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요새화 (3)
불과 몇 분 전에 수신한 재난안전문자…….
그저 3통의 재난문자였지만 그 문자의 의미는 컸다. 나의 안전을 내가 직접 지켜야 한다는 명제가 더욱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괜히 허리춤에 찬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더욱 힘이 들어갔다.
옥상에 올라와 닭가슴살, 멀티비타민, 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뒤, 동네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옥상을 한 바퀴 돌았다.
‘흠…… 별다른 건 없는 건가? 그나저나 밑에서 어슬렁거리는 감염자는 치워야 밖에 좀 다닐 수 있겠는데…….’
밑에서 어슬렁거리는 감염자를 제외하면 쥐 죽은 듯 조용한 동네.
동네 곳곳의 건물 내에는 수많은 비감염자가 숨어 있을 것이다.
아직은 부분적으로 정전이 일어난 곳을 제외하고는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는 상황. 아직은 정부에서 주요 생활기반시설은 어찌어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인터넷 게시판을 보니 민간에서 운영 중인 광대역 통신망이나 각종 유통망(수도, 전기, 가스, 송유관 등)은 현재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전국적으로 마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각자 갖추고 있는 물자가 떨어지기 전에 군인이나 구조대가 오지 않는다면, 결국엔 보금자리 밖으로 나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러 다니는 상황이 생길 것이라는 말이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잠시 걱정을 해 봤지만, 현재 식량과 식수가 충분한 내게는 1~2년 후의 일이었기 때문에 1층 편의점까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4층과 3층에 이어 2층을 마저 확인하기 위해 계단으로 향했다.
터벅- 터벅- 터벅-
2층의 각 방을 확인하러 내려가기 위해 2층과 3층 사이를 틀어막아 둔 바리케이드를 해체하던 중 2층 202호의 현관문이 살짝 열리는 것이 보였다.
문틈 사이로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과 눈이 마주쳤고, 여성은 굉장히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살피고는 서둘러 문을 닫았다.
철컥- 철커덕-
나는 바리케이드 때문에 2층으로 내려가지는 못한 채, 여성이 들어가고 난 현관문에 대고 뒤늦게 소리를 쳤다.
“저기요! 202호 사시는 분! 잠깐 저랑 얘기 좀 해요.”
“…….”
분명 내가 소리치는 게 들렸을 텐데 아무런 대답이 없다.
“원룸 내에 이런저런 확인해 볼 게 있어서 그래요. 잠시 저랑 대화 좀 하시죠?”
“…….”
평소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면 그냥 넘어갈 문제였지만, 지금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바리케이드를 다 해체하고 난 후, 202호 앞에 서서 이런저런 얘기를 꺼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상당히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202호 여자를 상대하기에 앞서 201, 203, 204호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시간을 아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202호 앞에는 막아 둬야겠다.’
나는 202호 앞에 책장과 책상을 쌓아 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아 둔 후에 201호부터 차례대로 내부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똑- 똑- 똑-
“혹시 누구 계십니까? 계시면 대답 좀 해 주세요. 협조해 주시지 않으면,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쾅- 쾅- 쾅- 콰앙- 툭-
앞서 4층과 3층에서 했던 것처럼 201, 203, 204호를 확인하고 난 후 마지막으로 202호 앞에 섰다.
202호 앞에 세워 뒀던 책장과 책상들을 치우고서는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안에 계신 거 압니다. 계속해서 대답을 안 하신다면 불가피하게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에 202호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왜 이러시는 거죠? 저는 그쪽이랑 할 말이 없어요!”
“저는 원룸 건물 내부에 감염자가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합니다. 건물 내에 확인 안 한 곳은 202호뿐이에요. 잠시만 방 안을 보여 주시면 안 될까요?”
“제 방엔 감염자 따윈 없어요. 그리고 저한테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어떻게 문을 열어드리죠?”
“절대 해코지하지 않을게요. 방 안쪽만 확인하고 바로 나오겠습니다. 건물 내의 감염자를 확인하기 위한 거니까 협조 좀 부탁드릴게요.”
“아……알겠어요. 그러니까 문은 부수지 말아 주세요.”
안에서는 굉장히 갈등하고 있는 모양인지, 한참 동안 혼잣말을 반복하다가 이내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 왔다.
“진짜 그 어떤 해코지도 무력도 행사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주세요.”
“맹세할게요. 그리고 필요하시다면 도움도 드리겠습니다.”
여자는 불안했는지 몇 번의 다짐을 받고서야 조심스레 문을 열어 줬다.
철컥- 철컥- 끼이이-
나는 칼자루에 손을 얹은 채 조심스레 문을 열고서는 202호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자 여자는 내가 무서운지 나에게 일정 거리를 두고는 뒷걸음질 쳐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을 훑어본 후, 닫혀 있는 화장실과 세탁실 문을 열어 확인하고 나서야 원룸 건물 내에 감염자가 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여자의 전신을 훑어보며 감염자에게 당한 상처가 있는지 확인했다.
여자에게서는 눈이 빨갛다거나, 기침하거나, 식은땀을 흘리는 등의 감염 초기 증상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원룸 건물 내부가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자, 비로소 칼자루에 얹은 손에서 힘을 뺄 수 있었다.
“휴……. 죄송합니다. 너무 무례했죠? 원룸 내의 감염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게 확인하고 넘어가야 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여자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나의 태도를 보고 나서야, 나에 대한 적개심을 살짝 푸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적개심이 풀리고 불안한 마음이 해소되자 여자는 궁금한 것이 많은 듯했다.
하지만 아직 100% 안전을 자신할 수는 없었다.
여자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아직 3층 꼬마들이 있는 방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둘러 꼬마들이 있는 304호도 확인해야만 했다.
304호 앞.
똑- 똑- 똑-
“아무도 없니? 편의점 형인데, 괜찮으니까 형이랑 얘기 좀 하자.”
“…….”
조금 전까지 현관문 너머로 들리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소리가 꺼짐과 동시에 후다닥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한차례 이어지더니 이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꼬마 둘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미숙했다.
‘귀엽네. 하하’
어떻게 꼬마들을 꾀어낼까 고민을 하던 중에 기발한 방법이 떠올랐다.
“얘들아, 지난번에 내가 준 과자 중에 뭐가 제일 맛있었어? 나는 바나나 모양에 초콜릿이 발라진 과자가 그렇게 맛있던데?”
“저는 빼빼로가 제일 맛있었어요!”
“쉿! 엄마가 집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있으라고 그랬잖아!! 얘기하면 어떡해.”
“아! 맞다. 조용히 해야지. 쉿!”
“…….”
꼬마들은 내가 던진 질문에 대답까지 해 놓고서는 아무 얘기도 안 한 것처럼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얘기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너희 엄마가 형보고 너희 밥 좀 챙겨 주라고 그랬어. 그러니까 문 좀 열어 봐.”
“……엄마가요?”
“그래 너희들이 가진 핸드폰은 고장 나서 전화가 안 되지? 그래서 너희 엄마가 형한테 전화해서 너희들 밥 좀 챙겨 주라고 그랬어.”
안에서 한참을 부스럭거리며 속닥거리던 꼬마들은 이내 문을 열어 줬다.
철컥- 끼이이-
“잘했어. 형이 잠깐만 집 안을 보고 나서 너희 밥 가져다 줄게.”
꼬마들이 있는 방, 화장실, 세탁실을 살폈다. 예상대로 304호 안에는 감염자가 없었다.
‘휴……. 이로써 건물 내에는 확실하게 안전이 확보된 셈인가? 출입구만 좀 더 보강하면 완벽하겠군.’
꼬마들이 쓰고 있는 방은 완전 난장판이었다.
원룸 방바닥에는 꼬마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며칠 전에 내가 챙겨 준 과자들을 뜯어 먹고 남은 봉지들이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무엇보다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 않았는지 꼬질꼬질한 상태.
‘며칠 동안 제대로 된 밥은 먹어 보지도 못하고 과자만 먹었나 보다……. 그때 과자라도 챙겨 주길 잘했네…….’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 아이들이 한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즉석 밥, 레토르트 식품, 물 등을 잔뜩 챙겨 304호로 갔다.
똑- 똑- 똑-
“누구세요?”
안에서 꼬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편의점 형이야. 너희 엄마가 형보고 너희들 밥 좀 챙겨 주라고 해서 밥 좀 가져왔어.”
“네에~ 잠시만 기다리세요.”
엄마가 시켰다고 해서 그런지 이제는 별다른 의심 없이 문을 바로바로 열어 줬다.
“우와! 밥이다! 엄청 많네요? 다 저희 거예요?”
“그래, 엄마가 너희들 과자는 조금만 먹고 밥 많이 먹이라고 그러셨어.”
밥을 데우고, 반찬거리들을 데워서 꼬마들의 밥을 챙겨 줬다.
밥을 먹이고는 어질러진 방을 정리시켰고, 욕실로 데려가 꼬질꼬질한 아이들을 씻겨 줬다.
아이들은 배부르게 밥을 먹고 개운하게 씻고 나니 기분이 좋은지 재잘재잘 한참을 떠들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함께 지내야겠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다면, 꼬마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꼬마 둘 정도는 함께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으니 이기적으로 혼자만 먹고 살 궁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혼자서 움직이는 것과는 달리 같이 함께 지낼 일행이 생기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편견 없이 해맑은 아이들을 보니 뭔가 챙겨 주고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과 책임감이 생겨났다.
나는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던 중 방구석에 있는 RC 자동차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다.
‘어!? RC카를 이용하면 원룸 앞을 어슬렁거리는 감염자를 다른 방향으로 유인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꼬마들에게 RC카를 받아 이리저리 조종해 보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위이이잉-
RC카는 제법 빠르고 요란하게 작동했다. 아마 휴대용 라디오를 RC카 위에 얹어서 시끄럽게 유인한다면 감염자들을 효과적으로 멀리 유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얘들아. 형이 꼭 필요해서 그런데 여기 장난감 자동차는 형이 가지면 안 될까?”
“…….”
“꼭 필요해서 그래. 밖에 괴물들 멀리 쫓아내려면 꼭 필요하거든.”
“……가져가도 돼요. 저희는 이제 자동차 장난감 갖고 놀 나이는 지났어요.”
꼬마들은 잠깐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흔쾌히 장난감 자동차를 넘겨 줬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RC카를 챙겨 202호로 향했다.
똑- 똑- 똑-
철컥- 끼이이이- 차르르르- 탁-
“무슨 일이시죠?”
여자는 불안한 눈빛으로 도어 체인을 건 채 현관문을 열어 문틈으로 얼굴의 반 정도만 내비치며 내가 방문한 의도를 물었다.
“아……. 별건 아니고요. 이제 건물 내부에는 확실히 감염자가 없으니까 안심하셔도 된다고 알려드리려고 들렸습니다.”
딱히 더 얘기할 것이 없는 나는, 필요한 정보만 전달하고는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뒤에서 202호 여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1층 출입구는 왜 막아 두신 거죠?”
“그건 외부 감염자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용도입니다. 필요하시다면 출입하셔도 됩니다. 말씀해 주시면 얼마든지 열어드릴게요.”
“그럼 허리에 칼을 왜 차고 다니시는 거죠? 그거 분명 불법 무기 소지…….”
“호신용으로 차고 다니는 거예요. 감염자들을 맨손으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서요.”
내 대답을 들은 여자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길 건너 오피스텔 현장에서 내가 감염자를 죽이는 것을 목격했는데 왜 죽인 건지, 감염자를 안 죽일 순 없는 것이었는지, 앞으로는 어떡할 것인지 등의 질문을 해 왔다.
여자의 질문에 하나하나 자세하게 답변을 한 뒤, 앞으로 살아남을 계획도 설명해 주자 나를 향한 적의와 의심이 한결 옅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원룸 건물 내에서 304호 꼬마들과 202호 여자와의 조우를 끝냈다.
해가 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RC카를 가지고 1층으로 내려가 입구를 막기 위해 용접해 둔 쇠파이프와 철근 틈 사이에 내려놓았다.
휴대용 라디오를 켜고 볼륨을 최대로 틀어놓자 그 소리를 쫓아 원룸 건물 주변을 맴돌던 감염자가 RC카로 접근해 온다.
서둘러 옥상으로 올라가 난간에 기대어 건물 입구를 내려다보았다.
감염자는 소음이 나는 RC카를 공격하기 위해 용접된 쇠파이프와 철근 틈 사이로 팔을 집어넣고 휘젓는 모습이 보인다.
“제발 잘되어야 할 텐데.”
나는 손에 쥔 무선 컨트롤러를 조작하여 RC카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위잉- 윙- 윙- 위이이이이잉- (라디오 방송 소리도 들림)
전파 수신 거리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원룸 건물로부터 최대한 멀리까지 유인하는 것이 1차 목표.
그다음으로는 오피스텔 건설현장으로 이동하여 현장에 있는 트럭에 쇠파이프, 철근, 철사, 시멘트, 목재, 합판 등의 자재를 실어서 원룸 건물 내로 반입하는 것이 2차 목표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원룸을 요새화시키고 주변에 감염자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와 트랩 등을 설치할 수 있다.
위잉- 윙- 위잉- 위이잉-
RC카는 동네 골목길을 나가 큰 대로를 가로질러 맞은편 골목길로 쭉 직진하고 있는 상황.
다행스럽게도 건물 주변을 맴돌던 감염자는 소음을 내며 멀어지는 RC카를 따라가고 있었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감염자도 골목길에서 튀어나와 RC카를 따라간다.
“다행이다. 그럼 이제 얼른 아이템 파밍을 하러 가야겠군.”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준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