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84
81장. 모래성(5)
하늘은 보이지 않는 함정이, 개천에는 뜨거운 용암이 길을 막는 상황.
-쿠오오오!
용암에서 걸어 나온 괴물들이 길게 울부짖었다.
나는 일행들과 등을 맞대며 다가오는 용암괴물들을 주시했다.
이리저리 총탄처럼 빗발치는 불꽃에 쉽사리 움직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파아앙!
강림 형이 몰려드는 용암괴물들을 향해 발설지옥의 신성을 번쩍였다.
내구력이 강한 것은 아닌지 신성에 당한 괴물들은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났다.
다만 문제는 조각난 괴물들이 꼭 불이 붙은 투석처럼 사방으로 튀는 점이었다.
화르르륵!
용암 조각이 뒤쪽의 숲으로 떨어지면서 급기야 나무에 불이 붙어버렸다.
높이 솟은 가지마다 새까만 연기를 피우며 불타오르는 광경이 새삼 아찔했다.
“미친! 저건 또 뭐야!”
깜짝 놀란 호구별성이 독기를 뿜었다.
“안 그래도 꼼짝 못 하는데 이젠 아주 산불까지 나버렸잖아!”
“……고의는 아니었다.”
삽시간에 번져버리는 불길에 형이 나지막하게 한마디 했다.
어째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에 나는 쓰게 웃으며 재차 상황을 파악했다.
위도, 앞도 막혔으니 아마 뒤에 불이 번지는 것까지도 황탑주의 설계일 터였다.
그러니 불이 나서 돌아가는 길까지 막힌 게 꼭 형의 잘못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이대로 우리를 가둬서 태워죽이겠다는 뜻일 텐데.”
눈을 가늘게 뜨며 화기로 뒤덮인 개천을 노려보았다.
용암이 흐르는 이상 괴물들이 끝없이 쏟아진다면 결국 개천의 용암을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 했다.
“……한빙지옥으로 용암을 식힐 수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역시 그것뿐이었다.
다만 언제 황탑주와 다시 맞붙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마력을 소진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내가 가진 마력을 전부 쓴다고 해도 저 용암을 완전히 식힌다는 보장도 없고.
“수극화이니, 화기는 역시 수기로 잡는 것이 제일이지요.”
생각에 깊어지는 찰나, 옆에 선 단군이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다행히 그분들께서 도착하신 듯합니다. 염라.”
“아……!”
그의 말에 나는 일순 작게 탄성을 내뱉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산길 너머로 그새 무언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다부진 풍채가 꼭 한 쌍의 거목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 (!) 공간의 지배법칙이 충돌합니다. ] [ (!) 현재 신화전(神話戰)이 진행 중입니다. ]팝업창과 함께 주변의 광경이 돌이 던져진 수면처럼 크게 흔들렸다.
[ ‘염라’가 새로운 대상을 감지합니다! ] [ ‘역천(逆天)2’이 새로운 대상을 감지합니다! ]나와 황탑주의 필드가 동시에 새로이 진입한 대상을 인식했다.
나는 괜히 방방 뛰면서 그들에게 두 팔을 흔들었다.
“용왕님들……!”
갈기처럼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두 용왕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우리를 돕기 위해 그들은 직접 적탑의 방진을 뚫고 신화전에 돌입했을 터였다.
용신들이 인간의 주술에 익숙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방진을 뚫고 와준 것이 더욱 고마웠다.
“허어, 어째 희한한 것들이 가득하군.”
우리를 둘러싼 용암괴물들을 발견한 동해 용왕이 탄식했다.
“화기라, 오윤이 그놈의 바다가 참 뜨끈했거늘.”
남쪽 바다를 다스렸던 형제의 이름을 입에 담은 그가 쯧쯧 혀를 찼다.
촤르르르륵!
그와 동시에 우리의 양옆으로 거대한 물의 벽이 치솟았다.
투명하게 출렁거리는 벽은 파도처럼 하얀 거품을 뿌리며 우리를 포위했던 용암괴물들을 덮쳤다.
-쿠오오오!
물의 벽에 튕겨 나간 용암괴물들이 포효하며 다시금 총탄처럼 불씨를 뿌렸다.
치이이익.
하나 물의 벽에 닿은 불씨는 하얗게 수증기를 뿌리며 꺼질 뿐.
불을 내뿜으며 날뛰던 용암괴물들도 순식간에 화기를 빼앗기고 딱딱한 돌덩이로 변해버렸다.
화기는 수기로 막아야 함이니, 과연 불의 흙으로 설계된 법칙을 상대하는 데는 바다의 지배자들이 제격이었다.
-천신들과 용신들에게는 각 탑을 상대할 때마다 한 번씩 힘을 빌리면 되겠습니다, 염라.
두 용왕이 처음부터 함께 하지 않고 나중에 합류하는 형태로 참전하게 된 것은 단군의 뜻이었다.
-탑주들은 뛰어난 설계자들입니다. 그들이 알아채지 못할 변수를 준비해 두는 게 좋습니다.
도사들의 싸움은 곧 상대의 수를 읽어 대비하는 것이 중점이었다.
그러니 다른 탑주들이 용신과 천신들을 읽을 수 없도록 감추어 두겠다는 의도였다.
다만 그토록 뛰어난 도사들에게서 신들의 존재를 감추려면 제약이 필요했다.
해서 단군은 신들이 한 번의 신화전에만 참전할 수 있는 것을 대가로 탑주들에게서 그들을 감추는 것을 미리 청해두었다고 했다.
“이거야 원, 인간 놈들 규칙은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구만.”
다가온 서해 용왕이 팝업창을 올려다보며 떼잉 역정을 냈다.
“아무튼 왔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마, 새 염라야. 필요한 만큼 부려먹어라.”
어느 필드에 참여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팝업창에 대한 반응이었다.
짧은 안내에도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그는 아직 신화전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헌터 시대가 열려서도 용신들은 계속 깊은 바닷속에서만 살아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럼에도 하얀 수염을 떨며 꿍얼거리는 서해 용왕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자꾸 내 작은 고등어 친구가 떠올라 나는 작게 웃었다.
“따로 필드는 만들 필요 없겠지? 자네 필드에 참전하겠네, 염라.”
서해 용왕과 달리 동해 용왕은 순순히 우리 필드에 참전했다.
이전에 남해용왕과 신화전을 치르기도 했으니 이쪽은 확실히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었다.
[ ‘동방청룡 광덕왕 오광’과 ‘서방백룡 광순왕 오흠’이 ‘염라’에 참여합니다! ]– 승리 조건 : 아기장수 우투리 벨까띈긱뒨흐흐흐
– 지배도 : 25%
두 용왕이 참전을 알리는 팝업창이 떴다.
“지배도 25%…….”
나는 새삼 수치를 곱씹으며 용암이 흐르는 개천을 바라보았다.
봄의 흙인 진토(辰土)로 만든 곰들을 해치우고 여름의 흙인 미토(未土)로 만든 개천에 가로막힌 상태였다.
하니 앞으로도 다른 두 계절의 흙으로 설계한 법칙과 맞닥뜨리게 될 터였다.
“그래서 우리가 뭘 어떻게 해주면 되는데?”
팝업창을 확인한 서해 용왕은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쓰며 물었다.
“저 개천을 건너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화기가 워낙 강해서요.”
나는 용암이 흐르는 개천을 가리켰다.
“뭐야, 저거 때문에 죽치고 있던 거야?”
서해 용왕이 솜뭉치 같은 하얀 눈썹을 들썩였다.
“까짓것 뭐, 내 콧김 한 번으로 충분하지!”
콧방귀를 뀐 그가 고개를 치켜들며 신성을 번쩍였다.
우르릉!
콰아아앙!
청옥색 바다의 신성이 번쩍이면서 하늘에서 불현듯 우레가 쳤다.
쏴아아아아!
이윽고 용왕이 불러낸 폭우가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릴 기세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치이이이이익!
한데 좀 더 많은 힘이 필요한 것일까?
쏟아지는 폭우에도 검붉은 용암은 하얀 수증기만 내뿜을 뿐, 좀처럼 화기가 꺼지지 않았다.
“뭐야!”
순식간에 주위를 가득 메운 수증기를 헤치며 호구별성이 독기를 뿜었다.
“왜 안 식어! 영감탱이 목에 잔뜩 힘주더니 고작 이거밖에 안 돼?”
“끄으응…….”
호구별성의 질책에 서해 용왕은 자존심이 상한 듯 앓는 소리를 냈다.
“흥! 콧구멍을 하나만 써서 그래!”
새침하게 한마디 내뱉은 서해 용왕이 다시 한번 청옥색 신성을 번쩍였다.
우르르릉!
콰아아아앙!
재차 우레가 치면서 시야가 뿌예질 정도로 막대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치이이이이익!
그러나 용암이 품은 화기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더욱 무겁고 습한 수증기만을 내뿜었다.
“아이씨, 사우나도 아니고 이게 뭐야!”
빗물에 홀딱 젖어버린 호구별성이 후끈하게 몸을 짓누르는 수증기에 짜증을 냈다.
“영감탱이 용 맞아? 용은 무슨, 이무기인데 3만 년 동안 사기 친 거 아니야?”
“끄, 끄으응…….”
호구별성의 모욕에도 서해 용왕은 별다른 소리를 못 하고 수염을 떨었다.
그가 연거푸 바다의 신성을 번쩍이는데도 화기는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용왕의 참전에도 예상과 달리 쉽게 풀리지 않는 상황에 단군이 새삼 놀랍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설마 용왕의 권능에도 쉬이 꺼지지 않을 줄은 몰랐군요. 이렇게 되면 용왕의 수기를 증폭시키는 법칙을 따로 설계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긴 황탑이라면 법칙에 쓸 수 있는 자원도 상당했을 테니까요.”
나는 그의 말을 받으며 한숨을 쉬었다.
호구별성은 용왕의 권능이 시원치 않다고 구박하지만, 사실 신화전에서는 자원을 쏟아붓는 만큼 강력한 법칙을 설계할 수 있으니 꼭 권능이 부족한 탓은 아니었다.
“흠흠!”
그때 뒤쪽에서 동해 용왕이 헛기침을 했다.
“여기 이무기 말고 용이 하나 더 있지.”
그의 말에 서해 용왕이 곧바로 눈을 흘겼다.
그러든 말든 동해 용왕은 위엄 있게 어깨를 펴며 청옥색 신성을 발했다.
파아앙!
신성이 번쩍이면서 비가 쏟아지는 용암 위로 초록색의 거대한 연잎들이 솟아올랐다.
목기(木氣)가 담긴 동쪽 바다의 권능으로 만든 다리였다.
“개천을 건너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
다리를 만들어낸 동해 용왕이 뿌듯하게 나를 돌아봤다.
“건너가게나, 염라. 용암을 완전히 꺼트리진 못해도 자네들이 건널 정도는 될 게야.”
“아, 건널 수만 있으면 굳이 용암을 꺼트릴 필요는 없으니까!”
호구별성이 알아들었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개천을 향해 뛰어들었다.
사뿐히 연잎 위로 올라간 그녀가 검은 전복 자락을 휘날리며 빠르게 개천을 건넜다.
촤르르륵!
길을 건너는 그녀의 양옆으로 파도처럼 물의 벽이 솟아오르면서 용암괴물의 공격을 막아주었다.
“형만 한 아우 없는 법이지.”
콧대를 치켜든 동해 용왕이 나와 다른 일행들을 앞세우며 어깨를 으쓱였다.
“장인한테 말버릇은!”
마지막으로 연잎 다리를 건너며 서해 용왕이 꽁하게 투덜거렸다.
촤르르륵!
마침내 모두가 무사히 개천을 건너는 순간이었다.
동해 용왕이 세운 벽이 장막이 걷히듯 물거품이 되어 바스러졌다.
거품에 덮쳐진 용암괴물들도 하얀 수증기를 뿜으며 검게 식은 돌덩이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이런, 용암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괴물들이 소환되는 인과는 그대로군요.”
개천을 돌아본 단군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개천에서 멀어지면 더 이상 해를 끼치지는 못할 겁니다. 무한히 소환되는 대가로 개천에서만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제약을 걸었을 테지요.”
“그럼 빨리 빠져나가야겠네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화르르르륵!
화산이라도 폭발한 것처럼 개천의 용암이 벌겋게 치솟았다.
“우왁, 이게 뭐야!”
깜짝 놀란 호구별성이 솟아오르는 용암기둥을 가리켰다.
“완전 용이잖아, 저거!”
말 그대로의 용이었다.
거대한 용의 형태를 취한 용암괴물이 우리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크기가 어찌나 큰지 건너편의 나무들은 그새 용암용의 몸뚱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대로 도망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용을 올려다보며 단군이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멀어지면 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아직 황탑주의 법칙들이 더 남아 있으니 최대한 전력을…….”
한데 그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이놈, 어딜 감히 용 앞에서 용을 사칭해!”
꽁해 있던 서해 용왕이 버럭 성을 내었다.
파아앙!
그러더니 신성이 번쩍이면서 용왕의 몸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인간을 닮은 용신의 모습을 벗고 용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콧구멍 하나마저 동굴처럼 크고 깊은 서쪽 바다의 주인이었다.
“우와……!”
오랜만에 보는 용왕의 본신에 나는 목을 쭉 빼며 감탄했다.
용암용도 분명 거대했는데 눈앞의 용왕과 비교하니 용이 아니라 토룡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콧김을 분 서해 용왕이 용암용을 향해 입을 벌렸다.
와그작!
거대한 서해 용왕이 한입에 용암용을 두 동강 내는 순간이었다.
“오우, 승질머리 봐…….”
지켜보던 호구별성이 턱을 매만졌다.
“이제 보니 이무기도 아니고 대왕가물치였네.”
“…….”
다행히 호구별성의 말은 들리지 않았는지, 서해 용왕은 과자처럼 와그작와그작 용암용을 씹으며 뿌듯하게 콧김을 뿜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