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23
“응?”
마들렌이 토끼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알비노 님께서 당장 불러오라고 노발대발하셨어요! 제 평생 그렇게 화난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요.”
이루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미안한데,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하지.”
“걱정하지 마. 아버지라면 징계는 없을 테니까. 제길, 이 기회에 며칠 푹 쉬려고 했는데.”
시로네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학교에서도 수업이 지루할 때면 일부러 사고를 쳐서 정학을 받곤 했던 이루키다.
“너 설마, 일부러…….”
이루키가 말을 끊으며 리안을 돌아보았다.
“만나서 반가웠어. 시로네를 잘 부탁해.”
“그래. 다음에는 술이나 하지.”
키도가 말했다.
“잘 지내라, 형제여.”
농담을 한다는 것은 이루키의 진면목을 알아봤다는 뜻이었기에 시로네가 웃었다.
‘좋아할 줄 알았다니까.’
“시로네, 꼭 합격해라. 좋은 소식 염탐하고 있을게.”
여유로운 미소와 달리 몸을 돌린 이루키는 엉덩이에 불이 난 듯 왕성으로 달려갔다.
시로네가 리안과 키도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우리도 출발하자. 아직 역전의 기회는 남아 있어. 이제부터는 우리도 빠를 테니까.”
키도가 물었다.
“생각해 둔 것이 있다고 했지?”
“응. 카샨에 가 볼 생각이야.”
“카샨? 거긴 제국이잖아?”
기억의 맛이 모든 기억을 전해 주지는 않기에 키도는 시로네와 카샨의 관계에 대해 알지 못했다.
리안이 말했다.
“테라제를 만나려는 거지?”
“가급적 빚을 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우오린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카드를 써야 할 것 같아. 우오린이라면 라 에너미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럼 다음 목적지는 카샨이군. 어디 보자…….”
리안이 약식 지도를 펼쳤다.
“바슈카에서 나가는 루트는 카즈라 왕국과 아크로스 왕국이야. 하지만 카즈라는 국경을 폐쇄했으니…….”
토르미아와 해안선을 따라 나란히 올라가는 아크로스를 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아크로스, 메르헨, 자이브를 거쳐서 카샨에 도착하겠군. 그런데 이거 지도 축적 사실이야? 세 왕국을 거치는 것보다 카샨 국경선에서 수도까지의 거리가 더 먼데?”
카샨은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넓은 제국이다.
“괜찮겠어? 쉬지 않고 마차로 달려도 두 달은 걸려.”
“아니. 아크로스 루트를 타지 않을 거야. 카즈라로 가자. 거기에서 바로 카샨으로 점프하는 거지.”
“흐음, 그런 방법이.”
카즈라의 왕 오르캄프와 테라제 미스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우오린이었다.
친자 확인 소동 이후로 타국과 외교를 단절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카즈라가 카샨의 통치권 아래에 있다는 증거였다.
“카즈라에는 카샨과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직통 채널이 개설되어 있을 거야. 그걸 이용하면 시간을 아낄 수 있지.”
“하지만 승인이 떨어지지 않을 텐데. 밀입국이 적발되면 국가 간의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어.”
“오르캄프는 나를 만나려고 할 거야.”
시로네의 눈빛이 슬픔에 잠겼다.
“왕비의 아들이 나를 대신해 죽었으니까.”
거핀은 헥사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카즈라의 왕자를 이용했다.
“그렇군.”
“시간을 아끼는 것도 그렇지만, 아들이 사망했다는 것은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자식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속에서 날마다 절망을 맛보고 있을 터였다.
“처음부터 카즈라에 들를 생각이었구나.”
입으로는 효율을 얘기하지만, 아마도 후자의 이유가 클 것이다.
‘그래서 3등인가.’
리안은 상아탑 투표에서 시로네가 한 표밖에 얻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쯔오이는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녀는 시로네의 카르를 이렇게 평가했을 것이다.
거대하지만, 너무 느리다.
‘전부를 끌어안으려고 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런 시로네였기에 리안 또한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맡기기로 한 것이다.
‘한 표를 준 사람이 누구든,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결정을 내린 리안이 말했다.
“좋아, 카즈라로 가자!”
키도가 손을 들었다.
“다 좋은데, 카즈라에는 어떻게 갈 거야? 국경이 폐쇄되었다고 했잖아?”
“응?”
리안이 눈을 깜박거렸다.
***
“카즈라로 가고 싶다고?”
왕성 외교부의 책상에 앉아 있는 아리아가 되물었다.
“네. 국경은 폐쇄되었지만 외교적인 비밀 채널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흐음.”
시로네에게 호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업무에 관해서는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꼭 카즈라를 통해야 하는 거야? 카샨으로 가는 거라면 가장 가까운 나라에 협조 공문을 보내 줄 수 있어.”
“그래도 늦어요. 카샨의 수도로 직접 점프하지 못하면 시간을 잡아먹는 건 똑같으니까요.”
그리고 카샨의 수도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로서는 카즈라를 통하는 것뿐이었다.
“만약 카즈라와 채널이 연결되어 있다면…….”
아리아가 안경을 벗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나는 없다고 거짓말을 했을 거야. 그게 내 직업이니까. 하지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정말로 없기 때문이야. 채널은 완전히 차단됐어.”
외교관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솔한 답변이었다.
“정말로 방법이 없나요?”
“카즈라로 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어. 첫 번째, 국경을 넘는다. 하지만 경비가 철통같을 거야. 두 번째, 레드 라인의 채널을 이용한다. 카즈라도 레드 라인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마법협회를 통해 갈 수 있어. 다만 이럴 경우 레드 라인 산하의 모든 국가가 너의 동선을 추적할 수 있게 되지. 마지막 세 번째로, 왕국 간의 협약으로 지정된 비무장지대를 통하는 거야. 보통 국가 간에는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비밀 회의소가 있거든. 아마도 나를 찾은 이유는 세 번째 방법 때문일 텐데, 현재는 그것조차 차단된 상태야.”
“으음.”
시로네는 아리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방법이 없다고 말하면서 모든 방법을 다 알려 줬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는 사안이었다.
“비밀 회의소가 있는 장소는 고위 귀족들밖에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경비도 느슨하지. 그렇다고 없지는 않지만, 다른 곳보다는 뚫기가 쉬워. 다만 걸렸을 경우 토르미아는 엄청난 배상을 해야 할 거야.”
“으으으음.”
시로네의 침음성이 길어지자 아리아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비밀 회의소로 가는 마법진의 위치는 비밀이지만…….”
펜을 꺼내 든 아리아가 낙서를 하듯 띄엄띄엄 8개의 숫자를 적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새로운 숫자를 적어 끼워 넣어 원주율을 만들었다.
시로네는 최초에 적힌 숫자를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XY좌표. 지저 산맥, 크레타 왕성 뒤편이구나.’
펜을 내려놓은 아리아가 다시 깍지를 끼고 말했다.
“어차피 지금은 완전히 폐쇄되어서 아무도 얼씬하지 않지. 간다고 해도 보안 코드를 모르면 작동하지 않으니까.”
시로네는 모든 코드를 해독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그 방법은 포기해야겠어요.”
시로네가 미소를 짓자 아리아도 표정을 풀었다.
“잘 생각했어. 아크로스를 통해서 가는 게 좋을 거야.”
“네, 감사합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나중에 상아탑에 들어갔을 때 모른 체하지나 마.”
아무런 대가 없이 기밀을 알려 줄 리가 없었다.
“물론이죠. 꼭 다시 찾아뵐게요.”
그길로 몸을 돌린 시로네는 마차를 타고 왕성을 빠져나와 수도의 외곽에 내렸다.
마차가 떠나는 것을 확인한 키도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응. 좌표가 정밀해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리안이 물었다.
“무슨 소리야? 아크로스로 가는 거 아니었어?”
“…….”
키도의 눈이 사팔뜨기처럼 모였다.
“아니, 공간 이동 마법진을 타고 카즈라로 점프할 거야.”
시로네는 지저 산맥을 오르면서 설명했고, 그제야 리안도 상황을 이해했다.
“그렇군. 일종의 간첩이 되는 건가?”
“붙잡히면 그렇지.”
아리아가 지정한 좌표는 울창한 숲이었다.
인위적으로 옮겨 심은 듯한 수목을 헤치자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 통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선뜻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1년 넘게 사람의 출입이 없었기에 계단이 먼지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밟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시로네도 키도의 의견에 동의했다.
“대류를 이용하는 마법은 아무래도 티가 나기 마련이야. 순간 이동으로 가자.”
키도와 리안을 붙잡은 시로네가 섬광으로 변해 계단을 뛰어넘었다.
좁고 복잡한 길목을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내려간 시로네는 지하 3층에 마련되어 있는 넓은 장소에 도착했다.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벽에는 마법진을 제어하는 연금술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발전기가 가동되고 복잡한 회로가 떠올랐다.
“할 수 있겠어?”
“응. 해 볼게.”
신중하게 회로를 파고들자 구체의 형태로 회전하고 있는 코드의 결합이 보였다.
‘이게 방화벽이구나.’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낱낱이 분해시키자 모든 회로를 경유하는 지점에 하나의 별빛이 떠올랐다.
‘이게 핵심 코드.’
그것을 활성화시키는 순간 대공동에 웅장한 소리가 울리며, 땅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원통의 형태로 빛이 솟아올랐다.
“됐다.”
되기는 됐으나 마법진과 연결되어 있는 공간에 무엇이 있을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카즈라 쪽의 경계가 삼엄할 수도 있어. 토르미아와는 사정이 다르니까.”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걸음을 옮기자 키도와 리안이 따라 들어왔다.
“그럼…….”
말을 내뱉기도 전에 백광이 치솟으면서 모두를 마법진의 이면으로 이동시켰다.
“…….”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리안은 이어질 말을 차단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토르미아 쪽과 다를 바 없는 어두컴컴한 지하였고, 다른 점이라면 인공 구조물이 아닌 동굴 속이라는 점이었다.
“근처에 경비는 없는 모양이야.”
키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정말 카즈라라고? 믿기지 않는데.”
“정확히는 국경 지역이겠지. 토르미아와 공동소유하고 있을 거야. 증거로 마법진을 제어하는 장치가 없어. 여기에서 모여서 회담소로 가는 방식일 거야. 일단 나가자.”
동굴은 천혜의 미로였고, 곳곳에 마법 및 물리적 트랩이 설치되어 있었다.
“……상당히 멀리 온 것 같은데.”
좌표를 계산해 보면 결코 헤맨 적이 없음에도 벌써 1시간째 동굴이 이어지고 있었다.
“쉿, 누가 있다.”
키도의 말에 몸을 숙이고 접근하자 10미터 아래에 거대한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똑같은 의복을 입은 20명의 사람들이 제단에 있는 한 남자에게 절을 올리며 간청했다.
“위대한 테라포스 신이시여, 신탁을 통해 저희들의 길을 인도해 주소서.”
‘이교도…….’
그것도 악신이라 불리는 테라포스 교단이었다.
“신께서 나에게 신탁을 내리신다.”
제단에 서 있는 60대의 노인이 두 손을 치켜들더니 흰자를 드러내며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까로마로파, 에로다이머, 우디라크나옴.”
‘신탁인가? 시로네라면 해석할 수 있겠군.’
리안이 고개를 돌리는데 시로네가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왜 그래? 심각한 내용이야?”
“저건 신탁이 아니야.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거지.”
“아무렇게나?”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남자의 말이 해석되고 있었다.
“아, 지루해. 저 신입은 괜찮군. 오늘 밤은 저 여자로 해야겠어. 신탁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을 하고 있어.”
이교도 중에서도 사이비였다.
재회의 장 (4)
신탁을 받는 척하는 남자의 말이 더욱 빨라졌다.
혀를 움직여 만드는 소리의 모음일 뿐이었으나 효과는 대단해서 신도들이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다.
“움 쌀라 움!”
“움 쌀라 움!”
신관의 말을 모두가 감동에 젖어 따라 했으나 시로네의 얼굴은 오히려 달아올랐다.
음탕하고 추악한 말이었다.
“라둠에 들어가기 전에 저런 놈들을 많이 봤었지.”
숲에서 사는 고블린들은 인간의 이교도 의식에 대해 박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