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72)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72화
1년 후
그 말을 남기고 엘프는 숨을 거뒀다.
엘프의 주변엔 참상을 말해주듯 수많은 동족의 시체가 즐비했다.
‘지옥.’
지옥이라는 표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지옥이 맞았다.
모든 종족이 한데 얽혀 서로를 불신하고 죽여대는 무간지옥이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아우릴은 왜 균열의 탑에 들어온 거지?’
여왕으로 즉위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아니다.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는 시간의 흐름이 1:1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무의 세계로 들어가, 그곳에서 한 달 정도를 보냈으니 판게니아도 마찬가지로 한 달 정도가 흘렀으리라고 추정한 것이다.
달리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면?’
레메게톤 왕이 출현하고, 마왕이 놈을 죽이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심연족이 출현하여 균열의 탑을 오르기까지의 시간.
무엇보다 이제 막 즉위한 엘프여왕 아우릴이 ‘태초의 숲’이 텅텅 빌 정도로, 세계수를 지키는 엘프조차 없을 수준으로 전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왔다.
하이엘프들 전부가 아우릴을 인정한 상황이 아닌바, 반발이 있는 게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우릴이 그들을 납득시키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 모든 상황이 진행되는데, 한 달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으······.”
그때였다.
“로그아웃이, 로그아웃이 왜 안 되느냐고, 왜······.”
시체의 틈바구니에서 이번엔 인간을 발견했다.
로그아웃이라는 단어로 추정컨대.
‘플레이어다.’
지구의 인간이다.
판게니아로 로그인하여 입장한 각성자였다.
“세, 세계수 커뮤니티는 왜 안 들어가지는 거야? 황금률 상점, 경매장, 뭐 먹히는 커맨드가 하나도 없어······!”
“이봐.”
“상점 주인이 자리를 비웠다고?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나, 난 나갈래··· 으으으!”
“정신 차려라.”
“······허억!!”
제법 멀쩡하게 살아있는 남자였다.
시체의 산 옆에 무릎을 껴안고 무어라 중얼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자, 남자는 기겁하며 몸을 떨었다.
“사, 사람? 제발 사람이라고 해줘. 제발······!”
“사람 맞다. 너와 같은 플레이어지.”
“아아······.”
이내 긴장이 탁 풀렸는지, 남자가 무릎을 꿇었다.
“놀라게 하지 말라구······ 혹시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한국.”
“대한민국? 난 동양계 미국인. ‘태디’라고 불러줘. 그나저나 한국 사람들은 이미 다음 영역으로 나아간 거로 아는데 왜 여기 남아있는 거야?”
“이제 막 들어왔다.”
“······ 어디를 가나 늦장 부리는 놈은 있구만. 이런 상황에서도.”
“혹시 오늘이 몇월 며칠이지?”
“음······? 글쎄, 나도 여기 들어온 지 벌써 20일은 넘은 것 같은데······ 정확한 날짜는 나도 잘······.”
20일?
이 역시 이상하다.
균열의 탑 3층이 열리고 최소 20일이 더 지났다는 말 아닌가.
스윽.
스으으윽.
찰나, 무언가 바닥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태디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처, 청소부들······ 저, 절대 움직이지 마.”
그러곤 조용히 주의사항을 건넸다.
문제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놈들은 지척까지 다가온 뒤였다.
시체의 산 위에서, 옆에서, 사방에서 보이는 붉은 ‘눈’들.
“아··· 아아······.”
움직임 힘도 없는지 태디는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곤 눈물을 흘려댔다.
두려운 것이다.
도망치지도 못할 만큼 저 ‘청소부’라는 존재에 압도된 것이었다.
···솔직히 나도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태디가 청소부라 부른 것들의 외형이 굉장히 낯익었으니까.
‘태어나지 않은 존재?’
크기는 더 작지만, 저것들은 분명히 ‘태어나지 않은 존재’였다.
하지만 ‘태어나지 않은 존재’와 다른 것은 나를 보고서도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
일전 정령의 산에서 그것은 나를 보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쳤다.
허나, 눈앞에 있는 것들은 달랐다.
“주, 죽을 거야, 눈이 마주쳐버렸어······ 엄마, 아빠······!”
스스스슷!
청소부들이 다가왔다.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와 같은 기세로.
그리고 지척까지 접근하자.
펑! 퍼펑!
놈들의 육체가 터져나갔다.
동시다발적으로.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진짜 ‘태어나지 않은 존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괴물들이었으니까.
“이, 이게······.”
태디가 놀라선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목적한 바를 다시 한번 물었다.
“오늘이 몇월 며칠이지?”
“제, 제가 들어올 때 5월 16일이었으니까······ 6월 초 아닐까요······?”
··· 시간의 흐름을 의심하지 않았던 이유.
그건 계절이 같았기 때문이다.
크게 시간이 흘렀다고 여기지 않은 탓이었다.
한데······.
“올해가 몇 년도지?”
태디가 침을 꿀꺽 삼키곤 답했다.
“2, 25년···입니다.”
“······.”
이건 나로서도 충격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였나.’
···이제야 모든 게 명명백백해졌다.
‘무의 세계’에서 보낸 한 달.
판게니아로 넘어오자, 1년이 지났다.
즉시 균열의 탑으로 넘어와서 인지하지 못한 시간의 흐름이었다.
어쩐지 나를 대하는 엘프들의 태도가 이상하더라니.
마치 못 볼 걸 본 듯이, 나타나면 안 될 게 나타나기라도 한 듯이 대하더니.
‘그래서 나를 믿지 못한 거였나.’
여왕 아우릴와 엘프들의 행선지를 바로 말하지 않은 것도 같은 원인이었다.
1년 만에 갑자기 나타났으니, 그야 믿지 못할 수밖에.
“지난 1년 간의 일을 설명해봐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디의 두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으나, 청소부들을 손도 대지 않고 폭사시킨 게 나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그게··· 이야기가 좀 깁니다만.”
“상관없다.”
“아, 알겠습니다.”
태디는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레메게톤 왕이 판게니아로 넘어오고 1년여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세계엔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심연의 괴물들이 판게니아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많지는 않았으나 대륙의 균열을 불러오기엔 충분하였다.
결국 아이언 왕국의 프리드릭 왕이 전쟁을 재개했으며, 제국 역시 주변 왕국을 합병하기 시작했다.
북부의 백왕이 이끄는 짐승들과 인간들의 사이는 극도로 안 좋아졌다. 그 과정에서 엘프는 더욱 폐쇄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악신을 따르는 ‘발로그 교단’의 세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고, ‘여신교’는 새로운 교황 ‘아론’이 선출된 후 약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나마 ‘광휘의 기사 카심’과 ‘세아 성녀’가 없었다면 그조차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했다.
갑자기 악마들이 판을 치고, 심연의 괴물들이 등장하며 대륙의 판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띄었다.
그런데 ‘심연족’이 균열의 탑 2층을 클리어하자 상황은 더욱 급격하게 바뀌었다.
“갑자기 균열의 수치가 급격하게 높아졌습니다. 판게니아와 지구의 붕괴율이 40%를 넘어서서··· 마계의 네 번째 군주 ‘네피림’이 지구를 침략해왔습니다.”
네피림은 거인이다.
그것도 끔찍하게 커다란 거인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용신께서 막아주셨습니다.”
용신 하나.
아이들과 함께 진화한 그녀가, 네피림을 막아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심연의 괴물들이 균열의 탑을 클리어하면 균열의 수치가 급격하게 높아진다는 걸 확신하게 됐습니다. 이후 모든 국가의 플레이어들은 힘을 합쳐 균열의 탑 3층에 오르게 됐습니다. 문제는······.”
“문제는?”
“판게니아의 인간들이었습니다. 제국의 주도하에 모여서인지, 플레이어들을 여전히 배척했으니까요. 아이언 왕국의 프리드릭 왕도 노선을 달리했고, 하여간 인간들은 다른 종족과 달리 제대로 뭉치질 못했습니다.”
“왜 그러는 거지? 3층은 종족 대전이 아니었나?”
“···‘신화의 땅’을 독차지하려는 거죠.”
그렇다.
균열의 탑 3층을 클리어하면 얻게 되는 보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종족 자체가 ‘신화종’으로 분류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신화의 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같은 종족이라도, ‘신화의 땅’을 누가 갖느냐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심연족’을 상대하려면 다른 종족들도 연대해야 할텐데.”
“어떤 종족이 인간과 연대하겠습니까? 인간들조차도 서로 뿔뿔히 제 갈길을 가고 있는 마당에요. 그리고··· 어차피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없다?”
“누가 누구의 편인지 이미 알 수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는 불신의 시대였다.
같은 인간도 믿지 못할 판국에, 다른 종족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건 다른 종족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태디가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팬텀’만 계셨어도······.”
내가 없어진 뒤에 이 모든 사단이 났다.
나도 설마 시간의 흐름이 이토록 다르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으니.
“‘미궁 도시’는 어떻게 됐나?”
“······거긴 판게니아에서 ‘지상 낙원’으로 불립니다. 아무도 건들지 않거든요. 그나저나 어디 산 속에서 오셨습니까?”
“그렇다고 해두지.”
“그럼 더 깊게 들어가지 마십시오. 여기보다 더 지옥일 겁니다.”
“이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태디가 열심히 떠들어대던 입을 다물었다.
곧이어 그의 눈동자에 깊은 공포가 들이찼다.
“···다섯 종족이 뒤엉켜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인간, 엘프, 심연의 괴물, 짐승들, 마족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관계들이 한데 모였다.
그야 자연스럽게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서로 죽이고 죽이는 싸움 끝에 살아남은 이들이 다음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리라.
‘마족.’
마족이 참전했다.
마왕도 균열의 탑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신족’도 있었나?”
“모,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 신족은 만나본 적이 없어서······.”
아무래도 영역마다 마주치는 종족들이 정해져있는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특히 몇몇 존재들이 거슬린다.
내가 없는 틈에, 이러한 상황이 되도록 주도한 자들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의 부재를 이용하여 대륙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놈들.
“어, 어디 가십니까?”
“다음 영역으로 간다.”
“위, 위험합니다! 차라리 저와 함께······!”
나는 등을 돌려 다음 영역으로 향하고자 걸어나갔다.
멈추지 않자 태디도 급히 뒤따라붙기 시작했다.
“으으으! 같이 가요!”
*
프리드릭 왕.
교만의 악마인 그는,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군.’
아이언 왕국은 이미 판게니아에서 제국 다음의 세를 자랑하는 곳이 됐다.
이제 균열의 탑 3층만 그가 클리어한다면 제국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제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거슬리긴 한다만······.’
그래도 상관은 없다.
잠든 황제가 직접 모습을 보인 건 의외이나, 어차피 자신의 상대는 되지 않는다.
세계의 혼돈과 혼란으로 악마의 힘은 나날이 강해지는 중이었다.
과거 전성기 시절의 힘을 거의 다 복구한 상태.
감히 누가 있어 자신을 막을 수 있겠는가?
‘팬텀은 죽었다.’
확실하다.
1년 전, 갑자기 놈은 사라졌고, 이후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레메게톤이 출현했을 때도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어딘가에서 비명횡사라도 한 게 틀림없었다.
덕분에 악마들은 자유를 얻었다.
이제 이 힘으로 말미암아 판게니아의 주인이 되는 것도 머지 않았다.
혹시나 몰라서 끝까지 숨죽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확실하다.
팬텀은 죽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놈만 없으면 나를 막아설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프리드릭 왕이자, 동시에 교만의 악마인 존재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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