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161)
절규하며 시체 무더기에서 가족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기대했다.
자신의 가족의 시신이 이곳에 없었으면, 운 좋게 도망쳐서 잘 숨어있었으면 하고.
그리고 그런 기대가 깨졌을 때, 그들이 내뱉은 비명과 곡소리는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여보..! 네드..!”
파비르 공작.
붙잡혀 있을 가족을 생각하며 밤마다 애간장을 태웠던 그는 아내와 아들의 시신을 껴안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가 안은 아내와 아들의 시신은 상체만 남아있었다.
“…”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며 마르스는 뭐라 말 못 할 기분을 느꼈다.
여행을 떠난 이후로 여러 일을 겪었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니까.
화가 나면서도 슬프고 또 착잡했다.
이런 감정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마르스는 본능적으로 클라우드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자신이 몰랐던 것을 그는 뭐 이런 걸 묻냐는 듯이 쉽게 알려주고 그랬으니까.
그러나 이번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형?”
클라우드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끼며 마르스가 슬며시 불렀지만,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기사들에게 박혀있었다.
으아아앙! 엄마!!
“잭슨… 내 아들…”
나만 살아서 미안해…
“아니야… 이건 아니야..!!!!!
머릿속을 울리는 사람들의 울음과 절규.
그의 눈에서는 기사들이 이따금 해진 옷을 입은 사람들로 바뀌어 보였다.
과거와 현재가 엇물린다.
그의 감각이 점차 현실과 동떨어지려고 할 때,
지랄하지 마. 넌 알았더라도 외면했을 거야. 왜? 그게 너니까.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소의 희생도 불가피하다 여기는 게 너니까.
한 사내가 했던 말이 클라우드를 붙잡았다.
그러니까 이건 전부 네 탓이야.
데구르르르.
클라우드를 향해 굴러온 그것은 사람의 머리.
기적을 일으켰던 신실한 성기사의 머리.
순수하지만 바보 같았던 또 그런 면이 귀여웠던 여성의 머리.
언젠가 그가 사랑했던 여인의 머리.
몸을 잃은 머리가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이건 전부 네 탓이야.
클라우드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들어 올렸다. 피에 젖어 엉망인 머리카락을 정리하자 보이는 건 알지도 못하는 생판 남의 얼굴이었다.
“네 탓이 아니야.”
클라우드가 고개를 돌렸다.
네리아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최선을 다했어. 내가 알아.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그리 말하는 네리아는 그의 눈치를 살피고 기죽어 있던 평소의 그녀가 아니었다. 클라우드에게 어깨와 등을 빌려주었던 늘름한 기사 시절의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클라우드는 픽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저런 말을 하는 게 우스워서?
아니.
클라우드의 껍질만 뒤집어쓴 그에게 저토록 호의적으로 구는 게 바보 같아서?
아니.
전부 아니다.
그가 웃은 건 그저 그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가장 소중한 것들 모두를 잃어버린 상태라는 점에서.
‘네리아, 내가 가짜라는 게 밝혀졌을 때 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난 그게 몹시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는 않아.
“클라우드…”
그가 많이 상심한 것 같다고 지레짐작한 네리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위로하고 싶지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클라우드는 작게 웃고선 잡고 있던 머리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았다.
“형, 네리아 씨? 지금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마르스의 긴장한 목소리.
무슨 뜻이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주위를 포위한 오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니.
가족을 잃어 울부짖던 기사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기사들의 눈동자에는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가 담겨 있었다. 그들은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목숨만큼 소중했던 것들을 모두 잃었으므로.
오크들에게 달려들려는 그들을 다른 기사들이 뜯어말렸다.
“이거 놓으시오. 놓으라고!”
파비르 공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핏발 선 눈으로 오크를 향해 달리려던 그를 올레르 공작이 붙잡았다.
“진정하시오.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란 말이오!”
“아내와 아들이 죽었소. 시신마저 온전치 않지. 그런데 나보고 이성을 잡으라는 소리요?! 개소리 말고 비켜!”
“파비르 공작, 당신은 군주입니다. 그런 당신이 이성을 잃으면 당신 아래의 기사들은 어떻게 통제합니까? 하나로 뭉쳐서 싸워도 위험할 판에 막무가내로 싸웠다간 전멸할 겁니다!!”
주위를 포위한 오크 전사들은 기사단의 수보다 많았다. 덕분에 웬만한 기사들은 위축된 상태.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에서 사기까지 꺾였다.
정면으로 싸웠다간 전멸을 면치 못하리라.
올레르 공작이 파비르 공작을 말리며 타개책을 떠올릴 때였다.
오크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체구의 오크가 앞으로 나왔다. 거대한 톱날 검을 바닥에 질질 끌며 나타난 그는 기사단을 향해 소리쳤다.
“비열한 인간들아!! 위대한 전사, 루가르와의 결투가 그렇게 두려웠더냐? 패배하여 약조를 지키는 것이 그렇게 아니꼬왔더냐?”
그는 검은 전갈 부족의 족장, 자라그.
루가르의 힘과 포부를 동경했던 대전사이다.
“감히 오크의 대족장을 암살한 역겨운 인간들아. 그 벌레 같은 목숨을 연명하고 싶나? 그렇다면 나오라. 나, 자라그와의 싸워 이긴다면 보내주마.”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크들이 저들의 무기로 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묵직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곳을 향해 클라우드가 나섰다.
그를 알아본 자라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넌… 원래 루가르와 결투하기로 했던 인간이군. 루가르와 의형제였다지? 하나만 묻겠다. 어째서 의형제를 배신했나?”
“…”
“침묵하겠다는 건가? 그래도 부끄러운 줄은 아는 모양이군.”
고개를 끄덕인 자라그.
이내 눈을 부릅뜨며 톱날 검으로 땅바닥을 쓸어 올렸다. 흙먼지가 클라우드의 시야를 가렸다. 검게 빛나기 시작한 자라그의 톱날 검. 그것이 클라우드를 양단할 것처럼 사선으로 내려왔다.
클라우드가 검을 뽑았다.
드레이크류 강검술.
[태산 가르기]두꺼운 톱날 검이 반으로 갈라졌다.
휘리릭 날아간 검날이 바닥에 꽂혔다.
“뭣…”
자라그가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클라우드의 검이 움직였다.
드레이크류 쾌검술.
[낙엽 베기]찰나의 순간.
셀 수 없을 정도의참격이 자라그를 지나갔다.
클라우드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촤아악
자라그가 여러 조각으로 토막 나 바닥에 떨어졌다. 토막 난 조각들이 저마다 피 분수를 뿜으며 바닥을 적셨다.
“…”
“…”
오크와 인간.
양측 모두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기이한 적막 속에서 클라우드가 입을 열었다.
“저들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혐의를 씌우고 전쟁을 통보했다. 그뿐만 아니라 민간인, 포로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이를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적대행위로 간주, 나 클라우드가 용사로서 명령한다.”
담담하면서도 묘한 울림이 담긴 목소리가 일대를 지배했다.
클라우드가 다시 한번 검을 뽑았다.
“전군, 적을 섬멸하라.”
적을 섬멸하라.
오크 전사가 기사 둘에 맞먹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사실상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명령.
그런데 어째서인지 두렵지 않다.
기사들이 검과 방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마리에타와 오필리아가 기도했다.
[신의 축복] [올블레스]황금빛과 하얀빛이 어우러지며 기사단을 감쌌다. 두 개의 축복이 겹쳐지는 기묘한 현상. 두 성녀 후보는 경악했으나, 정작 축복을 받은 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몸이 훨씬 가벼워진 것에 감사했다.
덕분에 가족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됐으니.
동경하게 된 용사의 뒤를 따를 수 있게 됐으니.
개전을 알린 것 역시 클라우드였다.
순식간에 오크들 사이로 파고든 그는 근방에 있는 오크들을 말 그대로 난도질했다.
적을 섬멸하라!!
커다란 함성 아래 하나 된 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자신들보다 반은 더 큰 오크를 상대로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겁먹지 않은 것은 오크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사기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용맹한 전사다. 등을 돌려 도망치지 않고 기사단과 맞서 싸웠다.
얇은 검이 오크의 가슴을 꿰뚫었다.
심장은 멀쩡했다. 오크는 도끼를 내려찍었다. 까앙! 도끼를 막은 방패가 찌그러졌다. 오크가 씨익 웃으며 다시 한번 도끼를 내리찍으려는 순간, 다른 기사가 냅다 달려와 오크의 목을 검으로 찔렀다.
털썩 쓰러진 오크.
오크를 죽인 기사가 넘어진 기사에게 손을 뻗었다.
“괜찮”
새롭게 나타난 오크의 둔기에 맞고 저 멀리 날아갔다.
오크는 아직 넘어져있는 기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기사는 황급히 일어서려 했으나 둔기가 그의 머리를 깨부수는 게 빨랐다.
우드득.
둔기에 얻어맞은 기사의 머리가 터지며 뇌와 뇌수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손끝에서 느껴진 살육의 감각이 오크를 흥분케 했다.
“우어어어어!!!”
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크게 함성을 질렀다. 그런 그의 옆으로 누군가 스치듯 지나갔다. 너무 자연스러웠던 탓에 그는 자신의 동족이 지나간 것이라 생각했다.
갈라진 옆구리에서 내장이 흘러나왔을 때쯤에야 그것이 착각임을 깨달았다.
오크는 옆구리를 붙잡곤 방금 자신의 옆을 지나간 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홍빛 머리의 여인.
그녀는 이곳과 동떨어진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생명력이 느껴지는 검무로 생명을 앗아갔다.
인지부조화가 온 오크는 그녀의 검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곳이 전장이라는 것과 자신이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잊은 채로.
그 대가는 컸다.
서걱
네리아는 멍청한 얼굴을 한 오크의 머리를 잘랐다. 그리고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카타리나를 바라봤다. 카타리나가 제 몫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아니꼬웠다.
그렇게 카타리나를 바라보는 네리아의 옆을 노리고 오크 한 명이 달려들었다.
“한눈을 팔았구나!”
오크가 대도를 휘두르려던 순간 네리아가 쓴 사자왕의 투구의 갈기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갈기에서 백사자 두 마리가 튀어나와 각각 오크의 목덜미와 발목을 물었다.
깜짝 놀란 오크가 목덜미를 문 사자를 떼어낸 후 대도로 양단했다. 반으로 갈라진 백사자는 하얀 입자로 변해 투구의 갈기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백사자로 태어나 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이면 새로 생기고, 죽이면 새로 생기고.
소모전에서 먼저 힘이 다한 것은 오크 쪽이었다. 그는 사자에게 목덜미를 물어 뜯겨 죽음을 맞이했다.
백사자들이 그러는 동안 네리아는 다른 오크의 공격을 방패로 쳐내고 그의 심장을 검으로 찔렀다.
촤아악
검을 휘둘러 날에 묻은 핏물을 쳐내던 순간, 그녀는 돌연 불길한 감각을 느꼈다. 잽싸게 몸을 틀며 방패를 당겨 방어할 준비를 했는데…
“네리아 씨?”
그녀에 눈동자에 비친 것은 흉악한 오크가 아닌 의아한 표정의 마르스였다.
“…뭐야, 이 와중에 말 걸 여유도 있어?”
뻘쭘하면서도 어느 한편으로는 자존심까지 상한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그녀의 태도를 개의치 않아하며 마르스가 물었다.
“클라우드 형, 어디 있는지 알아요?”
“클라우드? 그야…”
네리아는 고개를 돌리며 전장을 살폈다. 볼 것도 없이 가장 소란스러운 곳이 그가 있는 곳이리라.
그런데.
“어..?”
조금씩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크게 소란스럽다고 할 만한 곳이 없었다.
“크, 클라우드 어디 갔어?”
“…제가 먼저 물었잖아요.”
마르스가 한숨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