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25
00625 142. 본선 =========================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에 대한 보수를 받아올 것.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보수로 신들이 한 일의 가치를 측량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일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황한 와중에도 친구를 만드는 데 성공한 1조나 그들의 도움을 받아 뒤늦게라도 인간들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던 3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면부지의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가서 느닷없이 일 좀 시켜 달라고 하는 것과, 그래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일거리를 나눠 받는 건 상식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다. 난이도 자체가 달라질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탓이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저희도!”
성장과 질주를 필두로 한 1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고, 그 뒤를 이슬과 서릿발의 3조가 뒤따른다. 어떻게 해야 할 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나머지 두 조는 그제서야 상황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미션이 이어질 줄이야.”
벗과 추억의 탄식 섞인 목소리와 함께 다른 이들도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나와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아무나 붙잡고 일 좀 시켜 달라고 했다가는 어제처럼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과 마주칠 수도 있는 일이다.
같은 조의 신인 반지와 거울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해변을 청소하는 사람들을 본 것 같은데, 그거라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청소요?”
벗과 추억은 얼굴을 찌푸렸다. 어제 친구 좀 되어 달라고 다짜고짜 말했다가 야단을 맞았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일 하는데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해서야 되겠냐고, 인간 따위에게 아주 제대로 혼이 났었다.
하지만 다른 조원인 우산과 구유는 반지와 거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요. 자원봉사라고 했던가요. 그거라면 딱히 다른 사람에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어제 민폐를 끼친 것에 대한 사죄의 뜻도 될 테고.”
하지만 벗과 추억은 역시 별로 탐탁지 않은 기색이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이해하지만… 이번 미션은 단순히 일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보수를 받아서 제출해야만 합니다. 그것을 잊고 계신 건 아닙니까?”
그 말에 반지와 거울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요. 게다가 이 섬은 외부와 단절된 휴양지입니다. 마음 놓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지만, 일을 찾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곳이죠. 친구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
마지막 말에 벗과 추억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온전히 그만의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도, 어쨌든 큰 소리 쳤던 것에 비해 너무나 한심한 결과를 가지고 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후우… 할 수 없군요. 저로서도 달리 좋은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고.”
우산과 구유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덧붙인다.
“사소한 것이라도 일단은 미션에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두 번째 미션마저 실패하게 된다면, 자칫 탈락할 위험도 있으니까요.”
탈락.
그 말이 세 신의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물론 본선에서 탈락한다 해도 연습생의 신분은 주어지겠지만, 초반에 어이없이 탈락한 자와 나중까지 경합하다가 패배한 자의 대우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그들은 좀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조금은 암울한 느낌으로 두 번째 미션을 준비하는 다른 조와는 다르게, 첫 번째 미션을 성공한 1조는 어제 사귀었던 친구들을 찾아가 자신들이 수행해야 하는 미션에 대해 설명했다.
“혹시 예능 프로그램 같은 거에 참가한 건가요?”
“비슷한 거에요.”
“그럼 혹시 연예인? 어쩐지 너무 귀엽다 싶었어요. 일행분들도 은근히 멋진 분들이고.”
“하… 하하… 뭐… 비슷하다고 해두죠.”
“잠시만요. 제가 일을 드리긴 어렵지만, 아빠한테 말하면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일이 술술 잘 풀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막상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나자 그들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음… 이 나라에서는 외국인이 일을 하기 위해 그에 걸맞은 자격을 필요로 합니다. 인구가 적은 나라인 만큼, 그런 부분에서는 의외로 꽤 엄격하죠.”
“그, 그런가요?”
“네. 에덴아일랜드 레지던스에 해당된다 해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바로 유급 직업 허가증(Gainful Occupation Permit, GOP)이라는 것인데요. 이것이 있어야 세이셸 내에서 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뭔가 엄청나게 복잡하다.
“그럼 그건 어떻게 구하는 건가요?”
“발급 자체는 내무부 산하 이민국에서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면 됩니다. 물론 신청한다고 무조건 발급되는 것도 아니지만, 역시 여러분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최소 근무를 시작 10주 전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점이겠군요.”
“헉. 그런…”
추가로 이 유급 직업 허가증을 발급 받기 전에는 취업을 목적으로 입국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이미 에덴아일랜드 레지던스로 들어와 있는 상태이니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성장과 질주는 자신의 이해범위를 넘어가는 여러 절차와 법규의 설명에, 이내 눈이 핑핑 돌아가는 듯한 느낌에 정신마저 혼미해지고 말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견고와 인내도 상황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역시나 1조에서 머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청렴과 절조는 고심하다가 다시 이렇게 말을 꺼냈다.
“이 정도로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주최 측에서 몰랐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굳이 그걸 설명하지 않았다는 건 바꿔 말하자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 되겠군요.”
친구 아버지는 청렴과 절조의 말에 긍정의 뜻을 표했다.
“그렇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결국 가능성은 두 가지가 되겠군요. 하나는 법규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의 보수를 받는 식의 일을 전제로 주어진 미션일 가능성이 하나이고, 나머지는 이미 법적 절차가 완료되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겠죠.”
“첫 번째는 그렇다 쳐도, 두 번째는 확인이 필요하겠습니다.”
“말씀대로입니다.”
둘의 대화를 들은 성장과 질주는 얼른 본신을 통해 형진에게 자신들이 들은 내용에 대한 문의를 했다. 물론 당연히 대답은 그런거 없음이다.
“이번 오디션을 시작한 것이 언제인데, 사전에 미리 허가를 받겠습니까. 시간 상으로 생각해도 맞지 않는 일이죠.”
그렇다. 유급 직업 허가증을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주 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소문이 나고 신들을 불러들여 오디션을 시작한 것 자체가 10주는커녕 일주일도 안 된 최근의 일이다. 당연히 그런 허가증 따위 사전에 발급해 두었을 턱이 없다.
“그렇다면, 결국 가능한 방법은 첫 번째가 되겠군요.”
친구 아버지는 어느 나라에서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인지는 몰라도 좀 허술하다 싶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덴아일랜드 레지던스 가운데 빌라의 경우는 최소가가 이백오십만 달러에 달한다. 물론 법인으로 구매된 빌라를 임대하는 형식이라면 좀 더 비용은 절감되겠지만, 이래저래 간단하게 사용될 만한 금액은 아닌 셈이다. 그런 일을 기획하면서 이런 부분도 신경을 쓰지 않다니, 좀이 아니라 많이 허술한 수준이다.
하지만 사실 하루 만에 그럴 듯한 일거리를 얻어 그럴 듯한 보수를 얻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냥 간단하게 친구 집의 일을 돕고 음식이나 음료 같은 것을 사례로 받는 정도를 감안한 것은 아닐까.
“얘기가 꽤 멀리 돌아온 셈이긴 합니다만, 좋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뭔가 좋은 방법이 있으십니까?”
“실은 점심쯤에 요트를 타고 나가서 바다낚시를 할 예정입니다. 그 일을 도와주신다면, 낚은 물고기 가운데 일부를 보수로 드리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어떻게 하나 싶어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지켜보던 딸이 얼른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저도 갈래요! 친구들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갑작스런 딸의 요청에 남자는 허허거리며 답했다.
“상관은 없지만, 넌 원래 이런 거 싫어했잖아.”
“그야 배 나온 아저씨들 틈에서 혼자 노는 게 싫어서 그랬던 거구요.”
“끙… 그 배 나온 아저씨들 가운데 이 아빠도 포함되어 있는 거냐.”
“아이, 물론 그건 아니죠. 아시면서.”
“허허…”
딸의 경우엔 그저 귀엽고 잘생긴 남자들과 함께 바다에서 노는 것에만 흥미가 있는 모양이었지만, 아버지의 경우엔 이 세 명의 남자가 착용하고 있는 손목 밴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눈썰미가 남다른 그는 슬쩍 본 것만으로도 그 손목 밴드가 현재 티폰을 탐사하고 있는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그 물건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본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저 형태만 비슷한 이미테이션이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어제 밤 파티에서 성장과 질주가 그것을 자랑 삼아 꺼내 보인 것을 남자는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미라지 코어의 최고 기술 책임자인 프리츠 베커는 이 물품에 대해 당분간 시판 계획이 없음을 알린 바 있다.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지금 이들이 착용하고 있는 2세대 호버 보드가 일반적인 방식으로 구매된 물건이 아니라는 뜻. 그 의미를 한 번 더 뒤집으면,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세 명의 인물이 미라지 코어의 관계자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연결된다.
미라지 코어는 현재 지구상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강대한 영향력을 지닌 기업이다. 그런 기업이라면 에덴아일랜드 레지던스 가운데서도 가장 고가인 빌라의 소유주로도 부족함이 없다. 이들은 슬쩍 예능 프로그램 같은 거라고 둘러댔지만, 어쩌면 이것은 그저 단순한 유흥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리 딸의 부탁이라고는 해도 제대로 일면식조차 없는 이들의 얘기를 그렇게 친절하게 들어주고 그 방법마저 찾아준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내막이야 어찌 되었든 1조의 신들은 그렇게 곧바로 바다낚시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각자 미션을 수행하다 보니 다시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저녁 시간이 되어 다시 빌라로 돌아온 그들은 자신들이 했던 일과 그것을 통해 받은 보수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끙차. 저희들이 받아온 보수는 바로 이겁니다.”
“우와…”
척 보기에도 엄청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커다란 참치 한 마리가 견고와 인내의 손에 의해 모두에게 드러났다. 신들이 셋이나 참여했던 덕분인지 바다낚시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친구 아버지는 매우 기뻐하며 그 중에서 가장 큰 참치 한 마리를 통째로 선물해 주었다. 어떻게 보면 일을 했다기 보다는 바다에 나가 재미있게 즐기고 온 셈이었지만, 어쨌든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열심히 도운 것은 사실이니 보수라는 말에는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
청렴과 절조가 간단하게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설명하자,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대단하군요. 이런 훌륭한 식재료를 보니 모처럼 요리사로서의 혼이 끓어오르는 느낌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2조는 침울한 표정으로 아무것도 내놓지 못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섬을 돌아다니며 일을 부탁해 봤지만 결국 허탕을 쳐버리고 만 것이다. 2조를 대표해서 나온 진주와 장미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자신들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음을 보고하고 물러났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그럼 다음 분 부탁드립니다.”
3조의 대표로 나온 이슬과 서릿발은 잘 포장된 먹을거리를 그들 앞에 내놓았다.
“어제 밤에 파티를 하고 난 곳에서 뒤처리와 청소를 도왔습니다. 이건 그분들이 성의 표시라면서 나눠주신 음식들입니다.”
“아…”
1조의 인원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왜 진작 그걸 떠올리지 못했나 하는 듯한 탄성을 터트렸다. 파티란 즐길 때는 흥겨운 것이지만, 그것이 끝나고 나서의 뒤처리는 무척이나 귀찮고 골치 아픈 일이다. 3조의 인원들은 그 점을 간파하고 굳이 일이라든가 보수 같은 내용을 언급하지도 않은 상태로 이 미션을 훌륭하게 수행한 것이다.
“역시… 만만치 않군요.”
“그러게요.”
마지막 4조는 음료수가 담긴 페트병 몇 개를 가져왔다.
“저희는 해변을 청소했습니다. 이건 보수라고 하긴 뭐하고… 그냥 지나가던 분들이 수고한다며 나눠주신 음료수입니다만, 일단 가지고 와봤습니다.”
조금 부끄러운 기색이 다긴 반지와 거울의 말에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나 치사의 말을 했다.
“좋은 일을 하셨군요.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그렇게 성과 보고가 끝나자, 형진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오늘로서 두 가지 미션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두 가지 미션 모두 실패한 팀이 나타났습니다.”
형진의 말에 진주와 장미를 포함한 2조의 인원들은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두 가지 미션 모두를 실패한 것은 그들의 조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표정으로 진주와 장미는 형진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가차없이 이렇게 선언했다.
“2조에 속하신 여러분. 아쉽지만, 여러분은 이번 본선의 첫 번째 탈락자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하셨습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녹아내린 자의 얼룩에 버섯이 피었습니다. 세상에, 동충하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