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40)
이어서 청소년보호관리원 원장과 가정건강진흥원 원장이 차례대로 나섰다. 아까와 같은 얘기의 반복이었다.
게임중독의 심각성과 청소년들의 건강, 그리고 게임을 하면 폭력성이 강해져 범죄를 저지른다는 논리를 펼쳤다.
말만 들어서는 게임이 도박과 마약을 합쳐놓은 것보다 더 나쁘다. 사회악을 넘어 인류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게임 만든 사람들 전부 불러다가 사형시켜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루에 게임을 16시간씩 하면, 목디스크, 허리디스크에 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셧다운제 시간을 늘려서 청소년들의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당연하지만 앉아서 게임만 하는 게 건강에 좋을 리 없다.
“……하루에 16시간씩 공부를 해도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 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공부하느라 몸 상하는 건 괜찮겠지. 코피 쏟으며 공부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드디어 신전미 장관이 나섰다. 몇 차례 설전을 주고받긴 했지만, 직접 만나는 것은 이 자리가 처음이다.
가능하면 영원히 안 만나고 싶었는데.
신전미 장관은 준엄하게 꾸짖듯 말했다.
“OTK컴퍼니는 세계적인 대기업입니다. 그런데 건전한 게임문화 정착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지, 이렇게 게임업계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걸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그럼 장관님은 여가부 입장만 대변하고 계신데,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사실은 이런 자리에서 이런 토론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괴롭고 자괴감이 느껴져.
내 말에 신전미 장관은 눈을 크게 떴다.
한국에서 국회의원과 장관이 갖는 위상은 대단하다. 그런데 그녀는 둘 다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신전미 장관 앞에서 누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특히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그동안 설설 기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기업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건 다릅니다. OTK컴퍼니는 OTK게임즈 코리아를 통해 로스트 판타지M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생각해보세요.”
난 태연하게 말했다.
“영화, 드라마, 음악, 웹툰, 웹소설 등 청소년들이 즐기는 콘텐츠들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왜 게임만 유해매체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그러니까 규정에 따라 건전한 게임을 만들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이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있습니다.”
난 준비해온 자료를 보며 말했다.
“청소년 인터넷 건전이용게임 제작안내서요?”
“맞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여가부가 만든 가이드라인이다.
강박적 상호작용, 과도한 보상구조, 우월감과 경쟁심 유발, 이렇게 총 세 개 항으로 나눠져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가관이다.
“1항을 보면, 캐릭터의 레벨이나 능력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역할을 분담해 협동하거나, 팀원들과 함께 퀘스트를 수행하며 뿌듯한 느낌을 줄 수 있으면 안 된다고 하네요. 2항에는 게임을 오래 하면 사이버머니나 아이템을 얻거나, 레벨과 스킬을 향상하는 게 문제라고 하고. 3항을 보면, 게임을 지배한다는 느낌을 주거나, 힘센 사람이 되어 영향력을 끼친다거나, 현실보다 게임에서 우월한 사람이 되거나, 타인과 경쟁하는 게 문제라고 합니다.”
신전미 장관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전부 게임이 가진 문제들이죠.”
“일단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1항에서는 타인과 협동하는 게 문제라고 하는데, 3항에서는 타인과 경쟁하는 게 문제라고 합니다. 대체 어느 쪽이 맞는 겁니까?”
그녀는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자료를 살펴보았다.
“둘 다 문제입니다. 팀플레이로 인한 강박적 상호작용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고, 과도한 경쟁심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로 인해 재미나 뿌듯함을 느낀다면 더더욱 문제겠죠.”
“…….”
재미와 뿌듯함을 느끼지 않고, 경쟁을 하지 않을 거면 게임을 왜 해? 이건 한마디로 야하지 않은 포르노를 만들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럼 이걸 공부에 그대로 적용해보겠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조별과제를 수행하며 뿌듯함을 느끼면 안 되겠죠? 공부를 오래해 지식을 쌓거나, 성적을 올리거나, 장학금을 받는 것은 과도한 보상이 주어지는 거니 금지시켜야겠고. 공부를 열심히 해 등수를 올리는 것은 타인을 경쟁에서 밀어내 우월감이 들 수도 있으니, 이것도 문제겠네요. 여가부 지침대로라면 애들한테 공부부터 금지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부와 게임은 다릅니다. 좋은 음식은 많이 먹을수록 좋지만, 불량식품을 권장해서는 안 됩니다.”
택규가 말했다.
“그럼 e스포츠는요? 그건 게임으로 아예 경기를 하는데.”
신전미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e스포츠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게임산업의 뿌리를 뽑겠다는 건가?
내가 바로 이어서 말했다.
“그냥 스포츠는요? 동계올림픽 때 신전미 장관님은 여성 컬링대표님을 응원하시면서 ‘한국 여성들의 단합된 모습에 감동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체전은 서로 역할을 분담해 협동하고, 같이 경기를 수행하며 뿌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 팀들과 경쟁한 다음 이기면 보란 듯이 메달도 받고 상금도 받습니다. 이거야 말로 재미, 뿌듯함, 팀원끼리 협동,다른 팀원과의 경쟁, 과도한 보상 등 게임의 문제점이 총집합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럼 컬링팀도 해체해야 합니까?”
신전미 장관은 목소리를 높였다.
“자꾸 게임을 공부나 스포츠 같은 것과 비교하지 마세요! 게임은 4대 중독으로 분류되니, 비교를 하려면 술, 도박 마약과 비교하는 게 옳습니다.”
“…….”
그놈의 4대 중독.
대체 뭔 생각으로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같은 카테고리로 묶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 법안이 나온 이후로 게임은 오락이나 여가보다는 마치 중독물질처럼 취급됐다.
“이번에 규제법안을 보면 여가부 장관이 게임회사에 일괄적으로 매출의 1퍼센트를 기금으로, 과징금으로 5퍼센트를 걷을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대체 어느 산업에 이런 규정이 있습니까?”
“그 부분은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명확하게 말씀드립니다. 모든 게임회사에 일률적으로 1퍼센트를 걷는 게 아니라 그 이하에서 정할 수 있습니다.”
“그걸 장관님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게 문제 아닌가요?”
“인터넷게임중독치유센터를 설립하고, 초중고등학교에 게임중독 전담교사를 배치하기 위한 기금입니다. 좋은 뜻으로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니 당연히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게임중독치유센터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게임중독 전담교사는 뭐야? 게임중독이 질병이면 전문의에게 치료받게 해야지, 전담교사보고 뭘 어쩌라고?
당연하지만, 이 ‘게임중독 전담교사’를 뽑고 교육시키는 일은 전부 여가부가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일종의 일자리 창출인 셈이다.
“일부 게임회사의 경우 국내보다 해외매출이 더 큽니다. 그런데 기금은 한국의 여가부에서 걷는단 말이죠. 장관님 주장대로라면, 다른 나라 아이들을 중독시켜서 번 돈으로 우리나라 아이들 치료에 쓰겠다는 건데, 그 나라 국민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지적이었는지 신전미 장관은 움찔했다.
“여기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건 비열한 짓입니다.”
“……예?”
순간, 잘못 들었나 했다. 토론에서 이런 말을 써도 되는 거야?
사회자는 주의를 주었다.
“지금 토론이 너무 격양되었는데, 발언에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전미 장관이 아닌 나에게. 대체 뭔 토론이 이래?
애초에 자신들은 무조건 옳다는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도 난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게임중독 치료를 위해 여가부가 기금을 걷겠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캐주얼게임, 교육용게임을 만드는 기업들도 다 포함됩니다. 이 기업들은 게임중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일관된 법적용으로 피해를 보게 되지 않겠습니까?”
신전미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일부 피해를 보는 기업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희생입니다. 개별기업이 느끼는 불공정함은 있을 수 있지만, 청소년과 여성 보호라는 사회전체의 대의를 위해서는 정책이 반드시 시행돼야 합니다. 개별기업의 사례, 특정기업의 사례를 들어 반박하기 보다는 사회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장관님 말씀은 다수의 정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겁니까?”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제가 알기로 예전에 똑같은 말을 했던 정치인이 있었는데요.”
“그게 누구죠?”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내 말에 토론회장 안은 발칵 뒤집혔다.
신전미 장관은 소리치듯 말했다.
“지금 제가 히틀러 같다는 겁니까!?”
“전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그냥 히틀러가 같은 말을 했다고만 말씀드렸습니다.”
“비열하고 치사하게! 그게 무슨 막말이에요!?”
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니, 장관님께서 히틀러와 같은 말을 한 게 문제지, 장관님께서 히틀러와 같은 말을 했다고 지적한 제가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들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말려야 할 사회자까지 일어나 비난을 퍼부었다.
토론이고 뭐고 난리가 났다. 이대로는 몰매라도 맞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 순간, 택규가 테이블을 세게 치며 벌떡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택규는 충격적인 얘기를 꺼냈다.
* * *
토론회가 끝난 뒤.
여성가족부는 녹취록을 공개했다. 그런데 내용이 완전히 난도질 돼있었다.
헛소리는 논리정연하게 바뀌었고, 우리가 한 말들은 자극적인 부분만을 부각시켰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정도다.
우리를 향해 비난이 쏟아졌다.
-ㅋㅋㅋ강진후 토론 ㅈㄴ 못하네.
-억지 주장 펼치는 거 봐라.
-저게 다 게임을 했기 때문입니다. 게임을 하면 뇌가 망가집니다.
-그렇게 게임이 좋으면, 토론하지 말고 집에서 게임이나 해라!
-신전미 장관님은 마치 잔다르크 같았습니다! 걸 크러쉬^^
-박지혜 변호사님은 역시 변호사답게 조리 있게 말씀 잘하시네요! 오늘부터 팬이 됐습니다.
-저런 분이 양성평등활동진흥원의 자문변호사로 계시니 너무 든든하네요~^^
-논리에서 밀리니 다짜고짜 사람보고 히틀러라니!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나요?
-너무 화가 나서 손발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나ㅜㅜ
-신다르크 장관님 파이팅!
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게 진짜 치사하고 비열한 짓이지.”
상대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전에 토론회 취재를 맡은 언론사 중 한곳을 섭외해 놓았다.
다들 여가부에 호의적인 언론사였지만, OTK게임즈와 5대 게임사에서 대량의 광고를 밀어주기로 하자 태도가 바뀌었다.
택규는 웃음을 지었다.
“언론은 대중의 사랑이 아닌 광고를 먹고 자라는 법이지.”
* * *
광고를 받기로 한 언론사에서는 토론회 풀버전 영상을 공개했다.
담당기자가 말했다.
“여가부에서 공개한 녹취록은 편집되고 조작되었습니다. 저희 언론사는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토론회 영상을 전부 공개하겠습니다. 익명을 희망하는 OTK컴퍼니 부대표의 목소리를 살짝 변조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편집도 하지 않았음을 말씀드립니다.”
영상이 공개되자, 일제히 기사가 쏟아졌다.
[(속보) 여성가족부 녹취록 편집조작. 누구의 지시였나?] [비이성적인 토론회. 건설적 대안은 없어] [신전미 장관, 일부 게임회사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전체주의적 발언] [의학계, 게임뇌는 허구……] [박지혜 변호사는 누구?] [Ze법률사무소의 명칭은 성평등 인칭대명사에서 따와……]신전미 장관은 원래 유명했지만, 박지혜 변호사는 이번 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언론사들이 인터뷰를 하러 달려갔으나,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그녀는 휴가를 내고 잠적했다. 심지어는 홈페이지도 닫았다.
놀란 여가부에서는 해당 언론사에 거세게 항의하고, 각 언론사에 토론회 영상을 내리고 기사를 정정하라고 압박을 넣었지만, 이미 영상은 해외로까지 퍼져나간 뒤였다.
게임사이트뿐 아니라, 각종 사이트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ㅋㅋ녹취록 짜깁기. 안 걸릴 줄 알았나?
-여가부 편들던 애들 다 어디 갔냐?
-신다르크ㅋㅋㅋ 손발이 오그라든다. 잔다르크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듯.
-여가부 장관님께서 히틀러랑 같은 발언을 했기에 히틀러랑 같은 발언을 하였다고 말씀드렸는데, 어째서 히틀러 같은 발언이냐고 하시면…….
-정말이지 놀라운 토론이었다. 토론 참석자들은 어째서 여가부가 게임규제를 해서는 안 되는지를 확실하게 증명해 보였다!
-박지혜 변호사가 대박이지ㅋㅋ 게임 연좌제. 범죄를 저지른 게이머와 그냥 집에서 게임만 한 게이머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대.
-게임 내 중요캐릭터는 남녀동수로 맞추라더니, 본인은 정작 남자 변호사들 뽑음ㅎㅎ
-어떻게 변호사 같은 고위직을 남자를 더 많이 뽑을 수 있죠? 억울해서 손발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나ㅜㅜ
-대체 저 머리로 변호사 자격증은 어떻게 딴 거야?
-다른 분들 활약도 만만치 않음.
-아무튼 게임은 안 돼욧!
그러나 진짜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바로 녹취록에서 완전히 잘려나간 OTK컴퍼니 부대표의 마지막 발언이다. 풀버전 영상에는 그 발언이 그대로 공개됐다.
“이 토론회 덕분에 이 나라가 게임산업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장관님께서 토론에서 이기셨습니다. 전 OTK컴퍼니의 부대표로서 여가부의 규제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겠습니다.”
그 말에 신전미 장관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인가요?”
“예. 저는 이제부터 신전미 장관님의 뜻에 따라 여성가족부 편에 서서 한국 게임산업의 뿌리를 뽑고 박멸하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국내 게임회사들과 얘기를 끝마쳤습니다. 오늘 토론회에서 장관님을 설득하지 못하면, 모든 게임회사들이 한국을 떠나기로요.”
신전미 장관은 당황했다.
“뭐, 뭐라구요?”
“OTK컴퍼니 주도 아래 거래소에 상장된 게임회사들을 전부 상장폐지하고, 외국으로 본사와 법인을 이전하겠습니다. 앞으로 한국에는 유해매체이자 중독물질인 게임을 제조하는 회사는 발도 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신전미 장관님 개인의 공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자,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