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6)
보는 투자자 035
35화.
우리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려 한다.
그런데 뜬금없이 OTK컴퍼니라는 곳에서 투자의사가 있다고 연락해봐야 장난이거나 사기라고 의심할 것이다.
따라서 공신력 있는 기관의 중개가 필요하다.
골든게이트가 중개에 나선다면, 스타트업 경영자들도 믿고 만날 것이다. 각 나라마다 투자에 관한 법규도 차이가 날 테니, 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일을 맡기는 것인 만큼 수수료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커미션이 얼마나 되려나?
현주 누나는 먼저 내가 뽑은 기업들에 투자의사가 있다는 메일을 돌렸다. 그리고 골든게이트를 상대로 협상에 나섰다.
그 사이 나는 세부적인 투자전략을 짰다.
전부 일임하고 손 놓고 있어도 되겠지만, 이번 기회에 투자가 어떤 것인지 직접 겪어볼 생각이다.
“외국계 스타트업을 어떻게 만나게?”
“한국으로 불러야지.”
우리가 투자 못해서 안달 난 것도 아니니, 아쉬운 쪽이 찾아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보다 걸리는 것은 한국계 스타트업이다.
L6 단종 사건으로 우리는 세계 금융사들의 이목을 끌었다. 일이 벌어진 한국에서는 아예 금감원이 조사에 나섰지만, 정보를 얻지 못해 중단된 상황.
만약 OTK컴퍼니가 한국시장에서 투자활동을 시작하면 금감원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잘못한 게 없으면, 괜찮지 않아?”
“그렇긴 한데······.”
문제는 조사 과정에서 우리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실이 알려지면 언론이고 여론이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신문과 뉴스에 우리의 이름이 실리고, 인터넷에서는 우리의 졸업앨범과 과거행적이 떠돌겠지.
다시 말하지만 숏 포지션으로 돈을 벌면 잘잘못과는 관계없이 욕을 먹는다. 게다가 우리는 조세회피처에 법인을 세웠으니 더더욱 심한 욕을 먹게 될 것이다.
유명 연예인이나 관심종자들이야 그런 상황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아니다. 둘 다 지금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난 어머니를 떠올렸다.
로또 1등 당첨 사실만 알려져도 사방에서 전화가 걸려오고 모르는 사람이 집주변을 어슬렁거린다고 하는데, 어머니가 과연 예전 집에서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최대한 숨길 수 있을 때까지는 숨기는 편이 좋다.
내 얘기를 들은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집 밖으로 편하게 나다니기도 힘들겠네. 아니면, 경호원들 데리고 다니거나.”
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한국 스타트업 투자는 포기할까?”
“아니.”
투자 못 받는 스타트업은 무슨 죄야? 투자 못하는 우리는 무슨 죄고?
“OTK컴퍼니가 직접 하지만 않으면 되지.”
다른 방법을 생각해뒀다.
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는 전화를 받았다.
“잘 지내고 계셨어요?”
[연락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강남 쪽에 사무실 하나 알아봐주세요. 평수는 100평에서 200평 정도로.”
이유를 물으면 다음에 말해준다고 하려고 했는데,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예. 적당한 데 찾으시면 알아서 가계약까지 하세요. 계약금은 이쪽에서 바로 입금할게요.”
[알았어.]* * *
골든게이트와의 투자 중개 계약이 이뤄졌다.
책임자는 당연히 현주 누나로 정해졌다. 누나의 팀원들이 우리 일을 도와줄 예정이다.
커미션은 총 투자금액의 1.8퍼센트, 최소 커미션은 300만 달러로 결정되었다.
1억 달러를 투자하면 180만 달러를, 5억 달러를 투자하면 900만 달러를 커미션으로 내야 한다. 그리고 설사 한 푼도 투자하지 않더라도 300만 달러는 무조건 내는 게 조건이다.
얘기를 들은 택규는 깜짝 놀랐다.
“딸랑 연결만 시켜주는 건데 뭐가 그렇게 비싸?”
“그나마도 지인 할인이래.”
현주 누나가 아니었다면, 그 두 배는 내야했을 것이다.
충분히 낼 용의가 있다고 했지만, 막상 낼 생각을 하니 속이 쓰리다. 수백만 달러가 애 이름도 아니고.
이렇게 된 이상 수수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열심히 벌어야겠구나.
우리는 차를 타고 압구정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고급 중식당이었다.
“뭐야? 왜 또 중국집이야?”
제발 짜장면 좀 그만 먹자.
택규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니라 누나가 예약한 거야.”
“······.”
그럼 어쩔 수 없지.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기 전에 현주 누나가 먼저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쪽의 준비가 끝나는 대로 나머지 사람들이 올 예정이다.
우리는 예약된 룸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현주 누나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먼저 오셨네요.”
“내리자마자 택시 타고 왔는데, 길이 별로 안 막혔어.”
비행 때문인지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지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식사부터 하자.”
현주 누나는 종업원을 불러 요리를 주문했다.
“여기 자주 오셨어요?”
“본점이 하버시티에 있어서 그쪽을 자주 가지. 여기는 두 번째야.”
음식이 차례대로 테이블에 있는 유리 원판에 올려졌다. 판을 돌려서 원하는 음식을 자기 쪽으로 가져와 덜어먹는 식이다.
이어서 주방장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베이징덕을 들고 나타나 보는 앞에서 직접 썰어주었다.
그래. 이런 게 진짜 제대로 된 중국요리지.
그러고 보니 밖에서 밥 먹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집 안에 틀어박힌 채 배달음식만 먹었으니.
난 식사를 하며 앞으로의 계획과 투자전략에 대해 현주 누나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언제 오는데?”
“슬슬 올 거예요.”
일부러 한 시간 정도 늦게 불렀다.
잠시 후, 룸 안으로 정장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들어왔다. 상엽 선배였다.
“어서 와요, 선배.”
난 현주 누나를 보며 말했다.
“이쪽이 방금 얘기한 박상엽이에요.”
상엽 선배는 나에게 물었다.
“이분은 누구셔?”
“오현주예요. 택규의 친누나.”
“아! 전에 얘기한 그 골든게이트에 다니신다는?”
난 부연설명을 붙였다.
“한국대 경제학과 출신이세요. 저보다 10학번 선배님이세요.”
내 말에 상엽 선배는 반색했다. 이어 고개를 숙이며 큰소리로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님. 수학과 박상엽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덩치 크고 머리 짧은 사람이 이러니, 마치 조폭이 보스에게 인사하는 것 같다. 현주 누나는 당황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오현주예요.”
상엽 선배는 공손하게 손을 맞잡았다.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하늘같은 선배님이신데.”
현주 누나는 웃음을 지었다.
“차차 편하게 할게요.”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야?”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천천히 얘기할게요.”
“알았어.”
상엽 선배는 사양하지 않고 넉살 좋게 밥을 먹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마무리 되자, 난 자리에서 일어나 본론을 꺼냈다.
“한국에 OTK컴퍼니 자회사로 투자회사를 설립할 겁니다. OTK컴퍼니가 100퍼센트 출자할 거고, 자본금은 700억입니다.”
이미 알고 있던 택규와 현주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 얘기를 들은 상엽 선배는 입을 쩍 벌렸다.
최근 돈이 많아져 천억 단위가 우습게 들리지만, 700억이면 중소형 증권사 하나 세울 수 있을 정도로 큰 자본이다.(물론 정말로 그렇게 하려면 관계기관 승인을 거쳐야 하지만)
난 상엽 선배를 보며 말했다.
“그 회사를 선배에게 맡길 생각이에요,”
갑작스런 말에 상엽 선배는 깜짝 놀랐다.
“나, 나한테?”
“연봉은 일단 1억으로 하죠.”
금융권 초봉 치고는 큰 금액이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경영성과에 따라 자회사 지분을 드릴게요. 1년에 2퍼센트씩, 5년 동안 최대 10퍼센트까지.”
“헉!”
일종의 스톡옵션 개념인데, 이 정도면 파격적인 제안이다.
회사 자산이 늘지 않고 현상유지만 되더라도 1년에 14억씩, 5년 후에는 총 70억 원을 받게 된다. 내 예상대로라면 그때쯤엔 자산이 적어도 10배 이상은 늘어나 있을 것이다.
“너무 좋아할 건 없어요. 성과가 별로면 바로 해고할 테니까. 1년 못 채우더라도 약속한 연봉은 그대로 드릴게요.”
상엽 선배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대체 뭘 믿고 나한테 700억이나 되는 자회사를 맡긴다는 거야?”
이 정도 조건이면, 얼마든지 경험 많고 뛰어난 전문금융인을 영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학교 선배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결단력과 책임감을 믿는다고 해두죠.”
상엽 선배는 눈앞에 다가온 투자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과거 MK테크에 투자해 500만원을 5000만원으로 만들었을 때도, 얼마 전 L6에 대한 정보를 듣자마자 수중의 돈을 털어 서성SB 풋옵션을 매입한 것도, 그리고 바로 나를 찾아온 것도.
그리고 원래 사람은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다.
상엽 선배는 CL화학 콜옵션으로 전재산을 다 날리고 빚까지 졌을 때도 동아리 회비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몇 년 동안 밑바닥에서 일하며 빚을 다 갚았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찾을 수 있어도, 믿을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나에겐 예지에 맞춰 손발처럼 움직여줄 조직이 필요하다. 그런 조직을 맡아 키우기에는 상엽 선배만큼 적합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해볼래요? 자신 없으면 지금 얘기하세요.”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다시 찾아오기 힘든 좋은 기회라는 것을.
상엽 선배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해볼게.”
“잘 생각했어요. 이제 진짜 식구가 되었네요.”
짝짝짝!
택규가 먼저 손바닥을 부딪치자, 나와 현주 누나도 따라서 박수쳤다.
상엽 선배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OTK컴퍼니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택규가 물었다.
“그런데 자회사 이름은 뭐야?”
“OTK의 끝자를 따서 K컴퍼니라고 하려고.”
현주 누나가 한마디했다.
“너무 대충 지은 거 아니야?”
“······.”
회사 이름까지 깊게 고민하기에는 너무 귀찮았다.
난 뒤늦게 합류한 상엽 선배를 위해 다시 계획을 말해주었다.
“OTK컴퍼니는 이제부터 국내외에 투자를 할 겁니다. 자금이 필요한 스타트업을 만나 돈을 투자하고, 지분을 사들이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 * *
자회사 설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복잡한 행정절차는 현주 누나가 외국계 법무법인 쪽에 위탁해 처리했다. 한국에 K컴퍼니 법인이 설립되었고, OTK컴퍼니는 700억을 출자했다.
테헤란로 이면도로에 있는 빌딩 5층에 임대계약도 맺었다. 택규 집에서 차로는 5분, 걸어도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외국계 스타트업 투자는 OTK컴퍼니가 직접 맡고, 한국계 스타트업 투자는 K컴퍼니가 맡을 예정이다.
난 상엽 선배에게 USB를 건네주었다.
“K컴퍼니가 투자해야할 스타트업 목록이에요. 미리 연락해놨으니, 곧 미팅이 줄줄이 잡힐 거예요. 골든게이트에서 필요한 인력이 올 테니, 지분 매입 범위나 법적 문제는 그쪽이랑 상의해서 결정하세요.”
기업 투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하나는 돈을 빌려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분을 사들이는 것이다. 전자가 채권을 매입해 채권자가 된다면, 후자는 주식을 매입해 주주가 된다.
돈이 필요한 스타트업들은 지분을 줄이더라도 투자금을 유치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회사가 성장을 못 하거나 망하면, 지분 가치는 어차피 휴지조각이 된다.
반면 대출은 우선적으로 원금과 이자를 회수할 수 있다. 물론 회사가 망하면 못 돌려받는 것은 마찬가지지만.(그래서 경영자에게 연대보증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설마 경영에도 참여할 생각이야?”
“아니요.”
지분을 매입하면 지분율만큼 의결권을 가지게 된다. 때문에 잘못 투자를 받았다가 투자자에게 기업을 홀랑 빼앗기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스타트업 경영자들이 투자를 받을 때 가장 걱정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투자는 하되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거예요.”
애초에 전혀 모르는 분야를 경영할 만한 능력도 안 되고.
경영자들이 알아서 경영하게 놔두고, 우리는 성장의 과실만 따먹으면 그만이다.
“그럼 수고하세요.”
짧은 만남을 끝내고 나와 택규는 차에 올라탔다.
투자미팅을 위해 영종도에 있는 5성급 호텔에 방을 잡고 미팅룸을 예약해놓은 상태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