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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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그곳에는 유령이 산다.
“좋은 건가요?”
놀란 표정으로 혀를 내두르는 형진의 모습에 여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게 물어온다.
“네. 덕분에 아주 좋은 걸 건졌습니다. 하하.”
“다행이네요.”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잘 되었다는 듯한 여신의 모습에 형진은 어쩐지 혼자만 너무 신이 났었던 것 같아 미안해졌다.
“필요하시면 주머니 토끼를 몇 마리 더 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이렇게 하도록 하죠. 토끼 네 마리가 끄는 호박 마차를 한 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다른 데서는 쓰기 어렵겠지만 섬 안을 다니는 정도라면 꽤 쓸만할 겁니다.”
“정말요? 그런데 호박 마차가 뭐에요?”
“이런 겁니다.”
형진은 즉석에서 종이에 마차 모양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실은 이전에 라야에서 돌아오면서 스케치 해두었던 마차 중에 하나인데, 너무 장식적인 요소가 많아서 장거리 여행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보류된 디자인이다. 정확히는 필요한 강도를 지닌 재료가 없어서라는 편이 더 맞을지도.
하지만 어차피 섬 안에서 여신이 장난감 대신 타고 다닐 거라면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재료의 문제도 엘리시온이라는 무한에 가까운 자원의 보고가 생겼으니 역시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와아아아아…”
그렇지 않아도 토끼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하물며 그 토끼가 모는 마차라니! 여신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꿈속을 헤매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가, 이내 자신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 짓고 있는 형진의 모습을 알아채고는 화들짝 놀라며 표정을 정돈하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이미 토끼까지 받았는데, 이런 과분한 선물을 받을 수는…”
“과분하다니요. 여신님께 바치는 공물인데 이 정도야 당연하지요.”
속으로는 좋아서 죽겠는데 드러내기는 너무 속보이고, 감정을 애써 감추려 해도 발그레하니 붉어진 볼과 자꾸만 벌어지려는 입이 산통을 깬다. 여신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각났다며 형진의 아틀리에로부터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쿡쿡.”
그 와중에도 잊지 않고 주머니 토끼를 데리고 가는 여신의 모습에 혼자서 킥킥거리며 웃던 형진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인벤토리에 넣었던 물품 중에 영단 두 개를 꺼내 놓았다.
“후우…”
일단 자신의 체력 상황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혹시라도 한계치까지 도달하지 못했는데 영단을 복용하면 낭비이기 때문이다.
도핑과 부스터를 병행한 상태에서 꾸준하게 수련을 계속한 결과 매크로 수련으로는 더 이상 체력이 올라가지 않는 상황. 하지만 이것으로 체력이 한계치까지 도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이것은 명확하게 체력이 수치로 표현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잠시 고민해 봤지만 역시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이번에 얻은 거인의 영단 외의 다른 일반적인 영약의 경우에는 한계치 이상의 복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떠오른 것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해서 체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 건 완전히 돈지랄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구지구엽초 같은 영약이 어디 한두 푼인가. 그 돈이면 차라리 아이템을 맞추는 편이 비용 대 효율에서는 압도적이다. 즉, 영약을 이용해 이런 식으로 스탯을 올리는 것은 더 이상 아이템에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을 정도의 사람이 더욱 더 강해지기 위한 방법인 셈인데 아직 엘리시온에는 그 정도로 엄청난 장비를 지닌 사람이 없다.
“그래. 까짓 돈지랄. 한 번 해보는 거지.”
형진은 곧바로 요정의 문을 열고 대미궁의 코어로 들어선 다음, 엘리시온에 접속했다. 하지만 결투장 인근의 마을은 여전히 동결 상태였기 때문에 이동스킬을 써서 한참을 달리고서야 동결 지역을 벗어나 워프 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워프 포인트를 통해 다른 마을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바로 거래소가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마을은 중간 거점 비슷한 곳이어서 거래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형진은 몇 번 더 워프 포인트를 이용해 거래소가 있는 대도시로 향해야만 했다.
어딘지 이름조차 모르는 도시였지만, 형진은 다른 건 다 무시하고 곧바로 거래소로 달려가 영약을 검색했다.
“영약이… 오, 있군. 켁. 뭐 이리 비싸?”
엘리시온은 기본적으로 시장 경제다. 즉,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기 마련인데, 체력을 영구적으로 올려주는 영약은 먹으면 그만큼 이득이니 당연히 수요가 넘칠 수밖에 없다. 결국 가격 대비 효율을 따져서 이건 말도 안 된다 싶을 정도의 가격이 되어야 비로소 사람들이 구매를 주저하게 되어 재고가 남는다는 얘기다.
지금 거래소에 남아 있는 3개의 구지구엽초도 그렇다.
“120금화, 80금화, 70금화…”
젠장.
가격을 딱 보는 순간 욕부터 나온다. 엘 파르드의 사람들은 시급으로 주화 2개만 받아도 너무 좋아서 춤을 추는 판인데. 고작해야 풀 쪼가리 하나 가격이 금화 백 개.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사실 구지구엽초가 그냥 풀 쪼가리는 아니지만 어쨌든.
사는 거야 문제가 없다. 어차피 그 정도 돈은 있으니까. 하지만 어쩐지 아깝다. 물론 금화야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거라지만, 그렇다고 막 사버리기는 뭔가 아깝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것이 들려온다.
“캐시 삽니다! 금화로 캐시 사요! 12대 1. 1캐시당 12금화 드립니다! 30 캐시만 급히 구해요!”
오잉?
형진은 부리나케 소리를 치고 있는 사람에게로 고개를 돌리다가 목을 삐끗할 뻔 했다.
사실 엘리시온 내에 과금을 펑펑 해대는 유저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무과금 유저라도 형진처럼 캐시에 아예 손을 안 대는 사람만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저런 식으로 게임 머니를 캐시로 바꾸어 필요한 것을 사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바라보니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은 머리에 토끼 머리띠를 쓰고 있는 여성 유저였다.
어쩐지. 바로 사기 싫더라니.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형진은 바로 그 여자에게 가지 않고 거래소 주위를 돌아다니며 캐시 구매 등을 걸어놓은 자동 상점 등을 돌아다니며 시세를 대충 살폈다. 거래소 주위의 개인 상점들이 보편적으로 걸어놓은 시세는 11.5대 1 정도. 확실히 급구라서 조금 더 비싸게 구매하는 것이 맞는 모양이다.
대충 시세를 확인한 형진은 토끼 머리띠의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캐시 사신다고요?”
“네! 파실 건가요? 캐시 얼마 정도 있으세요? 많이 있으시면 많이 파셔도 돼요.”
“많이는 없고요. 일단 30캐시 정도만 팔게요.”
“물론 그러셔도 되죠. 잠시만요.”
여자는 바로 거래 창을 열고는 360금화를 걸었다. 이거 참. 하기야 고렙이 될수록 게임 머니를 벌기 쉬운 것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저쪽 세계에서는 어지간한 귀족 가문도 선뜻 쓰기 어려운 거금을 이런 여자가 턱턱 내놓는 걸 보니 뭔가 격렬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흥정을 더 하면 금화를 더 얻어낼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그런 것에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를 느끼지 못한 형진은 바로 거래를 완료했다.
거래를 완료하고 보니 뭔가 엄청난 짓을 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공헌도는 수백만 이상. 이것을 모두 금화로 환산한다면 족히 수천만 금화에 해당한다.
“허미…”
그냥 그 돈으로 저쪽 세계를 다 사버려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이쪽 세계의 가치로 환산해 볼까도 했지만 머리가 아파져서 그만 두기로 했다.
어차피 지구의 금 시세 따위 형진이 기억하고 있을 리도 없는 일이고.
형진은 그렇게 얻은 금화로 곧바로 거래소에서 구지구엽초 세 개를 샀다.
하지만 이걸 그냥 먹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바로 로그 아웃을 한 다음 기르카의 지부장인 프리이에게로 달려갔다.
“어서 오세요. 아, 진님이시군요. 어쩐 일이세요?”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약은 그냥 자연 상태 그대로 먹는 것보다 정제를 통해 효과를 증폭시키는 것이 낫다. 하지만 형진은 아직 연금술을 익히지 않은 상태이기에, 지인 중에 가장 좋은 연금술 실력을 가진 프리이에게 달려온 것이다.
“그런데… 가게가 모습이 좀 바뀐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실은…”
프리이의 가게는 처음 왔을 때보다 몇 배는 규모가 늘어난 모습이었다. 단순히 크기만 커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도 많아졌다. 얼핏 보기에도 열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수습 연금술사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진님과의 계약을 통해 일그러진 시간의 돌을 납품하기로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 실력이 높아지다 보니 실패율이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성공한 비약보다 실패시 나온 부산물이 더 비싸고 가치 있게 취급된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긴 했지만, 덕분에 프리이는 그동안 시도해 보지 못했던 여러 조합을 시도할 수 있었고 지금은 어엿한 연금술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실력이 올라가니 실패율이 줄어들어 일그러진 시간의 돌의 생산량이 급감해 버린 것. 그렇다고 연금술 실력을 다시 떨어뜨릴 수도 없는 일이라 잠시 고민하던 프리이는 근처의 사람들을 고용해 그들에게 일그러진 시간의 돌을 생산하는 일을 맡겼다. 어차피 실패의 부산물인 일그러진 시간의 돌을 만드는 일에는 오히려 그런 생초보들이 더 알맞았기 때문이다.
“그랬군요.”
형진으로서야 누가 만들었든 간에 일그러진 시간의 돌만 안정적으로 공급 받으면 되는 일.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며 이곳을 찾은 용건을 말했다.
“오늘 이곳을 찾은 것은 프리이님께 이것을 정제하는 일을 맡기고 싶어서입니다.”
“이, 이건!”
프리이는 세 뿌리나 되는 구지구엽초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어디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해드릴게요.”
프리이는 허둥지둥 자신의 전용 연구실로 달려가더니 이끼가 깔린 나무곽 하나를 가져다가 구지구엽초를 조심스럽게 담았다.
“따라오세요.”
“네.”
형진 덕분에 돈을 많이 벌어서인지 전용 연구실이 제법 그럴 듯하게 차려져 있었다. 프리이는 그곳에서 무언가 장치를 작동시키더니 형진이 보는 앞에서 구지구엽초를 정제해서 환약으로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워낙 가치가 높은 약초이다 보니 정제 중에 뭔가 다른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형진을 데리고 들어온 모양이다. 어쩌면 그런 마음이 들지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한참이나 뭔가 쿵떡거리며 부산을 떨더니, 이내 땀이 흠뻑 젖은 모습으로 손가락 마디 하나는 될 법한 지름을 가진 금빛 영단 세 개를 만들어서 형진이게 가지고 온다.
“끄, 끝났어요.”
실패 없이 무사히 끝났다는 것이 기쁜 모양인지 프리이의 표정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건 대단치는 않지만 사례입니다.”
“네? 이러실 것 까지는… 헉!”
프리이는 형진이 건네준 주머니의 내용물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전 처음 보는 형태로 주조된, 하지만 아무리 봐도 금화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돈이 주머니에 열 개나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금화는 캐시를 팔아서 번 돈 가운데 구지구엽초를 구매하고 남은 것이다. 흔히 사용되는 바이겔 기념 금화보다 조금 작긴 하지만 순도가 높으니 가치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이, 이, 이건 너무 많은데요.”
“무슨 말씀을. 이런 영약을 다룰 수 있는 연금술사가 어디 흔한가요. 게다가 무사히 세 개 모두 영약으로 정제를 해주셨으니 성공 보수도 포함된 금액입니다.”
“그래도…”
프리이는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형진은 바로 인사를 건네고는 가게를 빠져 나와 자신의 아틀리에로 돌아왔다.
“자, 그럼 먹어 볼까.”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형진은 잠시 심호흡을 한 뒤 구지구엽초로 만든 영단을 하나 입에 넣었다.
영약은 입 안에 넣기가 무섭게 사르르 녹으며 그대로 신체로 스며들더니 뭔가 뜨거운 기운 같은 것이 몸 안을 한번 휘도는 느낌과 함께 메시지가 나타난다.
[영약을 섭취해 체력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오오!”어쩐지 괜히 막 큰 소리를 치고 싶은 그런 느낌. 하지만 형진은 그렇게 들뜨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남은 구지구엽초 영단으로 손을 가져갔다.
============================ 작품 후기 ============================
덧1)계산해 봤는데 3천만 금화 정도가 금 천 톤 정도 되는 듯. 참고로 대한민국의 2016년 금 보유고는 104톤, 미국의 금 보유고는 8133톤. 아직 얼마 안 됨. 그만큼 지구의 경제 규모가 크기도 하고. 허세와 망상이 괜히 지구로 온 게 아니죠.
여기서 문제. 공포와 죽음이 형진에게 빨대 꼽아서 얻은 공헌도는 그럼 얼마나 될까요. 간단합니다. 곱하기 9되겠습니다. 즉, 형진에게 빨대 꼽아서 공죽이 먹은 공헌도만 금으로 환산해도 미국 금 보유고보다 많다는 얘기. 괜히 공죽이 형진을 예뻐하는 게 아님.
원래는 본문에 넣을까도 했지만, 형진이 금 시세나 각국의 금 보유고 따위를 다 기억하고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고로 여기에 적어둡니다. 그냥 참고로만 알아두세요.
덧2)구지구엽초는 삼지구엽초라는 실제 약초에서 모티브를 얻은 약초이고, 삼지구엽초는 흔히 음양곽이라고도 합니다. 음양곽은 음탕한(淫) 양이(羊) 먹는 풀(藿)이라는 뜻인데, 어떤 양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려 백 마리가 넘는 암양과 교접을 하는 것이 신기해서 살펴보자 이 풀을 먹고 원기를 회복하더라는 얘기로부터 비롯된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