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브루나이 술탄국.
한때 보르네오 섬을 기반으로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던 국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쇠락하여 신생국에 불과한 마긴다나오 술탄국에 의해 존망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사실 그들의 속국인 술루 술탄국이 아니었다면 이미 진즉에 그들은 멸망하였을 것이다.
수도를 빼앗기고 사실상 나라를 잃은 처지나 마찬가지인 술루 술탄국의 전사들이 밀림에서 마긴다나오 술탄국의 군대를 막아내고 있었던 덕에 브루나이 술탄국도 간신히 버틸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술루의 전사들도 이제 이천이 채 남지 않았다.’
수난 자파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브루나이 술탄국에서 픙이란 신분을 가진 그는 일종의 왕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왕위 계승권과는 거리가 먼 왕족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왕위 계승권과 관계없이, 수난 자파르는 진심으로 브루나이의 미래를 걱정하였다.
그가 한편으로는 멀고, 한편으로는 가까운 나라, 대두국의 대만이란 곳에 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부디 우리가 돌아갈 때까지 버텨줬으면….”
속국이었으나 경쟁 국가가 되어가고 있는 술루 술탄국.
우습게도 지금의 브루나이 술탄국에게 믿을 건 그들뿐이었다.
브루나이 술탄국은 한창 내부 분열에 휩싸여 외부의 공격이 없어도 알아서 무너질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와아아!”
“엄청나군! 저게 다 몇 척이야?”
그러던 중, 갑판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심란한 표정을 짓던 수난 자파르가 의문을 금치 못하고 갑판으로 나오니 그의 수하가 말하였다.
“저길 보십시오. 대두국이 보입니다.”
수하가 가리킨 곳을 본 수난 자파르는 다른 이들이 그렇듯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다그 왕국이 마긴다나오보다 훨씬 강대한 나라라더니, 확실히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어.’
대두국의 수도 입항지인 백령포만에는 수백 척의 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거대한 체급을 자랑하는 배들이었다.
사실 이미 대두국에 대한 소문은 브루나이 술탄국 전역에 퍼져 있었다.
대부분이 믿기 어려운 소문들이었다.
겨우 10년도 안 된 신생 왕조가 스페인이라는 강대한 가톨릭 세력을 무찔렀다는 소문이었다.
브루나이 술탄국이 쇠락한 것도 스페인이 지배하는 필리핀 도독령의 영향이 컸었는데, 그래서 그들은 스페인을 유독 두려워하였다.
그런데 신생 왕조가 그 스페인을 무찌르고 마긴다나오 술탄국조차 두려워하는 세력이 되었다 하니, 믿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정말 놀랍군요. 이렇게 번영한 곳이라니.”
“확실히 요한이란 자는 대단한 군주이긴 한 거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룩하다니. 마치 전설 속의 왕 같지 않습니까?”
수난 자파르는 그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번성한 왕조가 이제 겨우 몇 년밖에 안 됐다니.’
이 같은 그의 생각은 백령포에 가까워지면서 더욱 강해졌다.
배만 많은 것이 아니라, 사람도 많았고 건물들은 하나같이 크고 넓었다.
그들을 문정하러 온 군인들의 모습을 봤을 때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검은 제복으로 통일된 그들은 한눈에 봐도 군기가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배 양편에 달린 수십 문의 화포를 봤을 땐 절로 위압감을 느꼈고 말이다.
“픙이란 자파르. 요한 왕에게 무엇을 줘야 우리의 요구를 따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제안해 봐야 하지 않겠나.”
대두국이 대단히 번성한 국가라는 걸 알게 되자, 사절단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마긴다나오 술탄국을 중재 또는 압박할 수 있는 나라인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번성하여 그들을 회유할 수단도 찾기 어려울 뿐더러, 오히려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요한 왕에게 어떤 이득을 제시해야 할지 막막하군.’
대두국의 지원과 보호를 받는다면 마긴다나오 술탄국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런데 과연 대두국의 동맹이 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중국 왕조들이 좋아하는 충성 맹세를 바란다면 그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자원이나 교역권을 바란다면 그 역시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토를 바란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었다.
‘소문처럼 현명하고 자애로운 왕이길 바라는 수밖에.’
이교도인 스페인 왕조를 무찌른 요한에 관한 명성은 적어도 브루나이 술탄국에서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물론 사람들은 그 소문이 헛소문이라 생각하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두국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한 수난 자파르였기에 자신이 들은 소문이 전부 사실이길 바라였다.
***
마긴다나오 술탄이 생사가 오가는 소식은 대두국에 그리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심지어 관보에도 아주 작게 실렸을 뿐, 사람들은 전혀 관심을 보내지 않았고 사실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반 사람들이 신경 쓰는 것은 대부분 북방 소식이었고, 그나마 조선계 출신들만 조선의 전쟁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고위 관료들의 반응은 일반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이미 대두국의 관료 집단에서 보르네오 섬과 민다나오 섬을 얻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르네오 섬과 민다나오 섬을 원한다는 건 그곳을 지배하는 마긴다나오 술탄국과의 전쟁을 원한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안 그래도 궁중 암투가 치열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술탄이 이대로 쓰러진다면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국방부의 장관, 마투스가 가장 먼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그들이 내전에 휩싸이면 그때 우리도 군사를 일으켜 마긴다나오 술탄국을 정벌하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전쟁이라.”
요한은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눈으로 마투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투스가 요한의 시선을 마주하고 살짝 긴장할 때, 다른 장관들이 마투스를 말렸다.
“마긴다나오 술탄국과는 이미 불가침 조약을 맺었는데, 어찌 조약을 깨고 그들을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애초에 장관의 이야기는 전부 다 가정일 뿐이지 않습니까. 술탄이 이대로 죽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죽더라도 내전이 발발할 거라는 확신이 없습니다.”
요한 대신 다른 파벌의 장관들이 나서서 마투스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사실 그들도 내심 두 섬에 욕심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청나라와 남명의 전쟁에 집중할 때였다.
요한 역시 내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지 않던가.
그렇기에 앞 다퉈 마투스의 주장에 반대를 표하였다.
‘지금이 기회인 건 사실이야.’
이 자리의 누구보다 두 섬의 가치를 잘 아는 것이 바로 요한이었다.
가치를 아는 만큼 당연히 더 간절하게 원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장관들이 지적한 대로, 명분이란 게 문제였다.
조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신생국이자, 조선 외에는 제대로 된 우호국 하나 없는 대두국엔 그리 좋을 것이 없을 거다.
“하하, 조약을 어기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방도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던 중, 새로이 외교부 장관이 된 하국상이 그와 같은 말을 꺼냈다.
“조약을 어기지 않고 어떻게 그들의 영토를 빼앗을 수 있단 말이오?”
“아주 간단한 방도입니다.”
하국상은 뭔가 거창한 것을 말하려는 것처럼 잠시 뜸을 들였다.
물론 요한은 그의 성격을 알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저들의 내전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술탄이 죽으면 왕자들이 서로 싸움을 일으킬 텐데, 우리는 왕자 중 한 명을 선택하여 자원과 군사를 지원하고, 그 왕자가 왕위를 얻어내면 그때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강요하면 되는 일입니다.”
요한이 예상한 것처럼 그리 대단한 전략은 아니었다.
사실 요한 역시도 내심 생각해 두던 전략이었다.
하지만 마긴다나오 술탄국의 내부 사정을 확실히 모르기에 요한은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남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타국의 내전에 개입하자니. 그런 쓸데없는 전쟁으로 병사들이 희생을 치르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쓸데없다니, 다 국익을 위한 것입니다. 조약을 깨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방도이지 않습니까?”
마투스가 하국상의 말에 즉각 반대하자, 하국상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재차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새로 옹립한 왕이 신의를 지킬 거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힘을 가졌는데 어찌 약속을 어긴단 말입니까.”
“조약을 믿고 건방지게 굴면 어쩔 겁니까? 그럼 우리는 결국 조약을 깨고 응징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당연히 요한도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다만 힘이 없는 왕자를 세우면 가능할 거 같긴 한데.’
물론 그렇게 되면 기존 기득권의 반발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요한은 그것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피를 흘리게 될 것은 흑기군 병사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직 청나라로 보내지 않고 훈련소에서 열심히 훈련받는 일본의 용병들.
그 용병들을 청나라 대신 마긴다나오 술탄국으로 보내면 될 일이었다.
‘그 전에 일단 마긴다나오 술탄국의 사정을 보다 자세히 알아야 할 테지만 말이야.’
***
“전하, 브루나이 술탄국의 사절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찾아왔습니다.”
마긴다나오 술탄이 죽으면 어찌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할 때, 예상치 못한 이들이 대만을 방문하였다.
내관이 언급한 브루나이 술탄국의 사절이 바로 그들이었다.
‘아무래도 도움을 요청하려고 온 거 같은데, 시기가 참으로 묘하군.’
만약 술탄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면 브루나이 술탄국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그들이 사절을 보내와도 아마 어떤 약속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돌려보냈을 터.
하지만 술탄의 소식을 들은 지금은 브루나이 술탄국을 대하는 방식도 조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 정도는 못 들어줄 것이 없겠지. 궁으로 불러와라.”
“예,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국적인 의복을 차려입은 브루나이 술탄국의 사절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요한은 유럽의 사신을 대할 때 그랬던 것처럼, 동양의 방식이 아닌, 서구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대하였다.
즉, 악수부터 하고 봤다는 뜻이었다.
“반갑다. 내가 바로 대두국의 왕, 김요한이다.”
“여, 영광입니다. 폐하! 외신은 픙이란 수난 자파르라고 합니다.”
“픙이란이라. 왕족인가?”
“그, 그렇사옵니다.”
“일단 앉지. 마실 것을 내올 텐데, 어떤 걸 마시고 싶은가?”
수난 자파르는 한눈에 봐도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요한이 사절을 대하는 방식이 파격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반갑긴 한데, 궁금하군. 브루나이 술탄국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데 말이야. 그대는 나의 왕국에 무슨 일로 찾아왔지?”
콜록!
간신히 분위기에 적응하며 내관이 내온 차를 마시던 수난 자파르는 갑작스러운 요한의 질문에 헛기침하고 말았다.
***
‘역시 예상했던 대로군.’
브루나이 술탄국의 사절이 요한을 찾아온 이유는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었다.
즉, 마긴다나오 술탄국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달라는 요청을 원하였던 것.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같은 요청에 요한은 아무런 답을 해줄 수 없었다.
아직 마긴다나오 술탄국의 내부 사정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이 같은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자는 술탄이 죽을 위기에 처한 걸 아직 모르는 거 같단 말이지. 그러면 미리 유리한 조약을 맺어놓을까?’
마긴다나오 술탄국의 내전에 끼어들어 보르네오 섬에 대한 권리를 얻어낸다 해도 보르네오 섬의 토착 세력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마긴다나오 술탄국부터 그들의 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긴다나오 술탄국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명분으로 미리 그들의 인정을 받아낸다면?
토착 세력의 저항을 크게 받지 않은 채로 보르네오 섬의 영토를 얻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