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청와대 남현수 대통령은 한밤중에 걸려 온 비서실장의 전화에 처음엔 짜증을 냈다.
그런데 보고 내용이 심상치 않다.
“일본? 뜬금없이 거기서 왜?”
페스트가 미국에서 유행을 시작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다음 차례는 한국일지도 몰라 미리 준비하는 중이었고.
시스템 가이드와 합성 결정석 마나 회로도,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할 이계의 태블릿을 가지고 사라진 전직 CIA들, 생화학 테러의 주체.
그들이 이를 갈고 있는 복수의 대상이 누굴까?
바로 미국과 한국이다.
그리고 놈들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마나 골드 광산이 한국에 있었다.
그래서 질병 관리 본부를 중심으로 전국 병원의 고열환자들에게 테스트를 시행하며 바짝 긴장 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일본에서 페스트 대유행? 게다가 의료 붕괴라니.
“일본의 모든 항공기와 배들에 대해 입국 금지 시행하세요.”
완전하게 잠에서 깬 남현수 대통령의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내키지는 않지만 인도적인 지원은 충분히 해 줄 용의가 있다.
이웃 국가의 국민이 고통받는데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남현수 대통령은 주일 대사관을 통해 현재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백신과 치료제 일부를 일본에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뭐? 받지 않겠다고?”
참나!
기껏 생각해 주었더니.
사실 청와대로서 위험 부담이 있는 결단. 일본을 돕겠다고 나서면 오르는 지지율보다 떨어지는 지지율이 더 크다.
더 이상 권유 않기로 했다.
이 정도면 할 도리를 다한 거지. 상대방에서 거절하고 나온 판국에 굳이 억지로 떠 안겨 줄 필요도 없고.
‘혹시 나중에 딴소리할지도 모르니까.’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거는 남현수 대통령.
“일본에서 지원 거부 의사를 밝힌 사실, 정리해서 지금 즉시 언론에 뿌려요. 대변인을 통해 청와대 입장도 분명하게 하고.”
이런 이유로 일본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는 없었다. 오히려 내각 지지율이 오르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우민들이 보기엔 TV에 자주 모습을 비치며 의미 없는 대책이라도 쏟아 내는 모습이 믿음직하게 보였을 터.
다만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페스트 대유행, 어두운 미래, 자신들도 전염병에 걸릴 수 있다는 불안 등등 그것을 해소시켜 줄 대상은 필요했다.
페스트 감염자들과 이미 치료된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에 대한 집단 괴롭힘이 열도를 달구었다.
“우리 현에서 나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민폐는 이제 그만 알아서 할복하시길.”
“죽어라! 세균맨!”
전염되는 것은 질병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광기(狂氣)는 전염이 더 빠르고 폭넓었다. 한번 시작되니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부랴부랴 내각 정부가 수습에 나섰지만 내부의 갈등은 폭발 직전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전환된 국면.
시작은 넷우익들부터였다.
└ 한국은 왜 페스트 감염자들이 없지?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볼 때도 됐어.
└ 그래, 유독 일본만 이렇다?
└ 난 계속 관동 대지진 때가 생각나.
└ 무슨 말이야?
└ 그때 조선인들이 우물물에 독을 풀었잖아. 일본을 혼란시키려고.
└ 그거 루머 아니었나?
└ 루머? 아무 일 없었다면 갑자기 그런 이야기가 나왔겠어? 공부 좀 해. 역사책에도 나와.
└ 맞아, 나도 본 기억이 나. 조선인들의 흉계가 틀림없어. 놈들이 일본 땅에 페스트균을 풀었을 거야.
엉뚱한 곳으로 불이 옮겨졌다.
사실 모든 것이 CIA의 계획대로였다.
정보 기관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심리전.
그리고 그 심리전에 최적화된 나라가 바로 일본이고, 그래서 CIA의 공작은 예상치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어렵지도 않았다.
자기들끼리 물고 뜯을 뼈다귀 하나 던져 주면 알아서 몰려온다.
한국이라는 먹음직한 뼈다귀를 말이다.
그에 발맞추어 일본 내 우익 단체들도 이 탐스러운 떡밥을 덥석 물었다.
“한국인이 독을 풀었다.”
“페스트 발병의 배후엔 한국이 있다.”
보수 언론들도 맞장구를 쳤다.
연일 넷상에서 흘러나오는 근거 불명 주장들을 마치 합리적인 의심인 것처럼 포장해 퍼다 날랐다.
이렇게 되니 극우 보수 정치인들도 가만히 있을 리 있나?
집단 괴롭힘의 대상은 자연스레 일본 내 재일 한국인에게 옮겨 갔다.
밥이 익었다.
미국은 발 빠른 대처로 인해 어이없이 실패했지만 역시 일본은 대성공.
당연히 기뻐해야 할 CIA 전 국장 빈스 베이커지만 지금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브라질 리우 근거지에 있는 페드로와 테드가 잡혔다고?”
“군 스페셜 헌터 포스 팀이 근거지를 급습했습니다. 현재 아프리카에 있는 연구원들도…….”
“빌어먹을!”
어떻게?
발각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미국이 작전에 나서게 되면 반드시 그전에 알 수 있도록 미리 손을 써 뒀다.
“내부에서 첩보가 없었나?”
“있었습니다. 급습 정보를 인지하자마자 페드로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이미 제압당한 후라서…….”
도망 다니고 있지만 CIA와 미국 정보 기관에 남아 있는 빈스의 영향력은 여전히 확고했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근거지를 알아냈을까? 또 아프리카 이동 작전은?
페드로와 테드가 잡혔다 해도 순순히 입을 열지 않았을 건데,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더군다나 세뇌까지 걸려 있는 상태니까.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로널드 행정부였다. 그런데 페스트 대응에서 근거지 습격까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가만!’
혹시 미국이 아니라면?
순간 빈스 베이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한 조각 불안감.
“한국…….”
“네?”
“하, 한국에 잠입시킨 노예들에게 연락을 취해 봐!”
원래는 기초 작업이 완료되면 그들과 접선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그들도 안심할 수 없다.
결국 불안은 현실화되었다.
“여, 연락이… 되지 않아?”
“그렇습니다.”
“…5백 명 모두?”
“…….”
심혈을 기울여 양성한 세뇌 헌터들. 거기에 대모 링글릿의 스킬도 익혔다. 작정하고 숨어 버리면 누구도 못 찾는다.
따라서 자수했을 리는 더더욱 없고. 지금 당장 눈앞에서 자결을 하라 해도 서슴없이 목에 칼을 들이댈 충성스런 노예들인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 어떡할까요?”
빈스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숨어 있던 브라질 헌터들까지 발각되었다면 자신들도 안전하지 않다.
누가 그랬을까?
미국? 턱도 없는 소리. 그들은 그럴 능력이 없다.
그러면 의심 가는 건 단 한 곳, 아니 사람이지.
“퍼킹! 정운호!”
전 CIA 한국 지부장 켄 그리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탈출 경로를 확보할까요? 리비아로 가면…….”
리비아… 한동안 숨어 살기 괜찮은 동네지.
자신을 따르는 전직 요원들을 모두 이끌고 일본으로 들어왔다. 지금까지의 수순으로 보아 자신들도 발각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겠나?”
“문제없습니다. 나리타 공항에 전용기를 확보해 두었습니다.”
아깝다.
거의 다 된 밥인데.
하지만 여전히 시스템 가이드 계획은 살아 있다.
전 세계에서 바꿔치기한 마나 골드 메달의 숫자만 50여 개, 하나에 500그램이 넘으니 단순 계산으로도 25킬로.
리비아에서 다시 시작하자.
어차피 세뇌 헌터들이야 마나 골드만 있으면 다시 찍어 낼 수 있다.
* * *
위이잉!
쩌저저적!
운호가 작동한 추출기가 마지막 남은 브라질 헌터의 가슴에서 시스템 가이드를 뽑아냈다.
“…어?”
“이제 정신이 드나?”
“그, 그게.”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거의 다 비슷한 반응. 세뇌에서 풀리자 제정신이 돌아왔다.
동시에 힘들게 심문할 필요도 없이 협조적으로 변해 버린 그들, 알고 있는 사실을 모조리 토해 냈다.
미처 예상도 못했던 사실도 함께 말이다.
“…뭐라고? 다시 말해 봐!”
“데, 덴노 헤이카 반자이! 이렇게 외치고 만세를…….”
“이런 개새끼들이! 미치겠네.”
운호는 기가 막혔다.
동양인과 외모가 거의 똑같은 세 명의 일본계 브라질 헌터들, 그들의 은신처엔 세 개의 핵 배낭이 숨겨져 있었다. 물론 회수는 했다.
핵 배낭이 이렇게 구하기 쉬운 거였나?
“그러니까 너튜브 생중계로 덴노 헤이카 반자이라고 외치며 핵 배낭을 터뜨리려고 했단 말이네.”
“마, 맞습니다.”
“테러의 목표는 서울, 세종, 울산이고.”
서울은 대영 그룹이 목표, 세종은 정부 청사. 울산은 산업 시설, 이곳저곳에서 핵이 터지는데 정신이 있겠나.
거기에 일본인처럼 생긴 브라질 놈이 너튜브를 통해 천황 만세를 부르짖으며 테러를 일으킨다?
“전쟁이 목표였구나!”
계획이 성공했다면 전쟁의 명분이 한일 양측 모두에게 주어지게 된다. 일본과의 전쟁은 필연적이었을 터.
운호도 안다. 지금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이없는 행태를, 페스트의 책임을 한국에 뒤집어씌우려는 치졸한 짓을, 그로 인해 지금도 일본 내부의 반한 감정은 극에 달해 있으니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쉬울까.
“그러고 나서 나머지 496명의 헌터들 모두 집결해서 원주 마나 골드 광산을 친다, 이거지?”
“…네.”
“방해할 사람들도 없을 것이고, 당당하게 광산에 들어가 채굴 작업을 해 골드를 뽑아 가면 되니까.”
“그, 그렇습니다.”
왜 그 많은 브라질 헌터들이 한국에 무리하게 들어왔는지도 알겠다. 5백 명이 합심해서 달려들면 못할 것도 없겠지.
참나! 고작 마나 골드 때문에?
‘아예 광산을 닫아 버려야겠네. 괜히 놔뒀다간 분란만 일으킬라.’
운호로선 쓸모가 없다. 마나 골드야 에론 대륙에서도 구할 수 있고.
그러나 놈들의 입장에선 탐이 나겠지. 그것만 있으면 충성스런 세뇌 헌터들을 공장에서 물건 찍어 내듯 생산할 수 있으니까.
차라리 없는 게 속 편하다. 그래서 운호는 핵 배낭 하나를 몰래 따로 챙겼다.
이제 남은 건 CIA 잔당들.
어차피 잡히게 되어 있다. 놈들을 찾는 건 의외로 쉽다.
지구는 자본주의 사회, 따라서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놈들이 현찰만 사용한다면 모를까.
“자! 찾아볼까?”
일전에 태블릿으로 CIA 본부를 해킹하다 발견한 페이퍼 컴퍼니와 수상한 은행 계좌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돈의 흐름을 추적했다.
지구상 어떤 보안 프로그램도 막을 수 없는 무적의 창! 찌르면 팝업창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럴 줄 알았다.”
역시나 놈들은 일본에 있었다.
* * *
빈스 베이커를 비롯한 전직 CIA 요원 여섯 명은 서둘러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 심사?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모두들 대모 링글릿의 스킬을 익힌 터라 아무도 모르게 공항 활주로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
마침 나리타 공항은 페스트 유행으로 폐쇄된 상태라 내리는 비행기도, 떠나는 비행기도 없었다.
저 멀리 타고 갈 전용기가 보인다.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그놈의 정운호!
그러나 아직 기회가 있다.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고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이건 뭐지?
위이이잉,
어디선가 날아온 잠자리 떼들.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자꾸만 몸에 붙는다. 파리처럼 얼굴에도 앉으려고 하고.
“이게 자꾸만 덤비네.”
“헤이, 그것도 못 잡아? 이렇게 잡아서 힘을 주면… 어?”
“음?”
“아!”
뭔가 이상하다.
왜 안 잡히지?
“이건 무슨…….”
바로 그때!
“여기 있었구나!”
빈스 베이커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방향은 하늘 위였다.
“아!”
자신들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 한 명의 남자.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마치 영화 특수 효과 같다.
“저, 정… 운호?”
“어딜 가려고! 단념해. 이제 끝났으니까.”
왜지?
왜 저자가 여기 있지?
멍하니 그를 응시하는 빈스 베이커.
외통수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저자는 어떤 능력을 가졌기에 자신들의 계획을 모조리 박살 내고 탈출하는 순간까지 쫓아왔을까?
처음엔 로널드 대통령을 비웃었다. 겁쟁이 새끼, 한낱 헌터 한 명에게 벌벌 떨면서 기는 꼴이라니.
그러나 로널드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가 옳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순간!
“파이어 볼.”
운호의 나지막한 읊조림.
그러자 등 뒤에서 떠오르는 거대한 불덩어리.
하나, 둘, 셋, 넷……. 모두 여섯 개.
시스템 가이드 추출기를 꺼낼 필요도 없다.
살려 두기엔 너무나 큰 죄를 저지른 놈들이다.
페스트 전염에서부터 비록 실패했지만 핵 테러 계획까지.
7클래스 마법사의 파이어 볼.
이글이글,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
빈스 베이커와 전직 요원들은 그 열기를 고스란히 느꼈다.
“으으으.”
“이, 이런…….”
무슨 스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맞으면 죽는다.
슛! 슛! 슛…….
화르르륵!
화아악!
“끄아악!”
“컥!”
“사, 살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텅 빈 나리타 공항 활주로엔 처참하게 탄 시체 일곱 구만이 남았다.
그 뜨거운 열기에도 타지 않고 멀쩡한 하나의 태블릿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