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169)
그곳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적의 병력은 대충 파악했으니 대책을 짜기도 쉬울 거고.
‘정면으로 돌파해야 하나?’
어차피 도시까지 얼마 남지도 않은 거 그냥 무시하고 쭉 달려가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이들은?’
그녀는 지금 홀로 있는 게 아닌 어린 남매와 함께 있다. 정면 돌파를 한다고 하면 사령술사의 마수에서 아이들을 지켜내는 게 가능할까?
프릴리테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녀 혼자서라면 몰라도 연약한 아이들을 무사히 지키며 포위를 뚫을 자신이 없다.
‘어찌해야 하지?’
아이들을 잠시 근방에 숨겨놓고 도시의 병사들과 찾으러 올까?
아니다.
그녀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이 무사할 거란 장담도 없을뿐더러, 성벽 바깥으로 나온 평범한 병사들이 저 끝없는 언데드 군단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없다.
있을지도 모르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죽음의 군단은 점점 가까워져 간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나.’
프릴리테는 양손에 안았던 남매를 내려놓았다.
“언니..?”
남동생보다 2살 많은 여자아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프릴리테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프릴리테는 아이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걸음 또한 멈추지 않는다.
그어어..?
한 언데드가 그녀를 발견하고 이를 알리려 목소리 내어 울려는 순간, 그녀가 대검을 뽑으며 땅을 박찼다.
쿠궁.
그녀가 밟은 땅이 아래로 꺼지는 것과 동시에 목소리를 내려던 언데드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갑자기 나타난 프릴리테를 본 언데드들이 그녀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프릴리테는 마나를 응축시킨 대검을 바닥에 꽂았다. 한계까지 응축된 마나를 터트리자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에 붉은 검기들이 쏟아져나갔다.
그녀를 향해 덤벼들던 언데드들의 신체는 농후한 검기에 닿는 족족 잘려나갔다.
끄어어어!!!
선두에 서서 걸어갔던 누더기 골렘이 뒤늦게 달려왔다. 놈은 여덟 개의 팔로 붙잡은 거대한 도끼를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프릴리테는 바닥에 꽂았던 검을 누더기 골렘을 향해 베듯이 뽑았다.
붉은 마나가 그녀의 검을 감싼다.
그것으로 모자라 점차 칼날의 면적을 넓히더니 거대한 검의 형상을 갖췄다.
페르디아크 가문 비기.
[용살검]서걱.
거대한 도끼날과 누더기 골렘이 한 번에 양단되었다.
프릴리테는 쓰러트린 언데드들을 돌아보았다.
전장에서와는 달리 재생하지 않고 있었다.
역시 재생은 그 사령술사의 재간이었던 모양.
그녀는 대검에 실은 마나를 거둬들였다.
남매를 바라보며 검으로 도시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곳으로 달려가면 도시가 있을 거다. 안으로 들어가거든 언데드 군단의 공격에 대비하라 전하거라. 이걸 보여주면 너희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
프릴리테는 페르디아크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반지를 빼서 여자아이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어, 언니는요..?”
“나는 이곳에 잠시 남아야 할 것 같다.”
“그러지 말고 그냥 같이 가면 안 돼요..?”
여자아이가 프릴리테가 입은 연미복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여자아이가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아챈 프릴리테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곧 따라갈 것이다. 잠깐 남는 것뿐이야.”
“거짓말! 아까 아저씨들도 그렇게 말해놓고 안 왔잖아! 누나 안 가면 나도 안 가! 나도 나쁜 놈들이랑 싸울 거야!”
남자아이가 낑낑거리며 언데드가 쥐고 있었던 창을 들었다. 아이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며 창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프릴리테는 그 창대를 잡으며 아이를 타일렀다.
“말은 고맙다만 넌 아직 누군가를 지켜야 할 나이가 아니다. 지켜져야 할 입장이지.”
“어린애 취급하지 마! 우리 아빠가 그랬어. 나도 어엿한 전사라고. 나도 지킬 수 있어!”
프릴리테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내 작게 웃고선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을 맞췄다.
“미안하다. 내 생각이 짧았다. 사내가 되는 것에 나이는 관계없거늘.”
프릴리테는 품속에서 호신용 단검 하나를 꺼냈다. 페르디아크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검집에 희귀 금속,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단검이다. 그 귀한 단검을 그녀는 아이에게 건넸다.
“받아라. 이거라면 너도 충분히 휘두를 수 있을 것이다.”
영롱하게 빛나는 군청색의 단검.
남자아이가 조심스럽게 그것을 건네받았다.
프릴리테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진짜 사내라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겠지.”
“…”
남자아이의 시선이 그의 혈육인 누이에게로 향했다.
프릴리테의 미소가 진해졌다.
“부모가 없는 동안에는 네가 네 가족의 가장이다. 어서 가거라. 가장으로서 네 하나뿐인 누이를 지키거라.”
“…응!”
남자아이는 단검을 한 손으로 꼭 쥔 채로 제 누이의 손을 잡았다. 그대로 도시가 있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누나인 여자아이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지만 남자아이는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으며 달려갔다.
고작 아이 둘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겠다라… 얼마 만에 보는 용사다운 용사인지 모르겠구나.
불쾌한 목소리가 프릴리테의 귓가에 스며들어왔다. 그녀는 미소를 지우며 뒤돌아섰다. 한 해골이 로브를 펄럭이며 하늘에 부유해 있었다.
그의 아래를 나무와 수풀을 헤치고 온 언데드들이 채웠다.
“마치 여러 용사를 만나본 것처럼 말하는군.”
나는 천년을 살아온 마법사다. 당연히 수많은 용사들을 보아왔지. 걔 중에는 너처럼 이타적인 자도, 반대로 이기적인 자도 있었어. 나는 개인적으로 너와 같은 용사를 좋아한다.
“네 취향 따위는 물어본 적 없다.”
프릴리테는 대검을 거꾸로 돌려 검끝을 바닥에 대었다.
“들어라, 사령술사여. 나, 프릴리테 드 페르디아크가 그대에게 고한다. 그대들은 이곳을 지날 수 없다.”
재미있는 허풍이로구나. 용사여, 네가 나를 이기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곳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나는 군단인 것에 비해 너는 혼자이기 때문이지.
리치가 웃음소리를 내며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도 어디까지 막아낼 수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구나. 어디 한 번 구경토록 하지.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때까지 얌전했던 언데드들이 굶주린 개처럼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몇몇 언데드들은 프릴리테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대다수는 아니었다.
그들의 목표는 프릴리테의 등 뒤에서 도망치고 있는 남매.
프릴리테는 그것을 막는 방해물에 불과했다.
“나는 분명 고하였다.”
아니, 불과했었다.
프릴리테로부터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붉은 기운은 빠르게 퍼져 그녀를 중심으로 거대한 원형을 이루었다.
“그대들은 이곳을 지나지 못한다고. 나의 말은 곧 법이고, 법을 어기는 자는 죽음으로 죄를 갚을 지어니.”
붉게 빛나는 땅.
그 위로 붉은 마나로 이루어진 무기들이 창조되었다. 검, 도끼, 창 등등 가리지 않고 만들어진 날붙이들은 감히 그녀의 명을 거스른 언데드들을 벌하였다.
그렇게 스러진 언데드들은 리치의 마법에도 회복되지 않았다.
프릴리테는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부디 새겨듣도록.”
프릴리테 드 페르디아크.
[군주령]개인의 힘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압도적인 규모의 마법.
그에 천년을 살아온 마법사는 위축되기는커녕 즐거운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가. 내가 군단이라면 너는 군주인가! 군단과 군주의 싸움이라니. 흥미롭구나. 음! 아주 재미있겠어.
해골의 빈 눈구멍에서 서슬 퍼런 불빛이 피어올랐다.
프릴리테여. 인정하마. 내가 너를 과소평가하였다.
쿠구궁.
바닥이 갈라지며 땅 아래에 숨어있던 부패 드래곤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드래곤은 썩어 문드러진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아올랐다.
끄에에에엑!
누더기 골렘들이 역겨운 울음소리를 크게 내뱉었다.
폴리치아 공국의 자랑, 야만 전사들과 역대 대공들은 언데드가 되어 이지를 잃은 채로 전의만 불태웠고, 대륙의 가장 위대한 기사단인 백금 기사단원은 조용히 은빛 검을 들었다.
지금부터는 진심을 다할 테니.
리치가 손을 휘젓자 크고 작은 마법진이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부디 너무 일찍 죽어 실망케 하지는 마라.
리치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명령을 받든 언데드들은 더 이상 여러 잡것들이 섞인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로 군단이 되어 프릴리테를 향해 전진했다.
“아이켄 하드?”
프릴리테와 패잔병이 퇴각한다는 도시의 이름이다.
생소한 이름이었기에 레슬리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려?”
“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걸려요.”
애미.
나는 말에 올랐다.
“어디 가시려고요?”
“이틀은 걸린다며?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달려야지.”
“안 그러셔도 돼요.”
“뭐?”
“빠르게 이동할 방법이 있거든요.”
“빠르게 갈 방법이 있다고?”
“네.”
고개를 끄덕인 레슬리가 따라오라며 앞장서서 영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과 마찬가지로 엉망이 되어 있는 내부. 그것들을 무시한 채로 그녀를 따라가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레슬리는 망설임 없이 계단을 내려갔고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그녀를 따라 내려간 지하 1층.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에리의 투덜거림에 레슬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얼음 단검을 만들어 제 손바닥을 긋더니 주먹을 쥐어 핏방울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핏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바닥에 붉은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에 투덜거리던 에리는 물론이고 다른 파티원들도 입을 다문 찰나, 레슬리가 마법진에 대해 설명했다.
“공국은 다른 왕국과는 달리 대대로 용사가 없었어요. 용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공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켜야 했죠.”
마법진은 어느새 반 정도 완성되었다.
룬어가 빽빽하게 쓰인 마법진은 척 보기에도 정교했는데, 룬어를 읽자 무슨 마법을 위한 마법진인지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공국의 전사들은 용맹하고 강해요. 그러나 용맹하고 강하다고 해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전쟁에서 이기려면 전략이 필요해요. 그래서 만든 것이…”
“텔레포트 마법진이군.”
“역시 클라우드 님이세요. 알아차리셨군요.”
레슬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에리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바닥의 마법진을 살폈다.
“텔레포트 마법진이라고? 이게?”
“네, 맞아요.”
“거짓말! 텔레포트 마법 같이 위험한 마법을 그 마탑의 꼰대들이 허락할 리가…”
“당연히 마탑으로부터 허락받지는 않았죠. 그 늙은이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넘겨줄 리가 없잖아요?”
“뭐? 그럼 설마 훔쳤”
“제 먼 조상께서 황제 폐하께 허락받았어요, 당시 그분께서는 폐하의 총애를 받고 계셨거든요.”
그녀가 설명하는 사이 어느새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어두운 지하실 안이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붉은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 마법진은 전략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만큼 원래라면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까지 이동시킬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한 명이 최대예요.”
“조금 극단적으로 줄어든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어요. 원래라면 이곳에 마나를 채워놓은 수정구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사라졌거든요. 아마 습격했을 때 빼앗아 간 것이겠죠.”
레슬리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레슬리가 저렇게 감정적으로 구는 모습은 보기 쉽지 않은데.’
이번 일로 화가 단단히 나긴 한 모양이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표정을 원래대로 고쳤다.
“텔레포트 마법이라는 게 원래 여러 변수까지 전부 생각해서 발동하는 것이라서 엄청난 마나가 필요해요. 그나마 한 명을 보내는 게 가능한 것도 저와 에리가 최선을 다했을 때 가능한 일이고요.”
“나? 갑자기 내가 왜 나와?”
에리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에리, 지금은 비상사태예요. 협조를 부탁드릴게요.”
“하! 뻔뻔하게 내 연구를 뺏어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협조해달라고? 너 양심은 있니?”
“그 일이라면 사과드릴게요. 부디 용서해주세요.”
레슬리는 에리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에리는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뭐, 뭐야… 피, 필요할 때 그래 봤자 아무 진정성이 안 느껴지거든? 그리고 사과한다고 해서 네가 내 연구를 훔쳤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에리, 나도 부탁할게. 많이 급한 상황이야. 잘잘못은 나중에 따지더라도 지금은 레슬리에게 협조해줬으면 좋겠어.”
“클라우드까지… 으으…”
내 말에 에리의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레슬리에게 물었다.
“내가 뭐 어쩌면 되는데?”
에리가 협조하기 시작하자 일은 순조롭게 풀려갔다. 레슬리의 주도 아래 두 사람은 텔레포트 마법을 준비했다.
두 사람이서 이런 대형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게 대단하다고 했더니, 에리가 연구한 마법 덕분이라나?
레슬리가 그렇게 밝히자 에리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갔고 덕분에 마법은 순조롭게 준비됐다.
“혹시 프릴리테 님과 관련된 물건이 있을까요? 그게 있으면 좌표 추적이 가능해져서요.”
“여기.”
나는 부서진 페르디아크 가문 귀빈패의 조각을 넘겨주었다. 조각난 귀빈패를 본 에리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