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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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유희
결국 칠인조의 불한당들은 다시 한 번 무한의 저글링 지옥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이 끔찍한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그들은, 다급하게 길챗으로 길드원들에게 구원을 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반응들 뿐이었다.
“거길 또 가라고? 미쳤어?”
“뭐에 죽었는지도 모르는 판에 거길 다시 가라고?”
“이것들 혹시 작업 아니야?”
“프락치인지도.”
“너희들 때문에 길드 전력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는 알아?”
“염치가 없어요. 염치가.”
그래도 의리랍시고 달려온 한두 명과 상황 파악 못하고 쭐래쭐래 구경 왔던 한두 명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난다 고래를 연발하며 지옥의 저글링 대열에 합류했다. 이렇게 되자 길드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파괴되거나 잃어버린 아이템의 복구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몇몇은 아예 애타게 구원 요청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차단해 버리기도 한다.
애초에 친밀감보다는 이해로 묶인 이들이니 관계의 재설정도 그만큼 간단한 것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이 상황에서 다시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몰염치한 것인지도.
결국 칠인조의 불한당과 얼결에 새로운 희생자가 되어 버린 몇몇 이들은 다시금 아이템을 깨먹고 부활존 신세를 지는 처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쩌지?”
템도 다 깨먹고 레벨까지 깎였다. 이래서는 암살단은 물론이고 사냥도 쉽지 않을 지경이다.
막막한 기분에 거지꼴로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있는데, 문득 지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저가 입을 열었다.
“이건 버그야. 버그가 틀림없어. 지형이 바뀌었다고. 그게 유저에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거야… 그렇지.”
월드 보스가 나타나서 즉사기를 써도 지형 자체가 바뀌진 않는다. 보스의 출현 지역 자체에 나름의 보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늪지의 지형 자체가 바뀌었다.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끔찍한 낭떠러지로.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유저에게는 허락된 일이 아니다.
“신고하자.”
이미 한 번 신고로 아이템을 복구 받은 전례가 있던 지영이 그렇게 앞장서서 운영자에게 신고를 넣었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일. 게다가 이미 복구 받은 전례마저 있으니 바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열심히 하늘을 날며 찍은 늪지의 변해버린 지형에 대한 것도 함께.
깨먹고 잃어버린 아이템이 워낙 많아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복구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까마득하다. 아이템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말 게임을 접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을 정도라 지영은 심혈을 기울여 신고의 문건을 작성했다.
하지만 그렇게 신고를 넣어도 어째서인지 운영자에게서는 좀처럼 답이 오지 않았다. 일이 안 되려고 작정을 한 것인지, 피 말리는 심정으로 끙끙거리며 메일함을 붙잡고 있다가 전화 연결을 신청해 봐도 소용이 없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계속 연결중이라는 메시지만 뜨고 상담원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오늘도 메일이 안 오면 쳐들어 간다고 마음을 먹을 즈음이 되어 서야 비로소 답장이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지상낙원 엘리시온 GM 막달레나입니다.
오픈 이후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모험가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보내주신 문의는 아이템 분실 내용으로 확인됩니다.
우선, 아이템 분실은 유저의 실수로 인한 경우 복구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이에, 모험가님께서 해당 사항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신 부분에 대해서는 내부적인 논의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시스템 개선 및 업데이트에 대한 부분은 많은 모험가님들의 의견과 세부적인 논의를 거쳐 진행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다소 시일이 소요될 수 있는 점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후에도 다른 도움이 필요하시거나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실 경우에는 언제든지 1:1문의를 이용해주시길 바라며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지상낙원 엘리시온과 함께 오늘도 즐거운 여정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드디어 답장이 왔다는 생각에 얼른 내용을 확인해 보았던 지영은 잠시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입만 뻐끔거려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딱 봐도 이건 신고 내용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그냥 대충 표제어만 추출해서 거기에 맞는 답을 보내버린 매크로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던 기분이었지만, 이내 열이 확 치밀어 오른다.
“이 망할 자식들이 지금 장난하나! 내가 이 게임에 들인 돈이 얼만데!”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지영은 다시 장문의 항의 메일을 작성해서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영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피 말리는 시간이 며칠 정도 지난 뒤, 지영은 다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지상낙원 엘리시온 GM 고라파입니다.
오픈 이후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모험가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보내주신 문의는 서비스 불만 내용으로 확인됩니다.
우선, 서비스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발생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이에, 모험가님께서 해당 사항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신 부분에 대해서는
내부적인 논의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으아아아아아!”
지영은 마우스를 집어던지고 키보드를 책상에 마구 후려치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발광해야만 했다. 그렇게 열이 받아서 항의 메일을 보냈는데, 이번에도 그에게 돌아온 것은 매크로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오른 지영은 전화기를 붙들고 엘리시온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계속 연결중이라는 말만 나왔지만, 이번에는 어디 누가 먼저 죽나 해보자는 식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십여 차례의 시도 끝에 마침내 상담원과 연결이 되었다.
“네에… 안녕하세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지상낙원 엘리시온 상담원…”
어쩐지 좀 늘어지는 듯한 느낌의 목소리를 지닌 남자 상담원이 전화를 받는다. 지영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열이 확 뻗쳐서 다짜고자 욕설부터 쏟아붓기 시작했다.
“야이 망할 C+ B+ 팔랄랄라라…”
그렇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지만, 상대는 이런 상황에 이미 만성이 되어 있었던지 그냥 담담한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네에… 고객님. 진정하시고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건지 명료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내가 지금 진정하게 됐어? 진정하게 됐냐고? 야이 망할 C+ B+ 팔랄랄라라…”
“네에… 화가 많이 나셨군요. 진정하시고 문의 내용을 정확하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내가 메일을 몇 번이나 보냈는 줄 알아? 야이 망할 C+ B+ 팔랄랄라라…”
“네에… 고객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욕설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뭐? 그럼 고발해라. 씨발놈아. 확 아가리를 찢어 버릴라.”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하신대로 고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엘리시온 상담원 XXX였습니다.”
“뭐?”
나른한 목소리로 고발 조치한다는 말이 이어지고 전화가 끊기자 지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이게… 무슨?”
당황한 지영은 다시 상담원 연결을 시도했지만, 블랙리스트 처리가 된 것인지 그의 전화는 다시는 상담원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말로 며칠 뒤에 경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X지영씨죠? XX경찰서입니다. 업무방해와 모욕죄로 고발되셔서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그와 암살단 길드가 형진에게 농락을 당하기 며칠 전에 벌어진 누드 패치 사건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엘리시온 운영진은 이 누드 패치 사건을 틀어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기로 결정했고, 회의에서 언급된 대로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은 당시 누드 패치 사건을 경험한 유저들을 직접 만나는 일에 투입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기존에 고객 센터에서 유저들의 상담을 맡고 있던 CS팀원들은 물론이고 영업이나 기획 같은 팀원들까지 모조리 불려 나가는 바람에 정작 회사의 고객 센터 업무는 마비가 되어 버릴 지경에 처했다.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고객 센터를 비워둘 수는 없는 일. 때문에 엘리시온 한국 지사에서는 급히 외부에서 단기 계약직들을 끌어 들여서 이 공백을 메워야만 했다. 어쨌든 구색은 맞춰놔야 하는데 당장 내부에는 인력이 없으니 외부에서 임시로라도 끌어오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데리고 온 단기 계약직들은 업무 숙련도에서 많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며칠 일하고 나서 다른 데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에 대한 애착이 있을 리도 만무한 일. 그저 위에서 내려 보낸 업무 매뉴얼대로 매크로 답변을 보내고 설렁설렁 상담을 대신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니 지영이 답장을 받아보고 열불이 치밀어 올라 욕설을 하게 된 것. 하지만 아무리 사정이 그래도 회사에서 고발시 제출한 상담원 연결 통화 당시의 녹취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였고, 지영은 결국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이미 게임이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다. 자칫하면 빨간 줄 그어지게 생긴 마당에 게임이 대수인가. 아무리 열이 받아도 그렇게 다짜고짜 욕을 한 건 지영의 잘못이니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칠인조나 다른 암살단 길드의 인원들도 문의나 신고를 넣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도 결국은 매크로 답변에 불과했으며 신고 내용은 위로 올라가지도 않았다.
다른 유저들이라도 늪지의 변화를 알아차려서 이것이 인터넷상에서 이슈가 되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늪지를 암살단이 통제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동안 유저들은 그곳에 얼씬도 하지 않았고, 결국 꽤 시간이 지나서 거대한 싱크홀에 토사가 들어차 다시 늪지의 모습이 갖추어지자 그곳에서 있었던 일은 자취조차 남기지 않고 완전히 묻혀 버리게 되었다.
복수를 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역시 미엘의 브레스는 너무 심했다 싶었기에 잠시 시간을 두고 상황을 지켜 보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형진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허세와 망상이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건가.”
지영이나 다른 이들이 겪은 일이나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으니 그런 식의 추측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이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한을 풀었으니 조금은 홀가분한 기분이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잠시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던 형진은 조심스럽게 암살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악연으로 묶인 상황이니 이곳 엘리시온에서 활동할 생각이라면 다소나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얘기 들었어?”
“뭔데?”
“암살단 해체 되었다던데?”
“뭐? 정말?”
“응. 얼마 전에 뭔지는 몰라도 된통 깨졌다더라고. 주력 인원들 대부분이 아이템 깨먹고 빌빌 대다가, 얼마 전에 길드 몇 군데에서 연합으로 때려잡아서 박살내 버렸다더라고.”
“와! 정말이야!”
“응, 틀림없어.”
그렇지 않아도 적이 많은 상태에서 전력이 약화되고 내부결속마저도 와해의 기미를 보이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전부터 암살단을 눈에 가시로 보고 있던 몇몇 길드들이 연합해서 완전히 축출해 버린 모양이다. 물론 그래봐야 그곳에 속해 있던 유저들 자체는 다시 어딘가에서 활동을 이어가겠지만, 적어도 암살단이라는 하나의 길드가 박살나 버린 것만은 여러 가지 루트로 정보를 종합해 본 결과 사실로 밝혀졌다.
“그거 참.”
뭐랄까.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여우와 족제비에게 맞아죽던, 정말이지 전투 센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던 자신이 악명 높은 길드 하나가 와해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게 되다니.
좀 더 소문을 모아보니, 지영이라고 불리었던 그 유저가 고객 센터에 욕설을 퍼부었다가 고발되었다는 소식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보통 유저라면 그런 식으로 소문이 나거나 하지 않았겠지만, 템귀로 이름 높은데다 암살단 유저 중에서도 꽤 유명한 인물이다 보니 유저들 사이에 바로 이슈가 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