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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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홍 팀장이 만들어 올린 자료에는 그동안 드러난 군납비리와 군수비리 사례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PPT 잘 만들기로 유명했었는데, 아직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
그런데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
총알에 뚫리는 방탄복, 밑창이 떨어지고 물이 새는 전투화, 원가를 부풀린 전투복, 중국산을 국산으로 속인 전투모, 시험평가서를 조작한 소총,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전차부품, 중고를 새것으로 속인 자주포부품, 설계결함이 있는 장갑차, 작동이 안 되는 음파탐지기 등
등.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예산낭비도 가지각색이었다.
미사일 연구개발비를 횡령하고, 전투기 정비대금을 빼돌리고, 급식자재 납품하는 업체들에게 뇌물을 받아 챙겼다.
예산낭비 사례에는 국방FPS 개발을 위한 50억 원도 포함되겠지.
드러난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드러나지 않은 건 과연 얼마나 될까?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군대가 월급을 적게 주는지 알겠네. 이렇게 돈 쓸 데가 많은데, 병사들 월급을 어떻게 올려주나?”
불량무기 사는 데 쓸 돈은 있어도 병사들 월급 올려줄 돈은 없다. 장성들 라운딩을 위한 골프장 지을 돈은 있어도 다친 병사 지원해줄 돈은 없다.
쓸 돈 다 쓰고 나니, 돈이 있을 리가 있나?
예산은 의지의 문제다. 꼭 필요한 돈이면, 마른수건을 쥐어 짜내서라도 마련했겠지만, 그럴 필요성조차 못 느꼈겠지.
“이래놓고서는 병사들에게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만 강조하는 거지.”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말로만 애국을 외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잖아.”
한정된 자원을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것만으로도 국가의 성장률은 높아지게 된다. 반대로 부패란 마치 쌀벌레 같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곳간을 좀먹는다.
한때 잘나가던 그리스가 몰락한 데는 정부의 부패도 큰 이유였다.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부정부패만 없애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패를 없애겠다고 모든 정부부처를 일일이 손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 만한 인력도 없고, 공무원사회 전체가 반발할 테니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일벌백계.
잘못한 조직 하나를 영혼까지 탈곡시키면, 그 모습을 본 나머지는 알아서 잘못을 고칠 것이다.
“여기에 국방부가 제격이지.”
“어째서?”
“다른 부처와 연관성도 적고, 여론의 관심을 끌기도 좋잖아.”
만약 보건복지부나 고용노동부 비리를 캔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얘기가 다르다. 왜냐하면 웬만한 한국남자들이 한 번씩 몸담았던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보는 청렴을, 보수는 안보를 중요시하는 만큼 정당성도 확보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할 거야?”
“내부고발을 유도하는 게 가장 빠르지 않겠어?”
폐쇄적인 조직은 외부에서 들여다보는 데 한계가 있다. 가장 좋은 건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고발을 하는 것이다.
내부고발자는 조직 내부에서 일어나는 불법과 비리를 알려, 사회의 공익을 증진시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따라서 내부고발자를 보호해야하는 게 원칙이나, 실제로는 조리돌림 당하다가 쫓겨나는 게 현실이다.
특히 군대는 더욱 심하다. 괜히 내부고발 했다가 각종 고소와 소송에 시달리거나,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정의로운 일에는 충분한 대가를 쥐어줘야지.”
* * *
“OTK컴퍼니는 군납과 군수비리 관련해 제보를 받겠습니다. 사안의 중요성에 따라 최소 1억 원에서 20억 원까지 제보비를 지급하고, 재취업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또한 고소나 소송을 당할 경우 법률적인 지원을 하겠습니다.”
정기홍 홍보팀장의 갑작스런 발표에 국방부는 발칵 뒤집혔다.
그동안 강진후와 엮여서 망한 정치인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이전 정권 때 잘못한 일도 있고 해서 최대한 좋게 지내보려고 했는데, 강진후가 정면으로 칼날을 들이댄 것이다.
국방부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배연봉 장관은 황당해 하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예전에 사이버사령부가 달았던 댓글을 본 게 아닐까요?”
그 역시 그 댓글들은 본적이 있다.
차마 말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각종 패드립의 향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걸 그동안 사이버작전이랍시고 세금 받아가며 한 것이다.
“그때 담당자들 구속되거나 옷 벗었잖아.”
물론 처벌을 받은 건 극히 일부고, 대부분은 보직만 바꿔서 계속 일하고 있다.
“혹시 예비군 갈 때가 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니면, 게임 제작비를 너무 적게 제시해 화가 났다든지.”
“지금이라도 달라는 대로 주고 제작을 맡기는 게 어떨까요?”
어쨌거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국방부는 혹시라도 내부고발이 생기지 않도록 전군에 지침을 내려 보냈다. 즉시, 모든 부대에서 훈련이 중단되고, 정훈교육이 실시됐다.
대대장과 중대장들은 병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내부고발은 군에 대한 배신행위고, 부대기강을 해치는 짓이며, 혹시라도 불만사항이 있으면 부대에서 먼저 처리하는 게 원칙이라고 단단히 교육시켰다.
정훈장교가 한창 교육 중인 와중에 일부 장교와 부사관들은 딴 생각을 떠올렸다.
‘건수 하나만 제대로 제보하면, 로또 맞는 거나 다름없잖아.’
‘제보비에 재취업까지 보장해준다는데.’
‘까짓 거 욕 한번 먹고 돈 받는 게 나을지도······.’
‘먼저 입 여는 놈만 이익 아니야?’
배연봉 국방부장관은 언론 앞에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식으로 국방부를 비리집단으로 매도하면, 어느 군인이 사명감을 가지고 복무하겠습니까? 북한의 도발이 커지는 가운데 군의 사기를 떨어트리면, 이는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불러일으키게 될 겁니다.”
자유국민당 역시 이에 동조했다. 연나경 대표는 국회에서 발언했다.
“안보는 생명입니다. 군이 있기에 우리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습니다. 군의 비리를 제보받겠다는 강진후 대표의 행위는 우리 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북한군을 이롭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입장을 밝히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국민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안보가 그렇게 중요한 걸 알면 니들부터 군대 가라.
-ㅋㅋㅋ 대체 군대도 안 간 놈들이 뭔 국방을 운운하나?
-전형적인 치킨호크~
-예전에 행방불명으로 군대 빠진 국회의원이 보온병 들고 이게 포탄이라고 소리치던 거 생각나네.
-지들 아들은 다들 면제시키거나 편한 보직으로 빼놓고, 국민들만 희생하라고 하는 클래스.
-국회의원, 장관, 똥별들 자식들부터 다 최전방으로 보내라!
청와대와 새정치당은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동안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비리와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나섰는데, 또다시 국방비리 문제가 터지면, 정부와 여당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위사업청은 물론 군인공제회, 재향군인회 역시 난리가 났다. 현역군인과 퇴역군인들로 이뤄진 이 조직들은 그동안 방사청과 결탁해 각종 이권을 챙겨왔다.
수차례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됐으나, 별다른 감사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강진후가 문제를 걸고넘어진 것이다.
이민석 방사청장은 긴급회의 자리에서 물었다.
“방사청이 비리로 걸릴 만한 대표적인 게 뭐가 있겠나?”
“하도 많아서 뭐부터 말씀드려야할지······.”
“······.”
* * *
황경원 검찰총장은 비밀리에 검사장들을 소집했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막강한 조직이고, 정치인들과 정부 부처들은 검찰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사법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국방부는 예외였다.
군대 관련해서 터지는 각종 사건사고와 비리에 대해서는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모든 국민들이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분단국가라는 특성상 한국에서 국방부가 가진 힘은 막강했고, 그동안의 숱한 비리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강진후가 나서서 정면으로 조준한 것이다.
검찰 내에서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두고 여러 의견이 오고 갔다.
“그렇다고 검찰이 국방부 산하에 있는 방위사업청을 수사할 수는 없지 않겠나?”
안성남 서울지검장이 말했다.
“그럼 이런 건 어떻습니까?”
“어떤 거?”
“군수산업을 하는 민간기업을 조사해 보는 겁니다.”
다른 정부기관들은 조달청을 통해 물품을 구매하는 반면, 국방부는 방위사업청을 통해 따로 구매한다. 라면이나 건빵 등은 제품의 비교도 쉽고 여러 업체들의 입찰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나마 비리의 소지가 적다.
하지만 전투복, 전투화, 배낭 등은 특수한 규격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생산업체가 몇 개 되지 않는다.
재밌는 사실은 비리가 적발돼도 아무런 제재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비리가 적발된 업체와는 계약을 해지하고 향후 입찰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방사청은 예외규정까지 만들어가며, 계속 계약을 맺었다. 규격에 맞춰 생산할 수 있는 업체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러니 비리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 작정하고 수사하면, 걸리는 곳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나서면 국방부에서 가만히 안 있을 텐데.”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쩌겠습니까? 설마 방산비리를 옹호하지는 못할 것 아닙니까?”
안성남 지검장은 강진후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부대표인 오택규를 만난 적은 있다. 덕분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코인다단계 일당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고, 언론의 대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검찰의 위신이 크게 올라갔다.
황경원 검찰총장이 고민하는 듯하자 안성남 지검장은 강하게 설득했다.
“상대는 강진후입니다. 강진후가 시작한 이상 조금 있으면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의 관심이 여기에 쏠리게 될 겁니다. 지금 치고 나가야 합니다. 수사는 기세입니다, 기세.”
그 말에 황경원 검찰총장은 결심을 세웠다.
“좋아. 수사팀 꾸려서 비리 의심되는 업체들 한번 싹 다 조사해봐.”
* * *
강진후는 존재 자체가 이슈메이커였다. 역시나 전 세계 언론이 이번 일을 대서특필했다.
선진국들 중 징병제를 하는 나라는 드물다 보니, 이번 일로 인해 새삼 한국의 징병제가 이슈화 됐다.
-한국남자들은 전부 군대에 간단 말이야? 놀라운데.
-아무리 징병이라도 저 월급으로 사람을 부리는 게 말이 되나?
-강진후가 저 돈 받고 군대에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한국이면 충분히 선진국인데, 대체 왜 군인에게는 제대로 대접을 해주지 않는 거지?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거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줘야지.
* * *
OTK컴퍼니 본사 앞에 태극기가 휘날렸다. 자주 있었던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많은 참가자들 군복을 입고 있었다.
한 예비역 장성은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종북빨갱이 강진후를 규탄한다!”
“규탄한다! 규탄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택규는 나에게 말했다.
“너보고 빨갱이라는데.”
“흐음.” 이번 기회에 국방부가 나서서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할 리 없다. 어차피 다들 한통속이니까.
“기업 분식회계나 비리 수사할 때도 항상 나오는 얘기들이지.”
경제가 좋을 때는 잘나가는 기업들 발목 잡는다고 뭐라고 하고, 경제가 안 좋으면 경제부터 살려야지 왜 기업들을 못 살게 구냐며 뭐라고 한다.
택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비리수사는 언제 해?”
“하지 말라는 거지.”
이것도 마찬가지다.
국방력 저하, 군 사기저하, 안보위협 등을 거론하며, 반발할 거라고 이미 예상했다.
“이런 건 다 해결 방법이 있지.”
“어떻게 하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빨갱이에는 빨갱이 아니겠어?”
* * *
다음날.
난 일부러 대로에서 내려서 걸어서 회사로 들어갔다. 역시나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바로 달려와 마이크를 내밀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방부와 정치권의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민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정의롭고 떳떳하다면, 제가 제보를 받는 것에 어떠한 문제도 없을 겁니다. 반면 군납이나 군수 관련해 비리를 저질렀다면 철저하게 조사해 처벌해야 합니다. 박시형 전 대통령님께서는 국방비리는 이적행위라고 말씀하셨고, 강도 높은 군 개혁을 주문하셨습니다.”
정작 그렇게 말한 본인이 먼저 각종 비리로 구속되셔서 재판을 받고 계시지만.
기자들은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군대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난 카메라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국민의 피 같은 혈세를 자신의 주머니로 챙기며, 아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적을 이롭게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간첩 또는 빨갱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수사에 반발하거나, 군납비리와 군수비리를 옹호하고,
병사들의 처우 개선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사상검증과 함께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세력과 연결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북한의 지령을 받지 않았는지 의심해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