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15
“문룡, 네까짓 게 나를 죽이겠다고?”
가슴팍을 쥐어뜯듯 움켜쥔 그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일자로 흘러내렸다.
‘내 딸은 지옥에 있다. 도망칠 곳도 마지막도 없는 영원한 고통 속에…….’
아버지의 마음은…….
“내가 귀신이다! 내 마음이 곧 지옥이야!”
진강의 주위에서 아른거리는 아지랑이가 탁한 연기처럼 방을 가득 채웠다.
안찰의 외눈이 커졌다.
‘극기.’
썩어 문드러진 냄새가 나는 듯했고 찢어질 듯한 귀신의 비명이 이어졌다.
“다 씹어 먹어 버릴 테다! 악마든, 신이든,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씹어 먹어 주마!”
진강의 얼굴에 핏줄이 모조리 일어서자 관리들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옥체를 상하게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부디……!”
안찰이 관리들을 말렸다.
“잠시!”
“국장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이대로 가다가는 폐하께서 위험하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극기에 도달한 상태로 비틀거리는 진강 너머로 귀신의 얼굴이 드러났다.
‘괴로워하고 있다.’
처녀의 원한에 지옥의 마가 더해진 최강의 살이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안찰이 소리쳤다.
“폐하, 이기소서! 진천의 황제가 귀신에 당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국장!”
“폐하의 판단이 옳습니다. 마음을 지배할 수 없다면 귀신의 원통함은 더욱 커질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막아야 할 거 아닌가?”
“한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감정입니다. 따라서 원통함을 풀지 못한 귀신은 새로운 대상을 찾게 되지요. 가장 먼저 당하는 것은…….”
안찰이 관리들을 향해 돌아섰다.
“살을 날린 자, 무당입니다. 당시 주술을 펼친 상황이 어땠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약이 바짝 오른 귀신은 당시에 자리에 있든 모두에게 해를 끼치게 되지요, 한이 풀릴 때까지.”
관리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설마?”
“네. 첩보 활동을 하던 당시, 문 왕국의 역술가들은 이 현상을 이렇게 불렀어요.”
안찰이 말했다.
“역살逆殺.”
***
자정 무렵.
1만 7천 명의 요정들은 그린 오션이라 불리는 숲의 입구에 주둔해 있었다.
그 숲의 안쪽,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수해의 끝자락이 엘프의 고향이었다.
“난감하군.”
총천연색 날개를 가지고 있는 요정의 몸은 다른 요정보다 1.5배가 컸다.
물론 인간에 비하면 훨씬 작은 체구지만 아우라는 태산처럼 거대했다.
요정왕 크라운.
요정 72계급 최상위에 있는 독존이자, 유일한 남성체의 페어리다.
‘최상最上의 개념을 가진 정.’
요정들은 알고 있다.
‘호수에 물이 있었던 시간만큼, 계곡에 바람이 불었던 시간만큼, 용암에서 불이 끓었던 시간만큼, 크라운 님은 가장 높은 곳에 계셨다.’
이카엘마저 천국을 버린 지금, 그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은 당연했다.
72계급의 중진이 보고했다.
“크라운 님, 탐색조가 도착했습니다.”
깜찍한 위장복을 입고 화장을 사납게 한 요정들이 크라운에게 날아왔다.
“엘프의 요새를 찾았습니다. 방어태세를 구축하고 있지만 당장이라도 안내할 수 있습니다.”
크라운이 턱을 괴었다.
“흐음.”
소년처럼 아름답지만 유구한 세월을 보내온 자세가 몸에 배어 있었다.
‘쫓고 쫓아 마침내 여기까지 몰아세웠다. 하지만 숲에서의 엘프는 차원이 다르단 말이지.’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숲이었으니 페어리의 입장에서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화족의 능력, 소세계창유도 까다롭다. 우리 쪽도 전멸을 각오하고 붙어야 해.’
그때 하늘에서 굉음이 터졌다.
“기습인가?”
모든 요정들이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 섬광이 그들의 눈앞에 착지했다.
“어…….”
요정을 압도하는 거구의 대천사, 유리엘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크라운.”
이카엘 정도의 권위를 가진 천사는 없지만 유리엘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파괴의 대천사시여.”
파괴당하지 않기 위해 크라운은 곧바로 바닥에 내려와 고개를 숙였다.
최상의 정이 불쾌해졌다.
‘자존심 강한 대천사가 우리를 찾아오다니. 이미 이카엘도 천국을 버렸는데.’
유리엘의 말이 크라운의 의문을 박살 냈다.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네?”
명령이 아닌 부탁이라는 것은 천국 역사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거야?’
1만 7천 요정들의 미심쩍은 눈초리를 받으며 유리엘은 대답을 기다렸다.
***
음기가 가장 깊은 밤.
교황청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진실 ‘천국의 마을’에서 시로네 일행은 기다렸다.
“미카.”
-멜키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요르기가 수장으로 있는 카타콤이 세이나를 납치한 건 이유가 있을 터였다.
“라미교는 세계 최대의 종교야. 그리고 사탄교는 거대한 그늘 아래서 세력을 키우고 있지. 그런 상황에서 그늘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사탄교는 씨가 마를 거야.”
이루키의 의견이었다.
분명 일리가 있는 내용이지만 시로네는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
기요르기가 그의 마魔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카.”
-멜키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로네는 30분마다 미카를 소환해서 멜키두가 실체화되었는지 확인했다.
‘미카는 특정 키워드에 대한 정보를 추출할 뿐이야. 자동으로 탐지할 수는 없다.’
시로네가 부르지 않을 때의 미카는 그저 이름 없는 초상감일 뿐이었다.
새벽이 되었을 무렵 시로네가 입을 열었다.
“미카.”
-멜키두가 실체화되었습니다.
시로네가 벌떡 일어나는 것으로 이루키와 네이드, 에덴은 직감했다.
“찾았어?”
시로네는 미카에게 물었다.
‘어디지?’
-이곳에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시로네가 아무리 둘러봐도 천국의 마을은 특별한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멜키두는 현재 시각, 위상 공간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감지됩니다.
‘그럼 들어간 사람도 있단 말이야?’
-위치 탐지가 가능한 시점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총 4명이 진입했습니다.
시로네는 직감했다.
‘그들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
음기.
‘미카, 멜키두에 진입한 자의 심리 상태를 카피해서 전달해 줄 수 있어?’
가설이 맞다면.
-심리 상태에 대한 가치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뇌파를 카피하는 건 가능합니다.
‘충분해.’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의 뇌파가 시로네의 뇌에 씌워졌다.
“크으.”
물론 뇌파가 똑같다고 해서 그가 경험한 사건이 재구성되는 건 아니다.
시로네가 느낄 수 있는 건 탁한 욕망과, 그보다 더 큰 불안감이었다.
“시로네, 저기…….”
네이드가 가리킨 전방에 회색 연기를 뿜어내는 시커먼 공간이 보였다.
“그래. 아마도 저게 멜키두일 거야. 내 음기를 느끼고 모습을 드러낸 거지.”
에덴이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살인. 조금 전에 사람을 죽였어.”
그런 뇌파였다.
친구들은 선뜻 이해하지 못했으나 시로네는 설명 대신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자. 가면 알게 될 테니까.
시로네 일행은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 공간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경계를 지나자 자욱한 연무 속에 달리고 있는 인간의 실루엣이 보였다.
‘세계 각지의 범죄자들.’
연기를 맡을 때마다 마음의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누가 좀 도와줘! 감옥에 가고 싶지 않아!
-이건 실수야!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그냥, 난, 단지 화가 났을 뿐이야. 너무 화가 나서…….
-절대로 잡히지 않아. 더 많이 죽일 거야. 더 많은 여자를, 더 많은 쾌락을…….
인상을 찡그리며 5분 정도를 걸어가자 마침내 회색 연기가 사라졌다.
울창한 숲속이었다.
“한순간의 충동.”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은 수 년간의 갈망을 참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나요?”
등을 맞댄 시로네 일행이 주위를 살폈다.
“어디야? 나와!”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미궁 안드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로네는 멜키두가 무엇인지 짐작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몰라도, 처음에는 그저 음기를 빨아들이는 공간이었을 거야. 그러다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하나둘씩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거지.”
“그들이 만든 시스템이라는 거야?”
“그래. 사회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들이 가장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장소가 된 거지.”
“금단의 선을 넘은 자들이여.”
여자가 말했다.
“멜키두의 스타트 지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2시, 12국 (4)
“스타트 지점이라…….”
이루키와 네이드가 긴장을 풀지 않고 숲을 살피는 동안 시로네가 중얼거렸다.
“미카.”
역시 반응은 오지 않았다.
“현실에 실체화되는 건 입구뿐인가? 그럼 이미 위상공간에서 이탈했다는 건데…….”
에덴이 말했다.
“연기 속에서 봤던 자들이 보이지 않아. 저마다 다른 스타트 지점이 있는 모양이야.”
여자의 목소리가 물었다.
-여러분은 공범인가요?
“공범?”
-단독과 공범 중에 선택하지 않으면 크라임 다이스는 발동하지 않습니다.
네이드가 머리에 깍지를 끼고 물었다.
“그쪽이 추천해 주는 게 어때? 그러니까…… 각기 장단점이 있을 거 아냐?”
-단독이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을 남에게 맡기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정적이 이어졌다.
“어쨌든 위험한 일을 하게 된다는 거군.”
그렇게 말한 이루키가 나섰다.
“하지만 단독이 유리하다면 모두가 단독을 선택하지 않겠어? 공범의 장점은 뭐지?”
-딱히 없습니다. 다만 공범을 선택하면 서로를 죽이는 미션이 발동되지 않습니다.
“…….”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했다.
“공범으로 할게.”
시로네가 결정을 내리자 주사위 2개가 일행의 눈앞에 광채를 내며 탄생했다.
1부터 6까지 적힌 6면체였다.
-크라임 다이스는 당신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크라임 다이스가 랜드에 닿는 순간 판정이 시작됩니다. 공범자는 연속으로 다이스를 굴릴 수 없습니다. 단, 더블이 나오면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집니다.
네이드가 주사위를 낚아챘다.
-왼손이 저지른 살인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부디 멜키두에서 안식을 찾으시길.
대놓고 마무리를 지어 버리자 네이드가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