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9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29화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에단이 뭐라 할 틈도 없이 제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녀의 온몸에서 푸르른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밀런 소백작!”
좋지 않은 몸으로 마법을 사용하려고 하는 그녀를 보며 에단이 놀라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사라는 생긋 웃었다.
“[사슬이 되어]”
그녀의 입술 사이로 룬어로 이루어진 시동어가 발동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라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마력이 형체를 만들며 하나의 마법진이 되었다.
“……!”
에단은 사라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가면을 쓴 것처럼 덤덤한 얼굴을 하던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라는 그것이 보기 좋아서 더욱 환하게 미소 지었다.
마법사의 기본 소양은 제멋대로 일을 벌이고, 그것을 멋지게 성공시키는 것이었다.
하물며 사라 밀런은 대마법사였다.
벌이는 일은 스케일 크게, 실패 없이 전부 대 성공으로 이뤄 낼 것.
이것이 사라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고,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 있었다.
“주군!”
암브로시아 저택에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요동치자 그것을 감지한 기사단이 순식간에 방으로 들어와 에단을 감쌌다.
몇몇은 마법을 구동하는 사라의 목덜미에 칼을 가져다 대려 하였다.
“물러서!”
싸늘한 에단의 명에 기사단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칼을 거뒀다.
“[머물지어다.]”
사라의 머리 위에서 뱅글뱅글 돌던 마법진이 철컥, 하고 무언가가 맞춰진 듯 회전을 멈췄다.
그리고 그것들이 일제히 에단 암브로시아가 끼고 있던 평범한 반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건!”
반지에 마법진이 밝고 선명한 빛을 내며 새겨졌다. 잠시 동안 그렇게 환한 빛을 내뿜던 마법진은 이내 스르르 반지 안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아, 아티팩트를 저렇게 빨리…….”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기사단과 얼결에 함께 뛰쳐 들어온 사용인들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에단 또한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았다.
순식간에 평안함이 온몸을 감쌌다.
6년 전, 사라가 건네주었던 아티팩트보다 더 강한 힘이 암브로시아의 저주를 억눌러 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금방이라도 그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갈증이 순식간에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마치 그저 평범한 인간이 된 것처럼 말이다.
“제가 왜 6년 동안 클로드 님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사라는 자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에단의 눈을 바라보았다.
피를 많이 흘려 창백해진 안색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면서도, 그녀에게선 알 수 없는 기백이 흘러나왔다.
“6년 동안 죽을힘을 다해 암브로시아의 힘에 대해 연구했어요. 단언컨대 나만큼 이 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물론, 그 힘을 다루는 공작님까지 포함해서요.”
“…….”
“공작님의 힘이 얼마나 클지 모르겠지만, 상관없어요. 나는 클로드 님에게 행복한 미래를 가져다주겠다 약속했고, 그 미래에는 당신도 있어야 해요.”
“어째서…….”
“클로드 님은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사랑하는 아버지가 없는 미래를 클로드 님이 원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사라의 말에 에단은 마치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굳었다. 그에게 아버지의 사랑이란 언제나 고통과 함께 수반되는 것이었다.
‘암브로시아의 힘을 키우려면 갈망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오늘부터 에단에게 물 한 모금도 주지 말거라.’
‘죽기 직전까지 때려. 힘이 못 이기고 숙주를 지키기 위해 튀어나올 거다.’
‘접촉은 쓸 만해도 한계가 있군. 살을 갈라 그 안까지 손에 쥐어 보면 뭔가 다를지도……. 아,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할 테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말거라, 아들아. 널 이대로 죽이기엔 아직 내 힘이 충분히 강해지지 않았단다.’
암브로시아의 힘을 키우기 위해 끝없이 공명을 하며 힘을 이끌어 내던 아버지.
생명력을 탐하게 하는 힘이 주는 고통을 견디게 만드는 학대를 사랑이라 여기던 아버지.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라 여기며 커 왔던 에단은 클로드가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저 아이가 나를 원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
그는 복잡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잠든 클로드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누군가의 품 안에서 잠든 아이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내가 클로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군요.”
그는 제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다시 한번 보았다.
그녀의 힘은 마치 구원을 닮아 있었다. 그가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감정이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사라 밀런이 할 수 있는 것이 이 정도라면 내가 클로드의 곁에 있어도 아이가 다치지 않을까.
그런 삶이, 허락될 수 있을까.
“대가를 말해요. 나는 대가 없는 호의 따위는 믿지 않습니다.”
에단의 말에 사라의 얼굴이 환해졌다. 드디어 에단 암브로시아의 인정을 받아 내고야 만 것이다.
여태까지 사라에게 클로드의 교육을 전적으로 맡긴다고 해 놓고도 부드럽게 선을 긋던 것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태도였다.
“대가는 이미 받았어요. 클로드 님에게.”
사라는 클로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이가 마음의 문을 점차 열수록 디엘린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그래서 클로드 암브로시아라는 불행의 새싹을 이 손으로 탄생시켰다는 죄책감을 조금씩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받는 대가였다.
“그런데도 공작님께서 제게 대가를 줘야 마음이 편해지신다면 한 가지 원하는 게 있긴 해요.”
“말하세요.”
사라의 말에 굳어 있던 에단의 얼굴이 한결 편해진 것처럼 풀어졌다.
그는 사라가 무엇을 요구하든 들어줄 마음이 있었다.
“앞으로는 제 이름을 불러 주세요.”
하지만 이런 요구는 에단이 각오한 바는 아니었다.
“이름 말입니까?”
“네. 어려우실까요?”
사라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에단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사라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좋지 않은 몸으로 무리해서 마력을 운용한 탓일 것이다.
에단은 크고 맑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라의 앞에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제 이름이 그리 어려운 이름은 아니잖아요. 네?”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저는 클로드 님의 유모고, 클로드 님이 성장하실 때까지 제 주인으로 모실 거예요.”
“…….”
“클로드 님이 절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공작님께서 도와주세요. 공작님께서 제게 극도로 정중하신데 클로드 님이 어떻게 저를 편하게 대하겠어요?”
사라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기사단이 그건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이자 가문의 가주인 에단이 사라에게 깍듯한데, 아들인 클로드가 유모인 그녀를 어떻게 마냥 편하게 대하겠는가.
일리가 있는 말이라 사용인들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안 될까요?”
사라는 이제 두 손을 모으며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레이디가 저렇게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 있는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에단은 결국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라.”
순간 사라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환한 미소를 본 에단은 잠시 넋을 잃고 사라를 바라보았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에서 마치 행복을 느낀다는 듯 웃을 수 있는 사라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듯했다.
“신난다! 핑계 김에 클로드 님한테도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조르면 되겠어요.”
사라는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이 소란에도 곤히 자는 클로드를 꼭 끌어안으며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는 아직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에단과 기사단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제 저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다들 나가 주시겠어요? 좀 피곤하네요.”
이제 더 이상 볼일은 없다는 듯 깔끔하게 돌변한 태도였다.
그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전부 저 사람 같을까.’
사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쉽게 가지고 논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죄송하지만 배웅은 못 할 것 같아요. 너무 졸리네요.”
사라는 크게 하품을 하며 눈을 감았다.
에단은 눈을 감고 곤히 잠들 것처럼 평안해 보이는 사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잠시 심장 근처에 손을 가져가던 에단이 이내 주먹을 꽉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 편히 쉬도록 하세요, 사라.”
“네.”
사라는 그가 묵직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러 주는 자신의 이름이 듣기 좋다고 생각하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가 멋대로 굴어도 약속한 것은 확실하게 지키는 남자였다, 에단 암브로시아는.
선을 쉽게 내어 주지 않지만, 한번 그가 허락한 선 위에서는 자유롭게 노는 것을 허락해 준다.
제멋대로인 면이 있는 사라와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었다.
“가 보겠습니다.”
에단이 뒤를 돌아 방을 빠져나가자 기사단 또한 우르르 제 주군을 따라 방을 나갔다.
잠시 사라의 목에 칼을 대려 했던 기사 하나가 안절부절못하긴 했지만 그도 역시 그 뒤를 따랐다.
“…….”
그리고 그렇게 방 안이 정적에 잠긴 뒤, 사라는 잠시 주변을 살폈다.
“……커헉, 욱!”
그러곤 섬뜩할 정도로 검붉은 핏덩어리를 울컥하고 토해 내었다.