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51
빛의 장막에 좀비들의 팔다리가 파편처럼 튀는 가운데 블랙 팀의 거구가 몸을 날렸다.
‘특수 능력. 늑대인간.’
드루이드 직업 카드를 가진 거구의 몸에서 털이 부슬부슬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기다란 주둥아리가 쩍 하고 벌어졌다.
“크아아아앙!”
늑대의 손톱 끝에 걸린 웨폰 카드가 빛났다.
와일드 액션.
설명 : 누구나 과격해질 수 있습니다.
효과 : 상상하는 동작을 똑같이 재현합니다. 단, 안전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과연 피할 수 있을까?”
머릿속의 장면을 재현하는 늑대인간의 현란한 동작이 시로네의 허점을 찌르고 들어왔다.
‘초에니 바르도!’
날카로운 손톱이 시로네가 있던 자리를 지나치자 블랙 팀의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생매장의 아우성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사라졌다는 것은 율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제길! 어디로 사라진……!”
리더가 몸을 트는 순간 산탄처럼 퍼부어진 포톤 캐논이 블랙 팀 전원을 연거푸 두들겼다.
“커억! 컥!”
거의 동시에 날아가 풀밭에 쓰러진 블랙 팀을 살필 겨를도 없이 시로네는 카이에게 달려갔다.
“카이! 정신 차려! 카이!”
단도가 박혀 있는 자리가 시뻘겋게 피로 물들어 있는 상태로 카이가 눈을 떴다.
“형…… 죄송해요.”
“……왜?”
대체 왜 그랬을까?
“왜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어? 내가 마법사라는 거 알고 있잖아? 어째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야?”
카이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무서웠어요.”
“뭐가?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데?”
“형이 실망할까 봐요.”
시로네는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바보같이 큰소리나 치고, 아무것도 못 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이제 말하지 않아도 돼. 치료부터 하자.”
“형이 살려 줬는데…… 그래서 인정받고 싶었는데…… 형한테 의심받는 게 무서워서…….”
“말하지 말라니까! 피가 계속 나오잖아!”
“죄송해요…… 형.”
카이의 고개가 옆으로 떨어지더니 헐떡이던 가슴팍의 고동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카이! 카이!”
이 세계는 무엇인가?
화이트블랙의 모순은, 블랙에서 화이트로 되돌아가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선은…….’
선과 악을 구분 짓지 않는다.
하염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시로네는 카이의 시체를 아늑한 풀숲에 안치했다.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던 카이의 직업 카드를 살피는 시로네의 눈썹이 슬프게 휘어졌다.
마술사 : 거의 대부분을 속이는 자.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아이가 생애 처음으로 지키고 싶은 감정이었을 것이다.
“심폐소생술.”
시로네는 두 손을 곱게 포개고 있는 카이의 손등에 직업 카드를 살며시 내려 두었다.
“기다려. 금방 데리러 올게.”
화이트블랙의 조화에 의해 탄생한 백 장의 카드 중에 심폐소생술이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니, 반드시 있어야 돼.”
율법의 달을 노려보던 시로네의 몸이 섬광으로 변하더니 밤하늘로 솟구쳤다.
우리가 사는 세계 (4)
율법의 대결 화이트블랙.
생존자 : 9명.
화이트의 생존자는 4명.
“아직까지는 우리 쪽에 승산이 있어.”
그중에는 마차에서 시로네에게 율법의 조화를 강요한 마르코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금 전에 블랙에서 무려 4명이 동시에 사망했다. 그중에 3명은 유일하게 팀으로 움직였던 놈들이야.”
마르코의 무기 카드인 잠망경을 통해서 확인한 정보였기에 정확할 터였다.
“블랙은 끝까지 개인으로 싸울 거예요. 이제부터 우리가 함께 행동한다면 가능성이 있어요.”
화이트 구역에서 미용사를 하는 브리즈가 말했다.
“흐음, 그게 가장 좋겠지. 하지만 그 전에 투표로 결정해야 할 게 있어. 카드를 공개하는 것 말이야.”
생존에 필수적인 무기 카드를 얻으면 설령 같은 팀이라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
최초에는 화이트의 참가자들도 최소한의 협력만을 도모했으나 결국 6명의 희생자가 생기고 말았다.
“나는 반대야. 아직 카드를 합치기에는 이르지 않아? 어차피 블랙 쪽도 우리보다 1명 많을 뿐이야.”
반대 의견을 던진 사람은 50대 중반의 밸라드라는 남성으로, 화이트 구역의 경비병이었다.
단련이 되어 있는 만큼 다른 참가자들보다 전투력은 우위일 테지만 화이트블랙에서는 웨폰 카드가 전부였다.
‘좋은 카드를 가지고 있군.’
마르코는 더더욱 카드를 합치고 싶었다.
“좋아, 그럼 투표로 결정하자. 나, 브리즈, 아트리아는 카드를 합치는 데 찬성이야.”
16세의 소녀 아트리아가 손을 들었다.
“저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물론 그녀가 상급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순순히 카드를 합치자고 하면 얕보일 터였다.
“나 참, 어차피 카드 따위……. 그래, 알았어. 어떻게 할 거야? 팀이야, 개인이야?”
아트리아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팀요.”
“어차피 그럴 거면서 튕기기는…….”
한숨을 크게 내쉰 마르코가 밸라드를 돌아보았다.
“자, 이제 끝났지? 찬성 세 표. 반대 한 표야.”
밸라드의 인상이 구겨졌다.
“빌어먹을 투표.”
“어이, 화이트의 규율을 무시하면…….”
“알아. 내가 경비병이야.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묵사발을 내 버리는 직업이라고. 나이도 어린 게 가르치려고 들어.”
화이트 구역에서 평화롭게 살 때는 마르코도 주민과의 교우 관계가 좋은 편에 속했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간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떠올리면 얼마든지 뻔뻔해질 수 있는 게 아버지였다.
“그럼 이제부터 카드를 공유하자고. 전부 합친 다음에 역할에 따라서 재분배할 거야. 전투, 보조, 탐색 등…….”
마르코가 품속을 뒤지면서 말하는 그때 공간 이동의 소음과 함께 시로네가 착지했다.
“뭐, 뭐야!”
화이트의 참가자들 전원이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살아 있지?”
잠망경 카드로 확인한 화이트의 생존자는 분명 4명이었기에 마르코는 귀신을 본 기분이었다.
시로네가 구도자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블랙이야. 제안할 게 있어서 찾아왔어.”
“구도자…….”
브리즈가 눈을 빛내며 직업 카드를 바라보는 가운데 마르코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구도자가 나왔다고? 그래서 4대 5인 것인가? 만약 시로네가 화이트로 넘어온다면 팀을 이루는 것에 더해 수적인 우위까지 점할 수 있다. 우리가 이겼어.“
시로네가 아니꼬운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지? 설마 율법의 조화를 발동시키면서 내가 죽을 줄 알았던 거야?”
“아니, 천만에. 내가 말했잖아. 딱히 위험하지는 않을 거라고. 우리도 너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솔직하게 고백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일은 잊고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게 어때? 너까지 합류하면 승부는 화이트 쪽으로…….”
“나는 블랙이야.”
시로네가 말을 끊었다.
“다시 말하지만 제안을 하러 왔을 뿐이야. 받아들인다면 당신들에게 나쁘게 하지는 않을 거야.”
밸라드의 눈에 살기가 담겼다.
“어이, 꼬맹아. 구도자가 만능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여기는 율법이 조화를 이루는 전장이야. 우리라고 블랙처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마르코가 밸라드를 말렸다.
“잠깐 기다려. 아군이 될지도 모르는데 전투를 할 필요는 없잖아? 투표로 결정하는 게 어때?”
이번에는 시로네가 콧방귀를 뀌었다.
“투표 같은 소리 하네.”
포톤 캐논의 광자가 손바닥 위에 떠오르는 것을 본 참가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마, 마법……?”
진동하는 빛의 구체를 뿌리치듯 집어 던지자 굉굉한 소리를 내며 바위가 폭발했다.
‘구도자가 어떻게 마법을? 무기 카드인가? 아니, 카드를 꺼낸 적은 없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마법사였던 것이다.
“설마…… 블랙 팀을 죽인 게 너냐?”
그 정도의 사건이 아니고서는 블랙 구역의 참가자 4명이 동시에 사망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 블랙이든 화이트든 상관없어. 내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그쪽 4명도 마찬가지일 거야.”
섬뜩한 협박에 마르코가 입을 다물고 브리즈가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어떤 제안인데?”
시로네가 손을 내밀며 걸음을 옮겼다.
“가지고 있는 카드 다 꺼내.”
***
미궁 안드레-제1번 세계.
‘드래곤이다. 진짜 드래곤이야.’
갈리앙트 섬에서 수룡 카이오스를 본 적은 있지만 이토록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카라토르사를.’
드래곤의 왕으로 불리는 무등룡 카라토르사지만 시로네의 세계에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도 감당할 수 없을 때, 내가 감당하리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오지의 깊숙한 곳에서 영면을 취하기 전에 내뱉었다는 말만이 회자되고 있을 뿐이었다.
“카라토르사, 윤회를 기억하는 자를 찾았습니다.”
시로네를 동굴 밖으로 끌어냈던 뇌전의 드래곤이 카라토르사의 옆에 착지하며 말했다.
‘확실히 다르다.’
다른 드래곤과 달리 초리하게 매끈한 몸체였고, 날카로운 부리는 검을 연상시켰다.
“분명 그러하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도 최초의 윤회에 속할 것이다, 블리츠.”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블리츠라고? 저 드래곤이?’
카라토르사는 영면에 들어간 이후 전설이 되었지만 블리츠는 시로네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드래곤이었다.
뇌익룡 블리츠.
12사도로 불리는 1등룡 중에서도 전투력에 있어서는 단연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드래곤이었다.
초음속비행을 하며 지상에 뿌려 대는 낙뢰야말로 블리츠를 상징하는 그림이며, 시로네 또한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그 장면을 상상했었다.
“……그렇군요. 최초의 사건입니다.”
카라토르사의 경험을 흡수한 블리츠가 차가운 눈동자로 시로네를 내려다보았다.
“시간의 흐름에 타 버린 한 방울의 독입니다. 더 퍼지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시로네가 만든 결과라고는 몇몇 원시인을 살린 게 전부였지만 훗날에는 완벽하게 다른 역사로 발전할 터였다.
“당신들은 알고 있군요.”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드래곤들이 리셋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뜻했다.
카라토르사가 말했다.
“미래에서 온 자여, 우리는 윤회의 겁에서 시간을 수호하는 사도. 하지만 너로 인해 미래에 존재할 수억 명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리셋을 통해 시스템을 바꾸려고 한다면, 드래곤은 그에 대한 안티테제였다.
“책임을 통감하고 있어요. 하지만 위험에 처한 사람을 모른 척할 수는 없어요.”
그것이 시로네의 카르였다.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앞으로 또다시 네가 지워 버릴 수억 명을 위해서 사라져라.”
블리츠의 앙다문 이빨 사이에서 플라즈마의 숨결이 스산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시로네의 앞을 가로막으며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물러서라, 윤회를 기억하는 자여. 이자를 제거하지 않으면 너의 설계도도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밑사건은 시간을 수호하는 사도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였다.
“할 수 있어.”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시로네가…… 할 수 있어. 막을 수 있어.”
“막을 수 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카라토르사가 시로네를 돌아보더니 눈을 번쩍 치켜떴다.
“크윽!”
머릿속이 빛으로 차오르는 기분은 눈의 기술 클리어와 비슷했지만 그것과 차원이 다른 강도였다.
‘기억이 강제로 열리고 있어.’
일종의 정신적 해킹이었고, 시로네는 사력을 다해 카라토르사의 접속을 차단했다.
‘울티마 시스템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