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14
63장. 네 번째 천벌(1)
오후 5시 15분.
천벌의 발생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15분.
나와 삼차사는 세 번째 천벌 때 썼던 탈을 쓰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금방이라도 폭우가 내릴 듯했다.
우르릉!
콰아아앙!
이윽고 하늘이 쪼개진 것처럼 천둥번개가 치더니, 물 폭탄이라도 터진 양 사방에서 막대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게 주몽 그놈이 준비한 비라는 거지?”
할미탈을 쓴 호구별성이 손바닥으로 빗물을 받으며 말했다.
도깨비가 만든 탈은 체형도 바꾸어주므로 그녀의 등은 노인처럼 조금 굽은 채였다.
“물 쓰는 놈이라더니, 아주 화려하게 등장하시는구만!”
“흐음, 단시간에 이 정도의 비를 내릴 수 있는 도사는 많지 않지.”
팔짱을 낀 사라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백정탈은 쓴 그는 평소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커진 데다 목소리도 쉰 것처럼 거칠었다.
“예고에 없던 비라 다들 소나기인 줄 알겠지만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로 내리면 다들 수영장에서 나와서 대기하겠죠. 남아 있으려는 사람들도 안전요원들이 제지할 테고.”
인벤토리에서 세계수의 씨앗을 꺼냈다.
[ 세계수의 씨앗(L) ]– 세계수의 정기가 담긴 씨앗.
– 해당 개체에 세계수의 정기를 담아 효과를 증폭시킨다.
이것을 사용하면 세 번째 천벌에서 그러했듯 지옥수의 힘을 빌려와 도산지옥의 힘을 최대로 증폭시킬 수 있다.
지켜야 하는 사람의 수만큼 강해지는 힘이니, 이번에도 천벌을 쓰러트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다만 문제는 내가 천벌을 상대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까지 전투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천벌은 단군이 미리 참사를 예고하여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집 안에 머물렀다.
단군이 언급하지 못한 병원에서의 천벌 역시 늦은 시간에 발생했기에 다들 건물 안에서 대기할 수 있었다.
한데 이번 천벌은 단군의 예고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시간대마저 초저녁이었다.
이대로는 사람들이 천벌과의 전투에 휘말릴 가능성이 컸다.
-오빠, 주몽의 개입은 불가피할 것 같아요.
천벌의 진행을 미리 살피던 바리도 그것을 염려했다.
-그는 이미 네 번째 천벌의 판을 짜놨어요. 자신이 염라를 대신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겠다고요.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지금도 주몽과 별로 얽히고 싶지 않았다.
하나 내게는 천벌을 쓰러트릴 힘은 있을지언정 전투의 여파에서 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즉, 지금으로선 주몽이 끼어드는 것을 내버려 두어야만 했다.
겨우 그가 꺼려진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들을 위험하게 만들 순 없으니까.
“대왕님, 신성이 느껴집니다.”
생각에 잠기던 때 강림 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비탈을 쓴 그는 원래보다 훨씬 체구가 작고 가늘어진 상태였지만, 늘 그러했듯이 수상함을 감지하자마자 나를 가리고 섰다.
“놈이 빗물을 움직이고 있군요.”
형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일자로 쏟아지던 빗줄기가 이리저리 휘어지면서 문자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쏟아지는 폭우로 주변이 뿌예 보이는 와중에도 허공에 뜬 문자만큼은 빛을 발하는 양 선명했다.
이윽고 완성된 메시지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먼저 나서도 신경 쓰지 마세용~~ (≧∇≦)/
“미친놈, 이거 말투 왜 이래!”
나만 당황한 게 아니었는지, 호구별성도 문자를 삿대질하며 독기를 뿜었다.
-이번 천벌의 공은 모두 대왕님께 돌리겠습니당~ d-(^.^)z
“이 새끼, 이거! 신이 우습냐!”
“뭐, 놀라울 것 있겠느냐.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도사는 하나같이 신을 우습게 여기기 마련이거늘.”
사납게 인상을 쓴 호구별성 옆에서 사라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역천. 인간의 몸으로 신의 경지를 좇는 게 그들의 본능이니까 말이다.”
바리네 조부모를 살릴 때도 느꼈지만, 오천 년을 살아온 그는 도사들에 대해서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모든 도사는 신의 경지를 좇던 끝에 결국 우주가 부여한 한계와 맞닥뜨리게 된다.”
사라가 여상하게 말을 이었다.
“온 힘으로 지나온 세월마저도 사실은 우주가 부여한 운명에 따랐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 게지.”
가만히 듣고 있으니 헬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주의 인과를 읽어 미래를 설계하는 자들이라면 언젠가는 모두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이지.
-내가 완성한 것은 그저 더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조각일 뿐이었다고.
그녀의 목소리에 겹쳐 사라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가 오면 거의 모든 도사들은 우주를 저주하며 비참하게 죽는다.”
-그때가 오면 거의 모든 마법사들은 오딘과 같은 얼굴로 파국을 맞이한단다.
역시 헬의 그 말은 마법사뿐만 아니라 도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을까.
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사라에게 물었다.
“도사들은 원래 반드시 우주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었나요?”
내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도사는 바리와 단군이었고, 그들로 미루어 보아 도사란 끝말잇기를 할 때마저 우주의 뜻에 따라 정해진 그대로를 실행하는 존재들이었다.
한데 그런 이들이 끝내는 우주가 부여한 운명을 부정하게 된다니.
“그러니까 인간이지.”
내 물음에 사라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우주가 부여한 힘을 누릴 때는 우주에게 고개를 조아렸으나, 우주가 부여한 한계에 부딪치면 그 운명을 부정하는 모순.”
아무런 감흥 없이 인간을 관조하는 신의 어투였다.
“대부분의 도사들은 그렇게 죽는다.”
“대부분이라고 하신다는 건…….”
나는 그의 말을 듣다가 무심결에 내뱉었다.
“그렇지 않은 도사들도 있다는 뜻이군요.”
그러고는 새삼 생각했다.
탈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탈 아래 감춰진 내 얼굴은 이 순간 무척이나 인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테니까.
“정해진 운명대로 살게 되는 것은 결국 같아.”
내 물음에 사라가 마저 말했다.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바꿔보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받아들이느냐의 차이다.”
“발버둥 치다가……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건가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더니, 사라가 말을 멈추고 날 바라봤다.
“그래. 발버둥 치다가도 결국 때가 되면 받아들이고 그대로 따르게 된다.”
험상궂은 백정탈 너머로 신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바라보던 그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대로 실행하는 거야.”
결국은 그대로 따르게 된다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럼 대부분의 도사들과 그렇지 않은 도사들의 차이는…… 정해진 운명을 바꿔보려고 하느냐, 아니면 바꿔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따르느냐 하는 것뿐이군요.”
-너의 그림을 완성했을 때, 너는 오딘과 같이 비참한 얼굴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헬의 그 말은, 내게 바꿔볼 생각조차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는 뜻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사라가 피곤하다는 듯 고개 저었다.
“그래서 운명을 부정하는 때의 도사는 몹시 성가시지.”
탈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 어조만으로도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거짓말은 물론, 때로는 삿된 일마저도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르니까.”
그는 수많은 도사를 봐온 만큼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바리네 조부모를 살릴 때도 삿된 것이 깨어나면 곧바로 다시 죽여야 한다고 단언했으리라.
“거짓말과 삿된 일…….”
사라의 말을 되새기듯 중얼거렸다.
“정해진 운명을 부정하는 대가가 그런 거군요.”
중얼거린 끝에 작게 숨을 삼켰다.
자칫 내가 벌해야 할 것들을 아주 약간이라도 연민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탓이었다.
“뭐, 거의 모든 도사는 그렇다.”
사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백정탈 탓에 체격이 커져서인지 평소보다 과장되어 보이는 몸짓이었다.
나는 그 태도에서 그가 일부러 그건 도사들의 일이라고 선을 긋는다고 느꼈다.
“어쨌든 더 위를 추구하는 것은 도사의 본능이야.”
도사의 본능.
그 표현에 문득 바리가 떠올랐다.
-오빠. 저 사람, 정말 하늘이 내린 기재예요.
세 번째 천벌이 예고되었을 때 단군을 가리키던 바리.
-그래서 더, 저 사람과 겨뤄보고 싶어요.
속세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소녀의 눈이 드물게도 열기로 달구어지던 순간을.
-정말…… 이런 기분은 처음인데, 내가 저 사람만큼 천기를 읽을 수 있는지 궁금해.
신의 영혼을 이어받은 소녀마저 그러하였으니, 애당초 도사의 타고난 본능이라는 말은 그리 어렵지 않게 수긍이 되었다.
“그렇게 본능에 따라 위를 추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신도 우습게 보는 때가 오지.”
“그럼 저 주몽인지 주둥이인지 저놈도 신을 아주 우습게 보는 게 맞단 거네.”
가만히 듣고 있던 호구별성이 짜증스럽게 빗물을 가리켰다.
-대왕님 빨리 단말기로 화면 켜주세용 \(^▽^)/
사라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주몽의 메시지가 또 한 차례 변했다.
-제가 열심히 길 닦아 놓을 테니까 지켜봐주세용 (^^)7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보긴 해야 합니다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떨떠름함을 느끼며 단말기를 꺼냈다.
천벌이 시작되면 모든 매체의 방송이 중단되면서 천벌의 실시간 중계가 시작된다.
주몽이 먼저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천벌과의 전투를 시작할 수 있으니, 중계를 지켜보면서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봐야 했다.
다만 수만 명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저리 가볍게 나오는 상대와 합을 맞춰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팟!
헌터 전용 단말기를 허공에 띄우고 아무 채널이나 틀었다.
지난 천벌은 모든 채널에서 시계만 띄우고 있었지만, 이번 천벌은 예고되지 않은 터라 기존에 편성된 방송이 그대로 나오고 있었다.
“아직 화면을 띄우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럼 역시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단 건데…….”
곧 천벌이 중계될 화면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주몽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불쾌했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을 지켜야 할 상황에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에서 그다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어라 표정이 안 좋으시네 내가 못 미덥나 봐 (´• ω •`)
그런데 그때 허공에 띄운 단말기 위로 빗물이 새로이 문자를 그렸다.
-걱정 마세요! 저는 천재라서 실수 따윈 없답니다! d(≧∇≦)o
“……표정이 보인다?”
어딘가에서 날 지켜보고 있다는 것까지야 그렇다 쳐도, 지금 나는 우리 대왕님의 모습으로 바꿔주는 탈을 쓰고 있었다.
한데도 주몽이 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듯 말하자 형은 지체 없이 으르렁거리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아뇨, 그냥 허세일 수도 있어요.”
나는 그런 형을 달랬다.
“아마 어지간히 제 성질을 긁고 싶은가 봐요.”
일부러 아무렇지 않게 넘겼더니 형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화면만 주시했다.
물론 내 앞을 가리고 선 몸에는 어느새 검푸른 신성이 휘감긴 상태였지만.
“시간이 됐다.”
가만히 지켜보던 사라가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가리켰다.
폭우를 내리는 먹구름 사이로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의 문이 열렸어.”
그와 동시에 허공에 띄웠던 단말기에서도 천벌의 생중계가 시작되었다.
-뭐야?!
-어어?
-어?!
비가 그칠 때까지 잠시 천막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는 모습.
-하늘 저거 뭐야?
-숫자?!
-미친, 야 저거 설마……!
‘34,247’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자비한 숫자.
-잠깐, 잠깐만!
-괴물?!
-저런 게 갑자기 왜?
하늘 위의 거대한 문에서 내려오는 무언가.
-잠깐만, 물이 왜 저래?
-저기 수영장도!
-빗물 좀 봐! 이상해!
그리고 쏟아지는 비로 인해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와 풀 가득 차 있던 물에서 돌연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몸을 일으키는 장면까지.
하나하나 고스란히 화면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