있는데. 나는 눈썹을 찡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그럼 이제 돌아가요. 아이들이 기다리겠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어른이 둘 다 나와 있으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쩐지 내 질문에 찔끔한 표정을 짓는 다자르였지만, 급했으므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흥. 이야기가 재미없게 풀리는군.”
이제껏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붉은 새가 어쩐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모습을 감췄다. 처음 뿅 하고 나타났을 때처럼.
탑의 문을 열면서 저 붉은 새의 정체는 대체 뭐냐고 물으려던 찰나였다.
“이곳에 계셨군요.”
“……!”
“두 분이, 같이.”
쏴아아-
2층에서 바라본 것과 달리, 탑의 바깥은 여전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빗줄기를 모두 맞으면서 우뚝 서 있는 장발의 미남자.
예의 지팡이를 짚은 채로, 모로카닐이 우리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잊었습니까? 다자르. 저는 당신의 감시역으로 왔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곤란해요.”
“섬의 결계가 살짝 흔들린다 했더니, 역시 너였군. 가끔 보면 정말 쥐새끼 같다니까. 여기, 시아스터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인 거 잘 알고 있지? 허락 없이 들어온 이들은 어떻게 되는 지도?”
한 걸음 앞으로 나온 다자르가 비릿하게 웃으며 주먹을 툭툭 풀었다. 그의 주변 공간이 언뜻 하얀빛으로 물들며 흔들린 것도 같았다. 어쩐지 금방이라도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툭, 그때 부드러운 힘이 나를 탑의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다자르가 내 어깨를 잡고 제 뒤로 두는 것이었다.
마치 나를 보호하려는 듯이.
어, 하며 뒤로 물러나는데. 어째서인지 무표정했던 모로카닐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금방이라도 뭔가 터질 듯 공기가 서늘해졌다.
‘잠깐, 잠깐. 일반인 옆에 두고 싸우지 말라고……!’
의도치 않게 상황이 매우 급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