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03
“지금이야! 들어가!”
“이런……!”
카리엘은 미로의 머릿속에 심어 놓은 마법진의 기폭 작용을 가속시켰다.
뇌에서 들리는 굉음에 미로의 미간이 구겨지고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달려! 빨리!”
세인 일행이 미로에게 돌진하자 타락천사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육체의 장벽을 만들었다.
공격도 방어도 고려할 수 없는, 그저 공간을 채워야겠다는 일념만 봐도 천사들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알 수 있었다.
미로의 상태를 확인한 세인이 다그쳤다.
“뚫어! 시간이 없어!”
쿠안, 에텔라, 시이나가 전력을 다해 길을 열었다.
그 아주 좁은, 하나의 활로가 뚫리자 모두가 그곳으로 침투했다.
쿠우우우웅!
최고 속도로 하늘에서 하강한 1명의 타락천사가 그 활로를 다시 차단했다.
거의 주저앉은 채로 착지한 그녀가 동공조차 없는 붉은 눈을 치켜뜨며 손목을 붙잡았다.
‘맥박의 장벽!’
모두의 생체리듬을 동일화시켜 한순간 움직임을 정지시키자 세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미로의 머리뼈를 뚫고 마법진의 폭발적인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늦었다!’
“이야아아아!”
그때 성벽 아래에서 찢어질 듯한 기합 소리가 들렸다.
한쪽 무릎을 치켜든 강난이 대포알처럼 날아와 타락천사의 옆얼굴을 그대로 치어 버리고 나갔다.
아마도 미로의 머리가 폭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0.8초 남짓.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계산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세인이 유일했다.
신경의 반응속도만큼 격차를 벌린 세인이 마침내 활로를 뚫고 미로에게 도달했다.
‘흥, 이미 늦었어.’
그보다 더 빠르게 생각하는 카리엘이 입꼬리를 올리는 게 보였다.
‘0.4초! 가능할까?’
일월광륜을 장착시키는 것조차 빠듯한 시간이었다.
0.3초.
철륜안이 돌아가고, 세인의 의식이 미로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0.2초.
그 순간 서번트의 연산은 확실한 결정을 내렸다.
‘대략 0.03초 늦다.’
빛보다 빠르게 감정이 차오르면서 가슴이 울컥했다.
‘빌어먹을……!’
0.1초.
미로에게 장착된 마법진이 회광반조의 광채를 띠며 강렬하게 불타올랐다.
그리고…… 시간이 멈췄다.
스톱.
시공간을 뛰어넘는 플리커 마법으로 거리를 주파한 아르민이 스톱 마법을 시전하자, 카리엘의 정신 작용이 멈추면서 기폭 상황이 0.1초에서 정지했다.
“어? 어어?”
한 줄기 눈물이 뒤늦게 흘러내리고, 세인은 서번트임이 무색하게 잠시 넋을 잃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탓하지 못할 것이다.
여태까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미로의 눈에조차 감정이 드러나 있었으니까.
“빨리! 탈출해!”
아르민이 소리치는 순간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던 세인과 미로가 동시에 움직였다.
미로는 손을 내밀었으나 세인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가올드. 이건 이해해라.’
그리고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성벽 바깥으로 순간 이동을 시전해 날아올랐다.
“가올드!”
지상에 있던 가올드가 위를 쳐다본 순간 감정이 북받친 세인이 오만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가자아아아아아!”
그녀의 이름은 강난 (1)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가올드는 일말의 의심 없이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20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정말로 이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적이 과연 있었을까?
하지만 그 20년 동안 단 하루도 오늘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기에, 회의와 불안보다는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뿐이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도망쳐야 한다.’
그 당위성이 가올드의 사고를 빠르게 전환시켰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
오직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만이 그에게 남겨진 지상 과제였다.
“크으으으으으!”
가올드의 집중력은 정신의 끝을 완전히 파고들어 가 죽음의 영역까지 도달했고, 무지막지한 에어 프레스가 유리엘을 짓눌렀다.
파괴의 대천사일지라도 일순 동작이 정지할 정도의 위력.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지금의 가올드에겐 충분했다.
“무조건 달려!”
세인이 가올드의 등 뒤에 착지하고, 곧바로 다른 일행이 따라붙었다.
마지막으로 몸을 돌린 가올드는 회전하는 시선 속에서 얼어붙은 채 정지해 있는 카리엘을 눈에 담았다.
스톱 마법이 풀리지 않는 한 아무리 대천사라도 시간을 초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카리엘을 넘어서 미친 듯이 달려드는 수많은 타락천사들의 무리는 다를 터였다.
“최고 속도로 빠져나간다!”
가올드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마법사들이 순간 이동을 시전해 튀어 나갔다.
각자의 라인에서 최고에 속하는 마법사들이기에 섬광은 순식간에 평야를 벗어났고 마침내 도개교에 진입했다.
세인은 미로의 목줄부터 끊었다.
목줄에 딸린 아리우스가 거추장스러운 것도 있으나 이제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목이 졸려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아리우스는 바닥을 구르더니 황급히 중심을 잡고 똑바로 전진했다.
눈을 잃었다고는 하나 그도 한때는 블랙 라인 마도7걸의 1인, 자기 한 몸 도주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작동시켜!”
세인의 지시에 강난이 기관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거인이 아니고서는 당길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란 작동 장치를 발견한 그녀가 발 차기를 날리자 쩡! 쇠로 만든 손잡이가 종소리를 내며 쭉 하고 밀려났다.
비행하는 타락천사에게 큰 효과는 없겠지만 지상 보행을 하는 마라들의 접근은 잠시나마 차단할 수 있을 터였다.
또한 도개교가 세워지면 적들의 원거리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가올드 일행은 이미 도개교로 진입한 뒤였다.
쿠구구구구궁!
도개교 중앙이 2개로 분리되면서 서서히 하늘을 향해 치솟기 시작했다.
폭 1킬로미터, 길이 4킬로미터의 도개교가 통째로 세워지는 것은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로! 미로를 탈환하라!”
타락천사들은 오직 미로만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녀를 붙잡기만 하면 모두의 발이 묶인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본래 천사의 신분이었던 고결한 기억조차 망각한 채 타락천사들은 한 자루의 창이 되어 도개교 위로 쇄도했다.
다리 위는 순식간에 적들로 채워졌고, 점점 기울어지는 다리 위에서 또다시 전투가 치러졌다.
아무리 타락천사라도 전심을 다한 공격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가올드 일행은 아르민의 스톱 마법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이제 스톱은 사용할 수 없다. 우리끼리 하는 수밖에 없어.’
시간을 멈춘다는 것이 사건의 취소를 뜻하지는 않는다.
현재 스톱 역장은 카리엘에게 걸려 있고, 만약 역장이 풀리게 되면 그때는 손을 쓸 도리도 없이 미로의 머리가 폭발하고 말 터였다.
한편, 유리엘은 가올드를 쫓는 대신 성벽으로 날아가 스톱에 갇힌 카리엘을 살피고 있었다.
“카리엘…….”
미로의 문제는 유리엘에게는 2차적인 일이었다.
어차피 이 모든 걸 계획한 것은 카리엘이고 유리엘은 어느 정도 방관자의 입장에서 그를 도운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카리엘을 보고서는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경험했다.
시간이 멈춘 대천사에게서는 어떤 광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낱 인간이 대천사를 무력화시키다니.’
극락곤이 바람 소리를 내며 회전했으나 차마 파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역장에 갇혀 자신 또한 얼어붙을 뿐이다.
‘당장은 되돌릴 수 없겠군.’
광속으로 가속하여 정지한 시간을 되돌리려면 빛의 대천사 레이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리엘은 저 멀리 멀어져 가는 가올드 일행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단 빼앗긴 건 되찾아와야겠지.”
유리엘의 몸이 빛으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수 킬로미터 떨어진 다리의 중앙까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쿠우우우우우웅!
유리엘이 착지하자 마치 물결 위에 서 있는 듯 모두의 발바닥에 진동이 전해졌다.
현재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도개교의 진입로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지점.
가올드 일행도 호락호락한 자들이 아닌 이상 일방통행 길을 벗어나면 추격하기가 요원해진다.
“너희의 의지를 파괴한다.”
유리엘이 극락곤을 회전시키는 것과 동시에 가올드가 에어 프레스를 가했다.
또다시 대기가 불에 타들어 가며 괄한 폭발이 다리 위에 치솟았다.
“크으으윽!”
가올드 일행은 충격파에 밀려 사방으로 쓰러졌다.
눈으로 보지 않고서도 위력에서 가올드가 밀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결과였다.
온몸에 힘이 빠진 가올드는 시선만을 유리엘에게 고정시킨 채 비틀거렸다.
지켜야 한다.
설령 이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유리엘을 지나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위압감은 2배, 4배로 커져 갔다.
심장이 멈출 정도의 기운이 몸을 짓누를 무렵 유리엘이 걸음을 멈췄다.
“너답구나, 카리엘.”
‘카리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가올드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뒤를 돌아본 순간 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로야!”
세인의 품에서 벗어난 미로가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의 팔과 다리에는 불의 인장으로 구현된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인장술-화의 감옥.
30도 각도까지 치솟은 건너편의 도개교에 불의 거인족 마법사인 우로타스가 양손을 내민 자세로 소리쳤다.
“우하하하하! 해냈습니다! 소인이 해냈습니다, 카리엘 님! 우로타스의 이름을 기억해 주십시오!”
강난을 성벽 위로 떨어뜨리고 카리엘에게 지령을 받은 그는 몸을 은신시켰다.
만의 하나 일이 잘못될 경우 미로를 재탈환하기 위해 세운 카리엘의 회심의 한 수였다.
“안 돼!”
인장술에 걸려 빠르게 멀어지는 미로를 바라보는 순간 치미는 허탈감은 최고의 파티를 이룬 일행이라도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가올드는 한 걸음을 내딛다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머릿속은 무언가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있어 온통 검은색이었다.
그 암흑 속에서 발견한 하나의 가능성.
“똥개야!”
가올드가 소리치자 강난이 곧바로 몸을 틀었다.
“물어어어어어어!”
땅을 박차고 나간 강난은 하늘을 건너가는 미로를 노려보며 두 다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타락천사들이 미로를 향해 되돌아가는 한편 일부는 강난에게 달려들었다.
쿵쿵! 쿵쿵!
강난은 귀청까지 도달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동작을 계산했다.
단 한 번의 정지도 용납되지 않는다.
폭풍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빠르게 달려드는 적들의 풍경 앞에서 강난은 상체를 흔들었다.
마치 회전하는 칼날 속에 들어간 듯 위태로운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회피하며 타락천사들의 진영을 주파해 나간 그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뛰어올라 적들을 밟으면서 돌진했다.
“흐으으으읍!”
도개교의 각도는 이제 45도까지 치솟고 있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속도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뛰는 것도 불가능한 기울기지만 강난의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더, 더 빨리!’
쾅! 쾅! 쾅! 쾅! 쾅!
강력한 각력으로 땅을 박차자 돌이 깨지면서 파편이 뒤로 튀었다.
미로는 벌써 건너편으로 날아간 상태였고, 그녀의 눈에 보이는 건 하늘뿐이었다.
“끼……!”
강난은 이를 악물고 더욱 다리에 힘을 주었다.
오르막길임에도 가속도는 더욱 높아졌고, 마침내 거의 절벽의 수준으로 기울어진 도개교의 끊어진 다리를 온 힘을 다해 박차고 날아올랐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앙!
다리 끝이 폭발에 휘말린 듯 산산조각 부서지면서 강난의 몸이 비행했다.
1킬로미터 아래로 태양에 반짝이는 푸른 강이 지나가고 아무것도 몸에 걸리는 것이 없는 허공을 두 다리를 휘저으며 달렸다.
반대편 도개교 너머로 사라지는 미로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에 거인 우로타스가 자신을 향해 불의 시선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심장에 불의 인장이 새겨지자 전신을 빠르게 순환하던 혈류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쇼크가 치밀었다.
하얗게 새어 버린 정신 속에서 강난의 의식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하나의 목적과 사명의 시간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강난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