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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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충돌
“큭!”
화살이 날아와 박힌다. 방패를 든 자들 뒤에서 세 명의 석궁수가 기회를 노리고 일시에 화살을 쏘아낸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치명적인 부위로 날아드는 화살만 무기로 방어하고, 다른 화살들은 방어술을 활용해 갑옷의 곡면 등으로 튕겨내거나 흘려냈겠지만, 눈을 따갑게 만들고 호흡을 조각조각 끊어버리는 독 때문에 화살이 어디로 날아드는 것인지 제대로 알아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결국 허벅지를 감싼 사슬 갑옷을 뚫고 화살이 들어와 박힌다. 던전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서 평소보다 무게를 줄인 방어구를 착용한 것이 패착이었다. 임프 따위를 상대하는데 중갑을 입을 필요가 있나 하고 방심한 댓가라고 해야 하나.
“마무리!”
적들을 지휘하는 자의 입에서 짧은 명령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방패를 들고 있던 자들 뒤에서 단창을 든 자들이 나와 방금의 일격에 무릎을 꿇은 소그마를 향해 일제히 창을 찌른다. 숙련된 동작. 누가 봐도 그것은 모험가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대 기사전을 상정한 훈련을 받은 정예병이 아니라면 보일 수 없는, 그런 모습이다.
끝인가.
브라드로슈 가문으로 소속을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시고 있던 레이그릭 황자가 암살당하면서, 알게 모르게 소그마에게는 의혹의 눈초리가 쏟아졌었다. 그런 의혹들 중에는 집행자에 의해 황자가 암살되는 상황을 미리 알고 자신만 몸을 빼낸 것이 아니냐는 식의 의혹도 있었다. 대놓고 말은 하지 못해도, 브라드로슈 가문의 기사들 중에서도 은연중에 그런 소문을 입에 담는 자들도 있었다. 비록 실력이 알려진 상급 기사라고는 해도, 느닷없이 나타나 상관 자리를 꿰찬 소그마에 대한 반발 심리가 그런 식으로 표출된 것이다.
하지만 소그마로서는 달리 해명을 할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그가 황자를 버린 것은 상호간에 존중되어야 하는 신성한 봉신 계약을 레이그릭 황자가 먼저 헌신짝처럼 저버린 것이 원인. 하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아는 것은 같은 상급 기사인 그랙커스와 당시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었던 제랄딘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제랄딘은 모종의 이유로 가문을 떠난 상태이고, 경쟁자라 할 수 있는 그랙커스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신참자가 의례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실력으로 입증해 보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던전 탐색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 것이다.
난생 처음 해보는 던전 탐색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소그마는 마침내 가문에서 최초로 대미궁에 속한 서브 코어를 찾아내 장악하는 일에 성공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런 식으로 존재가 부각되자, 소그마가 이끄는 공략대가 위협적이라고 생각한 다른 세력에서 이런 식으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세력인지는 확실치 않다. 라야바르트에 은밀히 파견된 다른 나라의 병력들일 수도 있고, 브라드로슈의 독주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라야바르트 내의 다른 귀족이나 황실이 움직인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기서 소그마가 쓰러지게 되면 이들의 죽음에 대한 비밀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묻혀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마, 망할… 약속이 다르잖아. 컥!”
그들을 함정으로 이끈 트래커 놈이 그렇게 말하다가 누군가의 칼에 맞아 목이 떨어진다. 멍청한 놈.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목격자를 남겨둘 거라고 생각하다니. 하기야 그런 멍청한 놈을 철석같이 믿고 던전 탐색에 나선 자신도 멍청하긴 마찬가지지만.
화살에 맞아 무릎을 꿇고 다시 창병들이 앞으로 나서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소그마는 그렇게 수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젠장. 이러려고 기사가 된 것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아무도 알지 못하는 깜깜한 던전 속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놈들에게 최후를 맞이하게 될 줄이야.
“크아아… 앗?”
마지막 힘을 쏟아 부어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데, 문득 알 수 없는 기묘하고도 섬뜩한 느낌이 흐릿해진 감각 사이로 스며든다. 따가운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자, 문득 거뭇한 그림자 하나가 적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흐릿하게 드러난다.
“크악!”
“컥!”
“기습이다!”
소그마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던 창병들의 몸에서 터져 나온 피안개가 허공을 수놓는다. 적이 들고 있던 횃불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놈들의 대열이 단숨에 헝클어지며 사방에 비명과 피보라가 난무한다.
“…”
소그마는 물론이고, 그의 뒤에서 목숨만 간신히 붙은 채로 최후를 기다리고 있던 자들 모두 갑작스런 사태에 얼이 빠져 버렸다. 하지만 미처 제대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볼 틈도 없이 혼란에 빠진 적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차디찬 바닥에 누워 버렸다.
“아, 악마다!”
“도망쳐!”
손 써볼 틈조차 없이, 누구의 손에 죽는지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순식간에 병력 대부분이 참살 당하자, 석궁을 재장전하기 위해 뒤로 빠져 있던 병사들 몇과 아마도 그들을 안내한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 급히 몸을 빼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날아든 밧줄 같은 것이 그들의 발목을 확 잡아끌자 놈들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버렸고, 그런 놈들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 거뭇한 것이 떨여져 내림과 동시에 발버둥치며 고함을 지르던 녀석들의 움직임은 그대로 멎어 버렸다.
“으랏차!”
소리도 없이 적들을 참살하던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외침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도망치던 자들 몇이 허공을 날아 벽에 부딪힌다. 재수 없는 한 놈은 격돌의 순간 목이 꺾이며 그대로 즉사해 버렸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다시 몸을 일으키려던 또 다른 놈은 번뜩이며 날아든 단검에 의해 목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져 버린다.
따가운 눈을 억지로 부릅뜨며 바라보던 소그마로서도 적들을 참살한 누군가의 움직임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물며 그의 등 뒤에서 숨죽인 채 최후를 기다리고 있던 다른 자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정말로 적들이 외치던 것처럼 던전 안에 웅크리고 있던 악마라도 출현한 것인가.
하지만 그런 소그마의 생각은 적들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고 눈앞에 두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경악으로 바뀌어 버렸다.
“소그마 경. 혹시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오귀스트 경? 그리고, 진님?”
그렇다. 느닷없이 나타나 자신들의 기습한 적을 쓸어버린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두 남자였다.
“용케 알아보시는 군요. 이런 모습인데.”
“그 가면은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터라.”
“아하.”
심연의 눈가리개는 의외로 임팩트가 강한 아이템이었던 모양이다. 하마란도 일전에 라야에서 그것만 가지고 진을 바로 알아보고 덤벼들더니, 소그마도 대번에 알아본다. 이래서야 얼굴을 가린 의미가 없지 않은가.
형진은 속을 혀를 차고는 메신저를 이용해 유아에게 연락을 넣었다.
[지금 바로 좀 와줬으면 해. 다친 사람들이 있어서.] [알았어요. 바로 갈게요.]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다친 사람이 있다는 말에 유아는 두 말 않고 형진의 요청을 수락했고, 슬쩍 다른 이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요정의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넘어왔다. 아마도 요리 중에 뛰쳐나왔는지 앞치마 차림에 국자까지 손에 들고 있다.
“요리 중이었어?”
“카트린이 배고프다길래 간단하게 간식을 만들려던 참이었어요. 다친 사람은요?”
“이쪽으로.”
형진은 일단 눈가리개를 씌워주고는 손을 잡고 그녀를 이끌었다. 유아는 형진의 손을 잡고 뒤를 따르다가 이내 사방에 가득한 피비린내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이 사람들은…”
[암살자들. 물론 집행자는 아니고.]
“…”
선혈 낭자한 시체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모습에 유아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내 소그마를 비롯한 부상자들을 발견하자 급히 다가서서 회복을 시켜주었다.
“이건 깨끗한 물입니다. 눈에 묻은 것을 닦아 내세요.”
“감사합니다.”
희망과 생명 교단에서 제일가는 회복 능력을 지닌 신녀의 힘은 놀라웠다.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처럼 헐떡이던 자들조차 그녀의 손길이 한 번 스쳐지나가자 멀쩡하게 회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상처는 회복시켰지만, 당분간은 차분하게 휴식을 취하며 몸조리를 하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녀님.”
“별 말씀을요.”
소그마는 물론이고 그의 공략대 중에도 일전에 유아가 기적의 성광을 발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들이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거의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하며 유아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일단 자세한 얘기는 밖으로 나가서 듣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유아가 급히 회복을 시키진 했지만, 이미 죽어버린 자들은 아무리 그녀가 강력한 회복 능력을 가진 신녀라 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형진은 대략의 위치를 가늠한 뒤 던전을 빠져 나가기 위한 가장 빠른 경로를 산출한 뒤 그들을 이끌었다. 물론 요정의 문이나 유아의 타운 포탈을 쓰면 바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런 것은 아무리 제랄딘의 본가인 브라드로슈 가문이라도 함부로 노출할 수 없는 높은 전략적 가치를 지닌 비밀들이다.
다소의 시간이 걸려 던전을 빠져 나오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공작가의 지원병들이 그들을 맞이한다. 사망자의 시신을 넘기는 일이 끝나자, 생존자들은 일단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근처에 마련된 막사로 향해다. 진과 오귀스트, 그리고 유아는 소그마의 안내를 받아 기사단장이며 제랄딘의 삼촌이 유슬라 백작이 머무르는 지휘막사로 향했다.
“음… 방해가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소그마에게서 피해 상황을 보고받은 유슬라 백작은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현재 공작가에서는 약 여덟 개 정도의 공략대를 운영하는 중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소그마의 공략대는 가장 뛰어난 실적을 보이고 있었다. 그 공략대의 인원 가운데 반수 가량이 이번 일로 사망했으니 유슬라 백작으로서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나다 다행인건 소그마를 비롯한 중요 전력은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정도.
“이런. 실례했습니다. 먼저 감사의 인사부터 드렸어야 하건만. 세 분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별 말씀을요.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필요할 때는 서로 도와야죠.”
“허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로선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가문의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제랄딘의 삼촌이기도 한 유슬라 백작은 형에게서 진의 정체에 대한 것을 이미 들은 뒤라 함부로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조카사위라고 할 수도 있는 인물인데도 말을 낮추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드러난 정체라고는 해도 집행자에 대한 것은 모른다. 그저 희망과 생명을 대리하는 존재이며, 크루그에 의해 엘 파르드 왕실의 숨겨진 왕자로 지명되었다는 것 정도가 고작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 하지만 소그마를 포함한 공략대를 위험에 빠뜨린 암살자들을 단 세 명, 아니 신녀인 유아를 제외할 경우 오귀스트와 함께 단 둘이 처리했다. 말이 쉽지 이것은 절대로 간단하게 여기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이것을 통해 일신에 지닌 전투 능력 또한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대리자라는 직위를 통해 일반적인 희망과 생명의 사제들과는 확연히 다른 어떤 능력을 부여받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아직 소그마나 다른 생존자들에게서 자세한 보고를 듣기 전임에도, 유슬라 백작은 그런 정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 것이다. 물론, 중간에 엉뚱하게 옆길로 새긴 했지만 희망과 생명의 대리자이며 공포와 죽음의 집행자를 겸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떠올리기 힘든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습니까?”
그래서일까. 형진이 그런 질문을 던지자 유슬라 백작은 국방장관을 맞이한 사단장처럼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방해 공작은 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이렇게 공략대를 직접 공격한 사례는 처음이지만.”
“짐작 가는 배후는 있습니까?”
“글쎄요. 델 레 라그리아나, 파스파 같은 타국도 그렇고 의심스러운 곳이야 얼마든지 있죠.”
“흠.”
사실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형진이나 오귀스트가 포로 몇 정도를 잡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포로를 잡으면 심문을 통해 완벽한 자백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단서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밝혀진 자백이나 단서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앞으로 대미궁을 장악할 때를 상정한다면 적아를 구분하기 어렵도록 상황을 모호하도록 만들어 두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브라드로슈 공작가는 심정적으로 아군에 가깝긴 하지만, 엘 파르드를 완전히 장악하기 전까지는 완전한 아군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어쨌든 그들은 라야바르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고, 형진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중간에서 먹어치우는 입장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형진은 간단하게 유슬라 백작과 대화를 나누고는 지휘 막사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적당한 곳에서 유아를 돌려보낸 뒤, 오귀스트에게 물었다.
“오귀스트님.”
“네.”
“짐작가는 곳이 있습니까?”
포로를 남기지 않은 또 다른 이유 한 가지. 그것은 오귀스트가 암살자와 내통한 트래커를 보고 혀를 차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원래 암살자의 배후는 이런 식으로 다른 곁가지를 통해 밝혀지는 경우가 더 많다.
역시나 오귀스트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글쎄요. 하지만 알아볼 방법이라면 있습니다. 개입하실 생각이십니까?”
형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래도 거슬려서요.”
게다가, 사념체가 필요하기도 하고. 요즘 암살 의뢰를 안 하다 보니 생각보다 던전 창조에 쓸 사념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라야에서 암살 의뢰를 하면서 얻었던 사념체는 이번에 이미 다 소모해 버렸으니 여분을 채울 필요가 있다.
형진의 대답에 오귀스트는 무겁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가급적 오늘 중으로 배후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