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rid the White Deer RAW novel - Chapter 35
00035 [아홉 번째 역] 헥트르 에이버리 =========================================================================
이름을 듣자마자 이해해버렸다. 아델 저 계집의 가학성애는 스스로가 가해하는 것을 넘어서 학대당한 놈들에게까지 동했다. 헥트르라는 그 남자의 흉터자국에서 어떤 이끌림을 받았는지도. 리건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욕정의 방식이지만 그걸 옳다 그르다 따지기에는 그 역시도 도덕적인 기준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차치하고. 그냥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냐 하면, 좆같았다. 왕실에 속해있는 놈은 결혼이 자유롭지 않다. 뿐만 아니라 헥트르 에이버리라는 놈은 천재음악가라 알려져 있지만 평민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제인 백작이 노발대발할 것이 훤했다.
아델은 거의 숨이 넘어갈 듯 울면서 어떡하냐는 말만 반복했다.
피식피식 웃던 리건은 끝내 고개를 떨구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 헥트르라는 새끼가 의외로 계집 후리는 법을 아는 놈인지도 모르겠다. 파르네세의 딸을 꾀어냈다가 그 꼴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제인 백작의 딸이라니.
아델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웃는 리건의 무심함이 끔찍하다는 듯 그를 홱 밀치고 일어섰다. 리건이 아델의 가는 손목을 낚아채 움켜쥐었다.
“그 놈이 어떻게 꼬셨어?”
리건이 음습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약까지 하고서 흉흉하게 눈을 번들대는 리건의 기세가 지나치게 위협적이었다. ‘놔!’ 소리친 아델이 손목을 비틀어 빼내려 했지만 리건은 더 세게 끌어 당길 뿐이었다. 대니얼이 말리려 해도 소용 없었다.
“야, 야, 너 맛 갔냐고. 왜 이래?”
“아델 제인, 묻잖나. 그 놈이 너한테 뭐라고 하면서 추파를 던졌는데. 아무리 그래도 평민인데 네가 먼저 추잡스럽게 매달리지는 않았을 거 아냐.”
아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리건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을만큼 창피한 상황이었다. 술이 좀 들어갔다. 밤사교회에서는 그렇게나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벤트리 때문에 화가 좀 났다. 공식 석상에서 마주친 일도 별로 없고, 가문끼리도 그다지 돈독하지 않아 함께 있을 수는 없었지만 지순한 양처럼 얌전한 계집들 사이에서 의젓하게 서있는 모습이라니. 제가 시키면 바닥도 핥을 놈이.
빈정이 상해서 피로연 중간 중간에 몰래 약을 좀 했다. 그러다가 피로연의 막바지에 이르러 악단을 정리하고 돌아가려던 남자와 마주쳤다. 얼굴과 손발이 흉터투성이인 남자였다. 아델은 정말로 괴상한 성벽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흉터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몇 마디 슬쩍 말을 붙여보니 점잖고 순한 사람이었다. 부러 쓰러진 척 매달려 단 둘만 있을 수 있는 공간으로 유도해 먼저 유혹했다. 남자에게 고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아델의 특기였다. 백작 영애나 되는 아델의 명령에도 한참을 발을 빼고 물러나려던 남자는 걸국 꺾였다.
아델의 침묵이 길어지자 대니얼이 눈치 채고 헛웃었다.
“너 설마, 네가 먼저 달려들었냐?”
아델의 손목을 더러운 것 털어내듯 툭 놓은 리건이 소파에 뒷목을 푹 기대며 입술을 핥았다.
“왕실 소속이면 일이 더 더럽게 되겠지만 자업자득이니 한 번 만나서 얘기라도 해보지 그래?”
입매를 비틀어 웃은 리건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길길이 날뛰는 아델과 그런 아델에게 진정하라며 매달리는 대니얼을 뒤로하고 응접실을 나섰다.
“대니, 내일 아침에 떠날 테니까 마차 준비해.”
‘내가 네 시다냐!’ 대니얼이 성질을 부리는 소리가 났지만 무시했다. 들리지 않았다.
*
그가 타고 온 말을 버리고 대니얼의 마차를 택한 것은 약을 하기 위해서다. 아침에 떠난다고 했지만 일어난 시간이 정오 근처였던지라, 리건은 해가 저물녘에나 출발했다. 아델은 다시 돌아가고 없은 후였다. 그대로 코로 가루를 흡입했다. 무심히 스치는 창밖의 풍경을 응시했다. 어느덧 봄이라고. 마차창밖으로는 연둣빛 평원이 펼쳐져 있다.
파블리아 저택에 도착한 것은 별이 뜨기 시작한 늦저녁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흡입하던 약에 취해 리건은 마부에 의해 거의 업히다시피 내려져, 그의 방으로 옮겨졌다. 소식을 듣고 그를 마중 나온 잉그리드가 걱정 어린 손길을 보냈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기억나지 않는 말을 떠들다가 이불에 얼굴을 비비며 널브러져 있던 리건은 한밤중에 이르러서야 잉그리드가 그의 몸을 닦고 있다는 걸 알았다.
리건과 눈이 마주친 잉그리드가 조용히 수건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리건, 끼니 거르고 다니는 건 아니죠? 왜 이렇게 얼굴이 야위었어요. 식사라도 할래요?”
아, 다정한 목소리였다. 내 부인, 내 부인.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훌륭한 여자가 제 부인이다. 세상에서 제일 쓰레기같은 새끼의 부인이 이 여자다. 리건이 잉그리드의 손목을 잡아 침대로 끌어당겼다. 아직 잘 준비를 하지 않았는지 딱딱한 코르셋이 느껴졌다. 리건은 금세 거칠어지는 숨을 길게 내쉬며 잉그리드의 뺨에 얼굴을 비볐다.
“리건.”
잉그리드는 리건에게 안긴 채 어색한 자세로 굳어졌다. 그녀를 위에서 짓눌러 안은 리건의 딱딱해진 중심이 선명하게 느껴진 탓이다. 조금 전 그를 닦아주느라 상의를 탈의시키고, 하의도 간소한 속옷만 남겼다. 맨살이 닿는 느낌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잉그리드는 리건의 뒷머리를 다독이듯 어루만졌다.
“밖에서 안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리건이 픽 웃고 말았다. 제가 약을 하는 이유가 좋지 않은 일들이 있어 한다고 믿기라도 하는 걸까. 그냥 정신나간 중독자를 알아서 포장해주니 사양할 이유는 없지만 그냥 웃겼다. 리건이 목덜미에 대고 키득키득 웃자 잉그리드가 간지럽다며 몸을 틀었다.
“……그래, 그동안 뭐 하고 지냈나?”
리건이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비비며 물었다. 낮게 갈라진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스스로가 놀랄만큼 가증스러운 다정함이 배 있었다.
“그냥 공저 일을 돌보고, 아, 요헨 도련님이 다음 주에 한 번 올라오신대요.”
“그거 말고는.”
“헤젠 씨가 편지를 보냈는데 확인하지는 않았어요. 제 어머니가 옷감을 좀 챙겨 보내주셨고…… 읏, 근데 리건, 나 이렇게 눌려서 허리가 아파요.”
묻는 대로 조잘조잘 대답하는 입술을 그대로 삼켜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입술 대신 그녀의 턱을 핥았다. 엷은 분내가 났다. 하지만 불쾌하기는커녕, 그 분내 안에 스민 기분 좋은 깨끗한 향기에 이성의 끈이 점점 팽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씻고 올게요.”
리건이 잉그리드의 백금발을 한 손으로 거머쥐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해.”
“하지만.”
“그냥 해. 응?”
리건의 손이 드레스의 끈을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간감이 떨어져 자꾸만 헛손질을 하고, 바닥으로 툭툭 손이 떨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던 잉그리드가 웃기 시작했다.
“지난 번에 그렇게 풀다가 엄청 오래걸린 거 알아요?”
“그럴 리가. 네 남편이 여자 옷 벗기는 건 자신 있는데.”
“하여간……. 비켜보세요. 하녀에게 도와달라고 해서 벗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잉그리드가 리건의 어깨를 밀어냈다. 리건은 눈앞을 어른거리는 백금발을 쥐기 위해 몇 번이고 허공에 손을 들었다가 떨어뜨리곤 웃었다.
침대 헤드에 기대어 문간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전에 없는 욕망이 떠올랐다. 하녀 두 명이 들어와 잉그리드의 드레스 끈을 풀어냈다. 늘씬하게 빠진 종아리 아래로 옷이라 불리는 것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코르셋의 끈까지 풀어낸 잉그리드는 완전한 나신이었다. 백금발이 흘러내려 그의 젖가슴의 일부를 가렸다. 리건은 보는 것 만으로도 돌아버릴 것 같은 사정감에 고개를 젖히고 숨을 골랐다. 잉그리드는 하녀들을 내보낸 후 침대로 다가왔다. 리건이 그녀를 끌어안고 무작정 허리를 밀착해 비볐다. 이미 단단하게 발기해있던 그의 것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
지난 며칠 간 참아 눌렀던 욕구가 그대로 폭발해버릴 것만 같다. 젖지 않은 잉그리드의 다리 사이로 손가락을 비벼보았다. 뻑뻑했다. 리건은 본디 섹스 중에 입술로 여자를 음부를 애무해주는 것을 싫어한다. 어떤 새끼가 들락날락거렸을지 모를 곳에 입술을 대고 혀를 놀려댄다 생각하면 늘 흥이 식었기 때문이다. 섹스 중에 키스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이유다.
하지만 지금 마음이 급했다. 충분히 젖게 만들기에는 인내의 끝이었다. 그대로 넣고 흔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잉그리드를 눕히고 아래로 내려간 리건이 그대로 잉그리드의 하얀 다리를 벌렸다. 그녀가 깜짝 놀라 다리를 오므리려 했다. 리건은 그녀의 엉덩이부터 그 위의 여린 속살과 말랑하게 튀어나온 돌기까지를 길게 혀로 핥고, 빨아 문질렀다.
“흐, 으읏! 그, 그러지……!”
잉그리드의 머리가 그의 머리칼을 쥐어 잡았다. 그의 혀끝이 돌기를 느리게, 강하게, 약하게 문지르고 빨아올릴 때마다 자지러지는 것 같은 신음은 더 커졌다. 하얀 허벅지에 입맞추고, 젖어들기 시작하는 살 틈으로 혀끝을 찌르듯 밀어 넣었다. 흐윽! 잉그리드의 신음이 크게 울렸다. 리건은 혀끝으로 잉그리드의 속살을 맛보았다. 정신이 나가서인지, 아주 달게만 느껴졌다. 빨고, 핥고, 입맞추는 동안 그는 그도 모르게 한 번 사정했다. 속옷이 젖은 것도 사정 후에야 알아차렸다. 어쩐지 기분이 더럽게 좋더라니. 하지만 금세 다시 커졌다.
잉그리드의 신음이 커지고, 허벅지가 간헐적으로 움찔대며 떨렸다. 비비듯 얼굴을 문지르고 빨고, 핥아낸 리건이 입술을 떼고 몸을 세웠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 잉그리드의 살틈 안에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이 여자가 그와 하기 전에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 어떻게든 더 축축히 적실 것이다. 부드럽지만 예고 없이 밀고 들어온 손가락에 잉그리드의 엉덩이가 움찔했다. 리건은 느릿이 두 개의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길을 다졌다.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덮은 잉그리드의 손을 떼어내며 그녀의 가슴에 한번 입맞추며, 몸을 그녀의 다리 사이에 끼워 넣었다. 잉그리드는 몇 번 경험했다고 익숙한지 얌전히 다리를 벌렸다. 리건은 정액으로 죄 젖은 성기를 속옷으로 한번 훔쳐 닦아낸 후, 속도 조절 없이 한번이 푹 밀어 넣었다.
“……읏.”
씨발, 절로 욕지기가 치밀었다. 너무 따뜻하고 부드러워 지난 며칠간 그를 괴롭히던 뭔가가 녹아내렸다. 느리게 허리를 뺐다가 천천히 다시 깊숙이까지 접합했다. 뿌리 끝까지 박히도록 바짝. 입술을 꾹 문채 눈만 질끈 감은 잉그리드의 뺨을 당겼다. 숨을 하닥이는 잉그리드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리건은 그녀의 안에서 미친 듯이 꺼덕대는 자신의 물건을 느끼고 다시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아, 좆같이 좋다. 약에 취해 하는 섹스는 역시 좋다. 잉그리드의 가는 허리를 끌어 안으며 속삭였다.
“이렇게나 가는데 굳이 코르셋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리……윽, 리건, 나 숨이, 숨이……”
잉그리드는 아랫배를 꽉 채운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리건의 등을 손끝으로 긁듯 문질렀다. 버거운 듯 크게 가슴을 오르내린다. 리건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매달리듯 그를 끌어안았다. 아, 좋다.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잉그리드의 연한 살이 끈질기게 그의 성기를 쥐어 당기고, 밀어내는 느낌이 늪처럼 숨이 막혔다. 리건의 허릿짓이 점차 거세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뒤엉켜있다 사정감의 극치에 이르렀을 때, 리건은 거의 무의식으로 성기를 빼냈다. 그의 커다란 성기 끝에서 울컥대며 터져나온 정액이 침대 시트를 더럽혔다. 잉그리드는 숨을 헐떤거리며 누운 채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리건은 나른한 여운을 만끽하기 위해 그대로 잉그리드의 옆에 누워 그녀의 허리를 어루만졌다. 잘록하게 푹 꺼진 허리 끝에 그의 검지 손가락이 걸렸다.
리건은 그녀를 더 구석구석 만지고 싶었다. 그의 손이 아래로 내려가 잉그리드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문지르려 하자, 잉그리드가 조금 당황해하며 몸을 피했다.
“민망해요.”
조금 전까지 그에게 매달려 신음하던 여자는 아직도 부끄럽다며 몸을 뺐다. 새삼스러운 거리감에 리건의 정신도 조금씩 돌아왔다. 무안해진 손을 거둔 리건이 침대 맡 협탁으로 손을 뻗었다.
잡히는 수건으로 대충 손을 닦아낸 후, 협탁 서랍을 열어 상비해둔 시가를 꺼내 물었다. 리건이 성냥을 찾아 일어섰다. 이불로 대충 가슴까지만 가리고 앉은 잉그리드가 물끄러미 그에게 물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많이 취하셨던 것 같은데, 건강 상하세요.”
“우울한 날에는 봐주지 그래?”
리건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피식 웃었다. 치익. 성냥의 불이 시가 끝을 태웠다. 잉그리드는 부옇게 번지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리건은 가운만 하나 대충 걸친 후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제게 향해 있는 잉그리드의 시선을 알아차린 리건이 말했다.
“네 가족들 중에 흡연자가 있나?”
“큰오빠를 빼면 전부 다 해요.”
“신기한 거 보여줄까. 에드원 파르네세가 보여준 적 있을지도 모르겠군.”
“뭔데요?”
리건이 연기를 뻐끔 뱉어내며 도넛 모양을 만들어보였다. 잉그리드가 눈을 크게 깜빡이더니 곧 까르르 웃었다. 이불에 얼굴을 비비며 나른히 대꾸한다.
“리건, 가끔 정말 아이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