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정지훈이 짬타와 함께 야반도주하기 며칠 전.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 천후이안은 중국 공산당 주석의 소환 명령을 거부했다. 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낭떠러지로 몰린 원인은 바로 대영 그룹, 이제 이판사판이다.
복수심으로 똘똘 뭉친 천후이안, 하지만 사적으로 알고 지내는 중국 내 모든 헌터 길드에 전화를 걸어 봤지만 자신의 부름에 응하는 중국 헌터는 한 명도 없었다.
이미 끈 떨어진 신세.
그러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수를 해야 한다. 결과를 내야 권력으로의 복귀도 꿈꿀 수 있다.
그래서 천후이안은 라오닝성 단둥시로 갔다.
북한 신의주와 국경을 마주한 곳, 그곳에서 브로커 소개를 받아 북한의 용병 헌터를 만났다.
“걱정 마시라요. 동무, 돈만 두둑이 주면 안 되는 것이 없소.”
“착수금이오. 이건 내 스위스 은행 계좌. 비밀 번호는 이것이고.”
“내레 확인해 보갔습네다.”
노트북으로 은행에 접속해 금액을 확인해 보는 북한 헌터.
사실 북한의 헌터들은 가난하다. 북한 내의 모든 던전은 국가 소유, 그곳에서 뽑아낸 결정석은 당연히 국가의 것이니까, 그들은 밖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 동북 지역과 연해 주 블라디보스톡 부근은 북한 용병 헌터들의 주무대, 몰래 던전에 들어가서 결정석을 채취해 헐값에 암시장으로 팔아넘긴다.
돈에 환장해서 조금만 두둑이 쥐여주면 무슨 일이든 다 한다. 암암리에 외부에서 활동하는 북한 용병 헌터들의 숫자는 꽤 많다.
“나머지 돈은 작전에 성공했을 때 몽땅 넘겨주겠소.”
“흐흐흐, 화끈하시구만기래! 좋소! 당장 시작하갔슴네다.”
북한의 용병 헌터들은 즉각 움직였다.
남한에 잠입하는 건 쉬운 일. 삼엄한 북한의 경비 초소도 제집 드나들 듯하는 이들이 용병 헌터들이다.
그깟 남조선 국경쯤이야, 새 발의 피지.
* * *
운호는 매일 매일 자신을 졸라 대던 정지훈이 보이지 않자 허전함을 느꼈다.
‘어디 갔지?’
미오와 메이슨도 없이 혼자 사라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계에 가 보고 싶다고 난리를 떨던 놈이었는데…….
살짝 걱정된다. 요즘 부쩍 적이 많아진 대영 그룹,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혼자 쏘다니다 잘못되면 어쩌나?
그러던 중 정휘선 회장에게서 걸려 온 전화.
-미오 양과 메이슨 군이 거기 있다지? 차를 보낼 테니까 타고 오라고 하게.
“네? 왜 회장님이……?”
-응? 이야기 못 들었나? 지훈이가 바빠서 오늘 공장견학은 나 보고 대신 가 달라고 했네만.
“전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요, 그리고 걔가 바쁠 일이 뭐가 있다고요.”
-허허허, 알고 있네. 농땡이 치려는 거겠지. 우리 귀여운 돼지도 데리고 가더라고.
“돼지도요? 뭐, 그럼.”
짬타와 함께라면 걱정 없지.
뚱뚱하고 게을러도 운호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놈이 짬타.
겉모습은 평범한 고양이지만 지구, 아니, 에론 대륙에서도 놈을 이길 존재가 있을까?
‘드래곤도 인정했고.’
게다가 그 드래곤도 못하는 차원 이동을 마실 나가듯 하는 놈인데,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차원 이동 게이트를 열어…….
‘…응?’
불현듯 드는 위화감.
‘차원 이동?’
아직 합쳐지지 않은 퍼즐들이 떠올랐다.
미오 론티아와 메이슨이 준비되면 함께 갈 거니까 조금만 기다리라 했던 운호.
그러나 하루빨리 에론으로 가고 싶어 했던 정지훈.
츄르와 캔만 따주면 혹하고 넘어가는 짬타.
그리고 마지막 퍼즐, 한꺼번에 사라진 두 놈.
‘설마?’
정말 넘어갔나?
그러나 관세를 지불할 포인트가 없으면 알몸으로 넘어가야 할 텐데.
“…아차!”
정지훈, 그놈도 안다. 차원 이동 시 거쳐야만 하는 관세 시스템을.
그러나 운호가 지훈이에게 넘겨준 갑옷, 장비, 장신구.
‘이미 관세가 결제된 물건이고.’
영악한 놈이 그걸 모를 리 없다.
“이 미친 새끼가!”
운호는 서둘러 에론 대륙으로 넘어갔다.
아무리 짬타가 함께한다지만 그 동네는 위험한 곳이다.
바리안 왕국 수도 부근 던전에 도착한 운호, 밖으로 나와 일단 태블릿부터 꺼냈다.
툭툭툭.
‘최우선 탐색 대상 정지훈, 그리고 짬타.’
현재 로산트 제국 상공에 떠 있는 위성 드론, 짬타가 갈 만한 곳은 리들쓰론 아니면 바리안 왕국 리안 시, 또는 앙트 시 정도.
먼저 리들쓰론부터.
시간이 제법 걸린다. 고도로 발달된 안면 인식 프로그램이지만 이 동네도 인구가 제법 많은 곳이라 빠르게 결과를 뽑아내지는 못한다.
잠시 후.
“하아.”
리들쓰론엔 없다.
‘그럼 바리안 왕국으로.’
이것 또한 금방 되는 일이 아니다. 일단 위성 드론을 움직여 바리안 왕국 상공까지 이동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기다려 안면인식 프로그램 발동.
‘리안 시도 아니고, 그럼 마지막으로 앙트 시는?’
“휴우.”
드디어 찾았다.
이제 뭐 하고 돌아다니나 보자.
운호는 태블릿 탐색창을 열었다.
그러자 앙트 시 상업 지구를 짬타와 함께 돌아다니는 정지훈, 희죽희죽 웃으며 특이한 이계의 풍경을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나 참!”
순간 허탈해진 운호.
소심하고 어리버리한 온실 속 화초 재벌 3세인 줄만 알았는데 정말 저돌적인 놈이다.
하긴, 얼마나 바랐던 일인가? 어떻게 보면 소탈한 희망이다. 그저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것뿐이지.
“그래, 원하는 거 마음껏 해 봐라.”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이 얼만데 그 정도 못해 주겠나?
태블릿 위성 제어 프로그램을 실행해서 최우선 보호 대상을 변경했다.
“돼지는 보호해 줄 필요 없고. 망할 놈! 지조도 없이 그저 먹을 것만 주면 넙죽넙죽.”
하는 김에 블랙 드래곤 퍼미셀카사에게도 부탁해 두자.
아마 하릴없이 허공만 돌아다니고 있을 터.
위성 드론에 그가 포착되면 정지훈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하는 명령도 입력했다.
이 정도면 철통 같은 보호, 어디 가서 봉변당할 일은 없겠지.
* * *
“석유 관련 산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지지요. 정유와 석유 화학.”
정휘선 회장과 미오 론티아와 메이슨은 중형차를 타고 울산으로 이동 중이었다.
“정유 공장은 손자 놈과 구경해 봤지요?”
“네, 상단주님.”
“정유 공장에선 원유를 가열시킨 후 증류, 정제, 배합과정을 거쳐 석유 제품을 만들어 내지요. 그 과정에서 결정석이 추가되어 효율이 매우 높아졌답니다.”
메이슨은 열심히 만년필을 움직였다.
머리가 나쁘니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니 손발을 빠르게 놀려야 한다.
“휘발유에다 경유, 가정용 등유, 그리고 자동차가 가는 도로에 깔린 아스팔트도 정유를 통해 생산하는 거지요.”
“주로 에너지 제품들이네요. 증류 과정을 거친다면 역시 순도와 관련이 있나요? 순도가 높으면 발화점이 낮아지고.”
“허허, 역시 미오 양이군요. 맞아요.”
정휘선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반면 석유 화학은 정유보다는 더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답니다. 정유 과정에서 나프타라는 것이 나오는데… 이 나프타가 석유 화학의 기초가 되는 원료지요. 이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소재들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플라스틱은 아실 테고.”
“네, 알아요. 에론 대륙에선 대체할 수 없는 신물질이죠.”
“그걸 바탕으로 타이어, 화장품, 옷감의 원료인 원사…….”
정휘선 회장은 성심성의껏 설명해 주었다.
사실 이미 배운 내용들, 그러나 미오는 에론 대륙에서 발견했던 특수 던전 ‘유전’이 얼마나 커다란 역사적 발견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석유 화학을 통한 신물질들이 에론 대륙으로 퍼져 나간다면?
‘아마도 상상도 못하는 세상이 펼쳐지겠지.’
물론 부작용도 있다. 사람도 먹으면 똥을 싸듯이 석유 화학의 대가로 비롯되는 환경오염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
하지만 마법이라면? 마법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 될 것이다.
갈 길이 멀다.
지구의 주요 학문인 과학 기술, 그 오래된 역사를 한 번에 따라잡을 수 없는 노릇.
어쩌면 마법학보다 더 심오하다.
‘다음엔 마법사들을 좀 더 끌고 와야겠어.’
본격적인 탐구가 필요하다.
고대의 기초 과학부터 중세, 근대, 현대를 아우르는 체계적인 과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미오는 전문 학교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었다.
지식의 대중화.
신분에 상관없이 행해지는 의무 교육의 실현.
‘그러려면 먼저 신분 제도부터 타파해야 해.’
이미 로산트 제국은 그쪽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역시 롤랑 황제. 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던 거지?
어느덧 자동차는 울산의 대영 석유 화학 공장에 도착했다.
“자! 내립시다. 먼저 공장부터 구경하고 기술자들을 만나야 하니 일정이 빠듯하오.”
정휘선을 마중하기 위해 회사 건물 안의 간부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미오 론티아도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
7클래스를 너머 8클래스 초입에 다다른 그녀의 마나 감응력이 수상한 기운을 포착해 냈다.
‘이쪽, 저쪽… 음, 건물 위에도 있네?’
아마 이 상단의 경호 용병들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적이지.
미오 론티아는 재빠르게 방어 마법진을 정휘선 회장 주변 곳곳에 깔았다.
그리고.
“메이슨!”
스팟!
그녀가 외치기도 전에 메이슨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허이짜!”
쏜살같이 석유 화학 공장 건물 벽을 타고 오르는 메이슨.
두두두둑!
동시에 허연 연기의 꼬리를 달고 정휘선 회장과 회사 간부들을 향해 날아오는 물체.
슈우우우욱!
“허억!”
“저, 저건!”
“어어어어?”
쐐애애애액!
콰콰쾅! 쾅! 콰쾅!
미사일은 미오 론티아의 바로 앞에서 폭발했다.
시뻘건 화염이 사람들을 덮쳤다.
화르르르륵!
그러나 미오 론티아의 마법진에 의해 생성된 방어막은 미사일의 화염을 막아 내기에 충분했다.
“그래비티! 텔레키네시스!”
미오 론티아는 공격 마법은 보류해 두고 방어 마법에만 몰두했다.
다친 사람들은 없지?
이 사람들이 손끝 하나라도 다치면 운호를 볼 면목이 없어진다.
그녀는 먼저 정휘선 회장부터 살폈다.
그런데 이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그대로 우뚝 멈춰 서서 눈도 깜짝하지 않는 정휘선 회장.
“으흠.”
미오 론티아는 감탄했다.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거대한 상단을 이끌 수 있겠지.
콰콰쾅! 화르륵!
폭발성 무기들은 끊이지 않고 날아들었다.
살짝 줄어든 기세.
“매직 애로우!”
츠라라라랏!
그녀의 등 뒤에서 솟아오른 수십 개의 마나 화살이 이미 위치가 포착된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날아갔다.
허공을 보니 용병대장 메이슨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이 건물, 저 건물을 종횡무진 건너다니고 있었다.
“으짜!”
퍽!
“컥!”
죽이지 말라고 했으니 검의 옆면으로 후려쳐 기절만 시켰다.
‘쩝, 죽이는 것이 제일 깔끔한데.’
하지만 우노 님의 명령을 어기면 되나!
* * *
정지훈을 보호하기 위한 사전 작업들을 모두 끝낸 후 운호는 에론 대륙에서 돌아왔다.
조치는 해 뒀지만 그래도 정지훈이 걱정된다. 옆에 두고 지켜봐야 안심이 되지.
‘맞다. 연구소에 갈 시간이지? 지훈이, 그놈 때문에 많이 늦었네.’
운호는 차고로 가서 자동차 문을 열었다.
‘빨리 처리하고 에론 대륙으로 넘어가야지.’
이제 슬슬 600대 매릭스의 합성 결정석 생산을 시도할 참이다. 농도가 높을수록 활용도가 높아지니까 생산물량도 결정하고 가격 논의도 해야 하고.
연구소로 가기 위해 자동차 문을 닫고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 버튼을 누려는 순간.
티틱!
“응?”
찰나의 순간.
발밑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화염.
“이런 씨발!”
[아뮬렛에 인챈트된 실드 마법이 자동 발동됩니다.]“블링크!”
콰콰콰콰콰쾅!
고막이 터지는 굉음과 함께 뜨거운 화염이 운호의 자동차에서 솟아올랐다.
대폭발이었다.
와장장창!
주위의 건물 유리창이 모조리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말이다.
건물 저편 옥상에서 자동차가 터지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던 북한 용병 헌터, 장정식의 얼굴에서 비릿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간나 새끼, 남조선 최고 헌터라 지랄을 떨더만 별거 아니구만 기래!”
“내레 실속 있는 남조선 아새끼들은 한 명도 본 적 없슴메다.”
“길티, 남조선 헌터 에미나이 들 뱃대지에 기름만 가득 찼지비.”
다음은 대영 그룹 결정석 연구소, 목표는 합성 결정석 생산 기계다.
하지만 그걸 중국에 넘길 생각은 없다.
그게 얼마짜리 물건인데, 탈취에 성공하기만 하면 떠돌이 생활 청산하고 폼 나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런데!
“와! 생각도 못했네? 니들 북한에서 왔어?”
장정식의 눈이 크게 떠졌다.
목표물이 멀쩡하게 살아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썅! 이, 이 종간나 새끼… 모두 치라우!”
운호는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공격해 오는 북한 헌터의 서슬 퍼런 도끼날을 손으로 잡고.
턱!
주먹으로 머리통을 그대로 후려쳤다.
퍽!
“끅!”
개구리처럼 바닥에 납작 붙어 버린 북한 헌터.
장정식의 표정이 핼쑥하게 변했다.
그도 나름 상급 헌터다.
단 한 수의 동작만으로 운호의 실력을 충분하게 알 수 있었다.
숫자만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도, 동무! 이, 일단 말로…….”
“동무? 날 언제 봤다고.”
빠각!
경쾌한 골절음이 옥상으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