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마뇌는 이미 저 앞에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운호도 반사적으로 튀었다.
굳이 도망갈 필요가 있겠냐만은, 원래 옆에 사람이 돌발 행동을 하면 저도 모르게 따라 하는 법, 그리고 그냥 스킬이 자동적으로 발동됐기도 했고.
[트윙클의 체술 신속 질주를 발동합니다.]두두두두!
“이런! 꼴에 무공을 익혔나? 경공을…….”
“난 마뇌를 맡는다. 제갈명! 넌 인간과 영물을 잡아! 새끼, 방심하면 뒤진다, 응?”
“장표! 감히 누구에게 명령을?”
“꼽냐?”
“…좀 이따가 보자꾸나.”
마계에서 경공을 펼치는 무림인들에게 쫓겨서 도망간다?
대체 여긴 무림인가 마계인가.
운호는 도망가면서도 황당하다.
‘마뇌, 이 양반 어디 갔어?’
뭐? 극진히 모신다고?
이름에 뇌(腦) 자 들어갈 때부터 알아봤다.
머리 좋다고 하는 놈들치고 용감한 놈 없더라. 겁만 잔뜩 먹고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가?
그나마 자신과 함께 나란히 달리는 짬타, 태생이 고양인지라 훨씬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호와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귀여운 놈, 돼지니 뭐니 해도 너밖에 없다.’
정신없이 달리다가 갑자기 든 생각.
“가만, 내가 왜 도망치고 있지?”
“냥!”
“그치?”
아마도 마계라는 생소한 환경에서 어이없는 일을 겪다 보니 잠시 판단력이 흐려진 모양.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들은 강호 무림 출신들, 어떻게 해서 마계에 존재하는지 알 순 없지만 신안이 알려 준 정보는 그렇다.
‘무림인이라 해서 약간 쫄았나?’
그런가 보다.
그동안 던전 언데드, 또는 마법사나 기사들만 상대해서 그런지 갑자기 낯선 부류를 만나 살짝 당황했다.
‘웃기네.’
자신을 쫓아오는 제갈명이란 무인, 5갑자 300년의 내공.
그게 어떻다고?
자신도 9클래스 마스터에 그랜드 마스터 아닌가?
우뚝!
멈춰 선 운호.
되든 안 되든 한번 붙어 보고.
쫓던 대상이 멈춰 서자 제갈명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천천히 걸어왔다.
“허허, 그래, 지친 모양이구나. 잘 생각했다. 순순히 따르면 최소한 몸은 성할 터.”
듣는 듯 마는 듯, 운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짬타에게 말했다.
“돼지야, 너 잠시 쉬고 있어.”
“냥?”
“요즘 살이 쪄서 예전만 못하잖아, 그러니…….”
“냥!”
순간!
팟!
“…야! 위험한 짓 하지 말랬지!”
그러나 어느새 신산 제갈명 전면에 도달한 짬타, 저 뚱뚱한 몸이 어찌나 저렇게 빠를까.
“이, 이런!”
“캬아아악!”
처음에 주인이 도망을 칠 때 짬타도 같이 달렸다.
왜 도망가지? 뭐, 다른 이유가 있겠지.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짬타는 본색이 맹수.
그래서 본능적으로 안다. 저 인간이 사냥 가능한 놈인지 아닌지, 짬타는 자신이 내린 판단을 몸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캬악!”
파바박!
“어어어어……?”
챙! 채채챙!
제갈명은 검을 들어 영물 고양이의 앞발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발톱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내부가 진탕되는 느낌.
‘으윽, 무슨 영물이…….’
마계로 오기 전 그는 강호에서도 이름난 오대세가의 출신이었다.
무공보다는 다른 면에서 유명한 명가였지만.
영물 사냥?
자신도 해 봤다.
무려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물론 잡지는 못했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영물을 노리는 경쟁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다.
약하다 해도 영물 하나쯤은 잡을 힘이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몸집도 자그마한 것이 어찌나 강하고 빠른지 당황한 나머지 손발도 꼬여 버린 제갈명, 그리고 깨달았다. 사냥당하고 있는 건 바로 자신이란 걸.
반면 운호는 어이가 없다.
“무림인이라더니 허접하네.”
괜히 도망쳤다.
짬타도 상대하지 못하는 일천한 실력인데….
“돼지야! 빨리 조져! 물어볼 것이 많아.”
“냥!”
휘리릿!
탁! 타탁! 탁!
“헉!”
지면을 달려 제갈명의 무릎을 밟고 힘차게 도약하는 짬타, 그리고 0.1초 만에 수십 방이 쏟아지는 냥냥 펀치가 제갈명 안면에 그대로 적중되었다.
“캭!”
파바바바바박!
“끄어억!”
강력한 경력이 실린 앞발을 백 방 넘게 맞았는데 얼굴이 온전할까?
신산으로 이름을 떨쳤던 제갈명은 그대로 통나무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 * *
마뇌는 정신없이 도망갔다.
경험상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원래 마뇌는 무공과 거리가 멀다.
뛰어난 머리, 천재적인 전략 전술가, 황궁 학사 뺨 싸대기를 후려갈길 정도로 무궁한 지식이 있었지만 육체적인 능력은 부끄러울 수준, 게다가 소심하기까지 했다.
오래된 열등감이었다.
내공이라도 올릴 목적으로 열심히 마수를 사냥해 내단, 즉 마석을 먹어 치웠지만 결과는 마계 대공 릴리트의 노예.
‘저놈들 베리알을 섬기는 놈이었지?’
그도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다.
베리알에게 장표와 제갈명이 합류했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여긴 베리알이 다스리는 영지일 것이다.
‘어떻게 마법진에 개입을 했지?’
자신이 직접 그린 것이다. 연결 통로 마법진은 서큐버스 퀸 릴리트의 궁전 안에 있고, 마법진을 손보려면 직접 궁전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는 말은……?
‘궁 안에 배신자가 있구나.’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배신과 모략이 판치는 마계의 세상, 첩자나 배신자를 만들어 침투시키는 건 애교 수준이지.
그건 그렇고.
‘장표, 이 새끼는 왜 날 쫓아와?’
제갈명이라면 해 볼 만한데 말이다.
역시 재능의 차이는 크고도 크다.
먹어 치운 마석의 양은 장표나 자신이나 별다르지 않았다.
같은 마석을 먹어도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자신은 죽어라 갈아 먹었지만 겨우 3갑자에 머물렀다. 겨우 3갑자의 대가로 마계의 노예 신세. 그게 마계로 온 것보다 더 억울하다.
반면 장표는 10갑자에 도달하고 나서야 마계로 끌려왔다.
재능의 격이 다른데 뭐, 답이 있나? 도망쳐야지.
‘신탁자는?’
아마도 잡혀가겠지.
기껏해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 그의 직업도 상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알아서 잘할 거야.’
그를 대하는 릴리트의 태도만 봐도 안다.
베리알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마뇌! 이 늙은이 새끼야! 좋은 말 할 때 대가리 박고 꼼짝하지 마라, 나 성질 많이 올랐다.”
“헛소리하지 말고 저리 꺼져라!”
“하아, 병신 새끼가.”
언제나 그렇듯 마뇌도 믿는 한 수가 있다.
당연히 그것이 무공은 아니다.
‘구궁마환진을…….’
경공으로 내빼는 동안에도 돌멩이를 적재적소에 던져 환상 진법을 구축하는 마뇌, 어느덧 뿌연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엥? 뭐야? …이 새끼가 또 개수작을 부려!”
“대가리에 똥만 찬 놈이…….”
“씨발, 너 진짜 잡히면 죽는다!”
제갈명이면 모를까, 무식하게 힘만 센 무사 새끼가 진법을 파훼하는 건 불가능할 터.
마뇌는 쉬지 않고 달렸다.
베리알의 영지를 벗어나 릴리트의 궁전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다.
* * *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껏 몸치장이 집중하는 서큐버스 퀸, 릴리트.
그분이 곧 궁전에 도착한다. 이제 돈독한 관계를 맺기만 하면?
‘마왕이 되는 건 꿈도 아니야.’
다른 마계 대공들은 다 헛물만 켜고 있는 상황, 인재영입에 혈안이다.
그러나 서로 비등비등한 한 세력, 막상막하, 도토리 키 재기다. 그 밥에 그 나물이고.
그래 봐야 얼마나 차이가 날까?
하나의 세력이 다른 여섯 개 세력을 압도하지 못하면 말짱 황, 이럴 땐 지름길로 간다.
‘그분하고 같이 손잡고 마왕성에 들어가면 감히 누가 막아?’
신의 가호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남자다.
인간의 신일 뿐이라고?
그런 게 어디 있나?
마계나 에론이나 하나의 세상이고, 따라서 신은 유일하시지.
그리고 어디 생명체가 인간, 마족밖에 없나? 식물들과 곤충들, 그 모든 생명을 고루 다스리는 신은 언제나 공평하시다.
마왕 후보 자격을 가지고 있는 마계 대공쯤 되면 다 아는 사실.
‘역시 무식하기만 하고 힘만 센 인재보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놈이 제일이야.’
릴리트는 노회한 마뇌가 무척 맘에 들었다.
‘처음엔 실망했지.’
마족들을 씹어 먹을 정도로 강한 무인들이 득시글거리는 강호에서 놈을 끌고 왔는데 대가리만 큰 놈이 왔으니까.
아무튼 심령 제압이 끝난 상황이라 친히 이름을 내려 수하로 삼았다.
그런데 웬걸? 제법 쓸 만하다.
그때!
꺄악! 꺄악!
렙크로우? 저 떠벌이들이 왜 저리 난리야? 오늘은 또 뭘 봤길레…….
“인간! 인간이 마계에 출현했다.”
멈칫!
머리를 빗다 말고 언론 마수 랩크로우의 수다에 귀를 기울이는 릴리트.
“이블브레인이 베리알 영지로 데리고 왔다.”
“트릭터와 싱글비스터가 마중 나왔지.”
“도망간다. 인간과 마뇌가 도망간다.”
이블브레인이라고? 마뇌잖아!
왜 여기 궁전이 아니라 베리알에게 갔나?
“이 새끼, 설마 배신했어?”
아니지. 그랬다면 도망치지도 않았을 테고.
그러면 결론은 하나다.
놈이 수작을 부렸을 것이다.
“베리알, 이 냄새나는 파리 새끼가 감히……!”
파지직!
릴리트의 손아귀에서 일각수의 뿔로 만든 빗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 * *
공손하게 운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제갈명, 시시각각 짬타의 눈치를 살피며 긴긴 이야기를 토해 내고 있었다.
덕분에 강호 무림 출신들이 마계로 오게 된 이유를 알아 버린 운호.
“참 대단하다, 대단해. 내공인지 뭔지가 그게 그렇게 중요했나?”
“무인에겐 그게 전부입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얻어야만 하는.”
“그 말대로 됐네. 어때요, 영혼을 판 소감이?”
“…….”
제갈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남자의 말이 맞다. 자신은 영혼을 팔아 겨우 5갑자의 내공을 얻었다.
하나 그러면 뭘 하나?
자신은 마계에서도 최하급, 진(眞)마족 계급 제도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의 신세.
하루하루가 후회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만약 그런 일이 이루어진다면 마석 따윈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으흠, 하지만 마석을 먹는다고 해서 마계로 끌려온다던가, 영혼이 속박 당한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는데.”
“그건 마계 대공들이 자신의 마기를 이용해 마석에 복종의 인을 새겼기 때문입니다. 베리알의 것을 많이 먹으면 베리알의 노예가 되고, 메피스토의 것을 많이 먹으면 메피스토의 노예가 되는 식이지요.”
“아하!”
이상한 건 또 있다.
“어떻게 마계와 강호 무림이 연결되었는지 그것도 이상해. 차원 연결이 쉽나?”
“여, 연결의 주체는 마계가 아닙니다.”
“그럼?”
“바로 강호 무림이지요.”
마교의 작품이 아니라 무림의 작품이라고?
“설명해 봐!”
“으흠, 혈교(血敎)라는 단체가 있사옵니다. 인간의 피로써 온갖 악독한 주술을 펼치는 사악한 놈들이었습니다. 결국 무림맹과 마교의 합작으로 놈들을 멸하긴 했지만…….”
또다시 제갈명의 설명이 시작됐다.
강호 무림의 혈교라는 단체에 얽힌 비사.
‘이거 완전 무협지네.’
지옥의 마물을 소환해 강호를 피로 물들인다는 혈교의 계획, 그 금단의 술법을 위해 수많은 인간의 피가 흘렀다고 했다.
결국 공적으로 선포되어 마교와 무림맹이 나섰지만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혈교 교주와 성모가 지옥문을 열어 버리고 만 것.
자신들은 가만히 있었는데 공짜로 인과율이 성립해 버린 마계, 얼씨구나! 하면서 강호 무림인의 영혼을 줍줍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엄청난 영혼들이다.
종속의 인이 박힌 마석, 원래는 하나만 먹어도 충분하지만 강호인들은 기본적으로 수백 개, 아니 수천 개를 먹어야 비로소 종속의 법칙이 작용될 만큼 강했다.
설사 종속 작업이 끝났다고 해도 완전하게 복종하지 않고 틈만 나면 반항할 정도로.
그래서 지금 마계는 강호인들을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오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이 붙었다.
“으흠, 그런 식으로 마뇌는 릴리트의 종복이 된 거고?”
“교활한 놈이지요. 하지만 베리알 님이 영입을 결정해서 저희가 납치를 시도했던 겁니다. 항상 인재에 목마른 분이시지요.”
이제 이렇게 된 이유를 알았다.
“그나저나 마뇌를 찾아야 하는데, 그래야 마법진을 그려 에론으로 돌아가지.”
“에론 대륙으로 통하는 마법진 말입니까? 그건 저도 그릴 줄 압니다만.”
“그래요? 그럼 해 봐요.”
“…하오나 중요한 건 인과율입니다. 인과율이 성립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못합니다.”
“아무튼 해 보라니까.”
“명분이 없으면 될 리가 없는데…….”
“캬악!”
“아, 알겠습니다. 지, 지금 합니다.”
짬타의 위협에 서둘러 땅에다 마법진을 그리는 제갈명.
“끝났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인과율이 성립되지 않으니 마법진이 작동을 하지 않…….”
지이잉.
“허어억!”
제갈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동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