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07)
카로스는 원래 자율주행을 비롯한 자동차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회사에서 출발했다.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자사의 하드웨어에만 탑재하는 회사가 있는 반면, 타사에 적극적으로 판매하는 회사도 있다.
전자가 엔플이라면, 후자는 MS와 구블이다. 어느 쪽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오픈 플랫폼을 지향한다. 전자의 경우는 확장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기술집약적이며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기술발전과 고용창출에 큰 효과를 지니고 있는 만큼 모든 국가가 자국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애초에 자동차산업이 없는 나라들이야 상관없겠지만, 독일, 일본, 인도 등은 어떻게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GM과 포드를 우군으로 삼으면, 어느 나라도 카로스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미국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될 테니.
다들 표정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쯤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겠지.
제안을 받아들이면, GM과 포드 역시 카로스의 비슷한 수준의 무인전기차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차도 컴퓨터와 휴대폰처럼 운영체제가 필요한 시대다.
카로스의 OS를 탑재한 자동차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도로와 차량에 대한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된다. 차량 간의 연동을 생각했을 때도 같은 소프트웨어로 작동하는 자율주행차가 많아질수록 유리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가 컴퓨터를, 구블의 안드로메다와 엔플의 NOS가 스마트폰을 장악했듯, 향후 자동차 운영체제는 카로스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한 번 운영체제에 종속되기 시작하면 다시는 벗어나기 힘들다. 이는 자율주행 분야에서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서성전자 역시 구블의 안드로메다를 받아들인 이후로는 사실상 자체 스마트폰 OS 개발을 포기했고.
거절하고 자체 기술을 더욱 키워도 되겠지만, 카로스를 뛰어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가 그동안 놀고 있을 것도 아니고. 오히려 먼저 양산차를 출시한 만큼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지는 중이니.
테레사 멕팔랜드 회장이 물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요?”
“그럼 여러분들이 가진 기술력으로 계속 차를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자동차업체에게 똑같은 제안을 하겠죠.”
GM과 포드가 아니어도 자동차업체는 많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후발주자들은 우리가 손을 내밀면 기꺼이 잡을 것이다.
카로스의 기술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선두그룹과 단숨에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은성차가 그런 경우다.
은성차는 자율주행과 전기차 분야의 기술력이 뒤쳐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카로스와 기술제휴를 맺은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한찬영 회장은 공식적으로 3년 안에 은성차의 전기차 판매 비중을 70퍼센트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은성차는 OTK컴퍼니와 함께 전기차 산업단지를 건설 중이지만, 여전히 내연기관차의 판매량이 압도적이다. 전기차 비중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은 독자생존 대신 카로스의 우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투자자들은 이 결정에 환호했고, 은성차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GM과 포드는 말그대로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온 기업.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난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둘 다 전문경영인들인 만큼 투자자들 의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는 주가가 말해주겠지.
난 그들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였다.
“아시겠지만, 현재 OTK배터리의 생산량은 앞으로 늘어날 전기차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우선적으로 물량을 받고 싶으시다면, 다른 업체들보다 빨리 결정하시는 게 좋겠죠.”
* * *
GM과 포드는 내 제안을 잠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실무진들은 비밀리에 협상에 들어갔다.
임진용 회장은 테레사 멕팔랜드 회장과 휴고 퍼트레이어스 회장을 따로 만나 얘기를 나눴다.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량용AP, 반도체, 센서, 모듈 등 각종 하드웨어가 필수다.
물론 다른 회사들도 만들고 있긴 하지만, 그걸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회사는 서성전자가 유일하다. 이미 카로스의 운영체제와 호환성이 뛰어나다는 것도 입증됐고.
임진용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돈 벌기 힘들겠네요. 올해는 배당도 못 주게 생겼습니다.”
주가는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사실 서성전자 순이익은 급감 중이다. 왜냐하면 번 돈을 계속해서 투자하고 있으니까.
한마디로 엄살이다.
전 세계 자동차업체들은 상황을 주목하며, 앞으로의 전략을 세우기 위해 분주했다.
“일본은 정부 주도 하에 관련 업체들을 연합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오카자키 총리가 업계의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했구요.”
“그만큼 경제에서 자동차산업 비중이 크니까요.”
지금 카로스가 절대강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카로스의 밑으로 들어가거나, 뭉쳐서 대항하거나.
* * *
난 통화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엘리는 침대머리에 등을 기댄 채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너무 예뻐서……인 것도 있지만, 검은색 뿔테안경을 끼고 있었기 때문.
“어! 그 안경은 뭐예요?”
“요즘 눈이 아픈 것 같아서 책 읽을 땐 써보려구요. 이상해요?”
난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안경 하나 꼈을 뿐인데, 평소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왠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내 말에 엘리는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뭐예요? 이런 거 좋아했어요?”
“뭐…….”
싫어하진 않지.
엘리는 책을 덮으며 말했다.
“워렌 보트 회장님과 통화는 잘 했어요?”
“예. 안부 전해달라고 하던데요.”
버크셔캐셔는 관련 기업에 투자하느라 분주했다. 그 나이에 그렇게 열정적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니, 내가 워렌 보트와 통화하는 게 신기한 건가?
“뭐 읽고 있었어요?”
“파이낸셜 타임즈요. 재밌는 기사 있는데 볼래요?”
난 신문을 받아들었다.
[누가 미래 자동차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가?]200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대의 폰이 공개됐다. 바로 엔플이 만든 스마트폰이다.
공개 당시만 해도 엔폰의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 후 10년도 안 돼 엔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은 휴대폰 시장을 장악했고, 기존 강자였던 노키아, 모토롤라, 블랙베리 등은 차례대로 몰락했다.
이번에는 자동차시장을 보자. 카로스는 AD1과 AD2라는 자율주행차를 내놓았고, 이번에는 무인전기차 AD3와 AD4를 출시했다.
AD 시리즈는 자동차시장의 엔폰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시장의 강자인 10대 자동차기업 중 향후 10년 후에도 남아있을 기업이 몇이나 될까?
(후략)
엘리가 말했다.
“뒷면 보면 카로스 기업 가치가 1조 달러라는 얘기도 나오던데요.”
난 피식 웃었다.
“그건 그냥 하는 얘기죠.”
금융회사들마다 카로스의 시총을 추정한 금액은 제각각이다. 1조 달러가 넘는다는 곳도 있고, 실제 가치는 3천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곳도 있다.
아무래도 비상장기업이고 투자도 받지 않다보니, 정확한 가치측정이 쉽지 않다.
일반적인 자동차회사의 PER는 8배 정도. PER은 주가수익비율로, PER이 8이라는 것은 향후 8년 동안 벌어들일 예상 수익이 지금의 주가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리로 계산하면 연 9퍼센트 정도 되는 셈이다.
하지만 카로스는 PER로는 측정이 불가능하다. 이유는 당장의 수익보다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
나중에 시장을 장악한다는 확신만 있다면, 수익이 얼마나 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느 쪽이 맞든 간에 자동차회사로는 사상최대의 시총이다.
“그 정도로 돈이 많으면 어떤 기분이에요?”
“글쎄요. 실감이 별로 안 나는데. 현금으로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OTK컴퍼니 지분가치가 올랐을 뿐이잖아요.”
세상에 나보다 현금 많은 사람은 많고, OTK컴퍼니와 카로스보다 현금보유가 많은 기업도 얼마든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나 독재국가 지도자 등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비유하자면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그 집이 30억이 됐네, 100억이 됐네 하는 식이다.
그전이나 지금이나 집이 한 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집에서 살고 있는 이상 팔 수도 없고.
먼 훗날 집값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이러다가 망할 수도 있을 테구요.”
최정상에 있던 기업이 몰락하는 것은 의외로 흔한 일이다.
다우지수가 만들어졌을 당시 포함되어 있던 기업들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상당수가 망하거나 어딘가에 인수됐고, 살아있는 기업은 극소수다. GE는 한 번 빠졌다가 다시 들어갔지만, 얼마 전 또다시 퇴출됐다.
엘리는 자신 있다는 듯 말했다.
“걱정 말아요. 그렇게 되면 진후는 제가 먹여 살릴 테니까.”
“믿어도 돼요?”
“그럼요. 집에서 푹 쉬며 살림만 해요.”
“음, 이제부터 요리라도 배워놔야겠네요.”
내 말이 재밌었는지 엘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가장 큰돈을 벌었다고 생각했던 건 L6 폭발사태 때였어요.”
그때 우리는 공매도와 풋옵션에 투자해 50배, 6천억을 넘게 벌었다. 통장에 찍힌 돈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고, 사람이 이 정도로 돈을 벌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히려 조 단위를 넘어선 뒤에는 현실감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실제 돈이 아니라, 그저 계좌에 적힌 숫자만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진후는 돈 벌면 하고 싶은 일 없어요?”
돈은 곧 기회다.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 역시 많아진다.
집과 차가 있어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더 좋은 집과, 더 좋은 차를 원하기 마련. 고 임일권 회장은 심심할 때마다 자동차 매장에 가서 슈퍼카를 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차를 만들어 팔고 있는 입장인지라 남의 회사 매장 가서 차를 사기가 좀 그렇다.
그래서…….
“전용기나 한 대 사려구요.”
* * *
출장도 잦은 관계로 전용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전용기를 구매하겠다고 하자 상엽 선배가 가장 크게 기뻐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야. 진작 한 대 샀어야 했는데.”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팸플릿을 내밀었다. 보잉부터 걸프스트림까지 종류별로 다 구비되어 있다.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이건 언제 준비해놨어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미리 받아놨어.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면 돼.”
모든 부자나, 모든 대기업이 전용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최대 가구업체 아케아의 경우 전용기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회장조차도 이코노미석만 탄다. 한 임원이 급한 출장이 있는데 이코노미석이 매진돼 비즈니스석을 타도 되냐고 문의하자, 아예 출장을 가지 말라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러한 회사방침은 회장이 쪼잔해서……인 것도 있겠지만, 저가의 조립식 가구를 판매하는 아케아의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세계적으로 슈퍼리치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전용기 수요 역시 증가 추세다.
“가격은 얼마나 하나요?”
“주문제작 방식으로 이뤄지다보니, 천차만별이야.”
대략 5천만 달러에서 시작해서, 비싼 건 1억 달러가 넘는다.
돈이 많이 주체를 못하는 석유국 왕족의 경우 수천만 달러를 들여 내부를 황금으로 치장하기도 하기도 하고.
로날드 역시 보잉757을 전용기로 보유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타는 에어포스원과는 별개로, 후보시절 이 전용기를 타고 유세를 다녔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과시의 수단 중 하나. 세계최고 부자에게 판매했다는 것은 좋은 세일즈 포인트가 된다.
내가 전용기를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마자, 업체들은 바로 홍보자료를 들고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