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32
32화 마법사는 그냥 나타나지 않는다
미오 론티아가 첫 번째 비명을 지르고 있을 무렵 운호는 늦게 잠이 들었다.
종이 제작 레시피에 대해 정리도 해야 했고, 집에 가지도 않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끝까지 책을 읽는 카렌 때문에 잠이 안 오기도 했다.
그래서 운호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던 암살 길드의 정예 요원들은 저택의 불이 꺼진 새벽녘이 되어서야 비로소 움직였다.
-잔다!
-수면 마법 스크롤은? 빨리 찢어!
찌익.
-미약도 투입해.
-그것까지?
-확실하게 재워야 데려가기 편해.
이윽고 그의 침실에 하나둘씩 나타나는 새까만 야행복의 괴한들. 모두 다섯 명이다.
-일단 묶어 놓고 들어 옮기자.
-알았어. 발목부터 묶는다.
-대충해. 어차피 수면 마법과 미약을 연타로 먹었잖아.
한편 운호는 꿈속에서 트윈 헤드 오거와 대결 중이었다.
꿈속 심상 수련, 처음엔 끔찍하기만 했던 대가리 둘 달린 오거지만 이젠 제법 상대가 된다. 창술과 체술도 서서히 숙련이 오르고.
그런데 갑자기 특이한 메시지가 들린다.
[사용자의 신체에서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응?’
[슬립 마법을 해제합니다.] [미약을 해독하기 위해 큐어 포이즌이 자동 발동됩니다.] [대결 상대가 트윈 헤드 오거에서 5인의 도적단으로 변경됩니다.]‘변경? 뭐지? 꿈이야, 아니면…….’
잠에서 깬 운호는 강시처럼 스르륵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자신의 발목을 묶으려 하는 괴한을 쳐다보았다.
-어? 깨, 깼어?
-그럴 리가! 몽유병이야?
‘도둑놈들이구나.’
운호의 주먹이 발목을 묶고 있는 야행복 괴한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빠악! 팍! 콰당! 쿠웅!
그에 그치지 않고 미친 듯 날뛰는 운호. 손에 잡히는 대로 패대기쳤다. 주먹으로 정수리를 내려찍고, 목을 잡아 초크슬램, 달려드는 놈은 발로 차 버리고…….
괴한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폭음은 잠든 메이드와 호위 용병들을 다 깨울 정도로 컸다.
-…강하네. 판단 실수야, 젠장!
-실패네. 할 수 없지, 잘 있어라.
-너만 가냐? 함께 다 갈 거야.
픽, 픽, 픽…….
털썩, 털썩, 털썩…….
“음?”
운호는 당황했다. 왜 다들 쓰러져? 저놈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사실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제압만 하려 했을 뿐, 그런데 한번 쓰러진 놈이 꼼짝도 안 한다.
그 무렵 저택 전체를 울리는 우당탕탕 소리에 호위 용병들이 뛰어올라 왔다. 용병대장 메이슨이 제일 빨랐다.
그가 목격한 방 안의 상황은 다섯 구의 시체 중앙에서 멍하니 서 있는 운호의 모습이었다.
‘시체?’
메이슨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인다. 복장도 눈에 익고, 저렇게 평온하게 죽는 모습도 들어 본 적 있다.
“우노 님.”
“아! 메이슨 대장님. 이 사람들은 제가…….”
“압니다. 지들이 알아서 죽었겠죠.”
“네?”
메이슨은 쓰러진 자들의 옷을 벗겨 엉덩이를 보여 줬다. 그곳에 새겨진 문신을 말이다.
“이건?”
스마일 표시. 동그란 원에 점 두 개와 호선을 그리는 입 모양.
이계에도 스마일 표시가 있었어?
“즐거운 암살자 길드입니다.”
“무슨…….”
“이들에게 임무 실패는 바로 죽음입니다. 아마 이들은 머릿속 뇌가 죽처럼 변했을 겁니다. 마법으로 사후 정보를 빼내지 못하게.”
“아!”
“이들 길드원들은 평소엔 굉장히 쾌활하고 즐겁게 삽니다. 암살자답지 않게 말도 많고요. 어차피 실패하면 죽으니까 최소한 살아 있는 동안은 즐겁게 살자. 뭐, 그런 겁니다.”
씁쓸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가장 확실한 증거 인멸 방법.
“그럼 누가 암살 청부를 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는 말씀인가요?”
“네, 하지만 암살이 아니라 납치시도 같습니다만.”
“납치? 왜 날… 아!”
간단하다. 자신은 특이한 능력을 가졌다. 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 또는 세력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그걸 독점하고자 한다면?
‘후우, 이거 신경 쓰이네.’
납치 같은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니지.
운호를 향해 권력이나 돈으로 회유나 영입 제안, 또는 힘을 행사해 억압하며 협박하고 설득하는 갖가지 종류의 시도들이 이어질 터, 이건 시작일 뿐이다.
윌리엄 상단주도 연락을 받고 뛰어왔다.
“이런…….”
한숨을 쉬는 윌리엄,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신탁자가 된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 과거 신탁자들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최후는 비참했고.
“메이슨 대장.”
“네, 상단주님.”
“용병대 호위 인원을 더 늘리게. 앞으로 업무 제1순위가 우노 님 저택이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알겠습니다.”
운호도 심각성을 깨달았다.
‘골치 아프네. 결국 더 강해져야 하나?’
일정은 앞당겨야겠다.
차원 기여도 점수를 벌어야 한다. 일단 약속된 것들은 모조리 일괄 처리하고 나서 포인트를 투자해 마법 클래스를 올린다.
“상단주님, 오늘 종이 제작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장인들 모아 주세요.”
“네? 이렇게 빨리.”
“시간이 없어요. 지금 당장!”
“아, 알겠습니다. 모아 오겠습니다.”
* * *
사실 종이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닥나무와 같은 섬유질 풍부한 재료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다음으로는 반복된 노동으로 다져지는 기술자의 숙련.
그렇게 만들어진 한지는 의외로 비싸다. 노동력이 꽤 많이 들기 때문에 하지만 마법 양피지에 비한다면야…….
전처럼 회의실에 모인 운호와 장인들. 종이 제조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자 모두들 초집중 상태, 역시 제조법에 대한 비밀 유지 서약은 마치고 난 뒤였다.
운호의 설명이 시작되고 열띤 토론과 질답이 이어졌다.
“아!”
[상단 소속 장인들이 닥나무와 비슷한 재료를 떠올렸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58pt를 획득하셨습니다.]“그렇구나!”
[상단 소속 장인들이 한지 제작 공정을 배웠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71pt를 획득하셨습니다.]“이런 방법이!”
생각보다 차원 기여도 점수가 짜다.
던전 종이도 있고, 목간이나 나무껍질, 양피지 같은 대체제가 있어서 그러나? 그래도 대량 생산인데.
하지만 인쇄 기법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가자…….
[활판 인쇄 기술에 대해 깊이 인식했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1,639pt를 획득하셨습니다.] [금속 공예 장인이 금속 활자를 머릿속에서 착안했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1,125pt를 획득하셨습니다.]포인트는 몰라보게 훌쩍 뛰어 버렸다. 의도가 보이는 점수 획득 방식이다.
이쯤에서 장인들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인쇄?
종이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었나?
“음? 으흠, 인쇄라…….”
“간단한 글귀나 문양, 낙인을 찍을 때 목판을 사용하긴 했지만.”
“활판 기법이라면 꽤 쉬울 것 같지 않나? 게다가 금속이면 거의 반영구적이고, 크기를 규격화시켜 놓으면 원하는 글자를 골라서 끼울 수 있으니까.”
“필사가 아니니 가격도 싸지고… 음?”
“허.”
“설마!”
“이거 분위기를 보니 인쇄로 책을 찍자는 의도 같은데?”
운호가 전해 준 만년필과 본도자기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책의 대량 생산이라…….
솔직히 장인들은 회의적이다.
귀족은 제외하고 평민들의 문맹률을 계산해 보면 거의 10명 중에 7명은 글을 못 읽는다. 약 30%만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의미.
하지만 그 30%도 거의 상인들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돈도 많다. 뭐가 아쉬워 고리타분한 책을 읽고 있을까?
‘대필로 쓴 책보다 품질이 현저하게 떨어질 터인데.’
‘쯧쯧, 종이나 만들어 팔면 되지.’
‘실패가 뻔히 보여.’
하지만 윌리엄 상단주의 눈치를 보니 일은 반드시 진행될 것 같다. 어쩌나!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래서 군소리 없이 따르기로 했다. 이제 그들의 주제는 종이 생산에서 책 출판으로 옮겨졌다.
순간!
용병대장 메이슨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윌리엄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전했다.
갑자기 동그래지는 윌리엄의 눈, 난감한 표정도 함께였다.
뭐지?
운호에게 다가오는 윌리엄, 슬며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
하필 이런 때! 어쩔 수 없다. 나가 봐야지.
* * *
바리안 왕국의 1왕녀, 엘리아 사스티안은 누가 봐도 공주라 여길 만큼 품위가 있는 여인이었다.
항간에 다소 오만한 것이 아닌가! 라는 평도 있었지만 그녀의 눈부신 외모가 이런 악평을 모두 상쇄시켰다.
엘리아의 안색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지 못하고 마차로 수도에서 이 앙트 시까지 여행하면서 살짝 짜증이 나 있던 상태였다.
엘리아 공주를 여기까지 호위하고 온 근위 기사단 부단장 스튜어트는 그런 엘리아 공주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뿐.
평소 선망하던 공주님과 함께 이 변방까지 함께 여정을 같이했다. 이게 기사의 영광이 아니면 뭐가 영광일까?
그런데 왜 그놈은 아직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거지? 연락이 들어간 지 한참 지났는데.
“아! 저기 옵니다.”
상단 직원이 남자 한 명을 가리킨다.
걸어오네?
스튜어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슬쩍 공주의 눈치를 보니 그녀도 마찬가지.
‘이런 건방진!’
공주님을 보고도 변함없이 걸어오는 놈.
아무리 신탁자지만 바리안 왕궁의 백성, 공주께서 친히 오셨는데 부리나케 뛰어와 머리를 조아려도 부족할 판에. 그래서 스튜어트의 심사가 매우 뒤틀렸다.
운호가 홀로 걸어와 엘리아의 앞에 섰다. 그러자 잔뜩 굳은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는 스튜어트. 둘둘 말린 양피지 종이를 펴고 읽기 시작했다.
“만백성의 어버이시자 바리안의 고결한 피, 붉은 용의 심장을 꿰뚫었던 불굴의 전사…….”
수식어가 하품 나올 정도로 길다.
“…한없이 자애로우신 바리안의 지배자 사스티안 3세의 어명을 전한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
‘어떡하지?’
바리안 왕국의 국민도 아니고, 그냥 서 있을까?
‘에이, 그래도 예의는 지켜 주자.’
못생겼지만 그래도 공주이지 않나.
운호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마저도 스튜어트는 못마땅한 기색.
그러자 엘리아 공주가 나섰다.
“신탁자라고 들었어요.”
“네.”
“그대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준비하세요.”
“네?”
“그래요, 왕궁으로 갈 거예요.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하지 못하니 꾸물거리면 안 돼요.”
뭐지? 통보인가? 황당하다. 무릎을 꿇어 준 것이 아까울 정도. 아니, 다짜고짜 가자고?
기사 스튜어트도 한몫했다.
“이 말을 타라. 설마 말을 타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어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건 아니다.
공주가 여기까지 자신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그럼 바라는 것이 있다는 의미. 뭐겠나? 신탁자로서의 능력이겠지.
그럼 정중하게 부탁해야지. 처음부터 멋대로 흔드네? 예의 지킨다고 무릎을 꿇어 줬더니…….
운호는 바지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그리고 공주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지금은 바빠서 안 될 것 같습니다만 다음에 따로 약속을 잡죠.”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공주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뭐?”
“벌려 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요. 그거 다 처리하면 시간이 날지도 모르지만 뭐, 그때 가 봐야 알고.”
“…….”
엘리아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윌리엄과 상단 직원들은 안절부절. 그걸 본 스튜어트가 가만히 있을 리 없고.
“천한 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하는 짓거리도 천하기 그지없도다!”
버럭 호통을 친 스튜어트는 검대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슬쩍 공주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으로 멋있는 기사도 정신 아닌가!
“당장 꿇어라! 머리를 조아리고 공주님께 용서를 구해라! 그렇지 않으면 똑똑히 보여 줄 것이다. 기사의 정의를!”
점점?
“내가 왜?”
“뭐, 뭐라고? 이, 이놈이…….”
“내가 당신들 말을 들을 이유가 없는데?”
“이놈! 바리안의 백성으로서…….”
“그러니까! 난 바리안 백성이 아니라고!”
운호도 마나를 끌어 올렸다. 여차하면 실드 치고 튀면 그만이다. 여기서 장사 못하면 다른 나라로 가면 되지. 윌리엄에겐 미안하긴 하지만.
챙!
마침내 스튜어트가 검을 뽑았다.
챙챙챙챙!
근위 기사들도 따라 뽑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스우우우우우웅.
주위에서 소용돌이치는 마나의 기운. 삽시간에 무거워진 공기.
“헉!”
“대, 대체!”
“공주님을 보호하라!”
동시에 플라이 마법으로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6클래스 마법사 미오 론티아.
“어머? 우리 공주님 여기까지 웬일이실까? 나한테 미리 연락해 줬으면 마중이라도 나가지.”
미리 연출이라도 했나? 극적인 장면이었다.
“아!”
엘리아 공주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스튜어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마법사다.
그리고 마법사는 그냥 나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