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98
‘너무 강하다.’
거핀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생물 병기지만, 우주도 감당이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파계를 불허한다.
앙케 라의 명에 의해, 이미르는 천국에서 가장 두꺼운 얼음 지대인 니플헤임에 격리된다.
“흥! 좀팽이들 같으니라고.”
거핀이 다시 천국을 공격하지 않는 한, 그가 세상에 돌아올 일은 없을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진다.
1명의 인간이 천국의 벽을 부수고 쳐들어온 것이다.
훗날 가이아 항전에 준하는 무게로 역사에 기록되는 남자의 이름은…….
“스밀레!”
오젠트였다.
천국의 벽이 파괴되었을 때, 앙케 라는 무심했다.
‘세계는 안정되었다.’
여전히 우주에는 아카식 레코드에 포함되지 않은 헥사, 거핀이 머물고 있지만, 그가 무언가를 도모하기에는 천국의 세력이 너무나 강했다.
-제거하라. 신의 의지에 거역하는 자의 존재를 박탈시켜라.
나름 거창한 지시를 내린 앙케 라는, 비록 마음은 없지만, 천국의 시스템이 완벽하다는 사실에 흡족했다.
‘음?’
앙케 라의 눈이 번쩍 뜨이고, 동공이 칭 소리를 내며 진동한 것은 그때였다.
‘뭐지?’
제1천 샤마인의 벽이 뚫렸다.
필멸의 신민들이 사는 곳이기에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속도가 너무 빨랐다.
칭! 칭!
동공이 거칠게 흔들리고, 앙케 라의 신경들이 바짝 긴장했다.
타락천사의 거주지인 제2천 라키아까지 뚫린 것이다.
비록 힘이 봉쇄되었다고는 하나 그들 또한 성광체를 가진 천사들.
‘왜 이렇게 빠르지?’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근접한 생물체를 찾을 수 없었다.
마침내 앙케 라는 아카식 레코드를 열람, 세계에서 일어나는 로그를 무태의 감각으로 확인했고…….
‘인간?’
이미 인간의 형태가 붕괴되고 있는 1명의 인간을 발견하게 된다.
‘게스트 코드는 오젠트.’
제3천에 있는 화신술에 도달한 영생자들도, 제4천의 정에서 태어난 요정들도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키이이이이!”
자신의 시스템이 하위부터 격파되는 상황에, 앙케 라의 신경이 괴성을 퍼트렸다.
‘왜? 왜?’
천국의 벽에 최초로 가했던 일격은, 유구한 우주에서 한 번쯤 일어날 수 있었던 사소한 정도의 충격.
하지만 1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들어온 정보는 같은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수치였다.
“인간!”
야차의 육체로 변한 오젠트가 거인들을 뚫고 제5천의 벽을 허물었다.
앙케 라는 끈질기게 버텼다.
‘거핀이 아니다. 가이아인도 아니야. 그냥 인간일 뿐이다.’
다만 무섭도록 빠르게 가이아인에 근접해지고 있었다.
‘이어져 있을 리가 없어.’
누구나 가이아인이 될 수 있다면, 결국 앙케 라는 또다시 모든 인간을 제거해야 하므로.
‘그렇기에 지켜본다.’
마치 거핀이 담판을 짓기 위해 왔을 때처럼 승부를 걸 생각이었다.
‘제6천 제불에 진입.’
우주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가진 천사들인 만큼 오젠트의 돌진력도 약해졌다.
‘잡았나?’
확신할 정도로 약해진 것은 아니었기에 괄목할 데이터를 기다리는 순간.
‘아니야.’
이 세계에 없는 충격, 즉 아카식 레코드에 존재하지 않는 신호가 대세계전을 강타했다.
‘이데아!’
이어진 것이다.
“안 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던 끔찍한 사건이 앙케 라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넣었다.
대세계전을 통째로 떼어 내어 우주 공간 어느 행성으로 이전시켜 버린 것.
그리고 잠시 후, 천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데아의 신호가 포착되었다.
‘일단은 지켰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어서는 안 된다.
만약 오젠트가 거핀과 접촉하면, 이 세계에 울티마 시스템이 다시 머리를 들이밀 것이다.
“오라, 이미르.”
지시가 내려지는 즉시 아라보트의 벽을 무너뜨리고 이미르가 다가왔다.
몇 번의 도약으로 왔지만, 그가 발을 내디뎠던 자리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로그를 확인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흥.”
이미르는 인사 대신 콧방귀를 뀌었다.
니플헤임에 격리당한 앙심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미르, 천국에…….”
“알고 있습니다. 뭔가 왔었죠.”
이미르의 감각은 100억 명의 가이아인의 통찰력으로 만들어진 것.
“저를 부르신 것을 보니, 신께서도 상당히 초조하셨나 보군요.”
어째서 이미르는 앙케 라에게 까칠한 것일까?
가이아인은 사라졌어도 그 혼은 남아 있지 않은가 하는, 비논리적인 생각이 잠시 스쳤다.
“예를 갖추어라. 방종은 용납할 수 없다.”
이미르가 무릎을 꿇었다.
“명을 받듭니다.”
“그를 제거해라. 네 임무는 그것뿐이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앙케 라가 덧붙였다.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지 않나?”
비로소 이미르가 반응했다.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실망을 했는지는 당신도 아실 텐데요.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강하다는 것은, 다시 말해 두 번째로 강한 것보다 월등하게 강하다는 것은…….
‘존재할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수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결국 이미르의 손에 으스러졌을 뿐.
아슈르도, 손오공도, 제우스나 베히모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의 결핍을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이제 다들 늙어 빠졌어. 멀쩡한 놈은 아슈르 정도.’
“마음을 다루는 인간이다.”
앙케 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이미르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
“마음?”
거핀이 떠올랐다.
“가라. 어쩌면 그곳에서 네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 정도란 말인가?’
생각에 잠긴 이미르가 돌아섰다.
“보내 주시죠.”
“……거인의 왕임을 증명하라.”
앙케 라의 목소리가 고막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미르의 좌표가 우주 저편으로 날아갔다.
훗날 시로네가 살게 되는 행성에서 우주 최고의 박투가 벌어졌다.
그의 이름은 오젠트.
거핀 외에 처음으로 이미르에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밀레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
이미르는 안타까웠지만, 앙케 라의 말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아라보트로 돌아왔을 때 앙케 라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담겨 있었다.
“여지를 남겼구나.”
“오젠트를 제거하는 것. 그게 전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일단은 그렇다.
“어떤 보상을 받고 싶은가? 니플헤임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싶다면…….”
“아니.”
이미르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나를 가둘 수 있는 감옥 따위는 없습니다. 알고 계실 텐데요?”
“…….”
“더 이상 싸우지 않을 겁니다. 싸우고 싶은 기분이 들 때까지는.”
“너는 거인의 왕임을 증명했다. 앞으로 네가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이미르가 검지를 내밀자 손톱이 길게 늘어나며 액체처럼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손톱 하나 정도는…… 남겨 두고 가겠습니다.”
검지의 손톱이 빠지고, 본체의 옆에 탄생한 이미르의 부분이 앙케 라에게 다가갔다.
“모든 업무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하명하십시오.”
천국 확장이 가속화되는 시기인 만큼 이미르는 무수한 적과 싸워야 한다.
‘손톱 하나?’
아마도 충분할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분화를 되풀이할지는 모르지만, 본체가 깨어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이미르의 본체는 아라보트를 떠나 다시 니플헤임의 가장 깊은 곳에 잠겼다.
그와 공생하는 수오이들이 반갑게 모여들어 세상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후후.”
우주 먼 곳에 두고 온 어금니의 빈자리를 혀로 핥으며 이미르가 웃었다.
‘지켜보고 있으마.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오젠트 스밀레.
지식은 역사에 담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시로네는 우주의 거의 모든 역사를 받아들인 상태였다.
‘지식의 척추.’
오젠트 가문의 대도서관에서 시작된 원대한 사업이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시로네의 심층에 있는 지식의 서고는 4차원으로 확장되어 공간의 제한이 없어지고.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지식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시간마저 공간에 결합된 5차원 다중 큐브의 형태로 탈바꿈해 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어.’
만약 아리우스가 다시 심층에 들어간다면 오직 이 사실만을 깨달을 수 있을 터였다.
‘모든 지식은 하나에서 탄생했다.’
신神.
그리고 마침내, 신의 뇌를 가진 시로네는 역사의 마지막을 눈앞에 두게 된다.
오메가 999년.
천국은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았다.
모든 게 평화로웠고, 이대로 진행되면 어느 행성에서는 앙케 라를 모델로 공겁의 시스템을 만들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터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문제는 인간이었다.
“어째서!”
백경의 테이블에 앉은 7명의 대천사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째서 행성마다 반역을 도모하는 것인가? 이거 뭐, 유행이야? 모든 걸 다 해 줬잖아! 영생도, 그들이 추구하는 파라다이스도, 모두 만들어 줬다고!”
“인간이니까.”
사티엘이 독기를 품고 말했다.
“생명의 술을 만든 것부터가 잘못이야. 인간을 믿어? 그것들은 언제나 신을 전복시킬 생각만 하는 존재라고. 자기 머리 위에 누가 있는 꼴을 못 보는 족속들.”
카리엘이 쏘아붙였다.
“내 생명의 술에는 문제가 없어. 지금까지 수많은 종족들이 앙케 라를 따르지 않았는가?”
“권위.”
유리엘이 내뱉었다.
“권위가 없다.”
“내가 부족하다고?”
“그런 뜻이 아니야.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들 말이야.”
모두의 시선이 비어 있는 천사장의 자리로 향했다.
“이카엘.”
앙케 라가 리셋을 하지 못한 이유는 거핀에게 두 번의 기회를 줄 수 없기 때문.
결국 부분적으로 사건을 도려낼 수밖에 없었고, 그 후유증은 높은 정신체를 가진 존재일수록 심하게 생겼다.
‘분명 뭔가 있어. 아주 끔찍한…….’
선명한 기억은 없어도, 성광체에 생긴 공백의 형태를 토대로 유추하는 건 가능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아이를 낳았다거나.’
카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비논리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 또한 기억 말소의 후유증일 것이다.
“…….”
그럼에도, 공백의 형태는 너무나 불결했다.
유리엘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이카엘이 필요하다. 백경이 완벽하지 않고서는 권위가 서지 않아.”
현재 이카엘은 모든 권능을 잃고 아라보트의 첨탑에서 벌을 받고 있다.
그 벌이란 다름 아닌 반역을 일으킨 행성으로 날아가 문명을 파괴시키는 것.
오직 그때만이 이카엘은 힘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천사들은 어째서 그것이 벌인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