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12
베디움은 라이컨의 아버지이지만 더 이상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아니다.
그의 육체는 전기고, 전하의 움직임을 통제하기에 세상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천사의 능력인가?’
전하의 상태로 에이미의 방 안에 머물렀던 그는 모든 대화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카엘이 천사라는 것까지 알아냈으나 정확한 능력은 모르는 상태였다.
‘보통의 인간, 아니,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전하 상태의 움직임을 간파하지는 못해. 따라서…….’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
“대답해라.”
이카엘이 걸음을 옮기자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달빛에 얼굴이 드러났다.
하얀 마스크에 새겨진 눈이 하트로 변했으나 분위기는 차가울 뿐이었다.
“저 여자가…… 시로네의 애인이니까.”
“시로네?”
“그래. 내가 노리는 건 시로네다. 저 여자를 죽이면 시로네의 감정을 흔들 수 있지.”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유는 어떻게든 자리를 모면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빠르게 반응해도 저 여자의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스케일 마법사처럼 공간을 무시할 정도라면 기동력도 어마어마할 터였다.
“흐음.”
다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했는지 이카엘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베디움이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그녀의 판단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왜…… 시로네를 죽이려고 하는가?”
“그 녀석이…….”
단순한 감정 표현이 전부였던 하얀 마스크에 섬세하고 복잡한 선이 그려졌다.
실사처럼 선명한 악귀의 얼굴이었다.
“내 아들을 죽였으니까.”
“뭐?”
지금이다, 라는 생각과 동시에 베디움의 육체가 다시 전하로 풀어졌다.
“이런!”
다시 정신을 다잡았을 때에는 전하의 흐름이 추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약해진 상태였다.
‘이걸 노린 거야.’
전기가 공간에 머무는 찰나의 시간만 이카엘을 붙잡아 두면 되었던 것.
‘참으로 강한 인간이다. 그런데 시로네가 그의 아들을 죽였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날이 밝는 대로 시로네에게 물어보면 알 테지만, 그녀는 생각을 고쳤다.
‘시로네는 내 아들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식을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여전히 잠에 빠져 있는 에이미를 지켜본 그녀의 육체가 다시 빛으로 퍼졌다.
‘내가 해결한다.’
소리 없는 빛의 폭발이 일어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방 안은 고요했다.
‘어처구니가 없군.’
공기 중에 자유전자의 상태로 돌아다니는 베디움은 이카엘의 존재를 느꼈다.
인간의 뇌파를 읽을 수 있지만 그들의 정확한 생각, 즉 언어까지 분석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천사들은 인간과 달라서, 성광체를 통해 그녀의 사고가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카엘이 관성을 무시한 채 직각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곳이다.’
에이미의 방 안에서 베디움은 이카엘의 감각을 완벽하게 속였지만.
‘증增.’
어디까지나 증폭되지 않은 천연의 감각이었다.
현재 이카엘의 감각은 너무나 예민해서, 숲에서 잠든 나비의 숨소리까지 느낄 정도였다.
‘사라졌다.’
펑 하는 소리를 내며 이카엘이 정지했다.
‘생각을 없앴구나.’
자유전자 상태에서 베디움의 기척은 제로지만, 특정 사고가 발생할 때는 전하를 막을 수 없었다.
“어떤 연유로 그런 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카엘은 그를 존중할 적으로 대했다.
“사고의 소멸은 존재의 소멸. 영원히 그 상태로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정적 속에 한 줄기 바람이 스쳤다.
“나오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가 양보할 수도 있어요.”
그의 아들이 죽었다.
비록 지금은 시로네가 있지만 자식을 잃은 아픔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파츠츠츠츠츠!
주위에 스파크가 터지더니 이카엘로부터 10미터 떨어진 곳의 풀에 불이 붙었다.
소용돌이처럼 재가 승천하는 곳에서 베디움이 다시 인간의 육체를 드러냈다.
마스크는 그저 백지처럼 비어 있었다.
“천사라는 건가? 특이하군.”
감탄하는 것과 달리 두려움은 없는 말투였다.
“당신도 강한 인간입니다. 시로네가 당신의 아들을 죽였다고 했죠. 그게 사실인가요?”
“그래.”
“만약 시로네가 잘못을 했다면…….”
“그럴 필요 없어.”
베디움이 손을 내밀며 말을 끊었다.
“내 아들도 암살자다. 시로네를 죽이려다 오히려 죽은 거겠지. 비즈니스일 뿐이야. 시로네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다.”
이카엘은 정황을 이해했지만 베디움이 솔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감정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감정을 죽여라인가요?”
“……천사 같지는 않군. 물론 본 것은 처음이지만, 조금 더 냉철할 줄 알았는데.”
이카엘은 거핀을 떠올렸다.
“마음이 없는 존재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나를 추적한 이유가 뭐야? 시로네의 위험 요소를 미리 제거하겠다는 건가?”
“저 또한 부모입니다.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슬픔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죄한다면, 시로네를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
“……없어.”
베디움이 말했다.
“이미 의뢰비를 받았고, 완수 후에 받아야 할 돈도 있다. 천사의 능력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한 게 내 실수지. 하지만 두 번은 실수하지 않을 거야.”
그의 두 눈이 돈을 상징하는 기호($)로 변했다.
이카엘은 포기하지 않았다.
“돈을 원한다면 드리겠습니다. 얼마를 부르더라도, 제가 구할 것입니다.”
“싫어.”
‘없어.’하고는 다른 의미다.
“이유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베디움이 마치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그 녀석한테…… 쪽팔리면 안 되잖아.”
라이컨.
어쩌면 이카엘에게는 가장 아픈 말이었기에 그녀는 살며시 몸을 틀었다.
“좋아요.”
가녀린 주먹이 베디움을 겨냥했다.
“감정의 문제라면, 저도 감정대로 하죠. 단 일격. 이것으로 제압하겠습니다. 만약 할 수 없다면, 그때는 당신이 좋을 대로 하세요.”
베디움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선택지는 없었다.
“후회할 거다.”
그의 몸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최고의 기술을 선보이지. 단언컨대, 여태까지 네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를 거다.”
설령 영원히 소멸할지라도.
말없이 주먹을 내밀고 있는 이카엘을 노려보던 베디움이 전기로 증발했다.
츠츠츠츠츠츠츠츠!
동시에 사방에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현재 베디움을 이루고 있는 사고의 흐름은 이카엘에 대한 살의뿐이었다.
‘죽인다.’
만약 하늘이 이카엘을 노리고 벼락을 내리꽂는다면, 그것을 피해야 하는 감도.
‘바로 지금!’
인간의 통찰이 아닌 자연계의 급소를 따라 베디움이 돌진해 들어갔다.
시간이 극한으로 느려지고.
베디움의 일격이 지척까지 다가온 상태에서도 이카엘은 미동조차 없었다.
다만 성광체가 펼쳐졌다.
‘아타락시아.’
즈…….
시간의 상대성을 무시하듯 탄생한 마법진에 감각이 까마득히 예민해지고.
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
전자의 움직임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 그녀가 엄청난 속도로 몸을 뒤틀었다.
‘증!’
내밀고 있던 주먹이 그대로 궤적을 뒤틀면서 베디움의 마스크를 강타했다.
쩍.
마스크에 균열이 가고, 베디움의 육체가 전기 대포처럼 후방으로 쏘아졌다.
“크아아아아!”
초원 위에 외로이 떠 있던 하얀 마스크가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떨어졌다.
눈가가 아래로 처진 표정이 출력되었다.
“아슬아슬했습니다.”
이카엘이 주먹을 거두며 말했다.
“약속을 어길 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유지는 듣고 싶습니다. 그 육체는 어떻게 된 거죠?”
“끽! 끼릭……!”
마스크가 잠시 기계음을 내더니 가까스로 인간의 음성을 되찾았다.
“알아서 뭐 하게? 세상 답답한 얘기,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아. 네 아들은 살았어. 그거면 된 거잖아.”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고, 베디움의 마스크가 전보다 줄어든 음성으로 말했다.
“그게 왜 궁금하지? 내 아들은 시로네를 죽이려고 했어. 나를 동정할 이유는 전혀 없을 텐데. 굳이 나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던 이유가 뭐야?”
“아주 오래전에 아들이 죽었어요. 내가 보는 앞에서…… 목이 잘려서.”
“…….”
“잘 모르겠습니다. 정당방위랄지, 당신의 아들이 나빴던 거랄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이카엘의 눈썹이 처연하게 올라갔다.
“감정이란 그런 게 아니니까요. 부모의 마음이야 똑같다고 해도,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나도 정확히는 몰라. 왜 내 육체가 전기가 되어 버렸는지. 하지만 분명한 건…….”
베디움은 기억을 더듬었다.
“의뢰자에게 라이컨의 죽음을 들은 이후, 나는 시로네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였을 거야. 시로네에 대한 적의가 어떤 작용을 일으킨 것인지……. 어쩌면 나는 이미 죽었고, 기억만 복구된 상태인지도 모르지.”
이카엘은 시로네에게 들은 단어를 떠올렸다.
‘미세 조정.’
베디움의 목소리는 이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전기가 되면 많은 것을 알 수 있거든. 대부분은 언어로 정리가 안 되는 것이지만 느낌은 그래. 이 세계는 당신의 아들을 싫어하는 것 같아.”
이카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시로네를 증오하는 자에게는 미세 조정이 가해진다. 바깥 세계의 적극적 개입.’
세계의 천장이 반쯤은 열린 것이다.
“암살을 사주한 자가 누구죠?”
“그건 말할 수 없지. 프로의 자존심이니까. 하지만 시로네는 짐작하고 있을걸.”
이카엘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더 이상 할 말 없어. 그나저나…… 나는 도대체 언제 사라지는 거야?”
육체는 소실되었으나 생각은 마치 냄새가 흩어지듯 느릿느릿 퍼졌다.
그렇기에 가능했던 일.
“이카엘이라고 했나?”
묵념을 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카엘이 다시 베디움을 돌아보았다.
“이것 참 이상하군. 아니, 기묘하다고 해야 하나? 좋은 정보를 주지.”
그는 바깥 세계의 경계선에 있었다.
“신神에게는…….”
마스크의 표면에 네온이 흐르더니 혀를 삐죽 내민 표정이 드러났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네.”
“무슨?”
이카엘이 묻기 전에 네온이 꺼지고, 금이 간 마스크가 스르륵 소멸했다.
대천사조차 이해할 수 없는 얘기.
하지만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접어 두고 시선으로 죽음을 좇듯 고개를 돌렸다.
‘최소한 무언가로 가득 찬 삶이었길.’
선악공애, 그 무엇이든.
다음 날 아침, 이카엘은 시로네에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시로네는 대충 짐작했다.
‘기요르기.’
야훼 암살을 위해 지옥의 군대에서 조직한 카타콤이라는 부서의 수장이었다.
“걱정할까 봐 말씀은 안 드렸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암살 기도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측근을 노렸다는 점에서 섬뜩했다.
‘내가 너무 부주의했어. 아니, 사실 이보다 더 주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미세 조정.
‘우주 상수부터 다른 것을 경계하기란 불가능해. 그렇기에 나네도 바깥 세계로 간 것이지만.’
이카엘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