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63)
OTK컴퍼니가 외환시장에서 돈을 쏟아붓는 사이, 상엽 선배 역시 K컴퍼니가 보유하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 지분을 담보로 맡기고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현금자산과 합쳐 1조1천억 원이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둔 시점에서 상엽 선배는 그 돈으로 전세계 증시의 풋옵션을 사들였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장기적으로는 어쩔지 모르지만, 단기적으로는 분명 금융시장 전체에 충격을 줄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도 아니고,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한 만큼 충격은 더욱 클 것이다.
아마 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하겠지.
상엽 선배는 나에게 말했다.
“예전에 대부업체에서 돈 빌려서 CL전자 콜옵션에 베팅하며 내 인생에서 가장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지금 하는 짓에 비하면 그때 한 짓은 아무 것도 아니었네. 파생상품에 1조가 넘는 돈을 베팅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아무리 예지를 봤다고 해도 나 역시 공포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빠져나갈 수 없는 좁은 공간 안에 있는데, 물이 허리까지 들어찬 느낌이었다.
“잘 되길 바래보죠.”
성공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하면 끝장이다.
* * *
역사적인 투표를 앞두고 영국의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었다.
TV만 틀면 탈퇴파와 잔류파 정치인들이 나와서 각자의 주장을 펼쳤고, 국민들도 양쪽으로 분열되었다.
한쪽은 탈퇴하면 경제가 불안해질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쪽은 탈퇴를 해야 경제가 살아날 거라며 큰소리쳤다.
선동과 비방이 확산되고, 거리 곳곳에서 유럽연합 깃발과 유니온잭이 휘날렸다.
영국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자 독일, 프랑스와 함께 EU의 한 축이다. 그리고 영연방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때문에 브렉시트는 영국과 EU만의 일이 아닌, 전세계적인 이벤트였다. 금융회사들은 투표결과와 파장을 주목하며 손익계산을 했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금융시장은 바빠졌다.
외환시장, 주식시장, 파생상품시장 할 것 없이 투자자들과 투기꾼들이 넘쳐났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영국의 잔류를 예측하며, 주가 상승과 환율하락에 돈을 넣었다.
그러나 세계최대 IB인 골든게이트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오히려 가지고 있던 현물주식 일부와 콜옵션을 처분했다.
이는 영국지사장 테드 브룩스의 결정이었다. 그는 얼마 전, 아시아지사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제 우려일지도 모르지만, 브렉시트에 대해 예상외의 결론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투표결과를 지켜본 후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습니다.
테드는 체이스 사우스웰을 깊이 존경했다. 그리고 이런 판단을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겼다.
세계인의 시선에 영국에 쏠린 가운데, 드디어 운명의 날이 밝았다.
영국 시간으로 오전 7시, 한국 시간으로 오후 3시.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시작되었다.
* * *
이번 국민투표는 영국 전체에서 실시되었다.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지브롤터에 거주하는 영국인과 영연방 국적자들은 투표소로 몰려가 한 표를 행사했다.
투표는 BBC와 CNN, 그리고 국내 뉴스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개되었다. 나는 택규와 함께 밤새 투표현황을 지켜보았다.
투표가 끝난 건 새벽 6시(영국 시간 오후 10시)였다.
투표가 마감되자 며칠 동안 발표가 금지되었던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택규는 당황했다.
“잔류 쪽이 훨씬 높다는데.”
“여론조사는 믿을 게 못 돼. 투표함을 까봐야 아는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 역시 속으로 당황했다.
잔류 쪽이 높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적게는 5퍼센트, 많게는 10퍼센트가 차이 났다. 이 정도면 오차율을 감안하더라도 잔류로 굳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과연 뒤집을 수 있을까?
개표는 바로 시작되었다. 표 차이가 크게 나면 금방 결과나 나오겠지만, 박빙으로 흘러가면 오후쯤이나 돼야 결론이 나올 것이다.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나는 짐을 챙겼다.
“어디가?”
“학교 가야지. 오전수업 있어.”
택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중요한 날 학교에 간다고?”
“내가 지켜본다고 바뀔 것도 아니잖아.”
투표는 끝났고 결과는 정해졌다. 개표는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
사실 학교는 하루쯤 빠져도 상관없다. 그러나 집에서 가만히 앉아있기에는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차라리 학교에 가는 게 낫지.
“넌 계속 보게?”
“당연하지. 전재산이 걸린 일인데.”
“······.”
이 말을 들으니, 남의 나라 국민투표에 전재산을 걸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따 연락하자.”
집을 나가려는데, 택규가 날 붙잡았다.
“가기 전에 하나만 약속해.”
“뭘?”
택규는 진지한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모든 걸 다 잃고 지하세계에서 노역하게 되면, 월급날마다 맥주 한 캔씩 사준다고.”
“······뭔 소리야?”
“얼른 약속해!”
난 귀찮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사줄게.”
택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한 캔 가지고는 안 돼. 두 캔 사줘.”
“······두 캔 사줄게.”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난 차에 올라타 학교로 향했다.
* * *
밤 사이 브렉시트 투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차들로 인해 도로는 막혔고,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지각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긴 모두가 남의 나라 일에 관심을 갖는 건 아니다.
만약 내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면, 영국의 EU 탈퇴 여부보다 당장 닥쳐올 기말고사와 제출해야할 리포트를 더 신경 썼을 것이다.
차가 학교 정문을 통과하는데, 유리의 모습이 보였다.
난 창문을 내리며 말했다.
“유리야. 타.”
“앗! 진후 선배.”
유리는 재빨리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등을 기대더니 길게 하품을 했다.
“졸려?”
내 물음에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잠을 거의 못 잤거든요.”
“왜?”
“브렉시트 투표 있었잖아요. 조금 보다가 자려고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아침이던데요.”
“그랬구나.”
한잠도 못 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주차를 하고 같이 경영대 건물로 향하는 도중 선아와 마주쳤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함께였다.
선아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둘이 같이 온 모양이네.”
유리는 웃으며 말했다.
“예. 진후 선배 차 얻어 타고 왔어요.”
내가 포르쉐 파나메라를 샀다는 소문은 진작 퍼졌다. 선아는 그것에 대해 궁금한 듯했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고준형은 나를 보더니 아는 척했다.
“오랜만에 보네.”
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고준형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너 K컴퍼니 대표와 친하다며? 얘기 좀 전해줄 수 있어?”
“무슨 얘기요?”
“아버지께서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셔서. 언제 한 번 회사로 찾아오라고 전해줘.”
그의 아버지는 GH그룹 계열사인 GH건설사의 사장.
대기업 계열사 사장이 보고 싶어 할 정도라니. 우리 상엽 선배 잘 나가네.
“다음에 만나면 한 번 얘기해볼게요.”
오늘이 지나고 나면 상엽 선배의 위치가 달라질 것이다.
재벌그룹 계열사 사장이 만나달라고 부탁해도 못 만날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만나자고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거나.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겠지.
얘기를 하는데, 경영학과 과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오늘 브렉시트 투표결과 나오는 거 아시죠? 지금 경제학과 애들이랑 내기 중인데, 선배님들도 하실래요? 1만 원에서 5만 원까지 걸 수 있어요. 현재 7대3 정도로 잔류 쪽이 많아요.”
“······.”
아직 베팅은 끝나지 않았구나.
난 5만 원짜리를 꺼내 과대에게 건네주었다.
“난 탈퇴 쪽에 걸게.”
“예. 5만 원 받았습니다.”
과대는 돈을 집어넣더니 장부에 내 이름과 금액을 체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준형은 지갑을 꺼냈다.
“재밌겠네. 그럼 난 잔류 쪽에 걸게.”
“알겠습니다, 선배님.”
과대는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 너는?”
“난 진후 선배 따라서 탈퇴에 걸게.”
“잔류가 우세하다는데 괜찮겠어?”
내 물음에 유리는 나를 보며 눈을 찡긋했다.
“선배가 이런 거 잘 맞추잖아요.”
난 속마음을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정말 그래야 할 텐데······.”
* * *
K컴퍼니의 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회의실에 모였다.
대표인 박상엽은 전날 이곳에서 밤을 샜다. 그는 세수조차 하지 않은 채 계속 자리를 지켰다.
회의실 한쪽에 설치된 두 대의 TV에서는 각각 CNN과 BBC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개표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개되었다.
잔류 쪽이 크게 우세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승부는 박빙이었다. 그러나 잔류가 우세하다는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었다.
개표초기 5퍼센트가 넘던 차이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개표율이 50퍼센트가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52대48로 잔류가 우세했다.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며, 세계 경제에 안도랠리가 펼쳐졌다. 아시아 증시는 동반상승하고, 환율은 안정되었다.
그리고······.
K컴퍼니가 아시아 증시에서 사들인 풋옵션의 가치는 바닥을 쳤다. 순식간에 수천억 원이 날아갔다.
이후 개장할 유럽과 아메리카의 증시의 상황 역시 뻔했다.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침묵을 지켰다.
박상엽은 멍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TV를 보았다. 정기홍은 그에게 말했다.
“사, 상엽 선배. 이거 어떡해요? 우리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에요?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선배!”
얼마나 당황했는지 회사에서는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도 까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박상엽은 신음을 하듯 말했다.
“자,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 * *
미래는 정해져있는 걸까, 바꿀 수 있는 걸까?
내가 가장 우려한 부분은 바로 이거였다.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여론이 안 좋은 쪽으로 흘러 탈퇴를 원하던 유권자가 잔류로 돌아서는 것.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단기간에 물량을 쏟아내는 대신에 한 달에 걸쳐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물론 그래도 우리가 뭔 짓을 하는지는 다들 눈치 챈 모양이지만.
다행히 찬반진영의 거센 대립이 이어지며 금융시장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정부와 금융회사들의 개입 덕분에 환율은 여전히 안정적이었고, 누구도 외환시장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상황에서 강의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개표율은 30퍼센트가 넘었고, 4퍼센트 차이로 잔류가 앞서갔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서는 잔류가 우세했고, 웨일스에서는 탈퇴가 약간 우세했다.
관건은 잉글랜드다. 다른 지역 전체를 합친 것보다 잉글랜드의 유권자 수가 많다. 때문에 잉글랜드의 표 차이에 따라 잔류냐 탈퇴냐가 결정될 것이다
유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 아까부터 전화 오는 것 같은데요.”
“응?”
난 그제야 주머니 속에 넣어놓은 핸드폰이 진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업 중임에도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김명준 교수님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 * *
복도로 나온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현주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표상황 보고 있어?]“예.”
[개표율이 절반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52대 48로 잔류가 우세해.]모두가 잔류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세계 경제는 안도했다. 증시는 상승하고, 파운드 가치는 오르고, 엔화는 하락했다.
손실이 얼마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OTK컴퍼니가 외환시장에서 쏟아 부은 돈과 K컴퍼니가 풋옵션을 사들인 돈 중에서 얼마나 건질 수 있을까?
만져보지도 못한 돈이, 계좌상의 숫자로만 존재하던 돈이 모래처럼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물이 코 밑까지 들어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틀린 걸까?
뭔가를 잘못 봤나? 뭔가를 잘못했나?
대체 뭘 놓친 거지?
난 현주 누나에게 물었다.
“현재 남은 금액이 얼마나 되죠?”
[32억 달러.]환율 변동폭이 예상을 넘어 마진콜이 들어올 것에 대비해, 그리고 예지가 빗나가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30퍼센트의 자금을 남겨두었다.
결정을 내려야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남은 실탄을 다 퍼부을 건지, 아니면 다음 전투를 위해 아껴둘 건지.
현주 누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진후야. 이쯤 했으면 됐어. 이제 그만하자. 지금 물러서면, 카로스와 페이스잇을 비롯해 몇 개 기업은 건질 수 있을 거야.]만약 실탄을 다 퍼부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OTK컴퍼니와 K컴퍼니는 모든 것을 날리고 파산하게 될 것이다.
“저는······.”
입을 여는 그 순간.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
세 달 전 봤던 것과 똑같았다. 투표가 끝났음에도 미래는 바뀌지 않았다.
영국은 EU를 탈퇴할 것이다!
“예. 듣고 있어요.”
나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남은 금액 전부 50배 레버리지로 파운드를 매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