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71
71화 합류 (1)
피잉- 푹- 털썩-
가장 선두에서 뒤쫓아 오는 감염자의 머리에 화살을 박아 쓰러트렸다.
크웨에에엑- 크워어억-
크아악- 크르르르륵-
하지만 뒤쫓아 오는 수십 명의 감염자 중 하나를 해치우는 것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늦출 수는 없었다.
“빨리 뛰어! 더 빨리! 민수야 더 빨리!”
민수가 가장 먼저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기의 속도가 가장 느렸기에 가장 늦게 출발한 나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크워어어억-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감염자의 울음소리.
원룸 건물로부터 멀어질수록 건물 옥상에서 비추는 빛이 약해져 시야가 어두워졌기 때문에 달리는 중간중간 장애물을 더욱 잘 살펴야 했다.
정신없이 달리던 중 갑작스레 발견한 상토 포대.
“앞에 장애물! 뛰어!”
민수와 나는 허들을 넘듯 바닥에 쌓인 포대를 뛰어 넘었다.
펄쩍-
휙-
바닥에 놓여 있던 상토 포대를 제때 발견하고 뛰어넘은 것은 생사의 기로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 신의 한 수였다.
터억- 쿵-
콰직- 데굴데굴-
나와 민수의 뒤를 바짝 뒤쫓던 감염자들은 바닥의 장애물을 피하지 못한 채 줄줄이 걸려 넘어졌기 때문.
불과 1~2초의 여유가 생긴 상황.
이 기회를 놓칠세라 가쁜 숨을 몰아쉴 틈도 없이 사력을 다해 다리를 움직였다.
그 결과, 바닥에 넘어졌다가 일어나 다시 쫓아오고 있는 감염자들과는 제법 거리가 벌어졌다.
크와아아아아악-
감염자가 감정을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뒤에서 들려오는 감염자의 울음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한 것만 같았다.
만약 내가 먼저 바닥의 장애물을 발견하지 못해 걸려 넘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얘들아! 여기야 여기! 얼른 올라와라! 빨리!”
타다닥- 타닥-
끼기기기긱- 쿵- 철컥-
나와 민수가 오피스텔 건물 2층 계단으로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먼저 도착해 있던 일권 아저씨가 쇠창살로 된 육중한 철문을 밀어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막아 버렸다.
“하악…… 하악…… 다들 괜찮은 거죠? 민수 너도 어디 다친 데는 없지?”
“후욱…… 후욱…… 네…… 저는, 하악…… 괜찮아요.”
문이 닫힌 지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앙! 쾅! 쾅! 쾅!
키에에에엑- 크워어어억-
한발 늦게 도착한 감염자들은 눈앞에서 먹이를 놓친 게 분한 모양이었는지 연신 철문을 두드려 댔다.
아직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밤이었기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들 인기척을 숨겨 감염자들의 이목을 돌릴 생각으로 시체처럼 누워 조금의 미동도 없이 숨죽여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치지직- 무슨 상황인지 알려 주기 바란다. 오버-]오밤중에 건설현장에서 소란이 발생했고, 감염자들이 건설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철민 아저씨가 상당히 긴장한 목소리로 무전을 보내왔다.
스윽-
[치직- 최정순 씨를 제외하고는 전원 무사합니다. 오버.] [치직- 다들 태경이 너랑 일권 아우 걱정 중인 상태인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기 바란다. 오버-]아마 철민 아저씨 외에도 수연 아주머니, 희윤 누나 그리고 꼬마들까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란에 굉장한 불안감을 느꼈고, 외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안전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치지직- 최정순 씨가 이곳을 떠나려 했다가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현재 저희는 오피스텔 건물 2층에 안전하게 숨어 있는 상태고, 전원 무사합니다. 우선 이곳에서 쉬었다가 해가 뜨는 대로 정확한 상황 파악 후에 대책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다들 걱정하지 마시고, 쉬세요. 옥상의 서치라이트는 꺼 주시기 바랍니다. 오버.] [치직- 알겠다. 오버-]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극도의 긴장감.
다시 한번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이 보금자리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감염자들에게 쫓기는 과도한 긴장감에 심장이 세차게 뿜어내던 뜨거운 피가 차츰 열기를 잃어 가기 시작했고, 초겨울 밤의 한기가 우리를 엄습해 왔다.
덜- 덜- 덜-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다발적으로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고,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한 대책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건물 내부를 샅샅이 찾아본 결과, 시멘트 거푸집을 만들 때 쓰고 철거해 둔 목재들과 방수포 그리고 비닐 등을 구할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2층에다도 생활용품이랑 식량 좀 놔둘 걸 그랬네요.”
“그래도 이게 어디야. 혹시나 해서 만들어 둔 철문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네.”
투욱- 툭- 툭-
구해 온 목재를 얼기설기 쌓고 난 후, 불을 붙였다.
티딕- 틱- 화륵-
다들 비닐과 방수포를 뒤집어쓴 거지꼴로 모닥불 주위를 둘러앉았고, 목재가 타면서 내뿜은 온기와 방수포 덕에 덜덜 떨던 몸이 제법 진정되었다.
나를 포함한 세 사람 모두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민수의 표정은 결이 다르게 심각했다.
민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과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흐윽…….”
나와 일권 아저씨는 흐느끼면서 잘못을 비는 민수를 쳐다봤다.
잠시 후, 일권 아저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괜찬다. 네 잘못이 아니야. 오히려 민수 너는 우리를 구해 준 셈이지.”
“끄흐으윽……. 죄송해요.”
민수는 지금의 사태가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자책했다.
아마 민수는 최정순을 배신하기가 싫었고, 그렇다고 자신과 최정순에게 호의를 베푼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싫었던 것 같다.
“그만 울어. 이미 벌어진 일에 너무 얽매이면, 내일을 살기 위해 지금 해야만 되는 일을 못 하니까. 지금은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자고.”
“넵……. 알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눈앞의 모닥불에 의지한 채, 비닐과 방수포로 자신의 몸을 감싸 체온을 잃지 않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몇 분 후, 민수는 우울했던 감정이 가라앉고 긴장감 어느 정도 해소된 모양인지 자신이 메고 있던 작은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혹시, 캐러멜이랑 비스킷 좀 드실래요?”
“응!?”
민수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는 지금 이 순간 나와 일권 아저씨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질문이었다.
캐러멜과 비스킷.
감염자로부터 도망치는 과정에서 한껏 고조되었던 긴장감이 해소되고, 뒤이어 찾아오는 허기와 추위에 지쳐 가던 중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와그작- 와그작-
쩝- 쩝- 쩝-
평소 식사 외 군것질을 거의 하지 않던 일권 아저씨조차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비스킷을 먹었다.
간식과 모닥불로 허기와 추위를 달래는 동안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해가 뜨기 시작했다.
햇살이 주는 따스함은 모닥불의 온기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으며, 지난밤 어둠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온 세상에 드러났다.
오전 7시, 사건이 발생한 지 4시간 반 만에 원룸 건물과 오피스텔 건설현장의 상황을 눈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건설현장 출입구는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고, 내부에는 수십여 명의 감염자들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출입구 한쪽에 처박혀 있는 트럭 앞에는 최정순으로 추정되는 시체와 함께 감염자들 한 무리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서른아홉, 마흔. 마흔하나. 마흔 명이 넘네?”
건설현장 내부에 들어온 감염자는 총 마흔 명, 어제 낮에는 눈에 띄지도 않던 감염자들이 어디서 이렇게 몰려왔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문을 해결하기보다는 건설현장 내부의 감염자들을 빨리 처리하고 출입구를 복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감염자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여 감염자를 처리하는 위험 부담을 줄이고 싶었다.
‘일권 아저씨가 아무리 근접전에 뛰어나도 몇십 명의 감염자를 동시에 처리하긴 어려울 것 같고, 화살이라도 충분했으면 일이 좀 쉬웠을 텐데…….’
끼리릭- 철컥-
민수는 내 의중이라도 파악한 듯 밤새 머리에 베고 누워 있던 가방에서 화살 한 발을 꺼내 석궁 시위에 걸었다.
“태경이 형, 어떡할까요? 바로 처리 시작할까요?”
어젯밤 민수가 이곳을 떠나기 위해 챙겼던 또 다른 가방 안에는 석궁 화살 30여 발이 있었던 것이었다.
“오……! 뭐야 대박인데? 근데, 너 화살이 왜 이렇게 많아?”
“…….”
“뭐야…… 화살도 훔쳤었냐?”
“……네.”
애초에 이 상황이 최정순과 이민수의 탈출 과정에서 생긴 문제였지만, 되려 이민수가 챙긴 가방들 덕에 이 순간들을 생각보다 쉽게 타개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화살이 7발 정도.
민수와 내가 가진 화살 한 발당 감염자 한 명씩 처리한다고 할 때, 별문제만 없으면 석궁으로 처리하고 남은 나머지 감염자들은 직접 처리해도 될 정도의 숫자였다.
“한 발에 한 명. 한 발 빗나갈 때마다 내려가서 직접 처리해야 하는 감염자가 하나씩 느는 거야. 알지?”
“네, 한 발에 한 명씩!”
피잉- 푸욱- 털썩-
민수의 첫 화살은 대번에 감염자의 두개골을 꿰뚫으며, 목표물을 시원하게 쓰러트렸다.
이에 질세라 호흡을 가다듬고, 석궁의 방아쇠를 조심스레 당겼다.
피잉- 콰직- 털썩-
명중. 이민수만큼이나 깔끔한 명중이었다.
나 역시 사격에 일가견이 있는 몸이었다.
심지어 석궁은 내가 더 많이 쏴 봤기 때문에 괜한 자존심이 생겼다.
하지만, 사격 국가대표가 괜히 국가대표인 것이 아니었고, 그 차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드러났다.
나와 민수가 동시에 8번째 화살을 쏘았다.
끼릭- 철컥-
피잉- 휘익- 딱!
끼리릭- 철컥-
피잉- 푸욱- 털썩-
감염자의 머리를 노렸던 나의 화살은 감염자의 관자놀이를 빗겨 뒤편 땅바닥을 때렸고, 민수는 처음과 같이 일관된 솜씨로 감염자의 두개골을 꿰뚫었다.
이 한 발의 차이는 사격 횟수가 더해질수록 커졌다.
내 사격 명중률은 90%에 육박했기에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하지만, 사격에 대한 민수의 집중력과 명중률은 차원이 달랐다.
일시일살(一矢一殺).
엄청난 집중력과 명중률로 22발 중 22발 명중.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눈앞의 감염자 스물두 명을 해치워 버렸다.
“민수가 깔끔하게 이겼군. 태경이도 명중률이 제법인데, 민수는 확실히 다르네. 아주 훌륭해. 그럼 이제 나머지는 내 차례인가?”
일권 아저씨가 대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민수의 사격 실력을 칭찬했다.
뿌득- 뿌드득-
일권 아저씨는 나머지 감염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풀기 시작했다.
“태경아, 나는 1층에 있는 녀석들부터 처리할 테니까 잠잠해지면 철문 열고 내려와라.”
휘릭- 탁-
스르릉- 타다다닥-
가볍게 몸을 푼 일권 아저씨는 2층 난간을 뛰어넘어 오피스텔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크워어어억- 크웨에엑-
퍽- 퍽- 퍽- 휘익- 휙- 푸슉- 푹-
일권 아저씨가 내려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쇠창살로 된 철문 너머에서 들려오던 감염자들의 소리가 사라졌다.
“이제 내려와도 돼”
철컥- 끼기기기기긱- 쿵-
지난밤 감염자들로부터 우릴 지켜 주던 철문이 열렸다.
상황을 해결할 기회가 생긴 지금, 나머지 감염자들을 정리하고 서둘러 건설현장을 원상복원 해야만 한다.
아직 건설현장 밖의 상황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나와 일권 아저씨 그리고 이민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