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식물】
깊게 심호흡을 하고 내쉬었다. 슬며시 눈을 뜨며 겨울바람이 거세게 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들거리는 두 손을 억제하려 지팡이를 꾹 잡아,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옆에서 허윤 형이 말했다.
“어디 아프냐?”
“네? 아뇨. 그냥…….”
“그런데 왜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어.”
“…제가 실수하면, 제가 손을 잘못 움직여서 부숴버리면. 윤시아 씨의 계획이 전부 망가져 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 때문에요.”
“너 그런 건 정말 잘 말한다. 보통은 줄여서 말하지 않아?”
“그만큼 긴장했다는 거예요.”
“뭐. 너무 긴장하지 마라. 형이 너를 위해 지원군을 불렀으니까!”
“…예?”
지원군이라는 말에 어리둥절하면서도 허윤 형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정말 익숙하고, 그리웠던 이들이 밝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신서하 헌터… 박주완 헌터?”
“오래간만이죠?”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옆에서 허윤 형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어때. 감동적이지? 이 몸이 너를 위해 두 사람을 불렀다 이거야.”
“미쳤어요?”
“엉?”
“헌터 은퇴하신 분들인데 굳이…… 어. 그 팔이랑 다리…….”
나는 신서하 헌터와 박주완 헌터의 팔, 다리를 바라봤다. 그날, 몸을 던져 싸운 끝에 잃어버린 팔과 다리가 익숙한 나무 재질의 물체로 대체되어 있었다. 내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박주완 헌터가 말했다.
“한지언 헌터가 주셨습니다. 어지간해선 안 부서지게 만들어달라 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무엇보다 아이템이기에 저희의 뜻대로 잘 움직일 거라면서.”
“뭐? 한지언 걔가? 아니 걔는 어떻게 알고…….”
그러자 신서하 헌터가 웃으며 말했다.
“한지언 헌터랑 우연이 마주쳐서… 다 말 해버렸거든요!”
그 말에 허윤 형이 폴짝 뛰며 소리쳤다.
“아. 내 완벽한 계획이! 한지언한테 다 빼앗겼잖아!”
“별 이상한 거 가지고 난리예요.”
“난 아무것도 안 해주고 와달라 했다고! 이상한 인간 됐잖아!”
“원래 이상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야!”
“신서하 헌터. 박주완 헌터. 그 아이템 재질 혹시 뭔지 아시나요?”
“재질이요? 글쎄요… 나무… 인 건 아시겠고.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아무것도.”
익숙한 느낌이 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건 내 능력으로 만들어진 나무니까. 하나, 지언이 형은 나한테 그런 걸 부탁한 적이 없는데. 언제……?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구나.’
진즉 생각할걸. 그럼 윤시아 씨도 좋아했을 텐데…….
‘아냐.’
지금이라도 보여주면 돼.
쿠르르릉. 하늘이 어두워지며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균열 아래 바다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거센 비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사나운 몬스터들이 소리를 내어 울었다.
곧이어 균열 가운데에 구멍이 커지며. 뻥! 비바람 불던 구름이 단숨에 갈라져 하늘에 구멍을 만들어냈다.
곧이어, 균열 너머로 사람 한 명이 작게 보였다. 그 사람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바다가 움직여 길을 만들었고, 손짓 한 번에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멎었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멎으며, 잠시 정적이 일던 순간. 안내 방송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생명을 해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희가 공격하면 그에 따라 공격하겠지. 그러니 지금. 기회를 주겠다. 살아 왕님 앞에 무릎을 꿇을 자. 지금 거수하라. 그렇다면 왕님도 자비를 베풀어 너희를 받아주실 것이다.”
누군가가 무어라 소리쳤다. 처음 듣는 언어라 잘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웃는 걸 보니 욕이겠지.
“그래. 결국, 너희의 선택은 그건가.”
붉은 재킷이 바람에 흩날리고.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커틀러스가 윤시아 씨의 손에 쥐어졌다. 곧이어 한 번 훅!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일어 다리가 밀렸다. 바람에 들었던 팔을 내리자마자, 바로 눈앞에 몬스터가 입을 쩌억 벌리고 나를 먹으려 들었다.
곧장 몸을 움직여 전투에 임했다. 중간중간 윤시아 씨에게 다가가려는 이가 있었으나 중간체 가지 못하고 밀려났다. 저렇게 하면 어떻게 다가가지? 지언이 형처럼 날지도 못하는데.
‘난다고 해도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지만.’
어떻게 하는 건지 비행 능력을 가진 이들이 다가가도 전부 밀려 나가거나, 바닷속에 있던 몬스터에게 먹혔다.
‘도대체 어떻게.’
성큼 다가오는 무력감에 무심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약속했는데. 그날 분명 윤시아 씨와 약속했었다.
그날. 탑이 사라진 날 말이다.
탑이 사라지던 날, 윤시아 씨가 사라지는 몬스터와 탑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적군이긴 해도 한때는 아군이었던 이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윤시아 씨의 옆에 있었다. 그러던 와중 윤시아 씨가 대뜸 내게 말했다.
“…소나기네요.”
“네? 소나기요?”
한없이 맑은 하늘에 무슨 소나기 소리일까. 단순한 장난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윤시아 씨의 표정은 장난이 아니라 말해주고 있었다.
“받아요.”
“네. 네?”
이번엔 푸른 펜던트를 내게 건네주었다. 단순한 은장식 가운데에 박힌 푸른 보석. 딱 보기에도 소중한 물건 같았다.
“윤시아 씨? 이걸 왜 저한―”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목이 무언가에 막힌 듯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주변 다른 몬스터들과 다를 바 없이 반짝이며 사라지는 그 현상이 윤시아 씨에게도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윤시아 씨! 잠깐만요. 이게 무슨, 기다려요. 제가 어떻게든―!”
“강희민 헌터.”
윤시아 씨가 작게 웃어 보였다. 그럴수록 더욱 고통스러워지는 마음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윤시아 씨가 이 상황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할 말만 내뱉었다.
“이 펜던트는 제 기억이 담겨 있어요. 윤시아로서의 제 기억이요. 그러니 잘 가지고 있다가 모든 걸 잊어버린 제가 앞에 나타나면, 이걸 손에 쥐여주세요. 만약 제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걸로 절 추억해 주시고요.”
“잊는다니요? 아니, 이해를 못 하겠어요. 무슨 소리예요. 대체? 지금 장난하시는 거죠? 네?”
“아주 잠깐. 소나기가 온다고 생각해 주세요. 미안해요.”
“윤시아―”
그렇게 손에 잡히지 않고 사라진 윤시아 씨는 내게 펜던트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후 찾아온 평화에 나는 당혹감과 우울함, 무력감에 어찌하지 못하고 방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게이트가 다시 생겨났다는 소식에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렇게 단서를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곳은 온연 길드의 류천화 길드장이었다. 물론, 얻은 건 없었지만… 내 모습에 흥미를 느꼈는지 지원해 주겠다며 길드로 들어오라 하였고, 그렇게 온연 길드 소속이 되었다.
그리고 류천화 길드장은 찾을 방법이 있을까요? 라고 묻는 내 질문에.
“던전을 뒤지다 보면 나오겠지.”
라 답했다.
그 말에 던전만 하염없이 돌았다. 마허윤 형이 중간에 끼어들어 속도가 늦춰지긴 했지만, 정말 그간의 헌터 생활 동안 돈 던전보다 많이 돌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날 무렵. 드디어 당신을 만났다.
당신의 말대로, 당신은 모든 것을 잊어버렸지만. 괜찮다. 살아있으니까. 추억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니까.
‘도움이 되고 싶었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동안 온갖 감정들이 부풀어 올라 단 한 사람에게만 뻗어나갔다. 그 마음은 지금도 뻗어나가, 당신에게 향하려 하나.
‘내가 너무 무능해서.’
미안해요. 미안해.
돌아오고 싶은 당신을 도울 방법이 없어요.
꾹 참고 있던 울음이 나오려 했다. 지금은 울을 상황이 아닌데도. 겁쟁이처럼 울 상황이 아닌데도.
‘아무 방법이라도 좋아.’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추억조차 못 하는 당신에게 추억이라도 돌려주고 싶은데.
자세가 점점 무너져내린다. 몇 시간째 지속하는 싸움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내 모습에 기가 빨려 나갔다.
죄책감과 우울함, 무기력함이 뒤섞여 다리를 붙잡고 끌어내리고, 내려 나를 포기하게 만들기 시작할 무렵, 큰 외침이 들렸다.
“협동 좀 하라고! 새끼들아! 벌레도 니들보단 협동하겠다! 따로따로 움직이지 말고 한꺼번에 움직여서 파고들자고! 뇌 없어?!”
허윤 형이 무어라 왁왁 소리쳤으나, 주변은 외국인투성이였다.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짓다가 허윤 형을 콱 밀쳤다.
“야 이 개―”
“마허윤 헌터!”
박주완 헌터가 말리며 허윤 형의 말을 번역해 알리려 했지만, 그 누구도 듣지 않았다.
엉망이었다. 전부.
숨을 헐떡이며 무너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모든 소리가 물속에 들어간 것처럼 먹혀, 제대로 들리지 않던 차.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으로 오렴.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