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One With Genius DNA RAW novel - Chapter 69
68화.
“좋습니다.”
카펜티어가 말했다.
“류 대표님.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근데 우리 골수재생팀이 에이즈 치료까지 같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때요? 이정혁 박사님. 골수재생 팀장으로서 이 프로젝트 가져가실 수 있겠습니까?”
그가 이정혁에게 물었다.
이정혁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이 업무량 어쩔 거야……’
그는 정윤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스탠포드에서 석 박사 통합 과정 학위를 하면서 네이처와 셀에 연달아 논문을 낸 사람이다.
본래는 에이젠의 줄기세포 연구 부서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에이바이오로 이직했다.
에이젠에서도 많은 연봉을 받고 있었고 임원 승진 가능성도 높아서 매우 안정적이었지만 에이바이오로 옮긴 데는 역시 연구자로서의 업적에 대한 욕심이 컸다.
에이바이오 같은 회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중요한 연구들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솔직히 말하면 그 열정이 절반은 불타서 없어졌다.
“사실 지금도 야근이 많아서……”
이정혁이 죽는소리를 냈다.
그 옆의 팀원들은 숨을 죽이고 이정혁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정혁은 마치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제발, 팀장님 제발! 살려주세요……. 퇴근시켜 주세요!’
“연봉을 더 올려드리겠습니다.”
류영준이 딜을 걸었다.
“그리고 저도 시간 날 때 함께 실험하겠습니다.”
“…….”
이정혁이 숨을 푹 내쉬었다.
“대표님. 저희 팀 이번 달에 주말이 없었거든요? 스케줄이 월화수목금금금이라. 다들 대학원 때 이상의 강도로 연구하는 중입니다.”
“압니다.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다들 휴가 길게 드릴게요. 그동안 못 쉬었던 시간만큼 푹 쉬게 해드리겠습니다. 한두 달씩 쉬셔도 돼요. 휴가비도 듬뿍 얹어드리죠.”
“정말요?”
연구원 중 하나인 신명석이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러면 얘기가 다르지.
이정혁도 표정이 바뀌었다. 다시 긍정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성과급도 두둑하게 드리겠습니다. 이번 프로젝트 끝난 후에는 다들 지중해 가서 요트 타면서 한 달씩 놀다가 오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 저도 사실 이렇게까지 채근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열정을 불사르면 환자 한 명이 더 살아요.”
“……후우. 알겠습니다. 저도 그냥 돈 좀 벌고 편하게 연구하면서 직장 다닐 생각이었으면 에이젠에 남아 있었을 겁니다.”
이정혁이 말했다.
“대표님 말씀대로 우리가 지금 하는 연구가 빨리 끝날수록 사람 한 명이 더 살죠. 저희도 여유 부리면서 연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과학자가 연구를 할 때는 그렇게 해야죠.”
“감사합니다.”
“게다가 대표님께서 그렇게까지 해주신다니까. 한번 빡세게 집중해서 데이터 뽑아보겠습니다.”
“저도 틈날 때마다 실험실 가서 직접 실험하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류영준은 미팅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사무실로 돌아와 에이젠의 연구지원부서의 실험동물자원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에이바이오 류영준입니다. 에이즈 모델 연구용 침팬지를 구매하려고 합니다.”
침팬지 정도 되는 동물은 한 마리의 가격이 엄청나기 때문에 보통 벤처 회사에서 쉽게 도전할 만한 동물은 아니다. 했다가 잘 안 되면 손해가 막심하니까.
그래서 일반적으로 쥐나 비글 같은 작은 동물에서 효율을 보고 난 후에야 천천히 시도해보는 대상이다.
류영준의 경우엔 상관없다. 성공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고, 에이바이오는 상당히 돈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이젠을 이용하면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류영준이 침팬지를 고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인간과 가장 유사한 동물이니만큼, 골수 이식 같은 고난이도의 치료법을 임상까지 끌고 갈 만한 근거로 적절하다.
침팬지에서 됐다고 하는데 무슨 추가 실험을 요구하겠는가? 침팬지보다 더 사람과 가까운 실험동물은 없는데.
두 번째 이유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본래 침팬지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숭이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의 이름은 유인원 면역결핍 바이러스 (Simian immunodeficiency virus, SIV)였다.
그게 어쩌다가 사람한테 왔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아주 먼 과거, 아프리카 어느 부족민들이 침팬지를 사냥하다가 피부에 난 상처로 침팬지의 피가 튀거나 했을 것이다.
“침팬지는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
류영준이 실험동물자원 센터의 담당 직원에게 물었다.
-지금 센터에는 다섯 마리밖에 없는데, 내일 가져다드릴게요. 혹시 추가로 더 필요하신가요?
“열다섯 마리 추가 부탁드립니다.”
CCR5를 조작한 조혈모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이미 증명했다.
이제 최대한 빨리 이 기술을 임상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임상을 한다면 가능하면 빈곤 국가에서도 했으면 좋겠는데.’
에이즈의 다른 이름은 ‘빈곤의 질병’이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에이즈에 노출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3,500만 명의 에이즈 환자 중 70 퍼센트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 있다.
그 외의 환자들도 대부분 빈곤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골수 이식 같은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하는 만큼, 가급적이면 국제 임상으로 가져가서 보여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에이즈의 본토인 빈곤 국가들에서 본격적인 에이즈 퇴치를 시작할 때 가속이 붙을 것이다.
‘협력할 만한 병원이나 제약 회사들을 찾아봐야겠군.’
* * *
금요일 오전.
류영준은 침팬지로부터 분리한 체세포 배양 플라스크를 가지고 세포 실험실 3번 룸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실험실 안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예요? 다들?”
실험실 안에 연구원들이 가득했다. 거의 스무 명이 꽉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말씀드렸다시피, 대표님 실험 참관하려고 왔습니다.”
박동현이 말했다.
“아니……. 한번 지켜봐도 되냐고 물어보긴 하셨지만 인원이 스무 명이라곤 안 했잖아요?”
“저도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어요. 그냥 줄기세포 실험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사람들 신청하라고 했는데 40명이 신청했더라고요.”
“40명? 우리 회사에 줄기세포 실험 경험 없는 사람이 40명이라고요?”
“아뇨. 그냥 아무나 다 신청했더라고요. 근데 보고 싶다는 걸 막을 수도 없고……. 이 방에 한 번에 다 들어올 수가 없어서 나중엔 사다리타기까지 했어요.”
“…….”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 사이에 제이콥이 끼어들었다.
“대표님. 줄기세포 계열 인류 최고의 레전드는 과연 어떻게 실험하시는지 꼭 보고 싶습니다. 저는 동영상 촬영 업무도 맡았어요.”
“누가 찍으래요?”
“카펜티어 교수님이요. 앞으로 신입들 들어오면 이 영상으로 교육시키자고 하셨어요.”
“…….”
류영준의 귀가 붉어졌다.
“사람이 실험하는 게 다 똑같죠, 뭐. 그렇게 다들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류영준은 멸균 작업대 앞에 앉았다.
작업대 안쪽은 미리 켜둔 자외선 살균 램프가 20분 째 돌아가고 있었다.
자외선을 끄고 형광등을 켠 다음 외부 먼지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에어 옵션을 켰다.
에탄올과 킴테크 티슈로 실험에 필요한 파이펫과 배양액 통 등을 닦아내고 작업대 안에 배치했다.
마지막으로 침팬지 세포 플라스크를 집어넣었다. 이제 실험 준비가 끝났다.
옆을 힐끔 쳐다보았다.
스무 명의 과학자들이 숨소리까지 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노트에 필기까지 하고 있었다.
부담감 실화?
“저보다 제이콥이 더 잘하실 거 같은데. 전 1선 실험 놓은 지도 몇 달 됐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래도 클라스는 영원하죠.”
박동현이 말했다.
류영준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세포 플라스크를 들어올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시범 확실하게 보여주시죠.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어떻게?’
-연구자들 실험하는 것 여러 번 봤는데 잘못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지금 기회가 좋으니 제대로 가르치는 게 좋습니다.
‘아니, 나랑 저 사람들 실험하는 거 별 차이 안 난다니까?’
-‘잘못하는 사람들’에 당신도 포함입니다.
‘…….’
-실망하지 마십시오. 원래 인간이 하는 실험은 비효율과 오차 위험성으로 가득합니다. 제가 미시세계를 다루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류영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양 팔의 통제권을 잠깐만 넘겨 주세요. 시각도 공유해주시고요.
어떡하지?
류영준은 조금 고민하다가 두 팔에서 힘을 빼고 느슨하게 내려놓았다.
약간 걱정은 되었지만 류영준 본인도 잘못 실험하고 있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했다.
‘해 봐.’
류영준이 허락하자마자 그의 두 팔이 로봇처럼 직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눈앞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그의 두 손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움직였다.
플라스크 뚜껑을 열 때, 초보자들은 왼 손으로 플라스크를 잡고 오른 손으로 뚜껑을 돌려서 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오른손이 파이펫이나 석션 장비를 작업대 바닥에 내려놓아야 한다.
결국 그걸 다시 집어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손을 움직이는 과정이 하나 더 생기고 일의 능률이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플라스크의 뚜껑은 한손으로도 딸 수 있다.
물이 담긴 페트병의 뚜껑을 여는 것과 비슷하다.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지만.
왼손의 신경 세포 중 117만 여 개를 정확히 흥분시키면 뚜껑이 딱 12바퀴 반 돈다. 지금처럼.
좌르르륵! 탁!
뚜껑이 플라스크 주둥이에서 달랑거렸다. 날아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상태다.
남은 것은 플라스크를 쥐고 있던 왼 손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열린 뚜껑을 집어드는 것뿐.
이러면 왼손만으로 뚜껑을 제거하고 그걸 손가락에 쥐고 있을 수 있다.
석션 장비를 쥔 오른손이 움직일 차례다.
석션 장비는 플라스크 안쪽 끝까지 집어넣지 않는다.
오염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류영준의 눈에 환상이 어른거렸다.
플라스크 겉면에 붙어있는 죽은 박테리아의 사체들이었다.
‘미친……’
두 팔은 반드시 플라스크 위를 지나지 않는 동선으로만 움직인다.
팔에서 미생물이 떨어져 배양액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류영준의 두 팔은 알고리즘이 잘 짜여진 기계처럼, 오염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움직임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플라스크를 기울이고는 박테리아의 사체들을 피해 석션 장비를 플라스크 안으로 진입시켰다.
플라스크 주둥이 쪽으로 모은 배양액을 제거했다.
PBS 용액을 번쩍 들더니 플라스크의 세포 부착면 반대 방향에 냅다 들이 부었다.
보통은 파이펫 에이드 같은 정량 장비로 조심스럽게 넣어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로잘린의 손에는 불필요한 일이었다.
그냥 들이 부어도 정확히 10 밀리리터다. 반대 방향이기 때문에 세포가 다칠 염려도 없다.
그 용액으로 세포들을 한번 씻어준 후 다시 석션.
다음엔 트립신 용액이 든 튜브를 기울여서 플라스크마다 2 밀리리터씩 흘려 넣었다.
멀리서 용액을 떨어뜨리면 오염 가능성이 없고 시간은 극단적으로 축약된다.
류영준이 플라스크 두 개의 세포들에 트립신을 처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40초였다.
테크닉으론 에이바이오에서 한 손에 꼽히는 제이콥이 2분, 전성기의 카펜티어 기준으로 1분 30초 걸리는 작업이었다.
툭.
누군가 노트와 펜을 떨어뜨렸다.
“감……사합니다……”
제이콥이 말했다.
“동영상 녹화하긴 했는데 이걸 누가 따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이 정도 해야 에이바이오 같은 회사 차릴 수 있구나……”
누가 중얼거렸다.
“잘 봤습니다, 대표님. 많이 배웠습니다. ……아니, 사실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나연우 연구원이 충격에 얼어버린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해산해요. 다들 가서 실험들 하세요!”
류영준이 황급히 말했다.
그는 통제권이 돌아온 손으로 실험을 마무리하고 일어났다.
‘다시는 사람들 보는데서 실험 안 해야지.’
* * *
슈마틱스의 녹내장 치료 키트 조작의 희생자였던 아르답이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에이바이오 병원에 합류한 성요한 교수가 그의 치료를 맡았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녹내장 치료 임상시험을 처음 진행했던 성요한은 이쪽에선 세계 최고의 전문의였다.
성요한은 녹내장 치료의 자문역으로 류영준을 불러서 함께 환자를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류영준이 인사했다.
미리 준비한 마라티어 통역이 류영준의 인사말을 옮겨주었다.
아르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우 지친 듯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 남자를 류영준은 가만히 관찰했다.
비쩍 마른 몸. 30대 초반이라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는 얼굴.
그가 풍기는 분위기에서 거친 삶의 노곤함이 묻어났다.
그래도 아폴로 병원에서 많이 관리를 받고 왔을 텐데 여러모로 상태가 나빠 보였다.
띠링!
그 와중에 메시지창 하나가 떠오르자 류영준이 깜짝 놀랐다.
‘녹내장만 문제가 아니잖아?’
한쪽 다리를 전다는 얘길 전해 듣긴 했는데 이제 이유를 알았다.
[동기화 모드 : 뇌졸중 분석하기, 피트니스 소모 : 1.1/1 초]성요한 교수는 아폴로 병원에서 보내준 문진 자료를 읽으며 류영준에게 말했다.
“뇌졸중으로 입원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문제는 없는데, 왼쪽 다리에 마비가 와서 걸을 때 다리를 전다고 합니다. 녹내장 치료랑은 상관없겠지요?”
“…….”
류영준은 아르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네. 괜찮을 겁니다. 녹내장 치료는 진행하셔도 돼요. 그리고……”
류영준이 말을 삼켰다.
알츠하이머 임상시험은 현재 3상을 앞두고 있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히면서 생기는 신경 마비와 파괴 질병이다.
결국 신경 질환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알츠하이머 치료에 사용했던 뇌신경 재생 기술은 뇌졸중에도 효과가 있다.
그래서 에이바이오는 이미 뇌졸중이나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쪽으로도 뇌신경 재생 임상 1상을 준비중이었다.
‘신정주 교수랑 얘길 좀 해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