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74)
시간이 많이 늦은 만큼 우리는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호텔로 바래다주겠다는 걸 거꾸로 엘리가 나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난 웃음을 지었다.
“잠깐 어지러웠던 것뿐이에요.”
아까부터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했음에도 엘리는 여전히 안심이 안 되는 표정이었다.
“정말 병원 안 가 봐도 돼요?”
하긴, 일주일 동안이나 못 깨어난 적도 있으니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겠지.
“정말 괜찮아요.”
“몸이 이상하거나 하면 바로 연락해요.”
“어차피 집에 들어가면 택규도 있는데요.”
“그래도 저한테 연락하겠다고 약속해요.”
“알았어요.”
난 최대한 엘리를 안심시킨 다음 차에 태웠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나는 바로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택규는 거실 소파에 누워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데이트는 잘하고 왔어?”
난 TV를 껐다.
“왜 꺼? 마침 중요한 장면인데!”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난 이게 중요해!”
버럭 소리를 지르던 택규는 내 표정을 보더니 놀란 듯 얼어붙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생겼어?”
난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내가 착각했어.”
“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말이야.”
“그게 왜?”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
택규는 눈을 껌뻑거렸다.
“무슨 말이야?”
“다시 예지가 보였어.”
내 말에 택규는 깜짝 놀랐다.
“뭐? 그럼 저번 지진은 뭔데?”
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마 예지와는 상관없던 거겠지.”
택규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동안은 조용하다가 어째서 갑자기 같은 예지가 보인 거야?”
난 손목에 찬 시계를 보여주었다.
“이거 때문이야.”
택규는 시계를 본 다음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롤렉스가 왜?”
“쓰러져있을 때 뭔가를 봤던 것 같아. 꿈같은 거.”
“꿈 내용이 뭔데?”
“나도 몰라.”
원래 꿈이란 꿀 때는 생생해도 막상 깨고 나면 기억이 잘 안 나는 법이다. 그때 꿈을 꿨다는 사실조차도 오늘에서야 생각났다.
“뭐라도 좀 떠올려봐.”
“안 그래도 노력 중이야.”
꿈은 마치 조각난 퍼즐처럼 막연하고 모호했다. 난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순간,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난 중얼거리듯 말했다.
“유리로 된 건물.”
“응?”
“엔플스토어였어.”
건물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있는 것은 엔플스토어의 특징 중 하나다.
“꿈에서 엔플스토어를 봤다고? 그게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관련이 있다는 거지?”
“그런 것 같아.”
“기다려봐.”
택규는 재빨리 컴퓨터를 켜서 구블 지도를 띄웠다.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해 그 주변에 엔플스토어가 총 다섯 곳이 있어.”
로드뷰로 보니 엔플스토어와 그 주변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샌프란시스코는 여러 차례 갔다. 하지만 전부 일 때문에 간 거라 호텔과 회사만 왔다갔다 했지, 정작 시내를 구경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 때문인지 화면에 보이는 거리의 모습들은 전부 낯설었다.
난 한참 동안 다섯 개의 엔플스토어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았다. 하지만 화면으로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샌프란시스코에 가봐야겠어.”
내 말에 택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위험하지 않을까? 갔는데 지진이 터지면 어떡해?”
맞는 말이다.
저번처럼 해상지진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닐 경우에는 큰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
“당장 일어나진 않을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느낌이 그래.”
이제까지 예지가 틀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대지진은 반드시 일어난다. 중요한 건 그 시기가 언제냐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한 장소와 지진의 규모 역시 핵심적인 사항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정보가 더 필요하다.
“혹시 모르니, 나 혼자 갈게.”
“그러다가 저번처럼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나도 같이 가.”
“위험할 수도 있어.”
택규는 웃으며 말했다.
“훗, 그럼 더더욱 함께 가야지.”
* * *
우리는 바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회사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OTK컴퍼니의 여러 자회사들이 실리콘밸리에 있는 만큼 급히 출장을 간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택규는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잠들었다.
난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예지는 나에게 뭘 알려주려고 하는 걸까?
아무것도 없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예지력 덕분이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만약 내가 예지를 보지 않았다면, 그래서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와 택규는 OTK컴퍼니를 운영하는 대신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지금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갈 일도 없었겠지.
그래도 L6 폭발과 브렉시트는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투자한 기업들 중 일부는 제때 투자를 받지 못해 무너지거나 그저 그런 기업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카로스는 계속 은성차 품에 있었을 테고, 김호민 교수는 계속 한국대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로날드 대신 다이앤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겠지.
나는 이 능력 덕분에 미래로 가는 열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스타트업, 자율주행기술, 신소재 배터리 등등.
이제 그 과실을 손에 넣을 시기가 코앞에 다가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몇 년 안에 카로스가 토요타를 제치고 세계최대 자동차회사로 올라설 거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도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난 문득 워렌 보트의 질문을 떠올렸다.
그는 나에게 어째서 투자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은 단지 돈을 버는 목적이 무엇이냐를 넘어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로 귀결된다.
과연 언제쯤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 * *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전과 마찬가지로 강렬한 위화감이 몸을 휘감았다.
이건 이 땅이 위험하다고 내가 알리는 경보였던 걸까?
여권을 살펴보던 입국심사장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름과 얼굴을 확인했으니, 내가 누군지도 알겠지.
“미국에는 무슨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출장입니다.”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우리는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공항 밖에는 두 명의 백인 경호원과 두 대의 차량이 대기 중이었다.
“말씀드린 대로 직접 운전하며 샌프란시스코 교통상황을 확인해볼 예정이에요.”
경호원은 차키를 건네주며 말했다.
“차량에는 GPS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따로 뒤를 따라가겠습니다.”
“혹시 놓치더라도 무리해서 따라붙지 마세요. 따로 경호가 필요하다 싶으면 연락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운전은 택규가 맡았고, 난 내비게이션을 찍었다.
먼저 샌프란시스코 북쪽부터 하나씩 둘러보기로 했다. 30분 정도 이동하자 외벽이 유리로 된 건물이 보였다.
택규는 차를 정차시켰고, 난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때? 느낌이 좀 와?”
“잘 모르겠어.”
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다음 장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벌서 세 군데를 들렀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새 퇴근시간이 됐는지, 도로에 갑자기 차가 쏟아져 나왔다.
샌프란시스코 도로 사정은 강남에 비해 나을 게 없었다. 정체가 심해지며 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인도 역시 퇴근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저녁 무렵이 되자 도시는 생기가 가득했다.
“저기 하나 더 보이네. 앞에 세울까?”
“응. 잠깐 멈춰봐.”
택규는 급하게 차를 세웠다.
난 차에서 내려서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 앞에 섰다.
분명 처음 와본 곳임에도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길 건너에 통유리로 된 건물이 보였다. 바로 엔플스토어다.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스포츠웨어를 입고 러닝을 하는 남자, 커다란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여자, 백팩을 멘 채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청년, 손을 잡은 채 걸어가는 노부부,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길가에 앉아 있는 연인 등등.
난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아직 불이 켜진 사무실 안에서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 순간, 꿈속의 장면들이 무작위로 떠올랐다. 조각나 있던 퍼즐들이 하나씩 맞춰졌다.
건물 앞에 줄을 지어 서있던 사람들, 내 옆에 서있던 양복 입은 백인 남자, 그가 손목에 차고 있던 롤렉스시계, 물결처럼 요동을 치며 갈라지던 도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남녀, 무너지는 고층빌딩…….
내가 본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건 그냥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미래였을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신호는 바뀌어 있었다. 멈춰 서 있던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여기야.”
택규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내가 서있는 곳은 팔로알토의 한 사거리.
샌프란시스코의 남쪽이자 실리콘밸리 한복판이었다.
* * *
우리는 근처에 있는 호텔로 들어갔다. 창밖으로 엔플스토어가 있는 사거리가 내려다보였다.
이 호텔도 무너졌던가?
현재 스마트폰 시장은 프리미엄 경쟁이 한창이다. 엔플에서는 엔폰 10주년 기념으로 엔폰Z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내가 본 장면에서는 엔플스토어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날은 엔폰Z 출시일이고, 그들은 신제품을 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아직 정확한 스팩과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출시일은 대략 9월 말쯤.
택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앞으로 두 달 후에 대지진이 터진다는 거야?”
“내가 본 게 맞다면 그렇겠지.”
예지는 이제까지 나에게 금융에 관한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것 역시 금융과 관련되어있다.
“금융시장도 난리가 날 거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시스템은 마비되고, 경제는 치명타를 입게 될 거다. 주가는 폭락하고, 금과 원자재는 폭등하겠지.
그리고 그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시기에 맞춰 투자한다면 브렉시트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겠지.
무엇보다 그때와 지금은 자본의 크기가 다르다. 잘만하면 수천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신기하다.
“잠깐 씻고 올게.”
난 생각을 정리할 겸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때까지도 택규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었다.
“만약 911테러가 일어날 걸 예측하고 투자했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응?”
그 테러로 인해 3천 명 가까이 사망하고, 6천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야말로 미국 역사상 본토에서 벌어진 최악의 참사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큰돈을 벌었다. 테러 직후 전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했고,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옵션대박이 터졌다.
“그때도 돈을 번 사람들이 있어. 그리고 당시 옵션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예외 없이 테러관련성에 대해 미국 정보당국에 조사를 받았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는 거지.”
“테러야 연관이 있다고 의심을 살 수 있지만, 천재지변은 상관없잖아. 우리가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긴 한데…….”
난 그동안 투자를 하며 수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L6 폭발, 브렉시트, 로날드 당선 등등. 남들이 손해를 볼 때마다 우리는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챙겼다. 하지만 L6는 내가 폭발시킨 게 아니다. 브렉시트는 영국 국민들의 결정이었고, 로날드 당선 역시 미국 국민들이 투표로 정했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어떨까?
이제까지는 돈을 버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사람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다.
난 꿈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 땅이 뒤집히고 건물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내가 본 게 맞다면, 911테러쯤은 우습게 생각될 정도의 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될 걸 예측하고 풋옵션이나 파생상품 등에 투자한다면…… 그리고 그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진다면?
단지 욕이나 비난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거다.
“누구도 용납하지 못할 거야. 나부터 용납하지 못할 테고.”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건 없지.”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행동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결정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잠시 후, 택규가 물었다.
“지진을 막을 방법은 없나?”
“천재지변을 인간이 무슨 수로 막아?”
수십 년 전에 인간은 우주선을 타고 달에 다녀왔다. 그 후로도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하지만 화산폭발, 지진, 해일, 태풍 등의 천재지변을 막을 방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대비할 수는 있겠지.”
천재지변이란 갑자기 터지기 때문에 피해가 크다. 미리 알고 대비만 해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럼 대비하게 만들면 되잖아.”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지진이 일어날 거라는 걸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리지?”
“그건…….”
택규는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나는 예지에 의존해 투자해왔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이 예지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저 나에게 시장을 바라보는 뛰어난 안목이 있다고 여길 뿐이었다.
어차피 내 말을 믿지 않았어도 상관없었다. 나는 CEO로서 명령을 내리는 위치에 있었다. 때문에 이해나 동의를 구할 필요 없이 결정하고 명령을 내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완전히 경우가 다르다.
나는 결정을 내릴 위치에 있지도 않고, 남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건 예측을 넘어서 예지의 영역이다.
게다가 금융 쪽이라면 모르겠지만, 지진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다.
“그러네. 예지를 봤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내 입으로 미래를 봤다고 떠들어 대봐야 믿기나 하겠어?”
“그럼 어떻게 해?”
난 한참동안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나 대신 예지해줄 사람을 찾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