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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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앞서서 휴재공지를 보셨던 분은, 공지를 삭제하고 내용이 채워졌으니 이전편을 다시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어디냐!”
“화, 확인 중입니다.”
우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스틱스 내부에서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의 파동. 그것이 지금 상황에서 의미하는 바는 결국 단 한가지다.
빛의 신. 지금껏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고 있던 그 존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규설과 힐리에타는 물론이고, 조금은 느긋하게 또 조금은 안도하는 기색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여신들까지 나서서 급히 파동이 일어난 지점을 파악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동이 확인된 시간대를 역추적하고 있습니다.”
곧바로 상황도에 각지에서 확인된 파동의 시간대가 표시되기 시작한다. 같은 시간에 파동이 느껴진 곳을 선으로 연결하자, 우주에 나이테와 같은 거대한 동심원이 펼쳐진다.
“이 정도로 강력한 파동이라면… 그 근원지는…”
우주 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게다가 빛의 속도고 뭐고 초월해버린 수준의 파동이라면 그 에너지가 어느 정도일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이 우주 한복판에서 다시금 새로운 빅뱅이 출현했어도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면 그 여파가 어느 정도일까.
“근원지 인근의 영상을… 윽!”
“꺄악!”
급히 추적된 파동의 근원 인근의 영상을 상황실에 나타내려던 규설은 갑자기 화면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강렬한 빛에 작게 비명을 질렀고, 그녀의 말에 얼른 시선을 돌리던 이들 역시 예상치 못한 빛에 노출되자 크게 놀라며 비명을 터트리고 말았다.
“칫.”
형진이 작게 혀를 차며 손을 내저으니 그제서야 상황실 안을 가득 채웠던 빛이 사그라 들고 직접 봐도 별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상황실 안이 보호의 권능이 발휘되는 성역이라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 안에 있는 모두가 실명했을지도 모른다.
“누가 빛 아니랄까봐.”
투덜거림이 섞인 형진의 말을 듣는 순간 화들짝 놀란 규설이 바로 움직였다.
“화, 화면을 축소합니다.”
급히 규설이 화면을 조작하자 그제서야 빛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더럽게 크군. 대략적인 규모는?”
화면으로부터 나타나는 빛의 크기를 보며 형진이 다시 입을 열자, 힐리에타가 허둥대며 답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확인 중입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굳이 확인하고 말고 할 필요도 없을 것 같군.”
“…”
굳이 몇 광년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의 모습. 당장 영상을 보내온 관측지의 거리와 파동의 근원까지의 거리만 확인해 봐도 그건 분명한 일이다.
참고로, 지구가 존재하는 우리 은하의 직경은 약 십만 광년이고, 그 두께는 일만 오천 광년 정도 된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저 빛 덩어리의 규모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그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수준이다.
“아마도… 저 크기 전부가 실체라기 보다는…”
심각한 표정으로 옆에서 리페가 중얼거렸고,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그래. 저건 놈이 아니라, 놈의 영역이야.”
말도 안 돼 라는 작은 중얼거림이 힐리에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영역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저것을 과연 무엇으로 정의해야 좋을지 형진으로서도 분간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와 닿는 것은 있었다. 놈이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미친 놈.”
놈이 하려던 일은 아주 간단했다.
존재하는 모든 우주를 빛으로 채우는 것. 이러니저러니 복잡하게 설명할 것도 없는 일이다.
우주는 왜 어두운가. 이러한 질문을 천문학자나 물리학자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아마도 우주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네아가 이 우주에 속한 이들에게 밤이 단순히 어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내민 바로 그 화두에 대해 빛의 신이 내놓은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던 셈이다.
우주가 어둡다면, 그것마저도 빛으로 채우리라.
놈은, 지금 이 순간 세상에 그렇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형진은 문득 예전에 포트니아 테론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우주를,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신과 더불어 커나갈 무언가가 아니라 포식의 대상으로 삼는 자들이 있다던 그녀의 말이 비로소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놈은 우주 그 자체를 오로지 빛이라는 하나의 개념만이 실재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 해서 과연 무엇을 이루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포식을 넘어선, 어쩌면 그 자체로 거대한 또 다른 존재로의 진화일 수도 있었다. 수많은 다중 우주의 한 갈래 그 자체를 온전히 자신과 동일한 의미로 만들어, 그 위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또 다른 우주와 동격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놈의 가장 큰 목표는 아마도 그러한 수많은 다중 우주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근원에 도달하는 것이겠지.
어찌 보면 그것은 존재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영역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형진은 또한 그 모든 것이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결국 무엇이 남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모든 것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고 난 뒤에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근원으로부터 탄생한 모든 것을 무로 돌리고, 다시 근원 그 자체로 돌아간 뒤에 지금 스스로를 빛이라 부르는 저 존재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것들을 본래대로 되돌리고 나면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형진은 놈을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
“미친 놈.”
다시 한 번 그의 입에서 중얼거림이 흘러나온 순간, 힐리에타가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터트렸다.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놈이 지금 이 순간 저러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를 지지하고 그의 진화를 뒷받침해야 할 지성체들의 신앙이 흔들리면서 이 모든 것을 이룰 토대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십만 광년, 백만 광년이라고 하면 엄청난 규모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어떨까. 우주에는 반경 이백만 광년에 수조개의 별이 모여 있는 은하조차 존재한다. 하나의 신이 그 정도 규모의 영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그것도 결국은 멀리서 봤을 때는 아주 작은 반짝임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이 지금 이 순간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결국 지금까지와 같은 간접적인 방법이 아닌, 과거 포트니아 테론이 언급했던 것처럼 직접적으로 이 우주를 포식하기 위함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모르긴 해도, 저것이 있는 공간의 모든 것들은 이미 놈의 빛에 타고 녹아들어 소화되고 있는 중이리라.
“자, 잠깐. 어쩌려고?”
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잠시 넋이 나간 모습으로 화면을 지켜보고 있던 리페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어쩌긴. 막아야지.”
“저걸? 저런 말도 안 되는 걸 막는다고? 무슨 수로?”
저것이 영역이라면, 모처럼 만들어 놓은 아스트라페 같은 무기도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설령 통한다 할지라도 놈의 위치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놈에게 먹혀 버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지금의 저 녀석이라면, 신이라 해도 그저 맛 좋은 먹이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테니.
때문에 리페는 물론이고 상황실에 모여 있던 모두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남편이며 하나의 우주를 다스리는 주신인 이 남자는,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을 넘어 왔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적은 너무나도 강대해서,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절로 들게 한다.
형진은 그런 아내들을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이거 너무한데. 내가 대단한 게 정말 침실에서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그런 농담할 때가 아니잖아?”
“왜?”
“그건.”
반문하는 형진의 말에 리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형진은 그런 리페를 끌어당겨 이마에 입을 맞춰주고는 다시 말했다.
“걱정마. 당신의 남편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니까.”
“바보.”
투덜거리는 리페를 가만히 끌어 안아준 형진은 다른 아내들 역시 품으로 끌어당겨 가만히 안아주었다.
“내기 하나 할까?”
“무슨?”
“내가 이기고 돌아오면, 내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보통 이런 식의 얘기를 다른 이가 꺼냈다면 무슨 불길한 소리를 하느냐고 했겠지만, 아내들은 그만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 왜 웃어?”
예상외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아란이 눈웃음을 지은 채 답한다.
“왜 웃긴요. 도대체 또 무슨 변태 같은 생각을 떠올렸나 싶어서죠.”
“쳇.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리페가 얼른 말을 잇는다.
“뭘로 보긴. 변태로 보지.”
“끙.”
그렇게 가볍게 대화를 나눈 형진은 다시금 아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고는 공간을 열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순간 미아가 그의 뒤를 따르려는 듯이 움찔하며 움직였지만, 아란이 가만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우리들이 할 일은 그를 따라가는 게 아니에요.”
“그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겠어요?”
“…”
직접 형진의 옆에 서서 함께 싸울 수는 없지만, 지금 우주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을 마무리 짓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형진에게는 큰 힘이 된다. 단순히 기세의 문제를 넘어서, 빛의 신을 신앙하는 자들의 세력을 꺾고 그 힘을 형진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아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란은 비로소 그녀의 손을 놓고는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예정보다 상황이 급해졌어요. 빨리빨리 움직여야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거에요. 그러니, 모두 힘내 주세요.”
“네!”
은연중에 상황실의 주도권을 아란이 가져가자, 리페는 어쩐지 다시금 한수 접어주는 모양새가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작게 뭐라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녀 역시 형진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마찬가지. 곧바로 자리에 앉아 시시각각 들어오는 전장의 상황을 파악하고 조율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니… 어마무시하군.”
고작 백만 광년 정도 쯤이야 하는 식으로 폄하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걸 코앞에서 눈으로 확인하니 절로 입이 벌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빌어먹을. 정말 더럽게 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놈이 추종자로 하여금 균열을 두드리게끔 한 것은, 다른 우주에도 자신과 같은 존재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아니면 좀 더 간단하게 먹어치울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렇다고 보기엔 뭔가 이상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은, 그런 느낌이랄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현재로서는 확실한 바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아마도 그 모든 것은 직접 놈과 대면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일이리라.
“후우…”
형진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자신의 신격을 떠올렸다.
그의 신격은 밤.
단순히 어둠으로 들어찬 새카만 밤이 아니라, 아름다운 별들이 수없이 반짝이는, 그런 영롱한 밤이다.
신격을 깨달았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의 몸과 마음으로부터 밤이라는 이미지가 구체화되는 순간, 그의 주위에 화악하고 거대한 어둠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뻗어나오는 빛과 마주치는 순간, 형진의 입에서 또다시 한 마디 말이 흘러나왔다.
“이벤트 호라이즌, 전개.”
========== 작품 후기 ==========
세, 세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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