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23
66장. 영웅과 악(1)
“그래도 금방 꼭대기까지 왔네.”
5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앞에서 호구별성이 팔짱을 꼈다.
그녀의 추측대로 전갈, 도마뱀, 두꺼비 귀물을 차례로 쓰러트리며 올라왔다.
바리가 공간을 왜곡하는 주술을 파훼한 덕에 우리는 더 이상 흩어지지 않았다.
귀물은 내가 우주퇴적물을 되돌리는 영웅담으로 처리했다.
독사지옥의 독사는 강림 형이 지옥의 신성으로 상대했으며, 독이 깃든 자잘한 함정은 호구별성이 제거했다.
모두의 합이 잘 맞은 덕에 1층보다 훨씬 수월한 공략이었다.
두 차사 덕에 나는 영웅담을 쓴 것 외에 마력의 소모도 거의 없었다.
이제 수로왕의 코앞까지 왔지만 전력은 최대치에 가까운 상태였다.
새로이 층을 오를 때마다 수로왕의 업이 살갗을 기어오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광경이 보고 싶다는 흥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지극히 관조적인 시선을.
“수로왕은 카르마 등급 필드에서 오빠를 상대할 생각이에요.”
바리가 차분한 눈으로 말했다.
“오빠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몸을 뒤로 물렸다.
“앞장서겠습니다, 대왕님.”
바리가 물러서자 강림 형이 계단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마지막은 나와 수로왕의 생사결이 될 터인데도 그는 변함없이 나를 보호하며 발을 내디뎠다.
끼이익.
5층으로 통하는 쇠문을 열자 아래와 별다를 것이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사방이 창살로 둘러싸인 감옥 한가운데에 작은 의자만이 놓여 있을 뿐.
쿠션 하나 없는 의자는 몹시 딱딱하고 불편해 보였다.
“뭐야, 저것들은.”
주변을 둘러보던 호구별성이 창살을 가리켰다.
“쟤네는 왜 안 잡아먹었지?”
창살 안에는 투명한 탯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여러 명의 혼들이 함께 묶인 모습이었다.
혼과 탯줄이 이미 귀물에게 잡아먹힌 아래층과는 확실히 다른 상태였다.
“……!”
나는 호구별성이 가리키는 혼들을 살피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아니야, 이건 혼이 아니라 생령 같아요.”
산 채로 귀물에 먹혀 우주퇴적물이 되었던 혼들과 달리 그들에게서는 분명한 생의 기운이 느껴졌다.
“하나 생령이라기에도 무언가 이상합니다, 대왕님.”
강림 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생령은 혼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육신에서 기를 뽑아낸 것에 가깝지요.”
검푸른 신성을 발한 그가 서늘한 눈으로 사방에 널린 혼들을 주시했다.
“한데 이것들은 분명한 혼입니다.”
천 년을 차사로 살아온 그도 이런 것은 처음 본다는 어투였다.
“도사들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부렸던 사술(邪術)이다.”
그때 사라가 끼어들었다.
“육신이 기능을 다하기 전에 영육을 분리해서 이승에 묶어놓은 거야.”
“영육을 분리해요?”
나만 처음 듣는 개념이 아니었는지 다른 두 차사도 곧장 사라를 주목했다.
“육의 기능을 다함과 동시에 영육이 분리되는 게 죽음이니까. 이 사술은 미리 영육을 분리한 뒤 주술로 육의 기능이 멈추지 않게 하여 죽음을 피하는 것이다.”
사라가 무심히 말을 이었다.
“그리 유지한 몸에 다시 혼을 되돌리면 끝이다. 명부에 적힌 죽음을 피한 게지.”
“그런 게…… 가능하다고요?”
예정된 죽음이 지나갈 때까지 잠시 영과 육을 분리시켜서 죽음을 피한다니.
생각지 못한 방식에 놀라는데 사라가 코웃음을 쳤다.
“가능할 리 없지.”
짧게 내뱉은 그가 마저 설명했다.
“그런 식으로 다시 육신에 돌아가 봤자 이지를 잃고 욕망만 남은 무언가가 될 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도사들도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던 사술이야.”
신의 눈이 건조하게 생령을 훑었다.
“보아하니 세월이 흘러 같은 방법을 시도한 모양이구나.”
“…….”
“원래 인간이 그렇지. 그들의 모든 것은 과거로부터 비롯되고 삿된 일마저도 똑같이 반복해.”
“…….”
과거에 이미 실패했던 주술의 반복.
나는 그들을 돌아보았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생령이 되는 사술을 썼다면 저들은 전부 도사들인 걸까?
-지금껏 수로왕에게 도전한 자들은 모두 도사였습니다.
-그는 이미 세 번째 방법으로 걸었던 대가를 치르는 중이거든요.
그렇다면 수로왕이 세 번째 방법으로 모종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도전한 도사들 또한 저들인 걸까.
“이제야 왔군.”
그때였다.
“정말이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 따분해.”
뒤쪽에서 몹시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일이지. 난 아무것도 안 하고 느긋하게 앉아있는 것도 꽤 좋아하는데 말이야.”
이상하게도 귀에 닿을 때마다 살갗에 소름이 돋는 목소리였다.
“앉아서 시간을 죽이는 것은 똑같은데, 그저 기다리는 게 있다는 것만으로 그 시간이 따분해져.”
돌아보니 크고 단단한 체격의 사내가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얼굴은 젊었으나, 정돈되지 않은 더벅머리에는 드문드문 하얗게 새치가 섞여 있었다.
낡아서 색이 바랜 죄수복 위로 걸친 값비싼 정장 코트가 눈에 들어왔다.
행색에 맞지 않게 걸친 코트는 기묘하게도 오히려 그가 풍기는 묵직한 분위기와 묘한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하기야 느긋하게 뭘 기다린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지.”
은근하게 눈을 휘며 웃던 그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손질되지 않은 날 것의 외모와 달리 어처구니없게도 어딘가 우아하게까지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그래도 왕을 알현하는 자리라고 이렇게 차려입었는데, 마음에 드나?”
속삭이듯 말한 그가 가볍게 고개까지 숙여 보였다.
“말이 많은 놈이군.”
강림 형이 나를 가로막고 서며 신성을 끌어올렸다.
“그냥 인사였어. 둘 중 하나는 나오지 못할 텐데 이 정도 예는 갖춰야지.”
형의 대응에도 수로왕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었다.
“그럼 이제 들어가도 되겠나? 너와 나를 담을 무고(巫蠱) 말이야.”
저와 나를 담을 무고라.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카르마 등급 필드를 그렇게 비유하는구나.
이곳까지 오르는 내내 느꼈던 그의 비틀린 시선을 되새겼다.
나를 기다렸다는 그와 마주하자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무고에 갇힌 독물처럼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잡아먹는 광경을 보고 싶어 한 그는, 저 자신조차도 흥미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지금 이 순간 그가 가장 원하는 무고는 정말로 그와 내가 갇힌 무고였다.
그에게 있어 승자가 누구인지는 그저 부수적인 결과일 뿐.
생사결의 필드에서 나를 쓰러트리는 것보다 그와 내가 생사를 두고 다투는 순간 자체를 바랐다.
“왜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겁니까.”
이해할 수 없어 물었더니 그가 픽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대답과 함께 업경이 그를 더욱 선명히 읽어냈다.
“그게 더 자연스럽잖아.”
얽히고 얽힌 독물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광경을.
“누가 더 강하냐에 따라 서로 먹고 먹히는 힘의 논리.”
돌아오는 대답에 그가 풍기는 묵직한 이질감을 온전히 이해했다.
법과 질서가 붕괴된 이후 최초로 인간의 손에 갇혔던 죄인.
한데도 그가 걸친 낡은 죄수복은 꼭 그의 일부 같았다.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갇힌 죄인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에 갇힌 노회한 맹수의 갈기처럼 보였다.
죄인이든 맹수든 인간이 위협을 느끼는 것은 같았으나,
자신이 갇힌 이유를 이해하는 이지에 관해서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로왕은 사실 후자에 가까웠다.
그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규율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알고는 있되 왜 그런 게 필요한지는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지?”
그럼에도 그는 내게 재차 필드를 열어도 될지 허락을 구했다.
인간의 도덕에는 개의치 않으면서 이상한 곳에서 신사적이지 않은가.
핀트가 나간 감상에 순간 헛웃음이 새었다.
“그렇게 하시죠.”
대답하자 그가 즐겁다는 듯이 입꼬리를 당기며 웃었다.
[ (!) 공간의 지배법칙이 바뀝니다. ]팝업창이 떴다.
[ 인간 ‘김수로’가 자신의 업으로 필드를 전개합니다. ]– (!) 해당 필드의 등급은 ‘카르마(K)’입니다.
– 해체 조건 : 시전자의 카르마 완전 해체
생사결의 필드가 전개되면서 교도소였던 풍경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황혼에 물든 양 사방이 붉게 타오르는 공간에는 지네며 전갈 따위의 독물의 거대한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원래 이름을 보이게 됐군.”
필드의 중심에 선 수로왕이 말했다.
언제고 서로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그는 아직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나치게 여유가 넘치는 태도에 되레 더 긴장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진짜 김수로라서 그냥 수로왕이라고 지었거든. 북쪽의 그 녀석과는 달라.”
내가 언제든 달려들 수 있게 공격 자세를 취하는데도, 그는 그저 농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나 말고도 원래 이름을 쓰는 녀석은 하나 더 있지만.”
의외로 단군에 대해서도 꽤 알고 있는 듯했다.
“그나저나 많이 어리군.”
그가 느릿하게 내 몸을 훑으며 화제를 돌렸다.
“어리고…… 정말로 인간이야.”
몸을 훑던 시선이 기묘한 빛을 띠며 우뚝 멈추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지?”
가슴에 고정된 시선에 말하지도 않아도 그가 내 탯줄을 보는 것임을 알았다.
“인간인 채로 인간의 신이 되고 싶었나?”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그가 말을 이었다.
“글쎄, 인간은 같은 인간이 혼자만 고고하게 하늘에 군림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을 텐데.”
이어지는 그의 말과 함께 그의 업으로 전개된 필드가 검붉게 요동쳤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흠 없이 깨끗한 인간이 자기들 머리 위에 서는 거잖아.”
가각.
가가각.
필드에 가득 찬 독물들의 그림자가 먹이를 앞둔 듯 섬뜩한 소리를 냈다.
“선의, 정의, 대의…… 고고한 인간의 손에서 그런 것들이 높은 곳의 기준이 되어 봐. 욕망은 너무 추해지지.”
그의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어 15년 전부터 한반도의 꼭대기에 섰던 남자를 떠올렸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행동했기에, 무언가를 바라고 행동하는 자들을 언제나 그보다 못한 것으로 전락시켜버린 이를.
“추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자들이 가장 쉽게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이 뭘까? 간단해. 그냥 상대를 똑같이 끌어내려.”
그리하여 끝내 인간의 손에 의해 벼랑까지 떠밀린 영웅을.
“네가 인간인 채로 인간의 구원자를 자처해 봤자, 너는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실패할 거야.”
나는 대답 없이 수로왕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에게선 조롱의 의도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보아 온 인간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당신은, 역시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나는 그런 그를 마주하다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내 말에 그가 푸핫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야지.”
그의 너머로 온갖 독물들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권선과 징악의 신께서 나 같은 놈이랑 맞으면 쓰나.”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독물의 그림자와 함께 수로왕이 내게 달려들었다.
카아아앙!
짓쳐들어온 그의 손과 내 검이 부딪치며 검붉게 불꽃을 튕겼다.
그림자를 휘감은 수로왕의 두 손은 어느새 장갑을 낀 것처럼 검게 물든 채였는데, 자세히 보니 바위처럼 단단하게 변해 있었다.
산신 정견모주의 전설을 가진 그는 토(土)속성의 도사였다.
촤아악!
촤아아악!
그의 뒤로 검은 모래가 파도처럼 솟구쳤다.
지네와 전갈, 두꺼비의 형상을 이룬 모래는 나를 옭아매듯 다가왔다.
모래로 독물을 소환해서 나를 몰아붙일 셈인 것 같았다.
그것들이 달려드는 순간 검을 거두고 우선 스킬을 시전했다.
[ 검수지옥(L) ]서슬 퍼런 은빛의 칼날나무가 솟구쳐 오르면서 수로왕과 독물들을 꿰뚫었다.
촤아아악!
마력을 크게 쓰지 않았음에도 독물들은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났다.
“이런, 아무래도 그냥 흙덩이다 보니 내구력이 약해.”
그러나 수로왕은 얕은 생채기만 남은 채로 킬킬 웃었다.
적은 마력에도 쉽게 부서진다 싶더니 역시 소환물 하나하나가 그리 강한 편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전설급 스킬이 겨우 생채기만 남겼다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은 흙덩이에 친구를 심어놓곤 하지.”
손등으로 뺨에 묻은 피를 훔치며 수로왕이 말했다.
“인사해줬으면 좋겠군. 내 가장 친애하는 친구에게.”
츠츠츠!
츠츠츠츠!
그 순간 수로왕의 업으로 전개된 필드가 불길하게 요동치면서.
-아아! 아아아!
업경이 읽는 막대한 업과 함께 귀를 찢는 귀곡성이 벼락처럼 나를 강타했다.
“큿……!”
가늘게 신음하며 수로왕이 불러낸 그것을 올려다봤다.
흡사 진흙 인형 같은 무언가였다.
칠공이 뻥 뚫려 있는 얼굴은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찢어질 듯한 귀곡성을 마주한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그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챘다.
“벌써 40년이나 지났는데도, 이 친구만큼 나를 즐겁게 해준 이는 없었어.”
세상과의 모든 유대가 끊어진 채 고통받는 그는 오래전 수로왕을 가두었던 영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