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33)
졸업한 선배들은 물론 재학 중인 과후배들도 찾아왔다. 기홍 선배는 졸업 이후에도 대학에 자주 찾아갈 만큼 학과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으니.
민영이와 경일이는 함께 도착했다.
“뭐야? 왜 니가 식권을 나눠주고 있어?”
“내가 후배니까. 우리 회사에서 나 말고 또 누가 하겠어?”
민영이는 걱정하듯 말했다.
“학생들이 많이 내봐야 5만 원일 텐데. 후배들 많이 와서 밥 먹으면, 기홍 선배 적자 나는 거 아니야?”
“괜찮아. 내가 다 내는 거니까. 후배들한테도 신경 쓰지 말고 먹으라고 해. 식사도 가장 비싼 걸로 준비해놨어.”
경일이는 부럽다는 듯 말했다.
“내 결혼식에도 그렇게 해주면 안 돼?”
“결혼할 여자는 있고?”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일전에 나의 희생(?)을 바탕으로 번호를 딴 세인대 항공서비스학과 여학생과는 잘 안 된 모양이다.
임수미 사장은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어차피 같은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기만 하면 된다. 뒤에는 여러 아주머니들도 함께였다. 왠지 다들 어머니를 따르는 것 같은 모습이다.
“이분들은 누구세요?”
“엄마 친구들. 여기 회원라운지에서 친해진 분들이야.”
아주머니들은 앞다투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강진후 대표님.”
“어머, 여기서 이렇게 뵙게 되네요.”
“사모님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어쩜. 직접 보니까 더욱 잘 생기셨네요.”
“부대표님은 아직 안 오셨나 봐요.”
임수미 사장은 작은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재계 사모님들이세요.”
“아…….”
OTK컴퍼니와 K컴퍼니와 거래하는 국내 기업들에서도 찾아왔다. 직원이 아니라, 임원이나 사장들이.
회장과 사장들이 줄지어 나타나자 직원들은 당황했고,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임수미 사장이 직접 접객에 나섰다.
“어서 오세요, 최현웅 사장님.”
“아! 오랜만입니다, 임수미 사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그럼요. 저쪽 자리로 안내해 드릴게요.”
역시나 사장이 일선에서 지시를 내리자 직원들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김호민 교수는 깔끔하게 정장을 갖춰 입고 연구원들과 함께 왔다. 먼저 도착해있던 사장들은 재빨리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교수님.”
“늦었지만, 노벨화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꼭 한 번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같은 과학자로서 존경합니다.”
기홍 선배와 현정 선배 부모님은 밀려드는 하객들의 면면에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친척들과 하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면 이 자리에 노벨상 수상자만 두 명이다. 그리고 이제는 임진용 회장마저 등장했다.
“서성그룹 임진용입니다. 정기홍 팀장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가, 감사합니다, 회장님.”
임진용 회장은 내 쪽으로 와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식권 드릴까요?”
“예. 오랜만에 뵙는 분들도 많아서 먹고 가야겠네요. 다른 회장님들도 금방 도착한다고 하시네요.”
축의금을 내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고, 봉투가 수북하게 쌓였다. 상엽 선배는 방금 받은 봉투를 슬쩍 열어보았다.
“와우, 성지택 사장님은 달러로 넣으셨네.”
봉투 안에는 100달러짜리가 스무 장 가량 들어 있었다.
상엽 선배는 괜히 입맛을 다셨다.
“축의금만 모아도 집 한 채 사겠는데.”
“청담에 하나 샀잖아요.”
요즘 시대에 월급 모아서 강남에 집 사기 쉽지 않지만, OTK컴퍼니 직원이라면 가능하다. 그래도 절반은 대출이라고 하니, 오늘 받은 축의금이 빚 갚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뒤늦게 기홍 선배의 사촌형들이 도착했고, 나와 상엽 선배는 봉투와 식권 담당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 * *
주현정은 여고를 나왔다.
그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네 명은 축하를 해주기 위해 모였다. 며칠 전부터 다 같이 축가도 연습했다.
“실론호텔에서 결혼식이라니. 여기 유명 연예인들이 결혼하는 데 아니야?”
“맞아. 저번에 한류스타 김혁민과 신혜인도 여기서 결혼식 했잖아.”
“엄청 비쌀 텐데.”
“사내커플이자 학과 선배들끼리 결혼한다고 강진후 대표가 잡아줬대. 더 대박인 건 뭔지 알아?”
“뭔데?”
“신혼여행은 OTK컴퍼니 전용기에 태워 칸쿤으로 보내준대.”
“꺄악! 대박대박. 진짜 미쳤다.”
“OTK컴퍼니 들어가더니 완전 대박 났네. 우리 회사는 그런 거 쥐뿔도 없는데.”
안으로 들어가기 전 오민지는 갑자기 거울을 꺼내 화장을 점검했다.
“왜 그래?”
“거기 괜찮은 남자들 많을 거 아니야? OTK컴퍼니 직원들도 다 올 테고. 원래 인연이란 이런 데서 생기는 거 아니겠어?”
그 말에 다른 친구들도 일제히 거울을 꺼내들었다.
“혹시 강진후가 말 걸면 어떡하지?”
“푸흐, 헛소리 하지 말고. 강진후 여친 못 봤어?”
“그 여자 진짜 예쁘더라.”
완벽하게 준비를 끝마친 그녀들은 안으로 들어가 신부대기실에 있는 주현정을 만났다.
“축하해, 현정아!”
“오늘 너무 예쁘다!”
“기집애. 결혼 늦게 할 거라고 하더니, 바로 날 잡았네.”
“원래 이런 애들이 제일 빨리 가더라.”
주현정은 웃으며 말했다.
“와줘서 고마워, 얘들아.”
“이따 보자.”
신부대기실을 나온 그녀들은 식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잠시 후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강진후가 식권을 나눠주고, 임수미 사장이 안내를 해주었다. 뉴스에서나 볼 법한 대기업 사장과 회장님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김호민 교수와 서성그룹 임진용 회장까지 등장하자 그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 말도 안 돼.”
“이게 대체……?”
“무슨 재벌그룹 후계자 결혼식이야?”
* * *
헨리와 현주 누나, 그리고 택규와 엘리가 함께 도착했다.
양복을 차려입은 헨리는 마치 할리우드 배우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주변 여자들의 시선이 돌아가는 게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현주 누나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고, 여자들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택규는 살이 빠진 후 새로 맞춘 양복을 처음으로 입었고, 엘리는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었다.
잘 몰랐는데, 여자들은 결혼식장에서 화려한 옷이나 흰색 드레스는 피하고,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는 게 예의라고 한다. 이유는 신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
“그런 룰이 있었어요?”
“그럼요.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잖아요.”
남자고, 결혼식을 많이 안 가봐서 몰랐다.
우리끼리 얘기를 하는데, 한 여성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택규 씨.”
“어! 여기서 또 보네요.”
말을 건넨 여자는 양하나. 그녀 역시 자리에 걸맞게 화려하지 않고 단정한 차림이다. 그럼에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큼 매력적인 미모를 자랑했다.
“아버지께서 출장 때문에 못 오신다고 해서 대신 왔어요.”
“그러셨구나.”
난 택규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안내 좀 해드려.”
“뭔 안내? 나도 여기 처음인데.”
“…….”
그렇긴 하지.
양하나는 못 들은 척 말했다.
“직원 분들 소개 시켜주세요, 택규 씨.”
“예? 소개요?”
택규는 얼떨결에 양하나를 따라갔다.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난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며 참석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러는 사이 결혼식이 시작됐다.
사회는 기홍 선배 친구가, 주례는 김명준 교수님이 맡았다. 상엽 선배가 Edm엔터를 통해 섭외한 발라드가수와 현정 선배의 친구들이 축가를 불렀다.
웨딩마치가 울리고, 축포가 터지고,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같이 당구장에서 짜장면 시켜먹고, PC방에서 스타하고, 과방에서 술 마시던 선배가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내가 다 뿌듯하다.
택규는 현주 누나에게 말했다.
“누나도 결혼식 해야지. 엄마랑 아빠가 그동안 뿌린 경조사비 회수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는 거 알지?”
“나중에.”
전에는 아이 때문에 결혼식을 못 올렸지만, 이제는 슬슬 식을 올려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현주 누나는 결혼식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정작 헨리가 하루라도 빨리 식을 올리고 싶어 했고.
식을 올린다면 아마 이번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초호화 결혼식이 펼쳐지지 않을까?
* * *
결혼식이 끝난 뒤, 둘은 OTK컴퍼니 전용기를 타고 칸쿤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현정 선배가 임신 중인 만큼 맑은 공기 마시며 푹 쉬다 돌아올 예정이다.
가뜩이나 적은 인원에서 두 명이 빠지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더욱 바빠졌다. 현정 선배가 빠진 자리는 미리 업무를 인수인계 받은 유리가 메웠다.
그러는 사이 택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본사로 찾아왔다.
바로 OTK게임즈의 사장 이치카와 시게루다. 그가 리닉스펜타곤에서 독립해서 내놓은 로스트 판타지M은 모바일게임 사상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현재는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의 개발을 거의 끝낸 상태다. 이미 클로즈베타서비스까지 끝마쳤고, 오픈베타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이치카와 시게루입니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는 먼저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에 대한 전망을 밝혔다.
“이제까지 나온 로스트 판타지 시리즈를 집대성한 게임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베타서비스에 참가하겠다는 지원자들이 넘쳐났고, 게임 쪽 전문가들 역시 최소 30만 명 이상의 동시접속자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정도면 엄청난 대박이다. 50만 명이 월 30달러씩만 결제해도 1500만 달러다. 이 금액이 매달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그 이용자를 계속 끌고 갈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에 대한 얘기가 끝나고 나자, 시게루 시장은 다른 얘기를 꺼내들었다.
“VR기기를 활용한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택규가 물었다.
“그런 게임들 이미 있지 않나요?”
게임회사들은 그동안 VR기술을 게임에 접목할 방법에 대해 연구개발을 지속해왔고, 일부 회사에서는 VR게임기를 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기존의 키보드나 패드에 비해 조작법도 직관적이지 않고, 제대로 즐길 만한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은 가상현실 온라인게임입니다.”
난 택규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이전에 한 번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VR기기가 처음 나온 이후 이를 온라인게임과 접목하겠다고 야심차게 도전했다. 결과는 폭망.
게임은 출시하지도 못했고, 거액의 개발비만 날려먹었다.
시게루 사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기술이 성숙되지 않았으니까요. VR기기도 조악했고, 쏟아지는 정보를 처리하기에는 통신망도 클라우드 컴퓨팅도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인공지능, 머신러닝, 로봇기술, 무선통신망 등.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할 수 있을 만한 기술력이 갖춰졌습니다. 페이스잇이 출시한 애니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VR기술 자체는 엔플이나 페이스노트 같은 IT공룡들이 앞서있다. 그러나 그걸 상용화하고 대중화하는 데 앞장선 기업은 바로 페이스잇.
“또한 카로스는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술에 앞서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OTK컴퍼니가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지원해줄 수 있다는 거죠.”
이전과는 달리 기술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개발환경이 충분히 갖춰진 셈이다.
“그런데 현실과 똑같은 세계를 만든다는 게 가능한가?”
내 물음에 택규가 고개를 저었다.
“게임이 꼭 현실을 구현할 필요는 없어. 말 그대로 가상현실이기만 하면 되는 거지.”
“응?”
“생각해봐. 영화가 나왔는데도 여전히 애니메이션은 존재하잖아. 2D든 3D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게이머가 그걸 현실이라고 인식하기만 하면 돼. 우리는 도트 시절에도 게임하는 데 아무 지장 없었어.”
맞는 말이다.
인간이란 몇 개의 점과 선만 가지고도 그것이 사람이 얼굴이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까지 해석해서 받아들일 수 있다.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보며 울고 웃는 거겠지.
생각해보자.
마이크로소프트가 25억 달러를 주고 마인크래프트를 만든 모장을 인수할 때만 해도 내부에서 우려가 컸다. 그러나 마인크래프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중 하나가 됐고, 지금도 수많은 콘텐츠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만약 전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개발비용은 얼마나 생각하나요?”
“100억 달러입니다.”
시게루 사장의 대답에 상엽 선배는 깜짝 놀랐다.
“11조 원? 게임 하나 만드는 데 11조가 들어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