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이호는 한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한 뒤 칙서를 받았다.
“황제는 조선 국왕, 이호에게 칙유하노라. 하늘의 도움을 받아 다시 남경을 평정하였도다. 하지만 이주의 간안학 해적 무리가 기승을 부려 난감한 상황에 처했도다. 길이 생각하건데, 이는 동국(조선)이 옛 어진 임금을 본받아 우리 왕실을 보호할 훌륭한 제후국이 될 기회가 아닐까 싶다.”
칙서에는 아주 단순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주 즉, 대만의 해적 떼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으니, 이들을 처치하는 것에 조선이 힘을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이호는 다음으로 섭정왕, 도르곤의 서신을 열어보았다.
도르곤의 서신에는 더욱 자세한 요구 조건이 적혀 있었다.
‘1만이라. 최소 1만의 조총병을 보내라는 말인가.’
서신을 읽던 이호는 가슴 속에서 분노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물론 청나라 사신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감히 분노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황제의 은혜가 실로 망극합니다.”
칙서에 대한 사례로 그와 같이 말하고는 청의 사신을 돌려보냈다.
사신들이 모두 물러나자 이호는 좌우에 시립한 신하들에게 물었다.
“영의정. 청이 곧 복경을 평정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섭정왕에게 이미 정해진 계책이 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을 겁니다.”
“우리에게 군사를 요구하였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큰 문제 아닙니까?”
이호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묻자, 김자점은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하였다.
“군사를 보내 달라면 보내주면 될 일입니다. 다행히 1만 정도만 요구하였으니, 그 정도 요구는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려 1만입니다. 1만. 1만이나 되는 우리 백성을 그 위험한 전장으로 보내란 말입니까?”
김자점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였다.
“하오나 전하. 섭정왕이 직접 서신까지 보내 부탁한 일입니다. 전하께서는 섭정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잔말 말고 그냥 청의 요구에 따르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이호는 그런 김자점의 태도에 헛웃음을 지었다.
김자점이 친청파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이호 역시 김자점이 친청파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태도를 보면 친청파 수준이 아니라, 그냥 청나라 사람처럼 보였다.
‘김여경, 송준길이 영의정을 탄핵하려 하였을 때, 반대하지 말았어야 했나.’
이호는 문뜩 후회되는 것을 느꼈다.
김자점은 사실상 모두의 적이었다.
그가 즉위할 때 김자점을 탄핵하려는 여론으로 시끌벅적하였던 것도 그만큼 김자점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호 자신도 김자점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김자점을 숙청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란 다름 아닌, 김자점이 강빈 옥사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란 점이었다.
김자점을 처분하려 한다면 인조 연간에 있었던 강빈 옥사와 소현 세자의 죽음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게 분명하였다.
이는 이호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문제였기에 이호도 김자점을 함부로 처분할 수 없었다.
김자점의 뒤에 청나라가 있다는 것도 문제였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김자점이 청나라를 믿고 호가호위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를 숙청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기 시작하였다.
***
“만약…. 지금 북벌을 시작하면 어떨 거 같으냐? 승산이 있겠느냐?”
이호는 자신의 최측근인 우부승지, 남훤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현재 이호는 은밀하게 북벌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북벌 계획을 알고 있는 이는 열 명이 채 안 됐다.
남훤이 바로 이 중 한 명이었는데, 정작 남훤은 이런 이호의 물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청이 비록 지금 곤란을 겪고 있다지만, 여전히 그들은 강맹합니다.”
“청을 위협하는 건 고작 2만밖에 안 되는 대두국의 군대라고 들었다.”
대두국은 2만밖에 안 되는 군사로 청나라를 위협하고 있는데 조선이라고 못 할 게 있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남훤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우리 조선은 바로 그 2만의 군대도 없지 않습니까.”
너무도 솔직한 발언이었다.
이호는 그런 남훤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선이 아무리 군사력이 약한 나라라고 해도 군사수가 그 정도로 적은 것은 아니었다.
모든 병력을 합치면 20만에 달하는 군사를, 심지어 병자호란 직후에는 30만에 가까운 병력을 거느렸던 것이 조선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비군 개념인 속오군을 합친 것을 말하는 것이고, 오군영으로 대표되는 중앙군만 얘기하면 1만 안팎에 불과하였다.
심지어 정예라 불리는 오군영조차 청나라의 견제 때문에 인조 대에는 제대로 훈련도 하지 못했었다.
“흑기군이라 불리는 군대는 정예 중의 정예입니다. 우리 조선에서 그들 정도 수준의 군대를 가지려면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완과 유혁연이 조금 더 힘내주길 바라야겠군.”
현재 이호는 북벌을 목표로 훈련도감과 어영대를 직접 통솔하며 두 친위 부대를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다.
청나라의 눈을 피하기 위해 온갖 행사를 핑계 삼아 훈련을 이어나가고 있었던 것.
그러니 시간만 주어진다면 조선 역시 강력한 중앙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중앙군의 수준이 흑기군을 넘어서라는 법은 없었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청의 요구를 따라줄 수밖에 없겠어.”
“예,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후우. 분통이 치밀어 오르는구나. 우리 백성을 보내 오랑캐를 도와야 하다니. 청은 우리 백성들을 위험한 전장에 보낼 것이 아닌가.”
자존심 상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거지만, 청나라로 갈 1만에 대한 군사들에 대해서도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이호였다.
광해군의 명을 받고 심하 전투에 참가하였던 조선군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던가.
아마 절반 이상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조선의 장정들이 상대하게 될 적은 남명보다는 대두국의 군대인 흑기군일 듯합니다.”
“내 생각에도 그러하다.”
“대두국의 국왕인 김요한에게 사신을 보내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사정을 안다면 굳이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흠.”
남훤의 의견을 들은 이호는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청나라에 들키지만 않는다면 나쁘지 않은 전략처럼 여겨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선은 요한과 싸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요한은 남명에 의해, 조선은 청나라에 의해 강제로 전장에 끌려온 처지였으니 말이다.
물론 요한의 경우, 강제로 끌려왔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나쁘지 않군. 그자와 미리 이야기를 해놓는다면, 장정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겠어.”
억지로 끌려간 전쟁이기에, 피해는 최소화해야 했다.
청나라의 문책이 따를 테지만, 1만 명의 병사가 모두 전멸하는 것보단 나았다.
일단 군대를 보내긴 했으니 청나라라고 심하게 문책할 일도 없을 테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놀랍지 않은가? 대두국이란 나라는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존재조차 몰랐던 나라이거늘, 어느덧 청나라까지 위협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
“무척 놀랍습니다. 2만이나 되는 군사력을 동원한 것도 놀랍게만 느껴집니다. 그들의 인구는 우리가 파악한 것보다 훨씬 많은 듯합니다.”
이호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니, 남훤도 혀를 내두르며 그의 말에 동조하였다.
조선에서 파악한 대두국의 인구는 100만이 채 안 됐다.
사실 대두국이 신생국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이것도 높게 평가한 것이었다.
이호의 신하 중에는 대두국이 조선에서 이민자를 애타게 찾는 걸 보고 대두국의 인구가 100만은커녕 10만 정도에 불과할 거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인구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면, 2만이나 되는 병력을 타국으로 원정 보내는 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100만이 아니라, 그것의 두 배 이상 되는 200만은 되어야 2만의 병력을 타국으로 원정 보낼 수 있으리라.
“인구도 인구지만, 그 군대를 유지하는 재력이 대단하게만 느껴지더군. 흑기군은 모두 급료를 받는 전문 군인이지 않은가.”
사실 가장 부러운 점이 이것이었다.
이호는 지금 수천밖에 안 되는 친위 부대를 정예화하는 것에도 재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요한은 어영대, 훈련도감 등보다 훨씬 돈이 많이 드는 흑기군을 수만이나 거느리는 중이었다.
이것만 봐도 요한의 재력이, 그리고 대두국의 부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일단 확실한 것은 그를 적으로 돌려서 좋을 게 없다는 점입니다.”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겠지. 오히려 아군으로 삼아야 할 인물이야.”
요한이 조선인들을 대두국으로 마구 데리고 갔을 때, 이호는 요한을 경계하는 마음을 품었었다.
자신과 아무런 합의 없이 조선의 인구를 몰래 빼돌렸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요한에 대한 불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요한의 명성이 오를수록 요한의 업적에 비교당하며 그의 권위가 실추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이성적인 성격을 가진 군주였다.
내심 요한이 탐탁지 않아도 지금 상황에서 요한을 배척하면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기에 이호는 요한을 적으로 돌리기는커녕 아군으로 돌리는 것에 혈안이었다.
가능하면, 정략 결혼을 통해서라도 요한을 아군으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
요한은 청나라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대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부상자를 대만으로 보내고, 새로운 병력을 충원하여 다시 정원을 채우긴 하였으나 여전히 그는 중국에 남아 있었다.
다만 도르곤이 걱정하는 것처럼, 북경을 노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전쟁을 단기에 끝내려면 사실 북경을 노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전략이었다.
만약 남명이 요한의 국가였다면 요한은 당연히 북경부터 노리려 하였을 것이다.
위험할 수 있어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 정도 위험은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요한은 남명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대두국의 왕일 뿐, 남명의 운명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남명을 위해 무리한 전략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상선하라.”
청군이 몰려올 때, 싸우지 않고 바로 배를 타고 달아나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요한으로선 구태여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청군과 싸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남명은 어느 정도 위기에서 벗어났으니까.’
처음에 열심히 싸운 것은 어디까지나, 청나라가 방심하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즉, 흑기군을 경계하지 않았기에 요한은 큰 피해를 보지 않고 이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실제로도 요한은 몇 차례 전투에서 백 단위의 피해밖에 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청나라는 한눈에 봐도 잔뜩 긴장해 있었다.
남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요한만 경계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으로서는 청나라와 무리하게 싸워줄 이유가 없었다.
“어째서 싸움을 피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남명의 장수 입장에서는 싸움을 피하는 요한의 태도가 그리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감휘 역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였다.
요한을 누구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는 그였기에 더더욱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적의 수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의 수는 고작 5만밖에 안 됩니다.”
“5만이 언제부터 적은 병력이었지? 우리 군은 2만밖에 안 되는데 말이야.”
“하지만 흑기군이라면 5만 정도의 적은 쉽게 무찌를 수 있지 않습니까?”
“쉽지는 않아. 이전처럼 방심한다면 모르겠지만, 방심하지 않은 적과 싸우면 우리도 꽤 큰 피해를 보게 될 거다.”
요한은 그리 말하더니 이내 같잖다는 듯, 픽 웃으며 말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충분히 활약을 해줬어. 지금껏 우리 군이 무찌른 적만 10만에 달하지. 남명의 장수 중에 이만한 활약을 펼친 이가 한 명이라도 있나?”
“하, 하지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흑기군이 조금 더….”
“여기서 더 활약하길 바라는 건 염치 없는 거 아닌가? 청나라는 우리가 장강 근처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전력을 투사할 수 없을 텐데 말이야.”
감휘가 입을 다물자, 요한은 속으로 말하였다.
‘더 큰 활약을 원한다면 그만한 보상을 추가로 제시해주던가.’
물론 요한은 어지간한 보상이 아니라면 쉽게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남명과 청나라의 전쟁이 더욱 장기전이 되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