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81
두 사람 모두 오늘 안에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였다.
‘9,200조! 9,400조!’
물아일체의 깨달음은 며칠 전에 이미 얻은 상태였고, 남은 건 화신의 율법을 강화시키는 것뿐.
그리고 마침내 그것조차 끝을 맞이했다.
경京.
시로네의 눈에 충격이 깃들었다.
“허억!”
심적초월-물아일체.
시로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승천하더니 거대한 천사의 형태로 탈바꿈했다.
광천사-시불상폭매.
미로는 눈을 크게 뜨고 화신을 살폈다.
어딘가 이카엘을 닮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남성이었고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잠시 미로를 내려다보던 화신의 육체가 빠르게 붕괴되더니 시로네의 몸으로 빨려 들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반야의 화신은 심적초월을 통해 드러나는 현상.
화신의 힘이 강할수록 아우라는 커지거나 선명해지기 마련이었다.
“허억! 허억!”
스스로 해낸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시로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해냈어요! 제가 해냈다고요!”
‘사라진 게 아냐. 일체화다.’
흉악한 빛의 소용돌이가 가라앉았을 뿐, 시로네의 몸에는 여전히 정숙한 빛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시로네가 미로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육체 선을 그대로 따 온 듯한 빛의 잔상이 시로네의 몸을 중심으로 중첩되었다.
“잠깐.”
미로가 손을 들어 동작을 말렸다.
“왜 그러세요?”
“뭔가 달라진 것 없어? 풍경이 다르게 보인달지.”
“아뇨. 그런 건 잘 못 느끼겠는데요.”
시로네는 그렇게 말했지만 고개를 돌릴 때마다 빛의 잔상이 진동하는 것을 미로는 똑똑히 확인했다.
‘느끼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역시…….’
1차적인 분석을 끝낸 미로가 수련관의 끝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저쪽으로 걸어가 봐.”
시로네가 걸음을 옮기자 중첩의 반동이 커지면서 잔상이 몸을 이탈할 정도까지 빠져나왔다.
‘시간이 진동하고 있다. 실체와 잔상의 간격으로 보건대 대략 전후 1초.’
답답해진 시로네가 벽에 도착하자마자 물었다.
“왜 그러세요? 뭔가 문제가 있나요?”
“있지. 알다시피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하면 화신의 율법이 세계의 율법에 영향을 미쳐. 그리고 너의 율법은…….”
미로는 가장 명확한 정의를 찾아냈다.
“시간의 벽을 깨 버린다.”
“네? 시간의 벽요?”
“우선 확인을 해 보자. 나에게 다시 걸어와 봐.”
시로네가 미로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빛으로 이루어진 잔상이 사방으로 진동했다.
각각의 잔상이 시로네의 과거였고 앞으로 도달할 미래의 가능성이었다.
“멈춰.”
시로네가 걸음을 멈추자 미로의 입에서 감탄의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마치 1초 전의 과거로 돌아간 듯, 그녀가 눈으로 확인했던 것보다 한 걸음 뒤에 정지해 있었다.
“방금 느꼈어? 너, 지금 내가 보고 있던 것보다 반보 정도 뒤로 이동했어.”
“아뇨, 못 느꼈어요. 저는 그냥 멈췄는데요.”
“바로 그거야. 순간 이동도, 시간 역행도 아니야.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유동적으로 시간을 인식하게 된 거야.”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미로는 마치 공을 잡듯 두 손을 들었다.
“이제부터 잘 들어. 모든 물질은 시간의 거푸집에 갇혀 있어. 인간 또한 1초에 1초씩을 느낄 수밖에 없지.”
시로네도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너의 화신은 그것을 깨 버렸어. 마치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거푸집의 공간이 넓어졌다는 거야.”
“어, 그러니까 그게…… 정확히 어떤 거죠?”
“단순하게 말해서 너는 1초에 1초를 살아가는 게 아니야. 과거의 1초와 미래의 1초가 모두 현재에 포함된 거야. 즉, 1초에 3초의 시간을 인지하는 셈이지.”
미로는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증명해 보자. 이제부터 주먹으로 네 가슴을 칠 거야. 하지만 미리 막아서는 안 돼. 맞은 다음에 막는 거야.”
미로는 시로네가 타이밍을 잴 수 없도록 기다리다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주먹을 내질렀다.
한 걸음 물러서면서 그녀의 손목을 붙잡은 시로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어떻게 된 거죠?”
“맞은 다음에 막은 거 맞지?”
“네, 분명 맞았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냥 맞았다는 상상을 한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은 있는데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바로 그거야.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너를 때리지 못했어. 왜냐하면 과거의 네가 맞은 사건을 없앴기 때문이지.”
시로네가 손목을 풀어 주며 물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미로가 허공에 그래프를 그리며 말했다.
“내가 너의 가슴을 가격한 시간의 좌표가 23초였다고 하자. 보통의 사람이라면 23초의 사건을 이탈할 수 없지. 하지만 너는 22초와 23초를 동시에 살고 있어. 또한 23초와 24초를 동시에 살고 있지.”
미로는 이번에는 피하지 말라고 작게 말하며 시로네의 가슴에 주먹을 댔다.
“자, 23초에 가격했다. 그리고 너의 화신은 22초, 23초, 24초를 동시에 인식하지. 즉, 남에게는 이미 결정이 나 버린 결과가 너에게는 아직 아니라는 거야.”
“22초 또한 저에게는 현재이기 때문이군요.”
“그래. 22초에서 24초 사이가 모조리 현재이기 때문에 23초의 결과 또한 유동적이 되어 버리는 거야.”
미로가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반대로 해 보자. 네가 나를 때려 봐.”
시로네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행동의 의지가 사라지자 빛의 진동이 사라지면서 다시 머리 위로 천사의 화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거였군. 시간을 파괴하는 광천사.’
그것이 바로 시불상폭매.
‘지금!’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이는 것과 동시에 천사의 형태가 붕괴되면서 다시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이내 수십 개의 잔상으로 튀어나와 미로에게 일격을 날릴 자세를 취했다.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확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빛의 명도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선명한 게 확률이 높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로가 상체를 숙이며 회피했으나 어느새 시로네의 주먹이 뺨에 닿아 있었다.
예상했던 바였고, 미로는 부르르 떨리는 주먹의 촉감을 느끼며 시선을 들었다.
“알겠어?”
“……네.”
시로네의 입장에서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미로가 상체를 숙였고 자신은 그저 미로의 얼굴이 있는 곳을 향해 주먹을 내밀기만 하면 끝이었다.
“보통 사람에게는 1초 뒤에 일어날 사건이 너에게는 현재의 사건과 똑같아지는 거야.”
미로가 상체를 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너의 화신술은 기본적으로 시간기를 다루고 있어. 1초에 3초를 인지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의 행동이 확률로 보일 수밖에 없는 거야.”
“그게 미로 씨가 본 빛의 잔상이군요.”
“맞아. 육체의 경계선을 흐르는 빛의 잔상은 3초 사이에 일어날 사건을 확률로 드러내지. 하지만 너에게는 3초를 느끼는 게 자연스럽기에 보이지 않은 거야.”
시로네는 멍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물론 자신의 개성이 발현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상식을 초월하는 특이점이었다.
“이제 마지막 테스트야.”
미로는 천천히 거리를 벌렸다.
“이제부터 나는 내 화신으로 너를 공격할 거야. 당연히 조절하겠지만, 그래도 정신적인 충격이 올 수도 있어. 그것을 피할 수 있다면 화신술의 기본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지.”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봤던 천수관음의 화신.
수련관의 촛불을 모조리 껐을 때에는 눈으로 잡을 수조차 없는 속도였다.
“네, 해 볼게요.”
당시의 광경을 떠올린 시로네가 눈에 힘을 주었다.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빛의 아지랑이가 뒤엉키며 다시 빛의 날개를 펼친 천사의 형상이 조형되기 시작했다.
광천사와 천수관음.
두 반야가 현현시킨 2개의 화신이 천장의 높이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또 다시 강철문 (1)
같은 반야의 화신이지만 담겨 있는 깊이는 전혀 다르기에 단지 마주하는 것만으로 시로네는 압박감을 느꼈다.
이제 막 경에 도달한 시로네와 불가사의를 넘은 미로의 경지가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긴장하지 마. 죽지는 않을 테니까.”
죽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뜻이기에 오히려 더욱 긴장이 되었다.
‘시불상폭매라…….’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로는 광천사의 근엄한 얼굴을 흘끗 올려다보았다.
어떤 화신도 자신 이상의 것을 발현시킬 수는 없다.
‘빛의 친밀성, 신의 입자, 아타락시아, 발할라 액션…….’
수많은 경험과 기술이 광천사를 이루고 있을 테지만, 미로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맥클라인 거핀.’
미로가 1초를 극한으로 쪼갠다면 시로네는 1초의 경계를 파괴한다.
빛의 특성인 입자와 파동의 성질이 집약되어 있는 화신술.
‘만약 바라밀의 경지에 도달한다면…….’
시불상폭매의 결과물이 어떠할지 그녀로서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시작한다.”
미로가 천천히 몸을 틀면서 공격의 자세를 취하자 시로네도 한 발을 뒤로 빼내고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에 따라 화신의 자세가 변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한계까지 치솟았다.
‘천수관음 낙뢰장.’
미로의 표정이나 자세가 변하기도 전에 화신이 움직였다.
수천 개로 분절된 1초의 공간에 천수관음의 연격이 1천 회나 중첩되어 시로네의 머리에 내리꽂혔다.
‘우와아아아…….’
처음으로 관음의 공격을 볼 수 있게 된 시로네는 전기에 감전된 듯 몸을 떨었다.
인간의 정신이 이토록 깊은 곳까지 떨어질 수 있단 말인가?
‘피해야 돼!’
광천사가 육체로 스며들고, 시로네는 빠르게 몸을 뒤틀었다.
‘명중했다!’
미로가 확신하며 눈을 부릅뜨는 것과 동시에 천 개의 장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시로네는, 미로가 인지할 수 없는 시간의 틈을 따라 어느새 오른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헉! 헉!”
힘을 조절하기는 했지만 진심이었기에, 미로는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시로네에게 합격의 미소를 지어 주었다.
“통과. 축하해, 시로네. 이것으로 수련은 끝이야.”
끝이라는 말이 스위치처럼 뇌리에 꽂히자 시로네의 눈이 점차 위로 말려들었다.
“아, 감사…….”
장시간의 고행과 조금 전 관음의 공격을 목도한 충격으로 더 이상 버틸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쿵 소리를 내며 그대로 나자빠진 시로네는 일어나지 못했고, 미로는 한시름 덜었다는 듯 숨을 내쉬며 그를 업고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새벽 4시 무렵이었다.
***
“으음.”
시로네는 약에 취한 듯 몽롱한 정신을 다잡으며 눈을 떴다.
‘수련!’
매일같이 반복된 훈련으로 몸이 먼저 긴장했으나 기억의 말미에 남은 미로의 말을 떠올리자 이내 근육이 풀어졌다.
“맞다, 끝났지.”
몸이 평소보다 무거웠다.
여태까지 느끼지 못했던 본래 자신의 체중일 것이다.
“해냈구나, 정말로…….”
시로네는 팔을 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수련을 끝내고 강력한 화신술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이번 수련으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수없이 자신을 이겨 냈다는 경험이었다.
‘이 경험은 또 다른 성공을 불러오겠지.’
그렇게 하루하루 끝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미로 씨는?”
충분히 몸을 회복시킨 시로네는 느릿느릿 주방으로 나왔다.
미로는 보이지 않았고 아침에 끓여 놓은 풀죽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적응이 안 되는 맛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매번 끓일 때마다 새로운 쓴맛을 창출해 내는 것은 가히 신의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 배는 고프지 않으니까.”
굳이 혼잣말을 하며 현실을 부정한 시로네는 미로를 찾아 나섰다.
정오의 태양 빛을 받으며 수련관의 문을 열자 미로가 촛불 몇 개만을 밝혀 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일어났니?”
“아, 네.”
혹시나 죽을 먹었냐고 물을까 봐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미로는 그저 자리를 권했다.
“앉아.”
가부좌를 틀고 기다리자 그녀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