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42
마르샤가 손을 휘젓는 것과 동시에 다가오던 포톤 캐논이 연기처럼 증발했다.
“헉!”
무언가를 깨달은 시로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릎을 꿇자 친구들이 달려왔다.
“시로네! 괜찮아?”
포톤 캐논이 사라졌다는 것 외에 시로네에게 특별한 충격이 가해진 건 아니었다.
“왜 그래? 정신 차려!”
에이미가 초조하게 소리쳤다.
이토록 놀란 시로네의 표정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마, 마법이…….”
시로네는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규정외식이라고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테스가 에이미에게 물었다.
“또 정신력을 빼앗긴 거야?”
“아니. 스피릿 존은 사라지지 않았어. 그런데도 포톤 캐논이 사라졌다는 건…….”
에이미가 깨닫는 순간 시로네가 말했다.
“마법을 빼앗겼어.”
“뭐?”
테스가 고개를 돌린 곳에 팔짱을 낀 마르샤가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그래, 규정외식 강탈. 약탈로 상대의 스피릿 존을 이해하면 마법까지 강제로 빼앗을 수 있지. 물론 제약이 있어. 특정 마법이 발동할 때의 스피릿 존을 내 스피릿 존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 조금 전처럼 말이야.”
선심 쓰듯 제약을 말해 주었으나 시로네는 이것이 전부가 아님을 확신했다.
‘말이 되지 않아.’
상대의 정신을 훔쳤으니 마법도 훔칠 수 있다는 것은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정확히 파고들어 가다 보면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했다.
마르샤가 오른손을 들었다.
“그럼 어디…….”
손바닥 위로 빛의 구체를 응집시킨 그녀가 시로네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쭉 하고 섬광이 튀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 일행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포톤 캐논이 처박힌 곳에서 튄 파편들이 시로네의 얼굴을 따갑게 때렸다.
‘진짜다. 이건…… 포톤 캐논이야.’
자신의 마법에 역으로 당하는 기분은 정말로 이상했다.
“후우우.”
시험 삼아 포톤 캐논을 발사한 마르샤의 얼굴은 전보다 창백해져 있었다.
“뭐야, 이거? 정신력 소모가 엄청나네? 어떻게 이런 걸 계속 쏘아 댄 거야?”
이번만은 조롱이 아니었다.
실제로 포톤 캐논을 발사했을 때 마르샤는 약한 현기증을 느꼈다.
‘굉장히 무거운 마법이야. 정신적 안정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용하기 벅찰 정도.’
집중력이 아닌 마음의 문제.
마르샤는 시로네가 어떤 각오와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클레이 마르샤(5)
‘이건 빼앗을 수 없겠지.’
그 무엇을 훔친다고 해도 이미 뒤틀려 버린 그녀의 삶을 바꿀 수는 없을 테니까.
마르샤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너도 느껴 봐.”
그녀의 주위로 포톤 캐논이 응축되자 리안과 테스, 에이미가 시로네를 감쌌다.
섬광이 빗발치고, 에이미가 시로네의 뒷고대를 붙잡고 몸을 날렸다.
“하하하하! 뭐야? 이렇게 쉬운 거였어?”
마르샤가 연거푸 포톤 캐논을 시전하자 당하는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미치겠네.’
에이미의 인상이 구겨졌다.
영원한 아군이라 여겼기에 포톤 캐논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돌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여태까지 시로네와 싸워야 했던 적들의 막막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벽력같은 폭발음을 뒤로하고 에이미는 바위 뒤편으로 숨어들었다.
“시로네, 일단……!”
에이미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넋이 나가 있는 시로네를 보고 말을 멈췄다.
‘하긴, 나라도 그럴 테지.’
생사를 넘나들며 갈고닦았던 핵심 장기를 남에게 뺏긴 기분은 말로 설명이 안 될 터였다.
“시로네, 정신 차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하지만 공격할 수단이 없어.”
시로네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혹감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분노이리라.
“이성적으로 생각해. 마법을 이렇게 쉽게 훔칠 수는 없어. 분명 엄청난 리스크가 걸려 있을 거야.”
“리스크…….”
박탈감에 잠시 흔들렸던 정신이 다시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에이미의 말이 맞아.’
상대의 마법을 훔쳤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마르샤 또한 그에 준하는 제약과 대가에 걸려 있을 터.
“등가교환의 원칙.”
“그래. 쉽게 빼앗겼으니 쉽게 되찾을 수 있어. 아니, 빼앗긴 것보다 훨씬 쉽게 되찾을 수 있어야 하겠지. 그게 등가교환이야. 끝난 게 아니라고.”
“알았어. 해 볼게.”
시로네는 전투 의지를 되살렸다.
장기인 포톤 캐논은 빼앗겼지만 몇 가지 마법은 남아 있었다.
‘훔칠 수 있는 마법의 개수가 정해져 있는 걸까?’
시험 삼아 해 보기에는 현재 시로네가 가용할 수 있는 마법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자.’
에이미가 말했다.
“내가 엄호할게.”
파이어 스트라이크를 난사하자 마르샤가 포톤 캐논을 멈추고 몸을 날렸다.
시로네가 뛰어나갔고, 리안과 테스가 좌우에서 그녀를 포위했다.
4명을 상대로 싸우면서도 마르샤는 쉽사리 빈틈을 내주지 않았다.
지친 것을 핑계로 댈 수 없을 만큼 노련한 전투 운용이었고, 시로네의 마법은 계속 줄어들었다.
‘말도 안 돼.’
유일한 이동 능력인 순간 이동까지 강탈당한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규정외식이라고?’
마법학교에 들어와서 지금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수많은 노력, 각오, 열정이 한순간에 꿈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승기는 마르샤 쪽으로 기울었다.
포톤 캐논을 막은 리안이 대직도와 함께 날아가고, 갖은 정신력을 쥐어짜 낸 에이미의 저격도 허무하게 빗나갔다. 다리를 다친 테스 또한 기동력이 반쯤 죽은 상태였다.
‘그럴 리가 없어.’
시로네는 눈을 부릅뜨고 달려갔다.
남은 마법은 실전에서 쓴 적이 없는 윈드 커터 정도지만, 여전히 마법사라는 유일한 증명이기도 했다.
‘접근만 할 수 있다면…….’
리안을 향해 포톤 캐논을 겨누고 있던 마르샤의 어깨가 움찔하더니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 또한 지쳤는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간다!”
시로네가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마르샤가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10미터, 20미터…… 반복적으로 물러서던 마르샤가 멈춘 곳은 무려 40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어?’
극단적인 회피 반응에 시로네는 의아함을 느꼈다.
대부분의 마법을 강탈한 시점에서 그녀는 무엇이 두려워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을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가용할 마법이 부족하다는 것은 시로네만 아는 사실.
실제로 마르샤는 시로네가 얼마나 많은 마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순간 이동 외에 또 다른 이동 능력이 있었다면 잡혔을 거야. 마르샤가 두려워한 건 그거였어.’
그렇다고 해도 이토록 위축되는 게 정상인가? 분명 그녀의 반응은 본능에 가까웠다.
‘도둑잡기.’
트라우마로 뒤틀린 논리가 규정외식이라면 그녀의 삶 또한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절대로 잡혀서는 안 되는 거야. 마법을 피한 게 아니라 나에게 잡히는 개념 그 자체를…….’
피했다.
‘잡히면 어떻게 되지? 내가 마르샤를 붙잡으면, 마법이 나에게 돌아오나?’
쉽게 빼앗겼으니 쉽게 되찾을 수 있다.
‘그 정도가 아니야.’
에이미는 이렇게 말했다.
빼앗긴 것보다 훨씬 쉽게 되찾을 수 있어야 등가교환이라고.
‘내가 잡으면, 정말로 끝나는 거야.’
아마도 죽음……이 아닐까?
논리의 가치야 저울에 달아 봐야 알겠지만 등가교환의 성립이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마르샤는 나에게 접근할 수 없어.’
강탈을 해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이상 대가를 치러야 할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본인의 사망이었다.
시로네의 눈빛이 변하자 마르샤의 표정이 처음으로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닿기만 하면 이긴다.’
시로네가 전속력으로 달리자 예상했던 대로 마르샤가 거리를 벌렸다.
확신이 생긴 시로네가 소리쳤다.
“마르샤를 잡아야 해!”
진의를 이해한 에이미도, 이해하지 못한 리안과 테스도 한마음이 되어 움직였다.
마르샤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화염 마법도, 검사의 칼질도 죽는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위험일 텐데도 그녀는 오직 시로네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도대체 대가가 뭐기에?’
순간 이동조차 할 수 없는 시로네를 상대로 수십 미터를 도망친다는 것.
멀어진 거리가 공포의 크기라고 가정하면 자연재해 앞에서나 드러나는 인간의 반응이었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철두철미한 마르샤가 테스의 검에 찔린 이유는.
“크윽!”
레이피어가 허벅지에 깊숙이 박혔다.
황급히 물러난 마르샤가 순간 이동으로 거리를 벌렸으나 근처에는 리안이 달려들고 있었다.
‘잡았다!’
그렇게 확신하는 순간, 마르샤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광폭을 시전했다.
시로네가 소리쳤다.
“물러서!”
마르샤를 중심으로 빛의 장막이 터져 나가고, 충격에 튕긴 리안이 바닥을 굴렀다.
“끄으으으!”
광폭에 휘말린 건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전신의 뼈마디가 부서질 듯 아팠다.
시로네의 마법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몸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르샤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광폭을 시전한 순간 포톤 캐논과는 질적으로 다른 정신적 박탈감에 의식이 날아갈 듯했다.
“흐윽!”
허벅지에서 피가 콸콸 새어 나오는 상태로 마르샤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애초에 이모탈 펑션을 기반으로 쌓아 올린 마법 시스템을 남발한다는 게 무리였다.
‘됐어!’
움직이지 못하는 마르샤를 향해 시로네가 몸을 날리는 그때, 에이미가 소리쳤다.
“시로네! 위험해!”
곧바로 하늘에서 굉음이 터지더니 10여 개의 섬광이 떨어졌다.
앵무 용병단의 생존자들이 치료를 끝내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들이 곧바로 마르샤의 주위를 감싸자 시로네는 황급히 걸음을 멈췄다.
공격 마법이 없는 상태에서 적진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부하들의 부축을 거부한 마르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후후, 너무 억울해하지 마. 이것도 다 계획의 일부니까. 어쨌든 이걸로 끝났네.”
시로네 일행은 허탈했다.
어떤 식으로든 전투 불능이 된 상태에서 10여 명의 전투 요원들을 뚫고 마르샤를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시로네의 눈빛에도 전과 같은 투지는 없었다. 그저 마르샤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 시로네? 표정이 왜 그래? 아, 마법 때문에? 괜찮아. 너는 어리니까 처음부터 다시 배우면 되지. 물론 내가 뺏은 마법은 평생 사용할 수 없겠지만.”
“소리 마법도 훔친 거겠지?”
“그렇지, 뭐. 알잖아, 나 도벽 있는 거. 갑자기 쩨쩨하게 왜 그래? 도자기를 훔쳤을 때는 선뜻 값도 지불해 주겠다더니, 네 것은 주기 싫어? 너도 결국 속물이네.”
에이미가 소리쳤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시로네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거야?”
“호호호! 천만에! 나는 누구도 싫어하지 않아. 그냥 내가 즐기기 위해서 하는 거야. 너희들이라고 나하고 다를 게 뭔데? 어차피 똑같으면서 왜 그렇게 착한 척 굴지? 나는 그 가식이 역겨울 뿐이라고.”
시로네는 생각했다.
‘정말로…… 엄청나게 뒤틀려 있구나.’
그녀는 세상을 증오하는 듯했지만 실제로 증오하는 건 양부일 것이다.
그리고 시로네는 마르샤라는 인간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었다.
‘나는 위선자일까?’
어쩌면 그럴 테지만, 시로네는 부끄럽지 않았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 오답을 적어도 된다는 뜻은 아닐 테니까.
비록 선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악에 의해 조롱당하고 경멸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동정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알겠어.”
어쩌면 그것이 마르샤에게는 가장 역겹고 추악하게 다가왔을 것이기에.
“하지만 이제는 나도 물러서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