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80)
〈 80화 〉 080.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080.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엘라인의 집무실 밖으로 나온 나는 플룬 기사단 훈련장 쪽으로 움직였다. 숙소와 훈련장이 붙어 있는 형태다.
고대 유물, 스마트폰 때문에 당분간 전속 하인 없이 혼자서 저택 내를 다닐 수 있었다.
‘엘라인은 정기적으로 귀부인 모임에도 참석하고 있지. 거기서 다른 귀부인들은 바뀐 향수에 관심을 표할 테지.’
물론 엘라인은 출처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향수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엘라인은 신중한 여자니까.
‘그러지 않아도 상관없어. 다른 귀부인들에게 선물로 보내면 되니까.’
그 과정에서 내가 만들었다고 구라친다. 물론 향수만 보낼 생각이 없다. 다른 현대의 물건들도 귀부인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그렇게 내 명성을 서서히 알리고… 본격적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거지. 하하하하!’
어느 정도 인기를 얻은 뒤에는 서서히 가격을 올릴 것이다. 마탑이라면 짝퉁을 제조해 판매할 것이 분명하지만 상관없다. 마법으로 현대 과학을 따라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
‘너무 나대지 말고 천천히 하자. 아직 나만의 세력이 없으니까.’
그래도 내 뒤에는 푸르커스 백작가가 있으니 섣불리 건들지 못할 것이다.
나는 플룬 기사단 훈련장 앞에서 멈춰 섰다.
‘플룬 기사단장 헨트 엠비스. 지금 이 놈이랑 척을 져선 안 돼.’
렉시의 아버지인 그에게 사과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나는 백작가의 가주를 노리고 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장남이 가주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후계 싸움도 지지 세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지. 특히나 기사단의 지지는 커다란 힘이야.’
여기서 헨트 엠비스와 척을 질 수는 없었다. 만약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다면 내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암살해야 한다.
훈련장 앞에서 가만히 있자니, 안에 있던 한 소년이 내게 다가왔다.
스콰이어. 견습 기사다. 기사의 제자이자 종자라 할 수 있다.
“유진 공자님! 저희 훈련장에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일개 종자가 내게 하는 말이었다. 몸이나 표정은 숨기고 있으나 눈빛과 말투에 서려 있는 미묘한 적대감은 숨기지 못했다.
‘역시 소문이 다 났군.’
또 내가 병약하다는 것도 무시받는 이유 중 하나 일 것이다.
“엠비스 경을 만나러 왔다. 안내해라.”
“기사단장님은 지금…….”
“지금?”
내가 그를 쳐다봤다. 내 무심한 눈길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실언이었습니다.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주제 파악을 한 모양이다. 나는 종자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는 돌아가는 놈이군. 계속 선 넘으면 한따까리 하려고 했는데.’
귀족이 되었으면 귀족답게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귀족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자유민주주의? 그게 뭐지. 먹는 건가?
•••
우락부락한 40대 남성이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갑옷을 입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반겼다. 형식적인 일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유진 공자님.”
나를 보는 눈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적대감이 서려있다. 용병 출신으로 아득바득 기사단장까지 올라온 그가 표정하나 숨기지 못할 리가 없다.
뭐, 이해한다. 그의 입장에서 나는 딸을 겁탈하려던 놈이니까.
“반갑네. 이렇게 보는 건 또 오래만이군.”
“……예. 못 본 사이에 좀 많이 변하셨군요. 말투라던가.”
유진 프루커스는 내성적인 놈이었다. 몸이 병약하니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하고 방에만 쳐박혀 있었으니 성격도 자연스레 어두워진 것이다.
“요즘 몸이 건강해졌다네. 말투는 얼마 전에 성인식도 치렀으니 좀 신경써야하지 않겠나.”
“좋아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말과 다르게 그의 태도는 싸늘하기만 하다.
그의 입장에선 내가 상당히 좆같을 거다. 충성을 맹세한 주군의 자식이니 때릴 수도 없고, 욕도 할 수 없으니까.
괜히 서론만 질질 끌어봤자 분위기만 험악해질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 미안하네. 이렇게 사과하겠네. 내가 잠시 미쳤었어.”
“…….”
내가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 무려 프루커스 백작의 셋밖에 없는 자식 중 하나인 내가!
“……딸아이가 울었습니다.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습니다.”
“미안하네.”
“……후.”
헨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음을 그도 아는 것이다. 나를 적대하더라도 죄를 씌울 수 없다.
프루커스 영지에서 프루커스 백작은 왕이나 다름없다. 그 자식인 난 왕자다. 그리고 실제로 강간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내게 죄를 씌우는 건 불가능하다.
헨트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용서하겠습니다. 고개 드시지요.”
“고맙네.”
“…….”
“…….”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직감했다.
여기서 그냥 물러난다면, 헨트와의 관계는 최악이 될 것이다.
기사단 하나가 나를 적대한다. 비록 가문 내에 존재하는 여섯 기사단 중에서 하위권에 속하는 기사단이라 하더라도 기사단이다. 적대해서는 안 된다.
나는 원작에서 언급된 헨트 엠비스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용병 출신인 그는 술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엠비스 경. 고대에 존재했던 네덜란드 맥주라고 들어 봤나?”
꼬인 관계를 개선하려면 역시 선물… 아니, 뇌물밖에 없다.
•••
저녁 7시.
헨트는 자신의 집으로 귀가했다. 프루커스 백작가의 저택에 비하면 조막만한 집에 불과했다.
“다녀오셨어요. 아버지.”
“그래.”
헨트는 렉시의 인사에 대충 대꾸하면서 빠르게 주방 쪽으로 움직였다.
렉시는 그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충 인사를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약간 푼수끼가 있는 아버지다. 또한 보통 일을 마치면 집이 아니라 술집으로 이동해 오후 9시나 10시쯤에 돌아온다.
거기다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프루커스 백작가에서 보낸다. 지금처럼 일주일 내내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렉시는 헨트의 뒤를 따라 주방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남작님.”
주방에서 일하던 요리사가 익숙한 듯 헨트에게 인사했다.
“음. 그래.”
인사를 받은 헨트는 자연스럽게 그를 지나쳐 냉장고로 향했다. 마법 냉장고.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마도구다. 가격은 보통 500만 네르로 평민들 사이에선 필수 혼수품 취급받는 마도구다.
헨트는 냉장고 깊숙한 곳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꺼냈다. 차가운 캔맥주였다.
“아버지. 그건 뭐에요?”
“응? 뭐냐, 렉시. 너도 배고픈 거냐? 저녁 안 먹었나?”
“저녁 식사는 한 시간 전에 했어요. 아버지는 저택에서 먹고 오셨죠?”
헨트는 캔맥주를 들고 바로 주방 앞에 있는 작은 식탁에 앉았다. 요리사가 고기가 든 접시를 세팅했다.
“먹고 왔지. 이건 맥주다. 맥주.”
“맥주요? 그게?”
“고대 문명 시절에 있었던 네덜란드 맥주지.”
씩 웃은 헨트가 캔을 땄다.
취이익! 따악!
들을 때마다 시원하면서도 경쾌한 소리였다.
헨트는 신속하게 캔맥주를 입에 대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술집에서 파는 싸구려 맥주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맛의 맥주가 시원하게 목을 넘어간다.
“키야아아아아!”
그는 곧이어 포크를 손에 들고 잘 구워진 고기를 입에 넣었다. 시원한 맥주와 풍부한 육즙의 소고기. 최고의 조합이었다.
렉시는 잠자코 지켜봤다. 헨트가 술, 그것도 맥주를 좋아하는 건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고기가 비워지고, 맥주가 바닥났을 때. 렉시가 물었다.
“아버지. 그… 네덜란드 맥주란게 그렇게 맛있어요?”
“그래! 네덜란드 맥주에 비하면 술집에서 파는 맥주는 그냥 오줌이야! 오줌!”
호기롭게 말한 헨트는 아쉬운 눈길로 주방 쪽을 쳐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한 캔 더 먹고 싶은데, 캔맥주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최대한 아껴 먹어야 한다.
헨트는 힘겹게 눈을 돌리고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익숙하게 지포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 그건 또 뭐에요?”
“담배다. 담배. 궐련이라 하더군. 파이프 담배는 너도 알고 있겠지?”
“그거 파이프 담배보다 몸에 안 좋잖아 보이는데요?! 마약같은 거 아니에요?!”
“이미 약초꾼을 통해 확인했다. 가끔씩 피는 건 괜찮다.”
쓰읍. 후.
헨트는 멍한 눈동자로 담배 연기를 쳐다봤다. 일주일 전에는 담배 자체가 어색하고 꺼려졌는데, 지금은 틈만 나면 담배가 피고 싶었다.
“…설마. 그것들 유진 공자님한테 받은 거에요?”
“그래. 사과의 의미로 주더군. 너도 초콜릿과 커피를 받았지?”
“바, 받기야 했죠.”
렉시의 얼굴이 어색해졌다.
헨트는 렉시를 쳐다봤다. 일주일 전, 유진에게 강간당할 뻔하고 펑펑 울던 딸은 얼마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왔다.
지금의 렉시는 유진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니, 당시에도 무서워 하다기 보다는 놀랐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런 쪽 일로 경험이 아예 없으니까.
‘만약에. 그때….’
헨트는 문득 생각했다. 만약에 그때 렉시가 겁탈당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은 화가 나더라도 냉정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최대한 항의할 테고, 어쩌면 렉시는 유진의 처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진 공자의 장인 어른이 된다는 건…. 매일 맥주를 먹고, 담배를 필 수 있는 게 아닌가?’
딸이 겁탈당하는 쪽이 더 좋지 않았을까.
‘…취했군.’
헨트는 고개를 저었다.
“렉시. 넌 언제 결혼할거냐?”
“네?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너도 22살 아니냐. 이참에 하녀 일은 그만두고 혼처나 알아보는 게 어떠냐? 뭣하면 내가 추천해주마. 우리 기사단 중에 괜찮은 놈이 있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렉시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버지. 결혼은 제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했잖아요.”
“존중해준다고 했지, 결혼을 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거냐?”
“…….”
렉시가 입을 다물었다.
헨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농가의 자식이었던 그는 자유를 추구하며 용병이 되었다. 한때는 미궁을 탐험하는 모험가 노릇을 한 적도 있고, 병사로서 전쟁에 나선 경험도 있다. 연애 또한 자유롭게 하며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다.
자신이 그랬기에 딸의 결혼과 연애를 존중한다.
‘요즘 렉시를 보면 걱정이 돼서….’
자신은 기사.
영지에 침범한 몬스터를 죽이고, 던전을 없애고 전쟁에 나선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직업이다. 그러니 되도록 빨리 렉시의 결혼을 보고 싶었다.
“하녀 일은 그만둘 거냐?”
“…고민 중이에요. 사실 유진 공자님의 일도 조금 후회중이에요. 유진 공작님은 아직 어리니… 제가 제대로 처신했다면.”
헨트는 유진 공자는 얼마전에 성인식을 치룬 어엿한 남자다. 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유진은 심장병을 앓고 있고, 그 병약한 몸은 또래 남자들에 비해 작았다. 남자가 아니라 애로 보였다.
“유진 공자는 전속 하인을 두지 않고 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제법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어, 진짜요? 유진 공자님 병 때문에 마님이 허락할 리가 없는데….”
“최근에 병세가 많이 좋아져서 허락한 듯싶다. 그래도 유진 공자의 근처에 하인들이 시시때때로 돌아다니며 확인한다더군.”
“음….”
렉시는 다시 하녀일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헨트는 렉시의 몸을 새삼스럽게 훑어봤다. 성적인 시선이 아니다. 이건 일종의 버릇이다. 눈앞에 사람이 있으면 무심코 그 역량을 재고 마는 것이다.
‘……내가 가르쳐준 호신술은 꾸준히 수련하는 모양이군. 어지간한 놈들보다 낫군.’
겉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 처녀지만, 용병으로서 온갖 일을 경험한 헨트의 시선을 속일 수는 없다.
“렉시. 이번 기회에 기사가 되는 것은 어떠냐?”
“네? 저 여잔데요?”
“이 세상에는 이름난 여기사도 많다. 무엇보다 넌 마나 호흡법을 알고 있지 않나. 지금 마나를 어느 정도까지 다룰 수 있지?”
“잠깐 육체를 강화할 수는 있어요. …아니, 잠깐. 옛날에도 말했지만 저 기사 될 생각 없다니까요?!”
오러 유저 중급의 경지다.
22살. 마나를 느끼고 다룰 수 있다는 시점에서부터 재능은 증명된거나 다름없다.
“넌 하녀가 안 어울려. 집사장에게서 들었다. 청소나 빨래는 물론이고 요리도 제대로 못한다고.”
“으윽.”
“네가 유진 공자의 전속이 아니라 일반 하녀로서 일한다면 힘쓰는 일만 하겠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렉시가 유진의 유모를 밀어내고 전속하녀가 된 것은 이 배경 때문이다.
“하녀가 하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듯, 여기사도 여기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한 번 생각해 보거라.”
늘 그렇듯이 강제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딸의 의견과 선택을 존중할 줄 아는 남자였다.
헨트는 담배를 한 개피 더 꺼내 입에 물었다.
“쓰읍~ 하!”
“아버지! 그거 집밖에서 피면 안 돼요?!”
“여긴 내 집이다. 꼬우면 결혼해서 나가던가.”
“아아악!”
결혼이란 말에 악을 썼다. 렉시가 요즘 가장 듣기 싫은 말은 결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