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98
“잘 가라.”
두 다리를 돌리며 구심력을 발생시키는 순간 케이든은 죽음을 직감했다.
‘이런…….’
멋진 동작이었고, 멋진 동작은 엄청난 위력으로 자신의 목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레온은 회전을 멈추고 황급히 케이든에게서 떨어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 검이 지나갔다.
“푸우.”
아름답게 착지한 레온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었군.”
리안만큼이나 유명한 검사이자 최초로 하비츠의 목을 벤 기예의 달인.
“파르카 쿠안.”
한쪽 다리를 절며 걷는 외팔이 검사를 본 순간 레온은 멀미를 느꼈다.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시야가 좌우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진짜 지저분하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멀미를 일으키는, 혐오스러울 정도의 무브먼트.
욕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은 레온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올 줄이야. 토르미아도 나를 꽤 대접해 주는군.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쿠안은 말이 없었다.
어차피 눈앞의 상대가 곧 죽는다면 굳이 말을 섞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어릿광대 피에로-초(超)기움.
레온의 눈이 흔들렸다.
출렁거림이 강해지더니 급기야 배가 전복된 듯 세상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명백한 히든 코드였다.
‘이런, 씨…….’
무게중심을 잃은 상태에서도 레온은 사력을 다해 멋진 포즈를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쿠안은 더욱 현란한 무브먼트로 그의 감각을 교란시켰다.
레온은 의구심이 들었다.
‘잘하고 있는 거 맞아?’
땅이 90도로 일어서자 자유낙하의 관성이 느껴졌다.
추락하는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수직으로 벽을 타고 달려오는 쿠안의 모습이었다.
‘이게 맞냐고.’
쿠안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감싸듯 방어했다.
그 위로 칼날이 들어가자 퍽 소리를 내며 핏물이 솟구쳤다.
“크으으으!”
정신을 되찾은 레온은 처음부터 평평한 땅 위에 서 있었음을 깨달았다.
칼날이 베고 지나간 두 팔뚝에서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피가 새고 있었다.
화면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뚫, 뚫렸다.”
마지막 일격 앞에서 레온이 취한 동작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아이돌 스타치고는.
레온을 베고 지나간 쿠안은 몇 걸음을 더 나아가며 칼날을 아래로 털었다.
핏물이 쭉 하고 뿌려졌다.
“흐음.”
팔을 자르려고 했는데 피부만 베었다. 아직 팬심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울면서 빌게 만들면, 칼날도 박히려나?”
쿠안이 돌아섰다.
레온 또한 엄지에 묻은 피를 입술에 닦아 내며 말했다.
“그건 네가 겪을 미래지.”
대형 화면을 통해 대화를 듣고 있던 알페아스 마법학교 학생들이 야유했다.
“우우! 느끼해!”
“그러게. 완전 내 스타일 아니거든? 쿠안 씨가 백 배, 천 배는 더 멋있다고.”
시이나가 소리쳤다.
“다들 집중해. 2선이라고 방심하지 마. 지원과 회복은 전부 우리 몫이니까.”
“넵.”
학생들을 위해서 한 말이지만 시이나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보.’
수도에 있다는 건 알았다.
왕국은 쿠안을 사용해야 하고, 그 장소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곳이니까.
‘괜찮아. 이제 백치는 없어.’
이성을 파괴하는 대가로 얻게 되는 무브먼트 따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힘낼게요, 여보.’
쿠안은 선을 넘지 않을 것이다. 시이나가 여전히 안전하다는 보장만 있으면.
***
화신을 봉인당한 제르비스는 소지했던 단도를 들고 시로네를 상대했다.
고작 칼 한 자루라도, 95퍼센트 이상의 사용자 코드를 사용하는 그였다.
칼이 그어질 때마다 보랏빛 검광이 포톤 캐논을 터트리며 공간을 쪼갰다.
‘강하다.’
저 이미르만큼은 아니지만, 모든 수치가 최상급에 가깝다고 봐야 했다.
시로네는 주변을 살폈다.
‘위저드는 아직인가?’
마지막 무상신을 사용한 뒤로 4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제르비스가 능숙하게 단도를 돌리며 말했다.
“슬슬 끝내 볼까?”
동시에 미카의 신호가 들렸다.
-울티마 수치 98퍼센트 돌파. 1시간 7분 후에 울티마에 도달합니다.
시로네는 가슴이 철렁했다.
‘98퍼센트?’
그것이 얼마나 옳음에 가까운지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준동경계중천사와 맞서고 있는 평천사들과 12사도가 가장 먼저 깨닫고 있었다.
“꺄아아악!”
평천사들의 팔이 모조리 뒤틀렸다.
마라들이 구겨지듯 폭발하고, 드래곤의 형태로 변한 12사도조차 몸이 꺾이는 것을 막지 못했다.
“크아아앙!”
관철당하고 있다.
세계 전체가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뒤틀리는 것이다.
포이네가 말했다.
“블리츠.”
전신의 관절이 꺾인 늪색의 드래곤은 찰흙을 구겨 넣은 듯한 형태였다.
“뭔가, 오고 있다.”
대기권 너머의 우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포이네의 몸이 우두둑 끊어졌다.
“포이네.”
뇌전을 뿜어내고 있던 블리츠는 그녀가 보려고 했던 하늘 끝을 살폈다.
준동경계중천사 7기가 우주 공간에 만드는 것은 짐승의 모습을 한 붉은 악마였다.
창을 겨누는 자세를 취하는 악마의 손에서 보랏빛 창이 냉기를 뿜으며 탄생했다.
신의 징벌-악(惡).
‘사탄인가.’
100퍼센트의 울티마로 저것을 쏘았을 때,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죄송합니다, 메시아님.’
온몸이 종잇장처럼 구겨진 푸른 드래곤이 힘없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
이루키와 네이드는 회사에 도착했다. 남아 있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지하 시설로 내려가는 비밀번호를 누르자 철문이 열렸다. 긴 터널이 이어졌다.
이루키가 물었다.
“대체 뭔데? 나까지 왜 부른 거야?”
“내 순위 알잖아. 네가 지켜 줘야지. 그리고 이건 네가 꼭 봐야 하는 거야.”
그들은 지하 연구실로 들어갔다.
전면 유리창을 통해 거대한 로봇의 상반신이 보였다. 신장이 70미터는 넘을 듯했다.
이루키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수많은 의문을 대표하는 건 하나였다.
“이게 움직인다고?”
“당연하지. 나라고 10년 동안 놀고만 있었는 줄 알아? 내 돈 전부 털어 넣었지. 덕분에 리즈한테 잡혀 살지만. 아무튼 네이드 필생의 역작, 초거대 휴머노이드 ‘슈퍼 데이지’야.”
인간형 로봇?
그 말의 총체적인 의미를 생각하던 이루키가 네이드를 돌아보았다.
“차라리 그냥 놀지 그랬냐? 인간형 로봇은 문화 산업 분야를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실용적이지 않아. 메카의 타이탄도 기능을 최대한 줄이고 출력에 중점을 둔 형태라고. 꼭 인간하고 똑같을 필요가 없어.”
“그래서 반전이지. 오히려 역으로 간다.”
“아니…….”
“일단 들어 봐. 결국 인간이 가장 잘 다루는 건 인간의 육체라고. 실용적인 형태는 아니라도 변수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응용력이 있잖아. 특히 슈퍼 데이지는 파일럿의 뇌파에 반응하게 되어 있어. 말하자면 인간의 스키마를 바깥으로 드러낸 셈이랄까?”
이루키의 피가 빨리 돌았다.
맥락은 이해가 되지만, 차라리 그 돈을 4살짜리 딸에게 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뭐, 도로시는 좋아하겠네.”
“당연하지. 봐 봐. 조종석도 사람의 눈높이에 설치했어. 1인승으로 제작했고, 뇌신전생의 전력으로 움직이는 거야. 한마디로 기동 시 이격감이 거의 없다는 거지. 물론 우리가 70미터짜리 거인일 때 얘기지만.”
“하아.”
이루키는 그냥 고개를 주억거렸다.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터였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빨리 가서 뭐든 해 봐.”
“좋아! 기다려.”
승강기를 통해 내려간 네이드는 다시 기중기를 타고 로봇의 머리로 올라갔다.
조종석으로 들어가 점검하는 네이드를 지켜보며 이루키는 팔짱을 꼈다.
‘말이 되냐? 저게 진짜 사람처럼 기동하려면 에너지 효율이 자그마치…….’
그 순간 지하 시설이 지진처럼 흔들리더니 로봇의 두 눈에 불이 켜졌다.
쿠쿠쿠쿠!
천장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기체를 지탱하던 지지대가 전부 쓰러졌다.
-슈퍼 데이지 가동 준비 완료.
5분 뒤.
위잉! 위잉! 위잉!
네이드의 회사로부터 300미터 떨어진 공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듣는 이는 없었다.
강철 주먹이 땅을 뚫고 튀어나왔다. 이어서 거대한 로봇이 실제 사람처럼 기어 나왔다.
땅에 손등을 대고 손바닥을 펴자 이루키가 찜찜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외부 스피커가 울렸다.
“으하하! 어때? 진짜 움직인다고 했잖아! 영구 동력 기관은 아니지만 말이야.”
“…….”
잠시 옛일을 회상하던 이루키가 입맛을 다시며 조종석을 올려다보았다.
“일단 인정. 물론 나라면 그 돈으로 전술 장비를 만들 테지만, 네 취향이니까.”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만물박사 네이드의 특허 목록이 여기까지 올 줄 누가 알았을까?
‘이 녀석도 미친놈이야.’
예나 지금이나 쓸데없는 것에 불타는 것을 보면.
강하다는 것은 (2)
***
시로네는 느꼈다, 대기권 바깥에서 태동하고 있는 강력한 악의 무기를.
‘악의 울티마.’
막을 수 없을 테지만, 어차피 울티마에 도달하면 그것조차 의미가 없었다.
‘제르비스는 아마도…….’
앙케 라다.
야훼나 부처, 사탄이 바깥 세계의 관점에서 프로그램이라면 앙케 라도 프로그램.
‘강제적인 게 아니야. 내가 야훼를 택했고, 나네가 스스로 부처가 되었듯이.’
제르비스 또한 살의의 충동에 휩싸인 채 라의 개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바깥 세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그래서 트리니티를 접속시킨 거라면.’
시로네는 차라리 제르비스에게 전말을 고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