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90)
재벌그룹 회장이 검찰에 수사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 10대 그룹 회장 중 범죄 전력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재벌그룹 회장님들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시면 한국경제가 힘들어질 수도 있는 관계로 보통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빼준다.
검찰은 딱 그 정도만 나오게 기소를 하고, 법원은 딱 그 정도로 판결을 내려준다.
횡령배임 금액이 너무 크면, 법정 하한선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형을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보통 사면으로 빼준다. SSK그룹 채태안 회장도 몇 달 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어쨌거나 OTK컴퍼니는 직접 경영하지는 않아도 여러 자회사를 두고 있다. 당장 손을 데고 있는 분야만 해도, 금융투자, 자동차, 엔터, 암호화폐, 인터넷유통, 게임, 포르노(?) 등등 다양하다.
나름 재벌그룹처럼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OTK그룹(?) 회장인 만큼 언젠가는 검찰조사를 받을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검찰에 들어온 뒤에는 밥 먹고 조사 받는 걸 빼면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여기서 핸드폰이나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정신없이 바쁘다가, 갑자기 한가해지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다. 일을 안 하니, 불안한 걸 보면 나도 현주 누나처럼 워커홀릭이 된 건가?
난 그동안의 일들을 떠올렸다.
지금도 잘 믿기지 않는다.
단지 몇 가지 미래를 엿보는 것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이야. 군대를 전역할 때만 해도 무일푼이었던 나는 어느새 50조가 넘는 기업의 CEO가 되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은성차와도 이제 시작이고.
“그러고 보니······.”
슬슬 개표를 시작하겠구나.
브렉시트 때만큼 떨리지는 않았다.
그때는 정말이지 모든 것을 건 베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는 아니다. 설사 다이앤이 당선된다 하더라도 최악의 상황까지 오지는 않을 것이다. 돈 좀 날리고, 앞으로의 일이 좀 꼬이긴 하겠지만.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
보통은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따르는 결과를 도출하지만, 나는 반대였다. 먼저 결과를 알아낸 다음 거꾸로 그렇게 될 만한 원인을 분석했다.
난 로날드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가 막말을 하는 이미지긴 하지만, 의외로 맞는 말이 꽤 있다.
금융위기 이후 충격을 딛고 회복한 금융업종과 IT업종과는 달리 미국의 제조업은 지속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최근 경제성장률이 3퍼센트에 달하고 주가와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지만, 노동자들은 그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
엘리트 정치인으로서 주로 화이트칼라를 대변한 다이앤과는 달리, 로날드는 소외된 지역의 민심을 파고들었다.
무엇보다 미국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백인들의 불안감을 잘 활용했다. 그것을 위해 불법이민자라는 공공의 적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마약중독자고, 범죄자고, 테러범이었다.
그게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들은 백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나쁜 놈들이니까.
로날드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크고 아름다운 장벽을 쌓아 불법이민자를 막겠다고 공약했다.
그냥 막말 같아 보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숨어있었다.
대부분의 유색인종들은 민주당을 지지한다. 어차피 다이앤을 찍을 유권자들이기 때문에 적으로 돌려도 별 상관이 없다.
한 가지 더 재밌는 사실은 이들 중에서도 로날드를 지지하는 이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로날드는 어디까지나 앞으로 들어오는 ‘불법이민자’ 를 막겠다고 했지, 이미 합법적으로 정착한(그래서 투표권이 있는) 이민자를 내쫓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불법이민자들이 몰려들어오면 누구 일자리가 가장 위험하겠는가? 당연히 먼저 이민 와서 정착한 사람들일 것이다.
로날드는 분노와 무력감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듣고 싶고,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 해주었다.
그게 욕설이든 막말이든 별로 중요치 않았다.
다이앤은 평화, 정의, 복지 같은 추상적인 목표를 내세웠지만, 로날드는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이러한 차이가 과연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조금만 기다리면, 예지가 맞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겠지.
* * *
개표가 시작되었다.
다이앤은 선거인단 숫자가 많은 캘리포니아와 뉴욕을 확보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연이어 동부와 서부의 해안지역들이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뒤덮였다.
그러는 사이 로날드는 선거인단이 두 번째로 많은 텍사스를 접수했다.
다이앤이 해안지역을 파란색으로 물들이는 동안, 로날드는 내륙지역을 빨간색으로 물들였다.
예상했던 대로 디트로이트가 있는 미시건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하지만 일리노이에 파란불이 들어오자 민주당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다이앤 역시 한숨 놓았다. 이제 러스트 벨트의 한두 곳만 승리해도 매직넘버인 270명을 넘기게 될 것이다.
정오가 지날 때쯤에는 결과가 나오겠지.
CNN은 다이앤이 승리가 확정적이라고 보도했고, 민주당 선거캠프는 다 이긴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다이앤은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작은 목소리로 조엘에게 지시했다.
“당선수락 연설문 한 번 더 검토해주세요.”
조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전세계 금융사들은 일제히 숨을 죽인 채 개표방송을 지켜보았다.
다이앤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모두가 환호했다. 증시는 완만하게 상승했고, 외환시장 역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오현주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각국 증시와 외환시장을 모니터링 했다.
“개표상황은 어때?”
헨리는 CNN 개표방송과 골든게이트에서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자료를 훑어보았다.
“일리노이가 다이앤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엘리 역시 빠르게 말했다.
“오리건하고 워싱턴도요. 서부해안은 싹쓸이 했어요.”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 사실이지만, 소득수준과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민주당이 강세를 보였다.
“러스트 벨트는?”
“몇 개 주에서 민주당이 우세하지만, 오차범위 안이에요.”
워싱턴DC나 와이오밍 같이 표 차이가 크게 벌어진 지역은 개표한지 한 시간도 안 되서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오차범위 내에 접전을 벌이고 있는 지역은 개표가 거의 끝나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OTK컴퍼니는 250억 달러를 투자하고도 50억 달러가 넘는 현금이 남아있었다. K컴퍼니 역시 4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증권사와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은 어느 한쪽으로의 과도한 쏠림은 경계하는 분위기였지만, 간만에 찾아온 안도랠리를 즐기고 있었다.
반면 OTK컴퍼니 이미 반대 포지션에 베팅했다.
현재 거래는 K컴퍼니가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박상엽은 안도랠리가 펼쳐지는 틈을 타서 계속해서 매도물량을 쏟아냈다. 오현주는 미간을 찡그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진후와 연락이 안 되니 답답하네.”
오택규는 느긋하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어차피 대통령은 로날드니까.”
“왜 그렇게 생각해?”
“직접 만나봤으면, 누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걸. 보통 사람이 아니야.”
오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애초에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헨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위스콘신과 펜실베이니아에서 로날드가 우세로 돌아섰습니다!”
“뭐?”
오현주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개표방송을 진행하는 앵커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전까지만 해도 계속 다이앤의 승리가 확실시 된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는 놀라며 말했다.
“자, 잠깐만요! 플로리다도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했어요.”
오현주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완만하게 상승하던 세계 증시는 한순간에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오택규는 웃음을 터트렸다.
“거봐. 진후 말이 맞잖아.”
* * *
러스트 벨트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미시건주가 로날드에게 넘어갈 거라고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펜실베이니아나 오하이오 중 한 곳이 더 넘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러스트 벨트 중 한두 곳이 더 넘어가도 대세에는 지장 없었다.
그렇게 판단했다.
그런데······
일리노이 하나 건졌을 뿐 나머지는 전멸이었다.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인디애나에서 민주당은 패배했다.
이들 대부분은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던 지역이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이앤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개표방송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공을 들인 플로리다마저 로날드에게 넘어가자 희망의 불씨마저 꺼졌다.
로날드는 가뿐하게 매직넘버 270명을 넘어 3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반면 다이앤은 고작 232명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최소 300명 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다이앤이 승리할 거라는 여론조사가 완전히 반대로 나온 것이다.
그야말로 완전한 패배였다.
누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이변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선거캠프는 침묵에 휩싸였다.
실제로 총 득표수는 그녀가 300만 표 이상 앞섰다. 그러나 확보한 선거인단 숫자는 무려 74명이나 차이 났다.
대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한마디로 소외 지역과 백인 노동자들의 반란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OTK컴퍼니!’
조엘은 자신이 만났던 동양인 청년을 떠올렸다.
만약 OTK컴퍼니가 로날드와 손을 잡고 러스트 벨트에 250억 달러를 투자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 * *
로날드가 공화당 후보경선에 나설 때만 하더라도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경선에서 승리할 확률은 채 2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공화당의 유력 후보들을 전부 꺾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리고 기어이 본선에서 이변을 일으켰다.
정치 신인인 부동산 재벌 로날드 스탬퍼가 정치명문가 출신이자 상원의원과 국무위원을 두루 지낸 베테랑 정치인 다이앤 언더우드를 꺾은 것이다!
누가 이런 결과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심지어는 로날드 자신조차 믿지 못했던 결과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로날드는 기대가 현실로 바뀌자 두 팔을 벌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같이 방송을 지켜보던 공화당 정치인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하하하!”
로날드는 크게 웃으며 선거캠프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 * *
예상 밖의 결과에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박시형 대통령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현재 미국 여당인민주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암묵적으로 다이앤을 지지했다.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만큼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다이앤의 편을 든 것은 다른 나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모두가 로날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문제는 단지 다이앤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 OTK컴퍼니를 건드림으로써 로날드와 관계가 틀어져버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한국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들 미국 대통령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박시형은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이,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 * *
로날드의 당선에 OTK컴퍼니가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 투자결정을 내린 사람이 바로 강진후다.
혐의가 있어도 불구속으로 풀어줘야 할 판인데, 주요혐의가 전부 물거품이 된 상황에서 더 이상 붙잡고 있는 것은 무리였다.
따로 청와대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홍만호는 서울중앙지검에 전화했다.
“기소 포기하고, 강진후 내보내.”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제 와서 풀어준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말단 책임자들 몇 명 옷 벗긴다고 덮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검찰, 국정원, 청와대······ 과연 어느 선까지 책임을 져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