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of juniors RAW novel - Chapter 8
08
면접을 보러 갔던 공예 공방에서 다소 좋지 못한 일이 있었지만 취직은 탈 없이 됐다. 수업을 마치고 서윤은 직원들과 간단한 티타임을 가지던 중 회사로 오라는 선하의 메시지를 받았다.
미림이 이사를 했다고 집으로 놀러 오라고 난리였다. 선하와 같이 오라고 전화에 불이 났다. 기어이 선하에게서 시간을 내겠다는 답을 들었다.
서윤은 제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팔찌가 든 포장 봉투를 이리저리 구경하며 차를 마셨다. 정신없는 월요일이 돌아왔지만 서윤은 누구보다 기분이 좋았다.
일을 하며 기뻐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라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떠올랐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은걸.
물론, 성과를 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서윤은 알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적성에 맞지 않아 실패를 했던 것들이 수두룩했고, 개중엔 가게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월급이 월등히 오른 일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탄생된 예쁜 장식품을 좋아해 주었던 할머니, 친구들, 그리고 강선하. 여전히 제 눈엔 마음에 차지 않는 결과들도 많았지만 그 과정들이 서윤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힘이 났고, 가슴이 벅찼다.
“오늘 만든 건 정말 예뻐요. 보름달인 거죠? 달 표면을 잘 표현한 거 같아요. 이건 정 선생님 들고 가세요. 가서 애인 주면 좋을 것 같다. 남자가 착용해도 너무 예쁠 거 같은데요?”
“그럴까요?”
서윤은 그녀가 만든 보름달 모양의 팔찌를 포장 봉투에 담아 쥐고 공방을 나섰다.
수업을 마치면 회사로 오라는 그의 말에 서윤은 그길로 선하의 회사로 향했다.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그의 사무실 문을 열자 선하가 보였다.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왔어?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
서윤은 포장 봉투를 쥐고 손님용 소파에 앉았다. 선하는 바빠 그녀가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 듯했다.
워낙 바쁘니 그럴 만도 했다. 그 와중에도 미림이네에 그녀 혼자 갈까 봐 같이 가겠다고 말해 주는 그가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고 그의 허락과 동시에 직원이 들어왔다.
“사장님, 여기 말씀하셨던 설계 도면입니다.”
직원이 책상 앞에 앉아 일에 몰두하고 있는 선하에게로 자료를 내밀었고, 선하는 가볍게 펜을 쥔 채 직원이 내민 자료들을 건네받았다.
휙휙 서류를 넘겨 보는 그의 눈이 날카로웠다. 직원이 긴장 가득한 미어캣처럼 두 손을 맞잡고 건넨 서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일단은 통과였다. 그의 말에 기뻐 고개를 숙인 직원이 가벼운 걸음으로 사장실을 나갔다. 일할 때의 그는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무적이고 딱딱해 보이지만 능력 있고, 직원들에게도 인정받는 사장. 그리고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
그를 보며 포장 봉투를 만지작거리던 서윤이 조용히 웃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문을 연 것은 방금 나갔던 그 직원이었다.
“사장님, 어떤 여자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저번 호텔’이라고 말씀하시면 아실 거라고 하십니다.”
호텔? 직원의 목소리에 선하는 단번에 그녀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차린 표정이었다.
“들여보내.”
허락의 목소리에 명령을 받은 직원이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
선하는 사장실 안으로 들어오는 여자를 보며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책상 위에 두 팔을 올려 손가락을 겹쳐 잡았다.
들어오는 여자는 세련되고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원피스만큼이나 반짝이는 구두도 신고 있었다. 핑크빛으로 반짝이는 입술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선하 씨, 한번 뵙기 정말 힘드네요.”
“시간 없으니 본론만 말해요.”
“회사 일 때문에 왔어요. 우리 대한이랑 추진 중인 계약 문제도 있고 해서요.”
“그 문제라면 정식으로 미팅 날짜 잡고 만나죠.”
“선하 씨도 바쁘지만 저도 바쁜 시간 쪼개서 온 거니까 너무 그러지 말아요. 어서 추진해야 하는 문제라고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윤은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손님용 소파에 서윤이 앉아 있지만 여자는 그녀를 없는 사람처럼 여기며 제 할 말을 했다.
일 때문에 왔다고 한 거니 당연한 건가. 갑자기 사장실 문을 열고 나가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대화를 듣고 있는 것도 불편했다.
일적인 대화들이 거듭 오갔다. 안절부절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던 서윤이 쥐고 있던 포장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저, 사장님,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세요.”
흘러나오는 서윤의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녀에게로 향했다.
“괜찮으니 있어.”
여자의 시선이 그제야 서윤에게로 향했다. 의자에 기대고 있던 등을 일으켜 어찌할까 망설이고 있던 서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윤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당겨 와 그를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꼭 입술을 맞출 것처럼 다가와 서윤의 뺨을 어루만지듯 쓸어내렸다.
“뭐야? 공방에서 수업한 거야?”
“응.”
그가 서윤이 안고 있는 포장 봉투를 보며 물었다. 일에 지친 얼굴이면서도 웃음을 감추지 못한 그가 포장 봉투를 가져왔다.
“나 주려고?”
“…응. 보름달 모양 작은 펜던트가 달려 있는 팔찐데 너 주고 싶어서.”
그는 단숨에 포장 봉투를 뜯고 팔찌를 꺼냈다. 섬세하게 만든 보름달 펜던트가 은빛으로 반짝였다.
서윤을 닮아 달 액세서리는 작지만 세련되고 정성이 깃들었다. 남자의 손목과 잘 어울려 요란하지 않고 심플했다.
그의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서윤은 그의 팔에 팔찌를 직접 채워 주었다. 조금 줄 길이를 넉넉하게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급 시계와 함께 그의 손목에 채워졌지만 그의 눈은 오로지 팔찌로 가 있었다.
“너 이거 다른 놈한테도 준 거 아니지.”
“아냐.”
“다른 놈한테 하나라도 주기만 해 봐.”
“걱정 마. 안 주니까. 너니까 주는 거지.”
아니라는 확답에다 너라서 준다는 그녀의 말에 선하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럴 때 보면 꼭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어젯밤 있었던 그 격렬했던 섹스가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냐. 생각하지 말자. 서윤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느껴져 괜히 고개를 돌리며 사무실을 구경하는 척했다.
“미림이 집엔 먼저 가 있으면 금방 갈게. 이따 봐.”
확신에 찬 약속을 하는 그를 향해 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사무실을 나섰다.
걸음이 무거웠다.
***
서울살이가 체질이라며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미림은 이번에 승진도 했고 집도 좀 더 평수가 너른 아파트로 이사를 하는 데 성공했다.
친구들을 다 불렀다고 음식을 장만한 그녀가 큰 상 하나를 거실에 폈다. 남은 친구들을 기다리며 과일을 깎아 먹고 있는데 친구 하나가 서윤에게 물었다.
“고향 떠나와서 좀 적응은 할 만해? 낯선 데 오니까 많이 힘들지? 학교 다닐 때야 애들이랑 같이 다녔던 거지만 사회에 나오니까 또 다르더라고. 타지에서 산다는 서러움이 확 밀려온다고 할까?”
“괜찮아. 버틸 만해.”
버틸 만하다는 서윤의 대답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미림이 은근슬쩍 먹이를 던졌다.
“나도 걱정 많이 했는데 괜찮을 것 같아. 이제 든든한 누군가도 있으니까.”
모인 친구들 가운데서 선하와 그녀의 진행 관계를 아는 건 미림뿐이었다. 그녀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감추며 말했다.
단번에 눈치를 챈 친구들이 무슨 일이냐고, 애인이 생겼냐고 캐물었다. 거의 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라 선하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거센 추궁에도 우물쭈물하자 미림이 견디다 못해 탁자를 손으로 탁 쳤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어차피 오면 다 알게 될 거.”
“뭐? 얘 애인도 오늘 여기 와? 대박.”
“뭐야. 누군데. 너희들만 알고 있기 있어?”
결국 압박 수사에 견디지 못하고 서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
“어?”
“강선하.”
우리가 아는 그 강선하가 맞냐고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
“둘이 뭐 어디까지 했는데? 키스했어?”
“야, 뭘 그런 걸 물어.”
“이미림 저도 궁금하면서.”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냐고 바득바득 묻는 친구들을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 뒤이어 오기로 한 친구들이 모두 도착했다.
저마다 휴지며 세탁용품, 집들이 선물을 잔뜩 들고 왔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 중엔 미림과 절친했던 윤호도 있었다.
미림은 여자든 남자든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해 윤호와도 곧잘 지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그와도 웃으며 인사했다.
잠시 끊겼던 서윤의 남자 친구 이야기가 다시 진행됐다. 미림의 친구라 윤호는 선하를 잘 모를 텐데도 잘 어울린다고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넸다.
“둘이 그럴 줄 알았어. 야, 솔직히 남한텐 관심도 없는 남자가 한 여자랑만 친한데 그게 좋아하는 거지, 뭐야. 그럴 줄 알았어.”
“친구면 그럴 수 있지.”
“친구 같은 소리 하네. 내가 아는 한 하늘 아래 백 프로 친구인 남자 여자는 없어.”
“그래서. 강선하가 오늘 온다고? 웬일이니. 동창회도 나오라고 나오라고 사정사정을 해야 얼굴만 잠깐 비치고 가는 앤데.”
“좋을 때다. 얼마나 설렐까. 야, 키스했냐?”
“좀 잠재워 놨더니 또 그 소리야?”
서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북 치고 장구 치고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춤을 춰 댔다. 서윤은 사과 한 알을 쥔 채 애꿎게 만지고 있었다.
지잉. 핸드폰에 메시지가 떴다.
서윤의 핸드폰이었다. 떠들며 시시덕거리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던 친구들이 식탁 위에서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서윤은 핸드폰을 붙잡고 메시지를 읽었다. 사르르 미소가 번졌다. 미림은 흉악함에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서윤을 관찰했다.
“좋냐?”
“아니… 뭐….”
서윤은 곧 출발하니까 조금만 기다리라는 선하의 메시지를 곱씹어 읽었다.
미림이가 그 모습을 보곤 씨익 웃었다.
“얘들아, 손님 맞을 준비 하자.”
***
친구들은 정말로 놀란 얼굴을 했다. 동창회도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하가 정말로 올 줄은 몰랐다는 얼굴들이었다. 미림이 그에게 전화를 해 서윤이 집들이에 온다고 했을 때 선하는 출장까지 미루고 오겠다고 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냥 한번 던져 본 말이었는데 정말로 선하가 서윤을 보기 위해 이 저녁에 집으로 찾아왔다.
“왔어?”
친구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서윤의 허리를 그가 능숙하게 감았다. 서윤은 미안한 마음에 눈썹이 아래로 처졌다.
대학을 다니며 오다가다 만난 적은 있지만 그를 잘 모르는 친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대학을 다닐 때 인기가 많았던 강선하와 학교에서 언뜻언뜻 지나쳤던 친구들은 그와 가까이서 마주하게 된 것에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멀리서만 봤던 남자의 이목구비가 눈앞까지 다가온 상황에 친구들은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눈만 끔뻑끔뻑했다.
짙은 두 눈동자가 베어 낼 듯이 친구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문득 정신이 든 윤호가 먼저 남자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윤호입니다.”
윤호의 인사에 그제야 다들 그를 향해 인사를 했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미림의 말에 선하는 그에게 잘 어울리는 세련된 구두를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미림이 집 소개를 할 요량으로 방 안 구석구석을 설명했지만 선하는 관심도 없다는 듯 자연스레 거실로 갔다.
미림은 친구들에게 대접할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렸다.
어쩐지 선하를 친구들이 있는 이곳으로 부른 것이 불편해 서윤은 아까부터 가져다 놓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친구들 틈에 앉아 있었다.
친구들과의 즐겁게 오가는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선하를 바라보았을 때 서윤은 그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이는 그의 매서운 시선이 윤호에게로 향해 있었다.
“서윤아, 많이 먹어. 집들이긴 하지만 요즘 네가 너무 말라 가서 신경 써서 만든 거니까.”
“응. 잘 먹을게.”
서윤은 자리가 불편해 보이는 선하가 신경이 쓰여 무슨 반찬인지도 알지 못하고 젓가락을 뻗었다.
그가 그럴 만도 했다. 이런 식사와 술자리가 이어졌을 때 그녀에게 집적거리던 남자가 있어 와 서윤이 난감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누구?”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윤호를 향해 선하가 물었다.
“아, 미림이 친군데 덕분에 서윤이랑도 알게 돼서요. 그렇게 친한 건 아니고 그냥 친구예요.”
음식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선하는 일찌감치 수저를 놓고 그들에게서 떨어져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남자들을 친구로 잘 두지 않는 서윤을 아는 선하가 알게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친구…. 친구 좋지. 나랑도 친구였고.”
선하는 윤호를 노골적으로 살피며 편하게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느긋하게 소파로 등을 기대는 그의 몸짓에 윤호가 움찔했다. 윤호는 차가운 남자의 말에 답하지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아, 우린 정말 그러니까….”
“우리?”
미림은 분위기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느꼈는지 환하게 먼저 웃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렇게 만났는데 술이 빠지면 쓰나. 강선하, 너도 마시고 갈 거지?”
서윤은 당연히 선하의 대답이 ‘No’로 돌아올 줄 알고 마음을 놓으려는데 뜻밖의 대답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Yes’였던 것이다.
미림은 이때다 싶어 빠르게 냉장고 문을 열어 넣어 두었던 맥주들을 죄다 꺼내 왔다. 밤도 찾아왔고, 분위기는 점점 깊어져 가고 있는데 역시 분위기를 돋우는 데는 술만 한 게 없다고 판단한 미림은 히죽히죽 웃으며 맥주를 내려놓았다.
***
친구들은 손뼉을 치며 웃어 댔다. 잘 놀았다며 집에 가야겠다고 자리를 뜨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윤호는 자리에 남아 있었다.
벌써 빈 병이 바닥에 깔릴 만큼 마셔 대고 있는데 선하는 조금도 취한 기색 없이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눈은 윤호에게로 가 있었다.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인 윤호가 선하에게 안주를 내밀었다. 무시와 같은 거절을 당했지만 윤호는 술을 마시며 캬하, 하는 속 편한 감탄사나 뱉었다.
그가 내미는 오징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선하는 제 곁에 앉아 있는 서윤을 보았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 기분이 좋아진 건지 서윤은 키득키득 웃으며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 과자 너 싫어하는 블루베리 들었는데.”
“아, 정서윤. 일찍 말했어야지. 벌써 삼켰잖아.”
서윤은 친구가 블루베리를 삼킨 게 그렇게나 재미있는지 연신 웃어 댔다. 그리고 오징어 다리를 뜯어 먹고 있는 윤호에게 물었다. 그에게로 손은 결단코 뻗지 않고서 슬쩍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마요네즈 가져다줄까?”
“어? 어. 엉. 그래 주면 생큐.”
윤호의 대답에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서윤은 손목이 붙잡혀 다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자신의 손목을 끌어당긴 사람을 확인한 서윤이 불그스름한 뺨을 하고 잡힌 손목을 내려다봤다.
“왜?”
“가지 말고 있어.”
“있어 봐. 마요네즈 좀 가져올게. 애들 오징어 먹는데 아무래도 마요네즈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서윤의 허리를 감싸 안듯 자리에 앉힌 선하는 그녀의 허리를 붙여 그의 곁에 앉혔다.
들어간 술에 취했는지 서윤은 어느새 마요네즈는 잊은 듯 다시 웃음을 보이며 맥주 캔을 붙잡았다.
꿀꺽꿀꺽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며 목울대가 움직였다. 선하는 그런 서윤을 보며 붙잡은 허리에 힘을 주었다. 집에 가지 못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술에 취해 바닥에 널브러졌다.
제 허리를 감싸 안은 줄도 모르고 술에 취한 친구들과 생글생글 웃는 서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윤호가 오징어 다리 하나를 서윤에게 건넸다. 이미 술에 취해 풀어진 윤호가 해롱거렸다.
“이거 다리 먹어, 서윤아.”
윤호가 서윤에게로 손을 뻗는 족족, 선하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이러면서도 그저 친구일 뿐이라고?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서윤아, 어차피 시간도 늦었는데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선하 너도. 손님방 하나 있어. 거기서 자. 널브러진 애들은 내가 거실에서 재울 테니까.”
미림은 그렇게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툭툭 털어 냈다. 적지 않게 술을 마신 미림도 취했는지 걸음을 비틀거렸다.
윤호는 그 자리에 몸을 기대어 눈을 감았고, 미림의 말소리도 곧 줄어들었다. 정신이 깨어 있는 사람은 서윤과 선하, 둘뿐이었다.
선하는 잠에 취해 눈을 엉망으로 비비고 있는 서윤의 손을 떼어 내고 대신 눈가를 만져 주었다. 취기가 오른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선하는 그대로 서윤을 안아 들고 미림이 마련해 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미림이 털어 놓아 반듯하게 펼쳐진 이불 위로 서윤을 눕힌 선하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곁에 놓아두고 방문을 닫았다.
“선하야….”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술에 취했다는 소리였다. 선하는 그에게로 뻗는 서윤의 손을 잡고 품 안으로 당겼다.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건지는 아는 건지 서윤은 누우면서도 지그시 웃었다.
“친하게 지내는 남자는 나뿐이라는 말, 거짓말이었어?”
“…어?”
“대체 어떤 친구면 남녀 사이가 그렇게 다정할 수 있냐? 나도 좀 알자.”
“별로 안 친해. 미림이 친구지. 그리고… 너도 친한 여자 있잖아.”
그러면서 서윤은 그의 셔츠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여전히 두 눈은 힘없이 흐물대고 있었다.
“친한 여자?”
“아까 네 사무실에 왔던 그 여자. 엄청 친해 보이던데.”
말 안 하고 있어서 전혀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더니 오늘 그러고 사무실을 나간 이후 내내 신경을 쓰고 있었던 건가. 술에 힘을 빌린 건지 생전 잘 하지도 않는 질투를 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하는 비스듬히 침대에 누워 그녀를 안고서 서윤의 티셔츠를 걷어 올렸다.
“난 윤호는 남자로 안… 응?”
우물쭈물 중얼거리던 그녀의 티셔츠를 올려 벗기고 그녀의 바지 지퍼를 풀어 내렸다. 놀란 그녀가 반쯤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떴다.
“뭐, 뭐 하는 거야?”
“저 새끼는 남자로 안 보는데 여기서 해도 무슨 상관이야.”
“뭐? 야.”
순식간에 그에게 옷이 다 벗겨지고 하나 남은 팬티까지 벗겨졌다. 던져진 옷가지들이 침대에서 손이 닿지도 않는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서윤은 놀라 닫힌 문을 보았다. 친구들이 밖에 있다. 이건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 들킬 위험이….
“아, 안 돼. 안 돼. 이건 너무….”
“왜. 남자로 안 본다며. 들켜도 무슨 상관이야.”
그가 가슴을 콱 움켜쥐며 불거진 유두를 툭툭 문지르고 긁으며 싱긋 웃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여기서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라면 하고도 남는 사람이다. 생각을 하느라 숨이 가빠지는 것도 모르고 헐떡이던 그녀가 다급하게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친구들이 들어.”
“내가 뭘 할 줄 알고?”
“야, 야한 거 할 거잖아.”
“어. 존나 해 댈 거야.”
그는 정면 돌파를 하는 공격수처럼 말했다.
서윤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으며 아랫입술을 깨물고 침을 삼켰다. 긴장하면 나오는 버릇을 그대로 하는 그녀가 다 벗겨진 몸으로 머뭇거렸다.
“그럼… 대신 입으로 해 줄까?”
“입으로 어떻게 해 줄 건데? 기대되네.”
스윽, 그녀의 턱 끝을 훑고 지나가는 것만으로 몸이 움찔거렸다.
“빠, 빨아 줄게.”
“이 작은 입으로 어떻게.”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자존심을 건드리면 여지없이 발끈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잔혹할 만큼 상냥하게 눈꼬리를 휘며.
“못 할 텐데.”
“할 수 있거든?”
아니나 다를까 한 번 해 보지도 않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바득바득 우긴다. 그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주름 사이사이로 살살 긁으며 픽 웃었다. 그녀가 다짐하듯 눈을 부릅떴다.
“해 봐. 정 그렇게 빨고 싶으면.”
선하가 여유롭게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었다. 서윤이 조심스레 그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드로어즈 안에서도 불룩 튀어나와 존재감을 과시하는 성기가 꿈틀거렸다. 막상 하겠다고 해 놓고 정작 마주하자 겁이 나는지 그녀가 머뭇거린다.
“뭐 해. 할 수 있다며. 밤새도록 감상만 하고 있으려고? 음란하네. 정서윤.”
“…아냐. 할 수 있어.”
자신감 있게 말했지만 드로어즈를 끌어 내리는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힘줄이 선명하게 박혀 있는 페니스가 협박이라도 하듯 솟아올랐다.
그는 느긋하게 좆을 위아래로 훑으며 보란 듯이 고환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삐져나오는 살덩이마저 음탕했다.
“자. 자신 있는 정서윤이 잘 한번 해 봐.”
뒤를 힐끔 돌아 닫힌 문을 보던 서윤이 천천히 귀두 끝에 입술을 대었다. 축축한 액이 입술에 닿자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혀를 내어 요도 구멍을 핥았다.
새어 나오는 쿠퍼액을 입술에 덕지덕지 묻힌 채 귀두부터 차례로 꾹꾹 욱여넣었다. 서투르게 정맥을 문지르는 혀가 기둥을 날름날름 빨았다. 그녀의 빨간 입술과 대비되는 검붉은 성기가 끊임없이 작은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온다.
그때마다 페니스가 목구멍 안쪽 깊은 곳을 건드려 그녀가 파들거렸다. 작은 입을 이용해 페니스를 품는 것이 서툴렀지만 뭐든 예뻤다. 어찌 되든 해 보려고 바르작거리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이래 가지고 언제 끝내려고. 할 수 있는 거 맞아?”
그녀가 항의라도 하려는 듯 깊숙이 머금고 있던 것을 뱉어 내려는 찰나 선하가 골반을 올려 쳤다.
으읍, 음!
입 안이 터져라 페니스가 들어차고 기둥이 떨어져라 그가 허리를 흔들었다. 선하가 허리를 올려 치며 처넣을 때마다 귀두가 볼을 찌르고 쑤셔 댔다. 그때마다 여린 뺨 한쪽이 툭 불거졌다 이내 움푹 패는 것이 사뭇 외설스러웠다.
서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가득 고인 침을 삼키려 기둥을 쭙쭙 빨았지만 되레 삼키지 못한 침이 기둥을 잔뜩 적셨다. 남자의 음모가 영역 표시라도 하듯 그녀의 콧잔등에 비벼지고 뭉개진다.
찌걱찌걱, 페니스가 고인 침을 가르고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진입과 후퇴를 반복할 때마다 밀려 나온 침이 뚝뚝 떨어졌다.
서윤이 목구멍을 무자비하게 쑤시는 페니스를 견디지 못해 그의 허벅지를 붙잡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욱 흥분에 부채질을 했는지 입 안 가득 품고 있는 힘줄이 더욱 불끈대며 점막을 희롱했다.
“우으응….”
발기력도 좋은 편이고 한번 발기를 하면 잘 풀리지도 않는 그인데, 빨판처럼 빨고 있는 것이 정서윤이라는 것만으로 금방이라도 이 작은 입 안이 터지도록 정액을 쏘아 버릴 것 같았다. 애욕에 들끓는 남자의 시선이 그녀를 애무하며 훑었다.
“다리 더 벌려. 다리 벌려서 빨아 봐. 서윤아, 착하지.”
부드럽게 달래며 부끄러운 것을 요구했다. 가혹할 만큼 다정하게 굴어서 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정성 들이고 공들여 그의 올가미 안에 가두고 덫을 치는 포식자.
그의 말에 잠깐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그녀가 다리를 더욱 넓게 벌려 무릎을 꿇었다. 애액을 머금어 찐득하게 닫혀 있던 질구가 숨을 쉬며 벌어졌다.
습한 구멍이 벌어지자 고여 있던 애액이 시트 위로 주륵 흘러내렸다. 침대 시트가 더러워질까 서윤이 페니스를 쭙쭙대면서도 질구를 막으려 손을 내렸다. 그가 찰싹 그녀의 손등을 쳤다.
“아아, 그건 반칙이지. 기껏 적셔 놨는데 말이야.”
싱긋 입술을 올리는 그가 흉포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빨고 있는 페니스만큼이나 그의 미소는 뜨거웠다.
“조용히 빨아야지, 서윤아. 미림이가 오겠다.”
“우으으….”
“응? 뭐라고?”
조용히 빨 수 없도록 이렇게 페니스를 처박고 흔들면서, 그는 잔악하게 웃으며 조용히 빨라고 다독인다. 그러면서도 무리하다시피 빠느라 주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만개한 입술을 다정하게 쓸어 주었다.
거칠고 다정함이 묘하게 오고 가는 남자의 미묘한 줄다리기에 서윤은 목구멍으로 잘근잘근 씹고 있던 귀두를 천천히 뽑아냈다. 요도에서 혀까지 길게 늘어지는 뿌연 실선이 아슬아슬했다.
“미림이가 분명 시트를….”
그녀가 다급하게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질구를 더듬었지만 이미 구멍 아래쪽까지 애액으로 너르게 젖어 있었다. 당황한 얼굴은 금세 사색이 됐다.
“벌써 내가 먹고 싶어서 이렇게나 젖었는데 닦는다고 되겠어?”
그가 그녀의 가랑이를 더욱 잡아 벌리고 자그마한 손가락을 직접 구멍 안에 넣어 주었다. 포개진 남자의 손가락이 동시에 침입했다. 열기가 흥건한 입구가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잡아먹었다.
“아….”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응?”
내벽을 밀어 올리고 쫀득한 속살을 문지를수록 그의 페니스가 그리워 질구가 게걸스레 침을 흘린다.
아니라고 고개를 젓기엔 한껏 민감해진 질 내부는 순조롭게 남자의 성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손가락 사이를 벌려 대며 입구를 넓혔다. 좁디좁은 구멍 안에서 함께 뒤섞인 손가락이 그물처럼 촘촘하게 얽혔다.
“아… 손가락 움직이지 마. 빼, 빼 얼른.”
“싫은데? 더 넣어 달라고 자꾸 벌어지는데 어떻게 그냥 빼.”
“야.”
“왜, 친구끼린 이런 거 하는 거 아냐?”
“너 자꾸 놀려. 아! 잠, 아아앙!”
꾸우욱, 질벽을 문지르며 손가락을 벌리던 그가 별안간 아랫배가 들썩일 정도로 질구를 흔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점액질이 막무가내로 튀었다.
“친구가 안까지 쑤셔 주니까 미칠 것 같아? 대답해 봐.”
그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 와중에도 묘하게 섹시한 그 웃음소리에 심장이 떨렸다. 입구를 잔뜩 벌려 놓은 손가락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가 서윤을 시트 위로 눕히고 곧장 올라탔다. 그에 의해 다리가 벌어지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젖은 입구를 툭툭 치며 클리토리스까지 남김없이 문질러 대는 귀두가 들어올 듯 말 듯 전쟁의 초입을 암시했다.
“넣, 넣지… 아아아!”
기어이 깊고 어두운 늪 안까지 찾아 들어온 페니스가 꽉 다물린 속살을 갈랐다.
“쉬… 밖에 들려, 서윤아.”
듣는다고 하면서도 그는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안에서 밀려 나온 애액이 쿠퍼액과 섞여 맞물린 입구에서 범벅이 됐다.
이 장관을 알 리 없는 서윤이 그저 다리를 쩍 벌리고 음부를 훤히 드러낸 채 쾌감에 몸부림을 쳤다. 만족스러웠다.
“아앙, 아! 선하야아.”
쳐들어온 선단이 사납게 안쪽을 찌르고 치댈 때마다 탁한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허벅지부터 페니스를 물고 있는 질구, 항문까지 사시나무처럼 떨며 몸부림쳤다. 그때마다 내벽이 페니스를 꽉 조이고 조르듯 엉겨 붙었다.
온몸이 풀어진 채 신음을 죽이려 애쓰던 그녀가 도망치듯 그에게서 떨어져 필사적으로 시트 끝으로 기어 멀어졌다.
퐁, 질구에서 물기 젖은 소리와 함께 뽑힌 페니스가 난잡한 덩어리들로 뒤엉킨 채 무서운 기세로 기립해 있는 것이 보였다.
도망쳐 온 거리만큼 질구에서 흘러내린 묽은 점액이 시트 위로 이어져 있는 것도, 피할 수 없이 마주했다.
더없이 색정적인 모습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성욕에 취한 머리가 띵해져 온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저릿저릿하게 스파크가 튄 질구를 손으로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쿠퍼액과 한껏 뒤섞인 애액이 금세 손가락까지 흠뻑 젖어 들었다. 그 와중에도 입구를 누르는 손끝을 따라 구멍이 찌릿거렸다.
“이리 와.”
쾌감을 이기지 못해 전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녀와 달리 조금의 동요도 없는 그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손목엔 아까 그녀가 채워 주었던 팔찌가 묶여 있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 밤과 어울려 더없이 야하다.
“우으….”
결국 다리가 붙잡혔다. 예상된 일이었다. 그녀의 몸이 거꾸로 뒤집혔다. 도망치지 못하게 시야에 한계선을 두는 거다. 눈앞에 보이는 건 그가 아니라 침대의 시트와 베개뿐이었다.
굵직하고 뭉툭한 것이, 벌어져 있는 구멍으로 들어차는 것을 오로지 감각으로 느꼈다. 더욱더 깊이, 좀 더 깊이.
그녀가 원하는 만큼 깊숙한 곳까지 들어차자 입구로 페니스를 꽉 물었다. 어느 순간부턴 아무런 생각도, 잡념도 틈조차 없이 공중에서 소멸됐다.
“엉덩이 더 들어.”
“으응.”
“잘할 수 있다더니, 이게 다야?”
“아아앙, 아아, 아냐. 할, 수 있어. 흐읏.”
끝까지 할 수 있다 고집을 부리는 그녀가 팔다리를 부들부들하면서도 다리를 벌려 더욱 힘껏 페니스를 받아먹으려 애썼다. 그 힘겨운 몸짓조차 그를 위한 것이다.
선하는 하루 종일 그녀의 생각으로 일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어 얼마나 난감했는지 모른다. 그녀를 만지고 싶어 회의 내내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도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그녀를 원하는 이 마음이 터질 듯 움직였다. 그녀가 남기고 간 정서윤의 체취에 취했는지도 몰랐다. 서윤이 남겨 두고 간 흔적. 그보다 더 향기로운 것이 있을까.
짤랑.
몸이 흔들릴 때마다 어디선가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엉덩이를 치켜든 채 시트를 힘겹게 부여잡고 있던 서윤이 짤랑거리는 소리에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잃어버렸던 초승달 모양의 팔찌가 손목에 묶여 있었다. 그가 언제 이 팔찌를 채워 준 것일까. 짤랑거리며 팔찌가 격렬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는 아버지 사업 파트너야. 호텔에서 아버지랑 셋이 일적으로 밥 한 번 먹은 게 다야. 나한텐 아무것도 아냐.”
“흐읏, 선하야.”
너 아니고 누가 있어, 내가. 오래전부터 너뿐이었는데 난.
너 하나뿐이었는데 난.
“시트 더럽히는 거 싫다니까 안에다 뿌려 줄게.”
“아….”
“시트 더럽혀도 돼? 미림이가 의심하게 둬도 되겠어, 응?”
“안 돼. 그건. 아흣, 으응!”
“그러니까 네가 잘 품고 있어.”
삽입 지점이 벌겋게 달아 짓무르도록 좆을 박아 넣던 그가 걷잡을 수 없이 페니스를 올려 쳤을 때였다.
욕망이 뒤섞인 씨물이 꾸역꾸역 밀고 들어와 깊은 곳을 채웠다. 축 늘어지는 그녀를, 그가 놓칠세라 안았다.
그의 셔츠를 끌어안는 그녀의 손목에서 팔찌가 흔들거렸다. 창 안으로 미처 인지하지 못한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