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32
하지만 그들을 지키는 자들은 사정이 달랐다. 너나 할 것 없이 필사적으로 이를 깨물고 있었다.
‘흐음, 확실히 강한 자들이네…….’
지온과 우오린은 딱히 충격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에이미는 오르캄프가 있는 쪽을 살폈다.
정확히는 오르캄프의 뒤편에 서 있는 키가 큰 남자였다.
많은 고수들이 이 자리에 존재하지만 저 남자만큼 긴장도가 높았던 인물은 없었다. 게다가 지금도 적응이 되지 않는지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제기랄! 깜짝 놀랐잖아.’
아리우스는 영혼의 존재를 믿기로 했다. 광륜이 탄생하는 순간 머릿속의 무언가가 바깥으로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끔찍한 충격이었다.
마도7걸에 들어간 이후 1초 이상 정신적 스턴에 걸린 적이 없었던 그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모탈 펑션을 형태로 구현했군. 저게 네피림의 기본적인 정신 체계인가?’
헤일로의 분석을 끝마친 아리우스는 차분하게 기다렸다. 이번 시연을 통해서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캡슐화를 풀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아타락시아가 집적되기 시작하자 그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시작했다! 처음은 양자택일. 2진수 기반인가?’
헤일로 중앙에 첫 번째 마법진이 박히는 것을 시작으로 빛의 소나기가 밀려들었다.
귀족들은 화려한 볼거리에 감탄했으나 아리우스는 아타락시아에 집적되는 모든 개념들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정리해나갔다.
‘대수학. 무쇼 기하학. 다중 연산 방정식. 바네사 정리. 구 적분. 아이젠 상대성. 그리고 저건, 하겔의 역설?’
아타락시아에 개념들이 쌓여갈수록 생각에 과부화가 걸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집적 과정이 중반을 넘어서자 인간 지성의 최첨단인 제타 함수까지 등장했다. 소수의 패턴을 발견하기 위한 식으로 우주의 설계도가 담겨 있다고 추정되는 일종의 가설이었다.
아리우스는 생각을 멈췄다. 아니, 생각할 수 없었다.
제타 함수 이후부터는 모든 것들이 처음 보는 개념이었고 그것이 엄청난 속도로 헤일로에 박히고 있었다.
분석 불가능.
‘이런 빌어먹을…….’
집적이 끝나면서 아타락시아가 오색찬란한 통합적 개념으로 탄생했다. 인간은 절대로 구현할 수 없는 초마력 증폭진의 실체였다.
아리우스는 패배감에 몸서리쳤다.
전체 회로의 65퍼센트를 이해한 게 고작이었다. 시로네가 이카엘과 빙의 당시 17퍼센트 지점에서 포기한 것과 비교하면 굉장한 수준의 지성이었으나 1퍼센트를 몰라도 모르는 건 매한가지였다.
시로네는 눈앞에 떠오른 아타락시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부터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그로부터 10초 정도가 지나자 유심히 지켜보던 귀족들이 점차 흥미를 잃어 갔다.
실전에서 1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그들은 시로네의 미숙함에 실망할 따름이었다.
“뭐 하는 거야?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지.”
“성격이 우유부단하군. 아니면 뭔가 준비 단계가 더 필요한 건가?”
대마법사를 거느리는 귀족들이 학생 수준의 시연에 참을성을 발휘할 리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자 지온도 한 목소리를 보탰다.
“하하! 원래 소문이라는 게 과장이 심한 법이죠. 왕성에 고위 마법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마법사 지망생이 이것으로 검증을 받고 말고 하겠어요?”
그러자 테라제 일파로 추정되는 자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분위기는 그들이 알아서 잡도록 내버려 두고, 지온은 거만하게 시로네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판은 다 깔아 두었다. 남은 건 시로네가 자신의 모자람을 고백하기만 하면 된다.
시로네는 사방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대다수가 지온의 패거리였다.
‘그래, 그만두자. 처음부터 내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한 적이었어.’
시로네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입을 열었다.
“저는…….”
중대한 발표의 첫마디가 나왔으나 귀족들의 웅성거림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너무 작다는 걸 깨달은 시로네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숨을 들이마시고 폐에 공기를 가득 채웠다.
‘잠깐…….’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포기하는 게 옳은 판단인가?
그것은 불현듯 떠오른, 머리가 아닌 몸에서 밀어 올린 생각이었다.
2. 양자택일의 함정 (4)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이 가진 것으로 판단을 한 적은 없었다. 그 18년의 관성이 의심의 경종을 울리게 했다.
그러자 비로소 머리가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이건 양자택일의 함정이다. 무엇을 선택해도 지온이 이기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양자택일의 논리가 무서운 이유는 선택지 외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있다. 나쁜 것과 더 나쁜 것을 제시해 놓고 나쁜 것을 선택하도록 유도하여 마치 이득을 봤다는 착각이 들게 하지만 실상은 적의 손에 놀아나는 꼴이었다.
시로네는 우오린의 말을 곡해했음을 깨달았다.
누구도 이유 없이 1골드를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포기하는 자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비굴한 표정으로 애원하면 테라제 패거리가 자신을 살려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었다.
왕성은 맹수들의 소굴이다. 약한 모습을 보여 봤자 뼈에 달라붙은 살점까지 뜯어 먹힐 뿐이다.
우오린은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살고 싶다면 짖어라. 이빨을 세우고 으르렁대라. 누구도 쉬운 먹잇감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손톱을 휘둘러라.
싸움을 멈추는 순간 왕성의 모든 맹수들이 너를 잡아먹기 위해 달려들 테니까.
“후우우우우!”
시로네는 마침내 공기를 내뱉었다.
얼마나 숨을 참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끝도 없이 공기가 밀려 나왔다. 머릿속의 잡다한 사념까지 전부 빠져나가는 듯했다.
정신이 맑아지자 타깃이 선명하게 보였다.
시로네는 제대로 자세를 잡고 마법을 시전할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귀족들은 여전히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그들의 생각에 시로네가 머리가 있다면 어떻게든 빠르고 화려하게 기술을 전개했어야 했다.
마법 실력이야 전문가가 판단하면 그만이고 그들이 확인하고 싶은 건 시로네의 의지였다. 이런 미온적인 자세로는 어떤 귀족도 설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로네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맹수가 되리라.
그런 생각과 함께 정신을 집중하자 정면에 폭발하듯 포톤 캐논이 탄생했다.
시로네는 끝없이 광자를 압축시켰다. 빛의 구체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강렬하게 흔들렸다.
에이미는 포톤 캐논의 캐스팅이 평소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섬뜩했다.
이천번 대결에서는 정신력이 거의 소진한 상태였는데도 시스템이 다운되는 위력이었다. 최강의 포톤 캐논을 아타락시아에 통과시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직 멀었어. 이걸로는 분이 안 풀려!’
시로네는 빛의 구체를 계속 압축시켰다.
처음부터 이곳에는 적도 아군도 없었다. 테라제 패거리도 오르캄프 패거리도, 모두 자신을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더…… 더!’
눈물이 차올랐다. 3일 동안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어머니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포톤 캐논이 급격히 압축되면서 더 이상 광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백광의 상태로 변했다. 사람의 머리통만 한 포톤 캐논이 구심점을 이탈할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에이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너무 극단적이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험했다.
하지만 시로네에게 소리치기도 전에 포톤 캐논이 아타락시아를 관통했다. 이천번에서 이미 경험했던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뒤틀었다.
번쩍!
시로네의 전방에 거대한 빛의 터널이 나타나면서 경유지의 모든 것을 밀어냈다. 심지어는 대기조차도.
굉음이 터지면서 사람들의 고막이 마비되었고, 강렬한 빛은 일순 시각을 지워 버렸다.
모두 한동안 어두웠다.
눈이 풍경에 적응하면서 드러난 세상은 1초 전과 완전히 달랐다. 콜로세움의 내벽은 물론이고 멀리 서 있던 산등성이까지 사라졌다. 먼지로 분해되어 버린 입자들이 거대한 연막처럼 지면 위를 떠다녔다.
바람이 먼지를 밀어내자 비로소 포톤 캐논의 자취가 나타났다. 수십 대의 마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평지가 지평선 끝까지 뻗어 있었다.
귀족들은 고위 마법사들에게 둘러싸인 상태였다. 잔뜩 인상을 쓰고 강력한 국소 배리어를 치고 있는 마법사의 주위로 검사가 사위를 경계했다. 시로네가 조금만 수상한 낌새를 보였어도 콜로세움 안으로 뛰어 들어갔을 터였다.
“이런 당돌한! 지금 뭐 하는 거야!”
뚱뚱한 귀족이 의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다른 귀족들도 치가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관람석 쪽으로 마법을 시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시로네가 방향을 트는 순간 검사가 목을 베었겠지만, 어디까지나 규정상의 일이었다. 실제로 자신들 또한 학생이 시연하는 마법이란 생각에 긴장을 놓고 있지 않았던가?
뚱뚱한 귀족은 연거푸 시로네에게 욕을 퍼부어 댔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은 이리같이 생긴 귀족의 말에 얼른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이미 오르캄프가 승인한 자리였다. 여기서 반기를 든다면 정체를 노출시키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저, 저 자식…….”
지온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자신의 제안을 개 껌 씹듯이 씹어 버린 것도 그렇지만 가공할 마법의 위력은 그의 자존심을 산산조각 파괴시켰다.
대체 인간이 산을 밀어 버리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아니, 가능하다 치더라도 대마법사의 수준이다.
일개 마법사 지망생이 저런 능력을 휘두른다는 건 인간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말해 주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그 누구와도 평등하기를 거부했던 지온이지만 지금은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분에 넘치는 힘은 오로지 왕족의 것이어야 한다. 권력도 재력도 신분도 없는 사생아 따위에게 저런 힘이 주어진다면 나라가 무슨 재간으로 버티겠는가?
“대답은 확실히 들었다, 시로네. 두고 보자!”
지온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소리치고 출구로 향했다. 그의 뒤를 따라 다수의 귀족 그룹이 빠져나갔다.
테라제 그룹이겠지만 시로네는 신경 쓰지 않았다. 풀 파워의 포톤 캐논을 시전한 후폭풍으로 날아갈듯 휘청거리는 의식을 애써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아타락시아를 시전하고 쓰러지지 않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구력이 높아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독한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는 증거였다.
시로네는 강렬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우오린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살며시 눈썹을 들면서 비웃듯 입꼬리를 끌어 올린 게 전부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고양이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며 미련 없이 콜로세움을 빠져나갔다.
3. 심야의 무도회 (1)
오르캄프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빨랐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번만큼은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서재의 문을 밀고 들어가 책상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뒤에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타락시아.
가히 재앙적인 마법이었다. 아니, 이제 와 새삼스러운가?
그가 본 것은 천국의 최고사령관인 대천사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천국에는 동급의 위력을 갖춘 대천사가 7명이나 더 있다고 들었다.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
과연 발키리만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됐어. 너무 멀리 보지 말자. 어쨌거나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아타락시아만 복제할 수 있다면 발키리 최고 국가 대표 모임인 ‘성전’에 가입하는 것도 꿈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12명의 군주.
비록 여황 테라제가 속해 있는 ‘삼황계’의 직위는 무리더라도 그 아래의 ‘칠왕성’은 충분히 넘볼 만했다.
그렇게 되면 테라제도 카즈라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의 경제, 문화, 사회, 생명, 지식, 예술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벌써부터 그런 상상을 해 보는 오르캄프였다.
“어떤가?”
오르캄프가 묻자 서재의 구석에서 아리우스가 나타났다.
이런 식의 등장은 지배자의 입장에서 불쾌한 일이지만 아리우스는 이상한 쪽으로 고집이 강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전과 달리 유난스럽지 않았다. 그도 오르캄프 못지않게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확실히 대단하더군요. 아타락시아, 멋진 능력입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이제는 복제할 수 있겠지?”
“불가능합니다.”
오르캄프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귀는 정상이었다.
치솟는 분노를 짓눌러 보지만 진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태까지 아리우스가 요구하는 건 무엇이든 했다. 심지어는 자식의 마음에 비수까지 꽂으면서 밀어붙인 시연이었다.
“어째서 안 된다는 거지? 이번에도 캡슐화인가?
“1차적인 원인은 그렇죠. 하지만 캡슐화를 푼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아타락시아는 인간의 개념을 넘어선 능력입니다. 한마디로 시로네 본인조차 모르고 있다는 거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내 두 눈으로 시로네가 아타락시아를 시전하는 걸 똑똑히 봤어. 그렇다면 시로네가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어떤 의미로는 그렇습니다. 인간의 몸에 인간이 아닌 것이 담겼으니까요. 시로네도 아타락시아를 이해하고 시전하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요? 그냥 되는 겁니다.”
오르캄프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똑바로 말해. 이번 대답에서 반드시 나를 납득시켜야 할 거야.”
살기를 느낀 아리우스는 비로소 웃음기를 거두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아타락시아가 시로네의 무의식의 아주 깊은 곳에 새겨져 있을 경우입니다. 아마도 본능에 근접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시로네가 원리를 몰라도 능력을 구사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숨 쉬는 방법을 이해하고 숨을 쉬는 건 아니니까요.”
“본능이라. 그렇다면 그곳에서 추출을 하면 되지 않겠나?”
“글쎄요. 본능이란 모태 의식이라고 해서, 유전자 레벨에서 좌우되는 영역입니다. 아무리 제가 프로 도굴꾼이라도 거기까지 다이브하기란 불가능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다이브는 가능하지만 시로네의 무의식에 압사당하고 말 겁니다.”
오르캄프는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아까부터 계속 안 된다는 소리만 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는 목숨이 아까워서 다이브를 못 한다니.
“내가 고작 그딴 소리나 들으려고 자네를 고용한 줄 아나? 아타락시아를 얻지 못하면……!”
“한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
오르캄프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고쳤다.
하긴, 블랙 라인의 마도7걸이 아무런 대책 없이 자신의 무능함을 떠벌리지는 않았을 터였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건 좀 곤란한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전하께서도 각오가 필요할 것입니다.”
“각오라면 언제든 되어 있네. 무슨 방법이지?”
아리우스는 주위를 돌아보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평소에는 엘리자가 도청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신중을 기하는 게 좋았다.
“뭐, 뭐라고?”
오르캄프는 경악스럽게 눈을 치켜떴다. 반면에 아리우스의 눈은 뱀처럼 가늘어졌다.
웃고 있을 때는 몰랐으나 표정이 사라진 그의 얼굴은 흡사 독사였다.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르캄프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
“그, 그럴 수는 없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건가?”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라면 확실하게 아타락시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르캄프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타락시아를 얻는다. 발키리에서 트리플S로 지정된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카즈라의 독립. 칠왕성.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전하, 누차 말씀드리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빠른 결단이 필요할 때입니다.”
오르캄프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결행을 한다고 해도 그다음에 밀려들 후폭풍은 어찌 감당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게.”
아리우스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오르캄프가 고개를 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당연히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요. 알겠습니다. 확신이 생기면 불러 주십시오.”
아리우스는 예를 갖추고 서재를 나섰다.
복도를 빠르게 걸어가던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쳇, 멍청한 자식. 한심한 놈. 쪼다 같으니라고.”
물론 오르캄프의 반응은 정상적이었다. 18년 만에 찾은 핏줄이라고 불러와서는 갖은 수모와 모욕을 감당하게 하고 이제는 가장 소중한 것까지 빼앗으려는 마당이니까.
하지만 왕의 냉혹함에는 한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거는 되고 저거는 안 되고, 이런 식으로 판단의 장벽이 있다는 건 결국 그릇이 작다는 얘기였다.
망설이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설령 뒤늦게 제안을 따르더라도 양심의 가책이 정신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언젠가 모든 걸 망쳐 버리고 말 터였다.
‘실망이다, 오르캄프. 냉혹한 군주인 줄 알았더니 흔해 빠진 귀족과 다를 게 없군.’
3. 심야의 무도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