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22)
?기자회견의 효과는 확실했다. 즉시 포털사이트에 기사가 쏟아졌다.
합작법인의 이름은 TS컴퍼니로 OTK컴퍼니의 T와 서성의 S를 따서 지었다.
합작법인 설립을 먼저 제안한 이유는 지분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가 가진 서성SB 지분은 11퍼센트.
하지만 합작회사를 만들게 되면 출자금 비율에 따라 우리가 70퍼센트를 갖게 된다. 여기에 서성SB 지분비율까지 더하면, 실제로는 73퍼센트까지 올라간다.
이 제안에 대해 임진용 부회장은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아직 서성그룹 경영권을 완전하게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성SB를 동생에게 빼앗긴다면 능력을 의심받을 우려가 있다.
그에게는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가 필요했다.
합작법인은 투자금이 적게 들고,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성SB가 30퍼센트만 투자하면 되는 만큼 자사주 매각대금으로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압력이었다. 로날드는 후보 시절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다.
대통령 취임 뒤에는 대놓고 미국에 물건을 팔고 싶으면, 미국에 공장을 세우고 미국인을 고용하라고 기업들을 압박했다.
여기에는 자동차뿐 아니라, 모든 제조업이 대상이었다.
서성전자와 CL전자는 미국에 엄청난 양의 가전제품을 팔아치우지만, 정작 미국 내 공장은 하나도 없고 전부 멕시코에서 생산해 수출한다.
경쟁업체인 미국 가전회사 월풀(Whirlpool)은 두 회사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며 정부에 세이프가드(Safeguard,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요청했다.
예전 대통령이었다면 씨도 안 먹힐 소리였지만, 이번 대통령은 달랐다.
로날드는 서성전자와 CL전자가 미국기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며, 세이프가드를 발동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구색 맞추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 어쩔 수 없이 공장이전을 검토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데 때마침 OTK컴퍼니와 손을 잡고 배터리공장을 세우면, 통상압박 문제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 * *
역시나 로날드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기사를 링크해 연속으로 투윗을 날렸다.
-미국 제조업이 부활하고 있다! 땡큐 OTK컴퍼니! 땡큐 서성!
-미국에 수출하는 모든 기업들은 OTK컴퍼니와 서성을 본받아야 한다.
-앞으로 미국에는 더 많은 공장이 세워지고,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마지막에는 이 모든 일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거라며 깨알 같은 자기자랑을 덧붙였다.
이 발표로 임승용은 난감해졌다. 은성차와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서성SB가 한 발 앞서서 OTK컴퍼니와의 합작법인을 발표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대통령까지 기뻐하며 SNS를 날리는 상황에서 ‘제가 대표이사가 되면 합작법인이고 미국 공장이고 다 엎어버리고, 오로지 은성차와 협력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직접 말하지 못하는 임승용을 대신해 몇몇 언론들이 부정적 의견을 나타냈다.
그중 조중일보 칼럼이 가장 인상 깊었다.
[배터리 공급과잉, 대책은 있나?]……서성SB는 현재도 중국에서 배터리 인증이 거절되며, 공장가동률이 70퍼센트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전기차 배터리 수요는 25Gwh였지만, 생산량은 100Gwh로 네 배가 많았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도 전기차 배터리 공급과잉률은 이미 150%가 넘어 업체들마다 출혈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유가하락으로 전기차의 매력은 점차 떨어지고 있고, 차량용 배터리의 수요 또한 정체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이 줄어든다면, 업계 전체가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장밋빛 전망에 현혹될 때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을 봐야 한다.
우리가 합작법인 설립을 발표한 건 장이 마감된 금요일 오후. 때문에 아직 주가에는 반영되지 않은 상태였다.
주주들의 판단은 엇갈렸다.
-합작법인 설립이 호재인가요, 악재인가요?
-일단은 호재죠.
-무슨 소리? 지금 만든 배터리도 다 못 팔고 있는데.
-공장 완공 후에도 공급과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큰일인데.
-지금도 중국 여기저기서 배터리공장이 세워지는 중인데, 몇 년 안에 후폭풍이 터질 겁니다.
?택규는 신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장밋빛 전망에 현혹되지 말고, 냉혹한 현실을 보라는데.”
매우 좋은 말이다.
열심히 투자해서 생산을 늘려봐야 수요가 따라주지 않으면, 재고 쌓아둘 공간만 부족해질 뿐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냉혹한 현실이 뭔지 보여주려고 했어.”
* * *
다음날.
실론호텔에서 카로스 CEO 데릴과 서성그룹 임진용 부회장은 업무협약을 맺고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임진용 부회장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임일권 회장 장례식 이후 처음이었다.
“앞으로 서성전자와 카로스는 모터, AP, 센서, 카인포테인먼트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개발 단계부터 협력해나가기로 했습니다. 또한 합작법인 TS컴퍼니에서 향후 5년 동안 생산되는 배터리는 전량 카로스가 구매하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반응은 금세 나타났다.
-진용이 형 추진력 보소.
-허먼 인수하더니, 본격적으로 전장사업에 진출하네. 전자와 SB 투트랙으로 밀고 가나요?
-그런데 임진용이 서성SB 대표이사에서 밀려나면, 투자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전 고점 돌파하려면, 무조건 우리 진용이 형 밀어야 합니다.
-진드래곤 가즈아!
5년 치 생산물량을 전부 구매하겠다는 얘기는 사실상 리스크를 카로스가 떠안는다는 얘기와도 같았다.
당연히 서성SB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조건이다.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한 이상 공급과잉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월요일 장이 열리자마자 즉시 서성SB 주가는 전고점을 뚫으며 상한가로 치솟았다. 서성전자 주가 역시 5퍼센트 가까이 오르며 사상 최고치인 261만 원을 찍었다.
외국인, 기관 소액주주 할 것 없이 전부 임진용 쪽으로 돌아섰다.
이수학 사장에 대한 배임의혹은 쏙 들어갔다.
며칠 전까지 종목게시판에 헐값에 자사주를 매각했다며 욕을 퍼붓던 놈들은 갑자기 태세를 전환해 자사주 매각이야말로 신의 한수였다고 극찬했다.
심지어는 고점에서 계속 사들여 지분을 19퍼센트까지 늘린 국민연금마저도 투자를 잘했다고 칭찬받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자 국민연금에서도 임진용을 반대할 명분이 없어졌다.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라는 박시형 대통령의 말은 사실상 임진용을 지지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주주총회는 해보나마나였다.
대세가 완전히 기울자 임승용은 대표이사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고, 임진용 부회장은 모두의 지지 속에 서성SB 대표이사로 선임되었다.
* * *
일이 마무리 된 뒤, 난 임진용 부회장과 통화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배님.”
[전부 후배님이 힘써준 덕분입니다.]합작법인 설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TS컴퍼니의 공장은 러스트벨트에 지어질 예정이다. 로날드의 지지층이 모여 있는 곳인 만큼 확실한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러스트 벨트에 속해있는 펜실베이니아, 미시건, 위스콘신, 일리노이, 인디애나의 주지사들은 부지 제공, 세제혜택, 각종 편의 등을 약속하며 공장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조만간 재밌는 소식이 있을 겁니다.]“뭔가요?”
[곧 아시게 될 겁니다.]난 인사를 나눈 다음 전화를 끊었다.
일이 잘 끝나긴 했지만, 기뻐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서성SB 지분 11퍼센트를 사들이는데, 2조8천억을 쏟아 부었고, 합작법인 설립에 35억 달러가 들어갈 예정이다.
다행히 35억 달러를 한 번에 쓰는 건 아니고, 일단 5억 달러를 먼저 출자하고, 나머지는 계획에 따라 순차적으로 출자한다.
출자를 끝내고 나면, 현금이 얼마 남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자 슬슬 압박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벌려놓은 건 많아 사방에 돈 들어갈 일투성인데, 정작 들어오는 건 얼마 없다.
기업은 투자를 안 해서 망하기도 하고, 투자를 너무 많이 해서 망하기도 한다.
니콜라는 2009년 모델P를 세상에 내놓으며 자동차업계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모델A와 모델B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스타트업에 불과했던 회사 시총은 GM을 넘볼 정도로 커졌다.
그런데 정작 니콜라는 창사 이래로 단 한 번도 수익을 내본 적이 없었다. 현재까지 누적 적자액만 10억 달러에 달한다.
만약 계속된 증자와 채권발행이 없었다면, 진작 파산했을 것이다.
10만 달러 이상의 고가차는 수요층이 한정적이라 큰돈을 벌기 힘들다. 때문에 니콜라는 모델A와 모델B에서 쌓은 인지도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저가형 세단 모델TH를 개발했고, 선주문만 50만 대에 이를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적자가 줄지 않는 이유는 생산량이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요가 아무리 많으면 뭐하나?
작년 기준으로 고작 6만7천 대를 생산했을 뿐이다. 아무리 대당 마진이 크다고 해도 연간 800만 대 이상을 생산하는 은성차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니콜라의 CEO인 알렌 에버하트는 올해 15만 대까지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밝혔으나, 그 반도 힘들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우리는 니콜라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신차를 내놓기도 전부터 생산 공장부터 무작정 짓고 있다.
이러면 적어도 니콜라처럼 생산지옥에 시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돈이 떨어지고 있는 게 문제다. 은행대출, 채권발행, IPO 등 돈 마련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심적으로 부담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러다 차 안 팔리면, 우리 진짜 망하는 거 아니야?”
“글쎄다.”
생각해 보면, 자동차사업에만 30조를 넘게 쏟아 부었다.
신차를 출시했는데, 예상만큼 판매가 되지 않으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파산할 수도 있을 테고.
“그렇게 되지 않게 잘 만들어야지.”
* * *
서성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은 임일권 회장이 쓰러지기 전부터 계속 진행되어왔다.
그 과정은 그야말로 불법과 편법의 종합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일권은 임진용이 디에스와 서성생명 등 비상장주식을 헐값에 매입하게 한 다음 상장시켰다. 그리고 아들 지분이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그룹 차원에서 일감을 몰아주었다.
이 과정에서 전환사채까지 동원되었다.
서성SDL은 지분 60퍼센트에 달하는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했다. 매수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기존주주들은 모두가 인수를 포기했다. 시장가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인 만큼 조금이라도 더 인수하기 위해 경쟁하기는 것이 당연할 텐데. 결국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전환사채를 임진용이 전량 사들였다.
전환사채는 바로 서성SDL 주식으로 전환되었고, 이후 서성물산과 합병했다. 그리고 임진용은 그룹 지주사 격인 서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러한 각종 불법과 편법 덕분에 임진용은 고작 수십억의 세금만 내고, 시총 400조에 달하는 서성그룹의 경영권을 무사히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임진용은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전까지는 왕의 대행이었다면, 이제 정식으로 왕좌에 오른 것이다.
그가 말한 재밌는 소식은 얼마 후에 들려왔다.
[서성중공업 이사회, 사장해임안 주주총회에 상정!] [서성엔지니어링 임승용 사장 해임 확정!]?무슨 수를 썼는지, 임진용은 서성중공업과 서성엔지니어링 이사회를 장악해 임승용의 해임안을 상정시켰다.
임승용은 당연히 반발했지만, 외국인, 기관, 연기금은 물론 소액주주들까지도 임진용을 지지했기에 자신의 지분만으로 방어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해임안은 가결되었고, 임승용은 두 회사의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임진용은 각 계열사에서 연소현과 임승용 라인으로 구분되는 사람들을 모조리 쳐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전부 자신의 사람들로 채웠다.
한마디로 어머니와 동생을 그룹에서 완전히 쫓아낸 것이다.
택규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괜히 서성SB에 욕심냈다가, 자기 것마저 뺏겼네.”
피만 안 튀었다 뿐이지, 사실상 숙청이나 다름없었다.
“이 둘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래도 재산이 몇 조는 될 테니, 어디 가서 굶어죽지는 않겠지.”
하지만 경영권이 없는 이상 그저 주식을 많이 가진 개인주주일 뿐. 배당만 받아도 평생 먹고는 살겠지만, 더 이상 재계에 얼굴을 들이밀기는 힘들 것이다.
“엄마랑 동생한테 이래도 되나?”
“권력은 가족과도 나누지 않는 거라잖아.”
이런 사례는 외국에도 얼마든지 있다.
페이스노트 CEO 마이크 골든버그는 의견이 다른 동업자를 몰아냈다가 법적분쟁 끝에 합의했고, 니콜라 CEO 알렌 에버하트 역시 공동창업자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고 보니…….
만약 처음 얘기했던 대로 OTK컴퍼니 지분을 반반씩 나눠가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설마 택규와 나도 서로를 회사에서 몰아내기 위해 싸우진 않았겠지?
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맥주나 한 잔 하러 가자. 치맥 어때?”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누나한테도 연락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